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2018.02.20 07:30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자신을 물질적으로 후원한 것에 대해 감사와 기쁨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디도라는 분을 통해 바울에게 선교 헌금을 전달하였고, 바울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성도들의 진심 어린 기도와 성도들의 뜨거운 사랑을 느끼며 감사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계속해서 묵상하고 있는 빌립보서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감사와 기쁨을 전달하는 것 외에도 자신의 편지를 통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신앙적인 권면도 주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주시는 권면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오늘 본문 7절에 등장하는 구절이 될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7a)

 

사도요, 전도자요, 선교사로서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던 바울의 마음에는 자신을 후원하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기를 바라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선교 사역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교회로부터 좋은 믿음의 소문이 퍼지는 것은 선교사로서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바울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든든한 힘이 되었겠지요. 그러고 보니, 우리 교회가 후원하고 기도하는 선교사님들도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계실 것 같습니다.

 

선교사로서 지금 당장 필요한 경비를 파송 교회가 지원하는 것도 큰 기쁨일 것입니다. 선교사로서 짧은 시간이라도 동역할 수 있는 협력자를 후원 교회가 파송하는 것도 큰 기쁨일 것입니다. 그러나 파송 교회, 혹은 후원 교회가 믿음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조금씩 잃어버린다면 그것만큼 선교사로서 큰 상실감도 없겠지요. 그런 점에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향해 간절히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우리말 성경은 생활하라고 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문은 조금 독특한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굳이 이 단어를 소개한다면 폴리튜오마이입니다. 이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시민으로 살아가다인데 당시 문화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는 작은 도시가 곧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도시 국가라고 부르지요. 그러므로 시민이 된다는 것은 국가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로마가 지중해 전역을 지배하였습니다. 빌립보라는 도시 역시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고 빌립보는 로마를 어찌나 빼어 닮았던지 제 2의 로마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은 로마의 시민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로마의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특권이 무엇인지, 동시에 로마의 시민에게는 어떠한 의무가 주어지는지 경험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로마 시민권자였던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면하면서 일반적인 의미의 생활하다는 단어가 아니라 시민으로 살아가다는 단어를 사용했던 것이죠.[1]

 

폴리튜오마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염두에 둔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권면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으로 당당하게 생활하라입니다. 당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 중의 특권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민권자들은 매사에 당당했습니다. 그들은 로마 황제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의 시민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은 더욱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처지와 형편이 어떠하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당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는 복음이 요구하는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라입니다. 당시 시민이 된다는 것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특권이었습니다. 동시에 시민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었습니다.[2] 그리스도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복음이 요구하는 책임과 의무도 감당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함께 모여 선교사님들과 선교지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값진 사명입니다. 그러나 선교를 위한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복음에 합당한 삶 , 거룩하고 정의로우며 사랑을 실천하는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고 위하여 기도하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이 가득하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아름답고 선교사님들에게도 든든한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정훈택, “ 1:19~30: 삶과 죽음을 뛰어넘은 믿음”, <빌립보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07), 123.

[2] Gerald F. Hawthorne, <빌립보서>, trans. 채천석, vol 43 of WBC, (서울: 솔로몬, 1999), 150.


Posted by Rev. Dr. Hanjin Lee 이한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