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신학적 교회론2017. 1. 1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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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 교회를 진정한 교회 되게 하는가? 교회는 필연적으로 많은 부수적인 제도들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는 가운데 고대교회로부터 현대교회에 이르기까지 참된 교회와 거짓교회를 구별하는 기준, 곧 우리 교회를 진정한 교회되게 하는 핵심 요소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계속되어왔다. 니케아 신조는 4가지 교회의 표지(標識)를 제시했는데, 그것은 단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으로 이는 가톨릭교회가 전통적으로 주장하는 교회의 표지가 되었다. 이후 종교 개혁가들은 말씀과 성례전이라는 두 가지 표지를 제시하였고, 개신교신학자들에게 큰 이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개신교 신학도 니케아 신조의 4가지 표지를 원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가톨릭 교회도 개혁가들의 두 가지 표지를 부정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무엇이 진정한 교회의 표지인가보다는 과연 그것들이 우리 교회의 생명력 있는 특징인가이다.

바울이 언급하는 참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돌로 하며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2:20). 교회가 사도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교회가 12사도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적 전승’은 신약성서의 범위를 규정하는 기준이었다. 그러므로 교회가 사도적 전승을 받아들였다고 할 때 신약성서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교회의 기초로 받아들인다고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구약 성경을 대표하는 것으로, 결국 참된 교회란 신구약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르게 선포되는 곳이다.

복음의 선포를 들은 사람에게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면 그 마음에 믿음이 생긴다. 교회란 이렇게 복음을 듣고 믿음이 생긴 사람들의 모임이다. 개혁가들이 주장한 참된 교회의 두 번째 표지인 성례전(세례, 성찬)은 이러한 믿음을 확증하는 기능을 한다. 칼빈은 성례를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외형적인 표로 확인하는 증거이며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충성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1) 복음을 믿어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증표로서 세례를 받고, 지속적인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크리스천의 삶을 영위해나간다. 말씀도, 성례도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한평생 계속되는 과정으로서 크리스천은 참된 교회의 말씀선포와 성례전으로부터 그들의 신앙생활에 활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표지는 오로지 교회의 사도성이지 결코 도덕적 자질이나 교회 성도들의 양적인 숫자가 아니며, 교회 헌법도, 교회의 건물이나 화려한 장식도 아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터를 잡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복음을 선포하며, 그리스도의 몸인 성전으로 지어져가는 교회가 진정한 교회의 요건이다. 이 기준으로 종교 개혁가들은 중세 가톨릭교회의 개혁을 외쳤다.2)

유대인들은 성전과 의식과 제사장들의 활동을 굉장히 자랑하며 그것을 표준으로 교회를 확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와 같이, 로마 가톨릭 교도들은 교회 대신에 외관을 자랑하지만 그런 것은 교회와는 거리가 먼 것이며 또 없어도 교회는 훌륭히 존립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논박하기 위해서 예레미야가 유대인들의 미련한 자신감을 꺾는 데 썼던 논증을 사용하려고 한다. 즉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7:4). 주께서는 주의 말씀이 전해지고 양심적으로 지키는 곳이 아니면 어떤 성전도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으신다.

만일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를 집행하는 일에 있어서 순수성이 훼손 되었다면 그 외향이 아무리 화려하다 할지라도 참된 교회로 볼 수 없다. 같은 이유로 만일 우리의 교회가 복음의 말씀을 올바르게 선포하고 세례와 성찬, 그리고 예배에 진실함이 있다면 아무리 많은 다른 결점들이 있더라도, 우리가 바라보는 교회를 떠올리며 “교회를 믿습니다”3)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교회를 참된 교회되게 하는 표지로서 ‘말씀과 성례전’이라는 개혁가들의 전통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교훈을 받게 된다. 첫째, 우리 교회의 참된 교회됨의 표지가 사도성에 있다면, 교회의 내용, 교회가 선전해야 할 그 알맹이는 결코 민주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의 형태는 민주화된다 할지라도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의 내용, 그리고 교회를 궁극적으로 통치하시는 분은 교회의 구성원 중 그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또 참된 교회의 표지가 사도성에 있기에 교회 안의 모든 계급이 사라지게 된다. 사도들의 증언(신약성서)에 따라 교회의 머리는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둘째, 교회내의 갈등과 분열은 근본적으로 참된 교회의 특징일 수 없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는 궁극적으로 사도적 전승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그 알맹이로 가지고 있기에 하나의 교회이다. 몸도 하나이요, 성령도 하나이요, 주님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분이시다( 4:4-6). 그러므로 같은 신앙을 소유한 모든 교회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교회로서 서로간의 갈등과 분쟁을 용납할 수 없다. 어거스틴은 한 분리주의자들에게 “왜 당신들은 주님의 옷들을 나누는 죄를 지으려 하는가? 왜 당신들은 주님의 처형자들도 찢지 않은 위로부터 통째로 짠 저 사랑의 옷을 전 세계와 함께 보존하려고 하지 않는가?4)라고 절규했다. 이것이 니케아 신조가 말한 참된 교회의 첫 번째 표지인 단일성이다.

셋째, 매주 드리는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그 말씀에 응답하는 우리의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에서 말씀과 성례전이 시행되는 곳은 바로 예배이다. 말씀에 대한 온전한 선포와 진실한 응답이 있는 예배 속에 참된 교회 공동체가 있다. 만일 이것을 제외한 다른 어떠한 사교모임 속에서 교회의 친교를 말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참된 교회의 친교가 아니라, 거짓 교회의 친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교회를 참된 교회로 만드는 시작점은 교회의 예배에서부터 말씀과 성례전이라는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지 특징이 살아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 된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하여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견고히 세워진다고 선포한 후, 교회의 신비한 연합에 대해 계속해서 설명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마다 연결되어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거하실 만한 처소가 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어져 간다( 2:20-22).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의 모임은 이미 교회이다. 그러나 교회는 언제나 서로 연합하며 완성되어지는 과정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여 올바른 성례가 이뤄지는 모든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각 지체를 이루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바울이 설명하는 에베소서 2장의 교회를 한번 상상해보라.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교회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를 집행하는 모든 공동체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나누고 성례를 행하는 이 자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분이 되어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거하실 만한 아름다운 처소로 변해간다. 전 세계로 확장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몸에 오늘 드리는 예배로 우리도 참여하는 것이다.

 

1.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4, 14, 1.

2.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4, 2, 3.

3. 이한진, "우리는 교회를 믿는가?", 블로그(http://hanjin0207.tistory.com) 참고.
4. Augustine, Letter, 76,
재인용, 이양호, “아우구스티누스의 교회론”, 『현대와 신학』, 12 (1989 5), p. 175

 

https://m.blog.naver.com/practicaltheologian/223197398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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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