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설교2017. 5. 5.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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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미해결 과제

 

오늘 설교의 주인공은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교회의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이 꼭 그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인물, 곧 자신의 자녀들이 다니엘과 같은 자녀가 되기를 바라는 어떤 모델입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다니엘은 공부를 매우 잘하는 학생이었습니다. 다니엘 당시 바벨론 제국은 전 오리엔트 지역을 정복 한 후 각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만 선발해서 국가의 지원으로 바벨론에서 조기 유학을 시켰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식민지였던 유대인 출신이었지만, 자신의 실력으로 바벨론에서 조기유학을 할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다니엘 1장은 그렇게 각 지역에서 최고로 머리 좋다고 하여 뽑혀온 사람들 사이에서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가장 뛰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반에서 1등하는 것도 쉽지 않고, 전교에서 1등을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데, 다니엘은 유대 나라 전국에서 1등을 했을 뿐만 아니라 각국의 수제들이 모인 바벨론 황제 직속의 최고 명문학교에서 전 세계 1등을 하는 뛰어난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니 자녀를 둔 많은 부모님들이 자신의 자녀들이 다니엘과 같은 학생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또한, 다니엘은 공부도 잘하면서 신앙 생활도 열심히 합니다. 흔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공부한다고 주일 예배도 빠지고, 신앙생활은 뒷전인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다니엘은 늘 학교 공부에서 1등을 하면서도 신앙생활을 철저하게 했던 학생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성경을 읽으라고 큐티를 하라고 기도하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말을 듣지 않는데, 다니엘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같이 성전을 향해서 기도하잖아요.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는 장면도 등장해요. 그리고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왕이 주는 음식까지도 거절하지요. 그러니 우리 자녀들도 다니엘과 같이 이렇게 신앙생활을 예쁘게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먼저 공부를 잘했어요. 신앙생활도 참 잘합니다. 거기에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까지도 참 좋아요. 다니엘의 세 친구, 곧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 세 친구는 다니엘보다 공부를 쪼~~ 끔 못해서 전 세계에서 2, 3, 4등합니다. 1등은 다니엘이지요. 뿐만 아니라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다니엘이 중요한 신앙의 기로점에 서 있을 때 다니엘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는 친구였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만나러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은 친구는 한 사람도 안보여요. 그러니 우리 자녀들이 다니엘과 같이 공부도 잘하고 믿음도 좋은 최고의 친구들과 늘 교제하고 사귄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이처럼 다니엘은 모든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이 닮기를 원하는 모델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처럼 훌륭한 청소년 시기, 청년 시기, 나아가 장년의 시기를 보냈던 다니엘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마다 그 앞에 있는 모든 문제가 하나도 남김이 없이 해결되었을까요?

 

사실 다니엘은 구약 성경 전체에서 손에 꼽히는 문제 해결사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다니엘 앞에서는 너무도 쉽게 해결되곤 합니다. 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서 다니엘 이전에 눈의 띄는 문제 해결사는 단연코 요셉이었던 것 같아요.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 요셉이지요.

예를 들어, 당시 전 세계를 다스리던 애굽의 바로가 하루는 꿈을 꿉니다. 살진 소 일곱이 등장하였다가 그 뒤에 여윈 소 일곱이 나타나서 살진 소 일곱을 모두 먹어버리는 꿈이었지요. 바로가 곧 이어 또 하나의 꿈을 꿉니다. 매우 충실하고 풍성한 일곱 이삭이 나왔는데 그 뒤에 아주 가늘고 마른 일곱 이삭이 나타나서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버리는 꿈이었습니다.

