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18. 4. 1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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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제는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너무도 익숙한 내용이지요. 농부가 밭에 좋은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런데 밤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 씨를 뿌리고 갔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좋은 씨에서 밀이 자랐지만 동시에 원수가 뿌려놓은 씨앗에서 가라지도 함께 자랐습니다. 그 밭에서 일하는 종들이 가라지를 알아보고는 주인에게 문의를 하지요. “우리가 가서 그것들을 뽑아 버릴까요?” 그러나 주인은 내버려 두라고 말씀합니다. 추수 때가 되었을 때 곡식과 가라지가 뚜렷하게 구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라지의 비유는 교회의 모습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어 왔습니다. 왜 교회 안에 거짓된 믿음, 바르지 못한 믿음이 존재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교회 안에는 곡식도 있지만 가라지도 함께 있기 때문이라고 답을 했던 것이지요. 이러한 해석이 일면 타당한 면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현재 교회의 모습을 보다 정확하게 진단하는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라지 비유를 말씀하실 때, 그 강조점은 지금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심판의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지의 비유를 제자들에게 설명해주시는 장면을 보면, 이 비유의 강조점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비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간단하게 알려주신 뒤,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있을 일에 대해 매우 자세히 설명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40-43)

 

하나님의 나라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마지막 때, 곧 종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기역해야 할 것이 있다면 마지막 종말의 때가 반드시 있다는 것, 그날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공정하게 판단하시고 바른 자리에 위치시켜 놓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 지금은 마지막 때가 되지 않았기에 정확히 누가 곡식이고 누가 가라지인지, 무엇이 좋은 씨앗이고 무엇이 원수가 뿌린 씨앗인지 알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 교회의 일꾼인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29)

 

주인은 아마도 두 가지를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종들이 가라지를 뽑겠다고 밭에 들어가면 의도와 다르게 곡식을 밟을 수도 있고 해칠 수 도 있지요. 또 한 가지, 지금 곡식과 가라지가 한 자리에서 자라기에 그 뿌리가 서로 얽혀 있어요. 조심하면서 가라지를 뽑더라도 곡식의 뿌리가 함께 나올 수도 있고, 최소한 뿌리의 일부가 상하게 마련이지요. 이러한 가능성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주인은 종들에게 분명하게 명령합니다. “가만 두어라이것은 가라지로 말미암아 곡식이 괴로워하는 상황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곡식을 보호하기 위한 처사였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라는 책에서 키스트메이커(Simon J. Kistmaker)라는 신약학자가 가라지 비유의 적용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 정화라는 기치 하에 시기심 많은 신자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판단함으로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일으키며 그들을 교회로부터 축출하고 있다. … 이 비유는 우리에게 인내하라고 하며 자칭 재판관으로서 행세치 말도록 가르치고 있다.”[1] 그러고 보니, 가라지의 비유에서 등장하는 종들의 조급한 마음이 교회에서 봉사를 한다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놓여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 불의라고 보이는 것, 내가 생각할 때 옳지 못한 모습을 우리는 고치려 하고 수정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정당화하지요. ‘이것이 교회를 위한 일이고, 이것이 주님을 위한 일이다.’ 그러나 교회의 일꾼 된 여러분, 예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가만 두어라

 

우리의 새가족 사역이 이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새가족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추수 때가 되기까지 누가 곡식이요, 누가 가라지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나의 생각과 나의 기준을 가지고 쉽게 판단하고 섣부르게 행동한다면 오히려 곡식을 해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새가족 사역자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은 가라지를 뽑는 것이 아니라 곡식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돌보는 것입니다.

 

 



[1] Simon J. Kistmaker, The Parables of Jesus, 김근수, 최갑종 역, <예수님의 비유>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2), 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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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Dr. Hanjin Lee 이한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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