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18. 10. 22. 20:30
반응형

저에게는 평생에 잊지 못할 한 분의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저에게 유아세례를 베풀어 주신 목사님으로 지금은 고인이 되셔서 하나님 나라에 계십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입학했다는 소식에 참으로 기뻐하셨고, 제가 유학을 떠날 때까지 늘 한결 같은 모습으로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종종 찾아 뵐 때마다 따뜻하게 맞아주시면서 밥도 사주시고, 용돈도 주시고, 본인이 직접 읽으시던 책도 그 자리에서 저에게 건네 주시곤 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공공연히 저를 자신의 영적인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저를 참으로 따뜻하게 돌보아 주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루는 명절이 되어 목사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그때 목사님 방에서 제 눈이 띄었던 글씨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목양일념이었습니다. 20대의 어린 신학생이었던 저는 그 글씨에 담겨있는 목사님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목양일념그 글씨는 사실 저에게 고리타분하게 느껴졌고,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이야기로만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어린 나이에 청운의 꿈을 품고 신학교를 입학했던 저에게는 목양보다는 크고 화려한 사역, 그래서 교회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을 감당하고 싶은 욕심이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 현장에서 한 해 두 해 시간을 보낼수록 그 어르신의 다짐, 목양일념이 얼마나 귀한 가치이며 목회자가 추구해야 할 사명인지를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크고 위대한 일, 그래서 사람들이 기억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을 일들도 중요하지요. 그러나 한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들이 믿음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 그래서 선배 목사님들이 간절히 소원하셨던 목양일념의 길. 그것이야말로 그 어떤 화려한 사역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저도 조금씩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모세의 지도력과 아론의 지도력

 

오늘 본문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 모세와 아론이지요. 출애굽기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세는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로서 성경의 핵심적인 주인공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으로 아론을 세울 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의 장면은 이후 모세가 그의 죽음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는 것과는 다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세운 것은 자신의 사역을 계승하기 위한 후계자를 세운 것이지만, 모세가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은 모세 자신의 사역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모세와는 또 다른 형태의 지도력을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세우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건강한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모세의 지도력과 더불어 제사장 아론의 지도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모세의 지도력과 아론의 지도력이 각각 어떠한 특색을 지니고 있기에 하나님은 모세의 지도력에 만족하지 않고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우셨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모세의 지도력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목적, 곧 모세의 소명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은 모세가 어떠한 역할을 감당하기를 기대하며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을까요? 먼저는 이스라엘 백성을 종살이하던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사명이지요. 나아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언약을 맺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모세가 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물론 모세의 삶 속에서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곳에 거주하는 것까지 모세에게 주어진 사명이었지요. 물론 모세는 이 마지막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고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그 남겨진 사명을 완수합니다. 정리하면, 하나님은 그 시대에 필요한 역사적인 사명을 위하여 모세라는 탁월한 지도자를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모세의 지도력은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도력입니다.

 

그렇다면 제사장 아론의 지도력은 어떠한 특색이 있습니까? 과연 하나님은 아론이 제사장으로서 어떠한 역할을 감당하기를 바라시며 그를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세우셨을까요? 제사장 아론에게 주어진 역할은 모세와 같이 특별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론에게는 출애굽의 역사, 시내산 언약, 혹은 가나안 정복과 같은 시대적 과제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아론에게는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이 주어지는데, 레위기를 계속해서 묵상해보면 제사장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해집니다. 이를테면, 매일 하루도 빠짐 없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 백성들에게 율법을 들려주어 그들에게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치는 것. 혹 백성 가운데 피부병이나 문둥병이 발생하면 그들을 진찰하고 치유된 사람들이 다시금 제사를 통해 공동체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정리하자면 그 시대의 역사적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일상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른으로 자리를 잡아주는 것, 백성들이 언제든 제사장들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론의 지도력이 감당해야 하는 사명이지요. 쉽게 말해서, 옛 선배 목사님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사명, 목양일념의 사명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니, 모세의 지도력과 아론의 지도력 사이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가 드러납니다. 모세와 같이 시대적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사를 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마른 막대기 하나로 홍해를 가르고 하늘에서 맛나와 메추라기가 내리는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가나안 정복의 지도자 여호수아에게는 탁월한 전쟁 수행 능력이 있었습니다. 민족의 회개를 촉구했던 지도자 사무엘에게는 한 마디의 말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은사가 주었습니다. 성전 건축의 지도자 솔로몬에게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지혜가 있었고,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늘에서 불이 내리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은사를 사용해서 그들은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 아론에게는 그와 같은 놀라운 은사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론의 지도력은 특별한 은사로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알려주신 제사의 규정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 절차를 지키면서 자신의 지도력을 발휘합니다. 율법의 말씀을 잘 연구하여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풀어 설명하면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요, 피부병이나 문둥병이 발생한 환자들을 만나면 그러한 질병에 대한 율법의 규정에 따라서 환자를 진찰하고 율법의 지시대로 처방하면서 지도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세가 감당했던 역사적 사명은 크게 여기고, 아론이 제사장으로 담당했던 일상적인 사명은 반복적인 일이요 역사에 획을 긋는 사건이 아니라고 하여 그 중요성을 잊어버립니다. 역사적 사명을 위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를 발휘하는 분들은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시는 일꾼인 것처럼 보이고 그저 말씀에 근거하여 하루하루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시는 분들은 외면 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우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 모세의 지도력과 더불어 아론의 지도력이 함께 세워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모세를 통해 출애굽을 경험하고,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을 제작하는 일이 너무도 중요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아름답게 세워질 수 없습니다. 아니, 사회가 안정되면 안정될수록, 모세가 감당했던 시대적 사명이 완수되면 완수될수록 아론과 같은 일상적인 사명을 위한 지도력이 더욱 중요하게 대두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모세의 역할을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모세의 역할을 감당할 필요도 없습니다.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역할은 모세와 여호수아와 같이 손에 꼽히는 몇 분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날마다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며 병자를 돌보는 제사장의 사명은 아론 한 사람이 아니라, 그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비롯하여 모든 아론의 자손들이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서 제사장으로 부르십니다. 너무도 유명한 베드로전서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벧전 2:9a)

