에베소서 강해2016. 2. 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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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1:23)

 

사도바울의 정의에 의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넘치는 은혜가 충만하여 흘러 넘치는 바로 그 현장이 교회입니다.

 

여기서 충만함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은혜, 구원의 은혜의 충만함을 말합니다. 과거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고, 과거에는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과거에는 사단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그 은혜의 풍성함입니다. 바로 그 구원의 은혜, 복음의 감격이 풍성한 곳, 그곳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또 요한복음 1 1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여러분, 교회는 바로 충만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충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충만한 곳, 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충만함이란 없는 것을 짜내는 것이 아니지요. 우리가 함께 찬양을 한 곡 부르더라도, 우리가 짧은 시간 한 마다의 기도를 하더라도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충만해서, 복음의 능력이 충만해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찬양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감정을 이끌어내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일으키기 위해서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는 사람이 없는 은혜를 짜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임이 참된 교회의 모임이라면, 우리 교회가 참된 교회라면 우리 교회 안에 은혜의 풍성함이 넘칠 것입니다. 우리 안에 넘치는 은혜와 진리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찬양 한 곳을 하더라도 눈물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저 성도들이 서로 만나면 구원의 감격이 나누어집니다. 복음의 능력이 서로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복음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풍성하게 경험되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정의하면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충만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바울의 정의에 의하면 교회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요로움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를 계속 읽어가다 보면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 에베소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나타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부분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게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318-19)

 

바울이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합니까?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그 충만하심이 에베소교회에 충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귀한 진리가 숨겨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얼마나 큰 감격입니까? 그러나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가 참된 교회로 지속적으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지속적으로, - 어떻게요? - 지속적으로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세례와 성만찬의 관계

 

저는 이쯤에서 교회의 매우 중요한 전통인 세례와 성만찬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우리는 세례와 성만찬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경우에 오해를 합니다. 특별히 성만찬에 대해 오해하죠. 그 오해란 이것입니다. 성만찬은 단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의식이라는 오해입니다. 물론, 성만찬에 사용되는 떡과 잔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성만찬의 의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성만찬에는 단순한 상징 이상의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의미를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성경에 나오는 하나의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사건을 나뭇가지가 나무에 접붙여지는 것에 비유합니다. 그렇죠? 우리는 나뭇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나뭇가지가 잘려진 상태로 방치되면 곧 그 생명이 사라지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우리의 영혼은 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이셨습니다. 바로 이 사건을 기념하며 의식이 세례입니다.

 

그런데, 만일 나뭇가지가 좋은 포도나무에 접붙여졌지만, 그 나무로부터 지속적으로 영양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나뭇가지가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 나뭇가지는 비록 포도나무에 접붙여졌을 지라도 머지않아 생명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그분의 충만한 은혜를 경험했을 지라도, 다시 말해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졌을 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은혜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지 못한다면 우리의 영혼은 곧 시들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접붙여진 가지가 나무로부터 지속적으로 영양분을 공급받듯이, 우리의 영혼이 지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 누려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지는 그 현장이 바로 세례라면, 우리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지속적으로 은혜를 받아 누리는 현장이 바로 ‘성만찬’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중요한 전통에, 세례와 더불어 성만찬이 위치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서 구원받은 크리스천이 되는 것,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것을 기념하는 세례는 또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충만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지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충만을 경험하는 장소, 바로 그 장소가 교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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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