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2017.01.11 21:30
암브로시우스가 활동하였던 5세기의 로마 사회는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의 현대 사회와 사회경제적인 구조 면에서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5세기 로마사회의 가장 중요한 산업 기반이 토지를 경작하여 소출을 맺는 농업이었다면, 21세기는 3차 산업을 넘어 4차 산업을 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의 경제 정의를 위해 암브로시우스의 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5세기 후반 로마사회가 급속한 경제적 양극화의 현상을 경험하고 있을 때 로마교회 역시 토지 소유권을 통해 부와 권력을 확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세계 경제 역시 양극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적지 않은 교회가 경제적 정의보다는 양극화의 상위 지점에 스스로 위치하는 것만을 추구하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5세기 후반 경제적 불의에 편승하는 로마교회의 모습을 강도높게 비판하며 기독교적[성경적] 경제 정의를 외쳤던 암브로시우스의 글은 오늘날에도 큰 경종을 울린다. 

김유준 교수의 논문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암브로시우스의 경제윤리를 조명하면서 우리 시대의 경제 정의를 위한 중요한 기독교 전통을 환기시킨다. 특별히, 로마 제국의 경제적 불평등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을 제시하려는 암브로시우스의 <나봇 이야기>(De Nabuthe Jezraelita)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며 오늘날에도 암브로시우스의 논의가 유효함을 보여준다. 특별히 재물을 소유하기 위해 집착하는 사람들은 재산의 참된 소유자가 아니며, 재물의 진정한 주인은 베풀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여 나눔을 촉진하는 사람이라는 대목은 암브로시우스가 오늘날의 경제정의를 위해 왜 주목받아야 하는 지를 증명하고도 남는다(김유준, 49). 

김유준 교수는 경제정의를 위한 암브로시우스의 대안을 ‘필요의 권리’로 요약한다. “재산에 관한 가장 기본적 권리는 필요의 권리다. 이러한 권리를 위해 다른 모든 권리들은 종속되는 것이며, 이러한 권리에 의해 소유권이 제한된다.” (김유준, 54) 모든 재물의 공급자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재물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나누어주신다는 개념을 극한으로 확대한다면 김유준 교수가 지적하는 ‘필요의 원리’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혹은 그리스도인들]이 ‘필요의 원리’가 다른 경제 원리보다 앞선다는 점에 동의할 수 있을까? 공산주의가 '필요에 따른 분배'를 주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기독교 전통 안에 ‘필요의 원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학문적으로는 의미있는 서술일 수 있지만 그것이 오늘날의 경제 정의를 해결할 수 있는 기본 원리로서는 설득력이 약해보인다. 

논문 출처 



Posted by Rev. Dr. Hanjin Lee 이한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