당시 세계를 다스리던 애굽의 모든 지식인들 박사들이 그 꿈을 해석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누가 그 꿈을 해석하죠? 바로 요셉입니다. 바로의 그 꿈은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을 예고한 꿈이라는 사실을 요셉이 해석해내요.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요셉은 7년 풍년 뒤에 올 7년 흉년을 대비하라고 조언합니다. 그 방법으로 각 지역에 감독관을 세워 7년 풍년의 기간에 소출의 1/5을 바로의 이름으로 각 성에 쌓아 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확한 해석이요 탁월한 해법입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보여주었던 요셉의 탁월한 실력이 인정을 받아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오늘 설교의 주인공 다니엘은 바로 그 요셉에게 도전장을 내밀만한 인물이었습니다. 하루는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었죠. 그런데 꿈을 꾼 사람이 말이 없어요. 자신이 어떠한 꿈을 꾸었는지를 맞추고, 그에 대한 해석도 내어 놓으라고 명령합니다. 그 옛날 요셉은 그래도 바로의 꿈을 듣기는 했잖아요. 그런데 다니엘은 왕이 꿈 이야기를 해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이 어떤 꿈을 꾸었는지도 맞추고, 그 꿈의 해석도 내어 놓아라고 명령합니다. 아니, 어젯 밤에 내가 꾸었던 꿈도 잘 생각나지 않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력입니다. 그런데 어젯밤 옆집 사람이 어떤 꿈을 꾸었는지를 우리가 어떻게 알 수가 있겠어요. 그런데 이 어려운 문제를 누가 맞추지요? 다니엘이 맞추는 거에요. 여러분, 이처럼 다니엘은 어려운 문제를 쉽게 풀어내는 데 달인이었어요.

 

그러면 다시 한 번 질문을 드릴께요. 다니엘은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척척 해결을 하는 사람이니 그의 앞에는 어떠한 문제든 하나도 남김이 없이 다 해결되었을까요? 다니엘이 어떠한 문제든 그것을 놓고 열심히 기도하면 그 문제가 그 즉시 다 해결되었을까요?

 

다니엘은 학생 시절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출제되어도 그 문제의 정답을 거침없이 써 내려가는 사람이었어요. 다니엘은 성인이 되어 바벨론 제국의 관료가 되어 다양한 제국의 문제를 척척 해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작 그 마음에 있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 다니엘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었어요.

 

다니엘의 청소년 시절, 다니엘의 학창시절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 주변에는 좋은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험이라도 다니엘에게는 답이 다 보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하나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왜 유대인으로서 바벨론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가?”

 

질문을 바꿔볼까요?

 

나는 유대인인가? 바벨론 사람인가?”

 

자신의 정체성의 문제가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거에요. 아무리 공부를 해도, 아무리 전 세계에서 1등을 해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을 수가 없어요. 그 답을 찾으려는 하나의 몸부림이 바벨론 황제가 주는 음식을 거절하는 장면이었던 거지요. 그러나 제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다니엘이 성장하였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배우는 학생이 아니라 당시 세상을 다스리고 있었던 바벨론 제국의 고위 관료로서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질문, “나는 왜 유대인으로서 바벨론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가?” , “나는 유대인인가? 바벨론 사람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여전히 미결과제로 남아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 그 풀리지 않았던 문제는 다니엘 개인의 문제를 넘어 자기 민족 유대인에 대한 질문으로 확대되지요. 그 질문이란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우리 민족 유대인들은 왜 하나님을 모르는 바벨론 제국에 멸망하였는가?”

 

이 질문도 다시 풀어볼까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유대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아무리 공부를 하고, 아무리 연구를 하고, 제 아무리 기도하여도 그 대답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다니엘의 겉모습만 바라보면, 그에게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다니엘은 어떤 문제든 열심히 기도하면 다 해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지요. 다니엘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면 제 아무리 기도를 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해보니 모든 문제가 척척 해결되던가요?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열심히 기도를 하고, 최선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기울여도 우리 앞에는 언제나 남모르는 아픔과 숙제와 과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겨져 있다고요.

