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2017.12.22 07:30

10년 전,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옥성득 저, 부흥과개혁사 출판)라는 제목의 도서가 한국 교회 안에 적지 않은 논쟁을 일으켰다. 기독교가 복음의 정신을 따르기보다는 현대 경영학 이론에 따라 성장과 부흥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저자의 지적에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작금의 한국 교회가 경영학적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 이러한 현상의 근원을 레슬리 뉴비긴이 근대 서구 문화를 분석하며 지적한 계몽주의적 특징 곧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 으로부터 설명할 수도 있다.

 

근대 서구 문화를 특징 짓는 계몽주의적 관점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한다. “서구 문화의 결정적인 특징, 곧 인간의 삶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나누고 사실과 가치를 분리하는 두 가지 특징의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이라는 점이다.”(p. 48) 공적 영역은 이성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가치의 영역은 배제한 채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혹은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 ‘사실의 영역이다.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는 목적과 가치를 이야기하기에 공적 영역에 자리를 잡을 수 없으며, 개인의 선택이 보장되는 사적 영역에 위치한다. 근대 서구 문화에서 사적 영역에 내몰린 기독교는 객관적인 사실로서 인정받을 수 없기에, 개인으로부터 선택받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을 토머스 루크먼(Thomas Luckman)은 이렇게 표현한다. “일단 종교가 사적인 문제로 규정되면 각 개인은 궁극적인 의미들로 즐비한 진열장에서 자기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p. 185 재인용) 종교는 사적 영역에서 자신의 안전한 터전을 찾았지만, 결국에는 상품을 개발하여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하는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북미에서 교파주의가 크게 일어나게 된 하나의 사회학적 배경 역시 개인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상품명(label)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는 근대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는 한편, 군사정권시대를 경험하면서 공적인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는 일에 더욱 주눅이 들었다. 군사정권시절, 복음주의 기독교가 내세운 정교분리원칙은 레슬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는 계몽주의 정신을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포장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한국 기독교가 진열대에 전시된 상품이 되고, 개개의 교회는 보다 잘 팔리는 상품이 되기 위해 마케팅 이론을 받아들인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사회학적 귀결인지도 모른다. 만일, 한국 교회가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라는 지적을 어느 정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근대 서구 문화 속에서 사적 영역의 상품으로 전락한 기독교를 다시금 공적 영역으로 이끌어내려 했던 레슬리 뉴비긴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교회는 모든 나라를 향해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통치와 주권을 선포하는 복음의 담지

자와 같다.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다른 권세를 추종하는 잘못된 충성을 회개하고 유일하게 참된 주권자를 믿음으로써, 다 함께 모든 자연과 모든 나라와 모든 인간을 다스리는 단 한 분, 곧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주권을 가리키는 표지요 도구요 맛보기가 되자고 요청한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나와 안전한 종교적 거류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의 왕권을 전하는 일꾼으로 다시 되돌려 보내기 위해 부르는 것이다.”(p. 159)


 


 

Posted by Rev. Dr. Hanjin Lee 이한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