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후서 강해2018. 1. 2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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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주제는 매우 명확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가 되는 말씀이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7)

 

20절에도 가장 단순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지요.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마지막 세번째로 반복되는 구절은 24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짧은 여덟 절 가운데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으니 오늘 본문의 주제는 너무도 명확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먼저, 나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아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깨닫고 주님을 섬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교훈을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어주고 있습니다. 먼저 할례입니다.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8)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 유대인 출신으로 할례를 받은 사람이 있었고, 이방인 출신으로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할례를 받은 것과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을 가지고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에요. 아무래도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지 못한 이방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겠지요. ‘나는 조상적부터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이라고, ‘당신이 이제 막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아니냐. 그래서 이방인으로서 할례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고린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들도 뒤늦게나마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에 대해 사도 바울은 명쾌하게 답을 주지요. 각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는 것입니다.

 

할례 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이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19)

 

우리 중에는 부모님부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셨던 분들, 그래서 태어난 지 두 돌도 되지 않아 유아세례를 받은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한 분들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따라 예배당에 나오며 믿음을 자라났던 분들입니다. 반면, 우리 가운데 어떤 분들은 부모님이나 식구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이후에야 하나님께 나오셨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이러한 차이가 큰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 성경은 그러한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유아세례를 받은 분들은 자신의 삶에 극적인 경험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할 것도 없고, 늦은 나이에 세례를 받으신 분들은 유아세례를 받은 분들을 부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집중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유아세례를 받았든지, 그렇지 않든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 하나의 사실이 중요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대로 생활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또 하나의 예를 우리에게 제시하는데, 곧 고대 로마 사회에서 노예의 신분, 종의 신분에 있는 사람들의 예입니다.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1)

 

나의 사회적인 신분이 종입니다. 나의 사회적인 신분이 노예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돈으로 사고 팝니다. 나는 종이기 때문에 주인이 무엇을 명령하든 거역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당시 사회적으로 엄연히 존재하였던 노예제도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고린도교회를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의 사회적 신분은 종이고 노예입니다.

 

사회적 신분이 종이고 노예였던 분들, 그러나 고린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분들은 스스로를 바라보며 절망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나 같은 노예도 사랑하실까? 나는 오늘이라도 주인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팔릴 수 있고 주인이 무엇을 명령하든 그것을 행해야 하는 사람인데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을 향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물론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을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종이기에 노예이기에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은 버리라는 뜻입니다.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2)

 

여러분의 처지와 형편이 어떠하든, 하나님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자유는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동시에 여러분이 제 아무리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다하더라도 바로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책임이 주어져 있는 것이지요.[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그대로 살아가십시오. ,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불평하거나 탓하지 말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에게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며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십시오. 아울러, 여러분이 놓여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명을 기억하며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1]우리의 안락과 행복은 세상에서의 우리의 처지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관계에 달려 있다. 우리의 외적 조건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그것이 기독교 의무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하지 못하고, 또 아무리 나쁠지라도 그것이 기독교 특권을 누리지 못하도록 우리를 방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Mathew Henry, Commentary, 1 Corinthian 7: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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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