 

우리 주변에는 신앙생활을 열심히하고 늘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때문에 만사가 형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요. 그러서 우리는 더욱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면 바로 바로 응답도 받고 만사가 형통한 것 같은데 나는 그렇지가 않아요. 그러니 내가 무엇인가 신앙생활을 잘 못하고 있나? 나의 기도가 부족한가? 내가 무엇인가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이 있는가? 계속 이런 생각이 들지요.

 

그런데 여러분, 아무런 걱정도 없고 근심도 없어보이는 그 사람의 깊은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그에게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 여러분이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사람은 없어요. 심지어 어린 시절부터 제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출제되어도 척척 해답을 내놓았던 다니엘 조차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찾을 수가 없었던 거지요.

 

그러므로 주변 사람들에게 집사님, 기도하시라기도하면 하나님께 그 문제 해결하신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세요. 그 집사님께서 기도하게 계십니다. 그토록 마음이 아프고 힘든데 왜 기도를 안하겠어요. 기도를 안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아니고요, 기도하고 있지만 아직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울러,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해서 여러분의 기도생활이나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무엇인가 큰 문제가 있다고 너무 생각하실 필요도 없어요. 오늘과 같은 휴일에 수요예배까지 나와서 예배하는 여러분들이면 여러분은 충분히 훌륭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침내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

 

그러면 이제 궁금해지죠? 아니, 다니엘과 같이 믿음이 좋고 실력도 있고 신실한 사람이 왜 자신의 마음에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 곧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 나아가 자기 민족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이 뜻을 묻는 그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없었을까요? 왜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에 그토록 오래도록 침묵하셨을까요?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신앙생활하고 주님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고 하는데 왜 우리의 삶에는 여전히 미해결과제가 남아 있는 것일까요?

 

그 대답을 찾기 위해서는 다니엘이 그 마음 깊은 곳에 있었던 문제를 해결받는 장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해 ( 9:1)


여기에 다니엘 9장의 시간적 배경을 명확하게 표시해 놓고 있지요. 다니엘은 10대 청소년 시절에 바벨론으로 붙잡혀온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다니엘이 바벨론으로 온 것을 제 1차 바벨론 포로의 때라고 생각한다면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하죠 지금 다니엘 9 1절이 묘사하는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 첫해는 다니엘이 다니엘이 유대땅을 떠나 바벨론으로 이주한지 약 6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었습니다. 60년 동안 다니엘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었던 질문, 나는 유대인인가 바벨론 사람인가?” 자신의 문제를 넘어 민족의 문제로 바꾸어 본다면, “과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치열하게 씨름하였지만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자그마치 60년입니다. 그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드디어 다니엘 9 2절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 9:2)

 

다니엘의 눈에 드디어 예레미야 선지자의 편지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지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예레미야 29장에서 여전히 유대땅에 머물러 있었던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미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내용이 나와요. 다니엘이 60여년동안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자기 민족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을 하였는데, 바로 이 시점에 드디어 다니엘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통해 자신이 한 평생 풀지 못했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대 민족의 범죄가 창궐하여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하셨다는 사실, 포로생활 70년이 지나면 그들을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요, 예루살렘에 참된 회복을 일으키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70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이미 계획해 놓고 계셨어요. 그런데 그것을 알지 못했던 다니엘은 그저 기도하면서 답답해 했던 거에요. 하나님께서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60년 전에 알려주셨으니 다니엘에게 10대 시절부터 알려주시면 좋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고 바벨론에서의 포로 기간이 70년이 거의 되어가는 시점, 곧 다니엘이 바벨론으로 건너온 지 약 6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 아무리 기도하고, 제 아무리 신앙생활을 하고, 제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나의 삶 속에서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한 가지 발견하게 됩니다. , 하나님의 때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왜 그 60여년의 세월 동안 다니엘의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었던 질문에 대해 답을 주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도 아니고, 다니엘의 믿음이 불완전하기 때문도 아니고, 단지 하나님은 자신이 정하신 70년의 세월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왜 이렇게 단기적인 응답을 추구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오늘 기도하여 내일 응답받기를 기대합니다. 이번주에 기도하면 다음주에 응답 받기를 원하고요, 이번달에 기도하면 다음달에 응답받기를 원해요. 아무리 늦어도 올해 기도하면 내년에는 응답이 되기를 기대해요. 이러한 우리의 조급한 기도는 오늘 본문이 소개하는 다니엘의 기도를 생각할 때 너무도 초라한 기도가 아닐까요?

