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18. 1.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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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함께 묵상하고자 하는 본문 민수기 281-8절은 매일 드리는 제사, 그래서 항상 드리는 제사라는 의미의 상번제의 규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이러하니 일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어떻게 드리라고 되어 있지요? “매일 두 마리씩 상번제로 드리되여기에서 강조되는 단어는 매일입니다. 그러므로 3절의 규정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매일, 하루도 빠짐 없이 상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상번제는 매일 두 마리의 숫양을 드리도록 되어 있는데 한 번에 두 마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한 마리, 그리고 저녁에 다른 한 마리를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린 양 한 마리는 아침에 드리고

어린 양 한 마리는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 (4)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리고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요구하시는 것은 매우 분명합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라는 명령, 곧 일상의 예배를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1]

 

 

Zoom In, One. 구약성경을 포괄하는 구절

 

유대교 미드라쉬에는 오늘 본문과 관련된 매우 유명한 일화 하나가 있습니다. 히렐(Hillel)이라는 이름의 매우 유명한 현자가 여러 랍비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유대교의 정신을 하나로 요약할 수 있는 하나의 문장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구약성경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성경구절을 하나만 꼽는다면 어떤 구절을 꼽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첫번째 랍비(Ben Zoma)가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그는 구약성경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구절로 신명기 6장의 말씀을 암송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4) 이 첫번째 랍비는 유대교의 정신, 곧 구약성경 전체의 주제를 유일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그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이지요. 참으로 옳은 생각입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모습을 신앙생활을 하지만 그 모든 활동이 나의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과 상관이 없다면, 그저 사람들 사이의 모임이었고 그래서 사람들 마음의 유쾌함으로 끝났다면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봉사를 통해서, 그리고 성도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지금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더욱더 사랑하는 이 한가지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지요. 바로 그런 의미에서 첫번째 랍비는 신명기 6장의 말씀으로 구약성경 전체를 요약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첫번째 랍비가 자리에 앉자 그의 뒤를 이어서 손을 높이 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두번째 랍비(Ben Nannas)는 신명기 6장보다 더욱더 유대교의 정신을 하나로 요약하는 구절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레위기의 말씀을 인용했지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19:18) 두번째 랍비는 그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머무른다면 그것은 유대교의 참된 정신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첫번째 랍비와 두번째 랍비의 대답을 참으로 지혜로운 대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으로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소망이 있다면 첫번째 랍비가 이야기한 것처럼 온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요, 나아가 두 번째 랍비가 이야기한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지금 내 곁에 있는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는 질문을 받으셨을 때, 이미 신명기 6장과 레위기 19장을 인용하시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두 번째 랍비의 말이 마치자, 이제 세번째로 손을 높이 들었던 한 명의 랍비(Ben Pazzi)가 있었습니다. 그는 신명기 6장이나 레위기 19장보다 유대교의 정신을 더욱더 잘 요약하는 구절이 하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인용한 구절이 오늘 본문인 민수기 284절입니다. “어린 양 한 마리는 아침에 드리고 어린 양 한 마리는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그리고 세 번째 랍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대교의 참된 정신은

아름다운 시구라기보다는 구체적인 서술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불타오르는 한 순간의 사랑이기보다는

매일의 삶 속에서 친절을 베푸는 결혼 생활과도 같습니다.

그것은 초월적인 하나님을 칭송하는 믿음이기보다는

믿음을 일상 생활 속에서 표현해 내는 삶의 방식입니다.[2]

 

세번째 랍비의 이야기가 끝나자, 그 모임을 주관하던 히렐이라는 위대한 랍비는 서번째 랍비야 말로 유대교의 핵심을 찔렀다고 평가했던 것이죠.

 

하나님을 온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다. 또한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첫걸음은 매일 드려지는 우리의 기도, 매일 드려지는 예배, 매일 말씀 묵상을 통하여 나누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곧 일상의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Zoom In, Two. 가나안 입성을 눈 앞에 두고

 

4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하루하루를 버티고, 한 해 두 해를 인내하며 그렇게 오랜 시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광야에서의 40년 세월이 모두 끝나가고 있지요. 40년의 세월이 마쳐가자, 이스라엘 백성의 눈 앞에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요단 강 동편의 땅을 점령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단 한 평의 가나안 땅도 점령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40년의 세월이 끝나가자 이스라엘은 드디어 요단 강 동편에 위치한 아모리 나라를 무너트리고 바산이라는 나라를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출애굽 이후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모세의 뒤를 이어, 이제는 가나안 땅 정복이라는 민족적 숙원을 이루어낼 인물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민족의 지도자로 세워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앞장, 민수기 27장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 손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가나안 땅에서의 삶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곧 가나안 땅에 정착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그곳에서 어떠한 삶을 살 것인지 다양한 계획을 세우며 그 땅에서의 멋진 삶을 설계하고 있었겠지요.

 

바로 그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알려주십니다.[3] 그리고 그 말씀의 첫번째 규정이 바로 오늘 본문 상번제의 규례입니다. 어찌 보면 시시해 보입니다. 새로운 땅, 약속의 땅, 하나님 역사의 중심지가 되는 그 땅에 들어간다면 무엇인가 거창하고 위대한 일을 해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요구하시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요구하시는 것은 딱 한 가지.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드리는 상번제입니다.[4]

 

성경에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역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컨대, 이스라엘 민족이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오게 되는 출애굽의 사건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여 비옥한 그 땅의 주인이 되는 사건 역시 주변 모든 나라들이 톱뉴스로 보도할 만한 거대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매일, 매월, 매년 세상을 뒤흔들만한 일을 우리에게 요구하지는 않으십니다. 세상을 뒤흔들만한 거대한 일은 참으로 가끔, 한 세대에 한번 정도 있을까 말까 한 사건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더욱 자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다면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이른바 큰 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저 아침과 저녁 하나님께 정성껏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 곧 상번제의 규례인 것입니다.

