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2017.05.18 20:00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야고보서에 대해서는 선입관을 갖고 계신 듯합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믿음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되는 기쁜 소식이 바로 복음인데, 야고보서는 믿음을 부정하고 행위만을 강조하는 서신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야고보서는 복음의 핵심을 기록하고 있는 바울 서신들 예를 들어 로마서나 갈라디아서 에 비해 그 가치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라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때로는 적지 않은 분들이 야고보서의 대표적인 암송구절인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바른 복음의 진리로부터 그 마음이 흔들리는 경우도 있지요. 실제로, 야고보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아무리 읽어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복음의 진리, 인간은 아무런 자격이 없지만 우리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선포하는 구절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야고보서는 기독교의 신앙을 알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곧 복음의 진리를 찾고 있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누구이며 우리를 위해 어떠한 일을 행하셨는 지를 설명하는 서신이 아닙니다. 복음의 진리에 대해서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전제입니다. 오히려 복음의 진리를 알고 있지만, 복음의 진리를 어떻게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말씀인 것이지요. 그렇다고 성경 전체에 흐르는 복음의 진리,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의 진리와 상충되는 말씀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복음의 진리를 대전제로 하고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는가를 집중적으로 이야기해주는 말씀이지요.


많은 분들이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가 하나님께 인정받고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행해야 한다고, 무엇인가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릴 수 있는 우리의 공로나 자격이나 행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선언하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구원은 우리의 자격이나 행위나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는 선물입니다. 바로 이 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대표적인 신약성경의 책이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을 지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경건을 위해 달려가야 합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경건생활을 쌓아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은 받았잖아요.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하는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내고 싶은 것이지요. 그 감사와 감격의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경건입니다. 야고보서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는 신약성경의 대표적인 책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었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경건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부터 야고보서를 묵상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 곧 경건한 삶을 향한 거룩한 소원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 야고보서의 말씀을 순차적으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경건한 삶의 모습을 깨닫고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욱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경건한 삶을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시련: 경건을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경건에 대한 첫번째 가르침, 곧 야고보서의 첫번째 주제는 바로 고난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1:2)

 

말씀 드린 것처럼, 야고보서는 이미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누리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렇기에 단도직입적으로 고난의 주제를 언급합니다. 만일 누군가 기독교의 진리, 곧 복음의 진리를 찾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고난에 대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요. 여러분이 누군가를 전도하는데 당신은 교회에 나오면 수입의 10%를 꼬박꼬박 교회에 헌금하게 될 것이라고, 물질만이 아니라 시간도 헌신을 해야 한다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무수한 고난을 당하게 될 거라고. 이렇게 전도하시는 분은 없지요. 그 대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신다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면서 복음을 전하겠지요. 그러나 야고보서는 이미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에요. 이미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하나의 주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난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아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경건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시험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야고보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16:24)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 3:12)


우리가 참으로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우리가 참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인생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우리의 눈 앞에는 고난의 문제가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3절은 너희 믿음의 시련”, 곧 믿음의 시련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삶에서 경건이라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 한다면, 그 과정에는 거센 바람도 맞아야 하고, 비에 온 몸을 적시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어느 시인이 봄 날에 피는 아름다운 꽃은 한결같이 바람과 비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고 노래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믿음의 길, 경건의 길을 걸어가는 여러분에게 때로는 바람이 불어 흔들리고, 때로는 비가 내려 젖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지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3-4)



고난을 바라보는 복음의 관점


그러데 오늘 본문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2절을 다시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그 뒤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그 이유를 3절이 말씀합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5:3-4)


그러고 보면 이와 같은 말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쁨게 여기라는 야고보서의 말씀이나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와 같은 로마서의 말씀은 제 아무리 생각을 해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세상의 관점에서는 결코 있을 수도 없는 교훈이지요. 도저히 우리의 본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우리의 상식으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가 또 생각을 하고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니.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2] 그러면서 제 마음에 한 가지 참 중요한 교훈이 떠오르는 겁니다. 오늘 본문 야고보서 1 2절의 말씀은 도저희 납득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어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억하면 가능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큼 믿음의 길, 순종의 길, 경건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 극심한 고난을 받은 믿음의 시련이 어디에 또 있을까요? 그러나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인내하여 이겨내셨기에 그 뒤에 찬란한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고 만민에게 참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실 수가 있었잖아요. 그러니 복음을 이야기하는 로마서와 인간의 행위를 이야기하는 야고보서가 그 내용에 있어 서로 상충한다는 주장은 틀렸습니다. 로마서 역시 복음의 능력으로 어떠한 환란 속에서도 기뻐한다고 선언하고, 야고보서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 기초로 하여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여도 온전히 기뻐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났을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가 있느냐구요? 우리는 이미 그 해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억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에 온전히 믿는다면 우리는 고난의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심기어졌기에 그 복음이 아름다운 경건의 꽃과 경건의 열매로 이어지기 위해 때로는 강풍과 비바람을 맞을 지라도 그 모든 것을 우리 가슴에 새겨진 복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성경이 가르치고 우리가 추구하는 바른 경건은 고난이 없는 삶이 아닙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바른 경건은 고난이 찾아왔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힘입어 그 고난을 이겨내는 삶입니다.[3]



지혜를 후히 주시는 하나님


야고보서는 믿음의 시련이 찾아올 때 온전히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고난의 현장에서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복음으로 말미암는 기쁨이 아니라면 불가능하죠. 다시 말해, 고난의 현장까지도 복음의 빛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곧 복음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라고 표현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5)


여기에서 말하는 지혜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지혜는 우리의 모든 상황을 복음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지혜입니다. 그런데 그 지혜를 누가 주시나요? 바로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야고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하지 않고 인간의 행위만을 이야기한다고요? 아닙니다. 틀렸습니다. 야고보서는 고난 중에 온전히 기뻐할 수 있는 하늘의 지혜를 하나님께서 선물로, 은혜로 주신다고 선언합니다.


5절을 다시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시라고 선언합니까?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의 연약함을 꾸짖으시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살수 있도록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하늘의 지혜를 넉넉히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모습은 변함이 없어요. 언제나 넉넉히 주시는 분이시고, 언제든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만을 기다리며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준비를 하고 계시지요.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변덕이 심하고 믿을 수 없는지를 오늘 본문 6절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약 1:6)


의심하는 사람은 마치 무엇과 같습니까?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습니다. 바닷가에서 넘실거리는 파도를 생각해보십시오. 바람이 불어 올 때는 파도가 높이 솟구쳐올라갑니다. 그러나 곧 아래쪽으로 푹빠지고 말지요. 이렇게 높이 솟구쳤다가 다시 바닥으로 푹 내려가는 파도의 모습이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지 못하니 오히려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계획을 신뢰합니다. 잠시 잠깐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 같으면 마음이 교만해져서 높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자신의 계획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지요. 그러면 마음이 바닥까지 내려가는 겁니다. 마치 파도가 높이 솟구쳤다가 떨어지는 것처럼 언제나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그 마음이 한층 고양되었다가 금방 가라앉고 마는 모습이지요.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 1:8)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지혜로 고난까지도 바라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곳 저곳 마음이 흘러가는대로 정처 없이 방황하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바로 그때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행동을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줄 수 있는 믿음의 항구는 오직 우리에게 풍성한 하늘의 지혜를 예비하신 우리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Posted by Rev. Dr. Hanjin Lee 이한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