 

적어도 10년 정도 신앙생활을 했다면, 적어도 20년 이상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제는 우리의 기도가 지금 당장의 기도 응답에 붙잡혀 있기보다는 다니엘의 기도와 같이 60, 아니 한 평생 참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끊임 없이 기도하는 보다 넉넉한 기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민족을 위한 다니엘의 기도

 

다니엘은 60여년이라는 오랜 세월 끝에 드디어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왜 유대인으로서 바벨론에 와서 공부를 해야 했는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유대인이 왜 하나님을 모르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해야 했는지, 나아가 하나님은 다니엘 자신을 포함한 유대인들에게 어떠한 계획을 갖고 계신지 기도하는 가운데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통해 깨닫게 되었지요.

이제 다니엘은 다시금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다니엘 9장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다니엘에 다시 한번 온 힘을 다하여 기도하는 기도의 내용을 소개해주고 있어요. 다니엘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간절히 기도했던 기도의 제목은 오늘 본문 9 19절에 등장하는 단 하나의 기도제목이었습니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 9:19)

 

60여 년을 기도한 뒤, 다니엘은 드디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70년의 포로생활을 통해 유대인들을 새롭게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었지요. 그런데 그 사실을 깨닫고 보니, 이제 70년이 거의 차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다니엘은 뜨겁게 기도합니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주여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님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시해하여 주십시오.’

, 주님의 성 예루살렘과 주님의 백성 유대인들은 주님의 택함을 받고 주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사람들이오니, 주님의 계획과 같이 70년의 포로생활 이후 저 예루사렘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이 기도를 간절히 합니다. 그리고 이때 그 유명한 다니엘의 세 이레 기도가 등장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다니엘의 세 이레 기도는 놀랍게 응답을 받습니다. 아니, 다니엘이 기도를 처음 시작할 때쯤 이미 하나님은 응답을 예비해주고 계셨어요. 그 내용이 다니엘서 9장 뒷부분부터 10장에 이르기까지 등장해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다니엘이 그토록 열심히 기도했는데 다니엘은 70년의 포로 생활이 끝나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다시금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공동체를 재건하는 그 일에 다니엘이 동참할 수 있었습니까?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대열에 함께 했을까요? 구약성경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아마도 예루살렘에 오지 못한 것 같아요. 다니엘이 기도했지요,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도 받았지요,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고 회복되었지요. 그러나 그 모든 일은 다니엘을 통해서 된 것이 아니라 스룹바벨과 예수아라는 또다른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성취되는 것입니다.

 

마치 출애굽의 역사를 이끌었고 광야 40년 동안 참으로 기도하며 고난 가운데 인내하였던 모세에게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요. 그렇다고 모세의 충성과 모세의 기도가 헛된 것이 결코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다니엘의 기도는 응답 받았어요. 그러나 예루살렘에 들어가 성전을 재건하는 일은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일이지 다니엘의 역할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뜻을 도저히 알 수 없었기에 60여년 동안 간절히 기도하는 기도의 제목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자신이 직접 앞장설 수는 없었어요. 그래도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비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니엘이 한 평생 붙잡고 기도하였던 기도의 핵심 내용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다니엘의 기도가 있으십니까?

여러분에게는 자신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구했던 다니엘의 기도가 있으십니까?

여러분에게는 자기 민족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구했던 다니엘의 기도가 있으십니까?

여러분에게는 내가 주도하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다니엘의 기도가 있으십니까?

 

기독교의 참된 기도는 하나님께 나의 욕구를 관철시키는 투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평생의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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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