 

원대한 꿈, 원대한 비전, 참으로 좋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 곧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일상의 예배야 말로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지 않습니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Zoom In, Three. 일상의 예배

 

가나안 땅이 마치 자신의 손에 들어와 있기나 한 것처럼 들떠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상번제의 규례를 알려주십니다. 이를 위해 먼저 모세를 부르시죠.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2a)

 

오늘 본문을 묵상하려면 이 대목부터 주의해서 읽으실 필요가 있습니다. 레위기와 민수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규정을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듣는 대상에 대해 어떤 구절에서는 아론과 그 자손이라고 말씀하시고, 또 다른 곳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구분해서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제사장들이 주로 기억해야 할 규정들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이르라고 말씀하시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귀 담아 들어야 할 규정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고 구분해서 말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상번제의 규례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제사 제도를 누구에게 말하도록 되어 있지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사실, 매일 하루에 두번씩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상번제는 제사장들이 주도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참여하는 제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 전체에게 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도 쉽게 우리가 생각할 수 있지요.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삶, 곧 일상의 예배는 제사장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명령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한 가지, 상번제는 어린양이 가장 중요한 제물이지만, 양으로 대표되는 가축만 드리는 제사가 아닙니다. 4절부터 다시 보실까요?

 

어린 양 한 마리는 아침에 드리고

어린 양 한 마리는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

 

여기까지만 보면 어린 양이 제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5절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에

빻아 낸 기름 사분의 일 힌을 섞어서 소제 드릴 것이니

 

상번제에는 가축을 태워드리는 번제 만이 아니라 곡식을 요리하여 드리는 소제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상번제의 규례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또 그 전제는 어린 양 한 마리에 사분의 일 힌을 드리되

거룩한 곳에서 여호와께 독주의 전제를 부어 드릴 것이며 (7)

 

어떠한 제사가 등장합니까? 하나님께 부어드리는 제사, 특별히 포도주를 제단 아래에 부어드리는 전제가 상번제에는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상번제를 한번 드리기 위해서는 세가지 형태의 제물을 모두 드려야 합니다. 곧 어린양을 드리는 번제, 곡식을 요리해서 드리는 소제, 아울러 포도주를 부어드리는 전제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8절이 이 사실을 요약해주고 있습니다.

 

해 질 때에는 두 번째 어린 양을 드리되

아침에 드린 소제와 전제와 같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릴 것이니라

 

상번제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제사이지만, 아침에도 어린양과 함께 소제와 전제를 드려야 하고, 저녁에도 동일하게 어린양과 함께 소제와 전제를 드려야 한다는 명령입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이니, 그것도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제사이니 오늘만 포도주를 부어드리는 전제를 빼면 안될까요? 오늘만 곡식을 드리는 소제를 생략하면 안될까요? 오늘 본문은 이런 생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규정입니다. 매일 반복하고, 아침과 저녁으로 반복하는 제사이지만 한번 한번의 제사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의미가 여기에 들어있습니다.

 

새롭게 시작한 한해 동안 이루고 싶은 여러분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원대한 꿈, 위대한 비전 그 모든 것을 향해 달려가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예외 없이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매일의 말씀과 매일의 기도와 매일의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일상의 예배입니다.

 

 

Zoom Out. 일상의 예배가 보장하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상번제를 명령하셨습니다. 상번제의 규례는 분명한 명령이지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명령만큼 강력한 약속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그 참된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 안에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있다는 말씀입니다.[5]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약속의 땅을 점령한 것도,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명령하십니다. 매일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상번제를 드리라는 명령입니다. 나아가 민수기 28장과 29장은 다양한 절기에 맞춰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와 같은 명령을 준행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지요.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군대를 조직하고, 군비를 축적하라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신 것은 그저 상번제입니다. 매일의 예배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요?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매일 드리는 상번제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 뒤에는 가나안 정복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크고 대단한 일이 아니라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상의 예배입니다. 우리는 그저 명령을 받은 데로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상의 예배에 정성을 다하면 됩니다. 평범해 보이고, 시시해 보이고, 사람들의 눈의 잘 띄지는 않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일상의 예배에 정성과 마음을 다하면 됩니다. 그러면 언제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복과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우리 삶 속에서도 펼쳐 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상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들의 역할이지만, 우리의 일상을 뚫고 들어오는 구원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1] 기독교 전통은 민수기 28-29절을 예배에 대한 교훈으로 재해석한다. Cf. Gordon J. Wenham, Numbers: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vol. 4 of TOTC (Downers Grove, IL: IVP, 2008), 219.

[2] Jonathan Sacks, Covenant & Conversation Leviticus: The Book of Holiness (New Milford: Maggid Books, 2015), 28-29.

[3] 민수기 27장과 28-29장의 관계에 대해서는 Philip J. Budd, <민수기>, vol. 5 of WBC (서울: 솔로몬, 2006), 519를 참고하라.

[4] 동일한 주제가 에스겔에도 등장한다. Cf. 왕대일, <민수기>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7), 518-519, 604.

[5] Cf. Gordon J. Wenham, Numbers: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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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