 

종교개혁가들은 이 사실을 만인제사장혹은 만민제사장이라는 용어로 표현하였지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모세와 같은 시대적 사명자로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역사에 기록할만한 위대한 일을 우리 모두에게 요구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제사장의 역할을 요구하십니다. 그저 내 곁에 있는 한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일,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 내 곁에 육신의 질병과 마음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이들을 진심으로 돌보는 일. 그와 같은 귀한 일을 감당할 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레위기 8장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우리 각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의 주역이 되어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의복, 관유, 그리고 제물

 

레위기 8장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우는 장면입니다. 본문을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이 과정에 필요한 것이 세 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 2절에 그 세 가지가 등장합니다.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함께

그 의복과 관유와 속죄제의 수송아지와 숫양 두 마리와 무교병 한 광주리를 가지고 (2)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데리고 와야 합니다. 더불어 세 가지 준비물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의복입니다. 두번째는 관유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송아지와 양과 무교병으로 구성된 제물입니다. , 아론의 제사장 위임식을 위하여 의복과 관유와 제물을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레위기 8장은 아론의 제사장 위임식을 크게 세 가지 순서로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의복을 입히는 것이고, 둘째는 관유를 붓는 것이며, 마지막 셋째는 제물을 잡아 위임식 제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모세는 먼저 아론에게 제사장의 옷을 입힙니다. 의복은 그 사람의 역할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지요. 예배시간에 찬양대가운을 입은 사람은 찬양대원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 교회에서는 주일날 빨간색 자켓을 걸치면 새가족 사역자가 됩니다. 판사는 법정에서 판사 가운을 입고, 군인은 전쟁터에서 군복을 입습니다. 멀쩡하던 사람도 병원에서 환자복을 갈아 입으면 그때부터 진정한 환자가 되지요. 이것이 바로 의복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의복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많은 의복을 입고 있습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의 의복을 입기도 하고요 때로는 찬양대원, 교회학교 교사, 구역장 등의 의복을 입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의복을 입으면 우리의 역할을 규정하기는 하지만 의복이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우기 위해 아론에게 제사장 옷을 입히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그의 내면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관유가 필요하고 제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론의 제사장 위임식을 위해 먼저 의복이 필요했습니다. 두번째로 관유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레위기 8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관유를 아론의 머리에 붓고 그에게 발라 거룩하게 하고

 

아론이 제사장의 옷을 입으니 그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시고, 백성들도 그를 제사장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옷을 입었다고 해서 그가 제사장에 합당하게 내면적으로 성숙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론의 머리에 관유를 부어 그를 거룩하게 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는 어떠합니까? 목사의 옷, 장로와 권사의 옷, 구역장의 옷을 입으니 나의 내면이 그에 합당하게 변화되던가요? 교회에서 임명을 받고 임직식을 행하니 우리의 속 사람도 겉모습와 합당한 사람이 되던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에게 관유를 붓는 것처럼 우리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론의 제사장 위임식을 크게 세 가지 단계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의복으로 아론에게 제사장 옷을 입히는 과정입니다. 둘째는 관유로 아론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제물을 드려 제사장의 위임식 제사를 드리는 장면입니다. 레위기 8장은 모든 제사의 과정을 상세히 서술해 주는데 그 가운데 눈에 띄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모세가 잡고 그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와

그의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그의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르고 (23)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우는 위임식 제사를 드리면서 그 피를 아론에게 바르죠. 구체적으로 아론의 몸에 세 군데에 피를 바릅니다. 귓부리, 엄지손가락, 그리고 엄지 발가락입니다. 사람의 신체 가운데 왜 귀와 손과 발에 제물의 피를 발랐을까요? 딜만(Dillmann)이라는 주석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제사장은 항상 하나님의 거룩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성별해야 했고, 언제나 거룩한 행동을 하기 위해 손을 성별해야 했으며, 늘 거룩한 길을 걷기 위해 발을 성별해야 했다.”[1]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귀를 성별해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손을 성별해서 거룩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나아가 발을 성별해서 거룩한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왕 같은 제사장의 사명이 주어졌다면, 그리하여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며 육신의 질병과 마음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분들을 찾아가 돌보며 위로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의복을 입은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목사와 장로와 권사와 집사라는 옷, 교회학교 교사 찬양대원 구역장이라는 옷. 그 무엇보다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옷. 이와 같은 의복을 갖추셨다면 이제 여러분의 심령에 관유를 붓고 제물의 피를 발라 여러분의 내면을 새롭게 하셔야 합니다.

 

 

결론 및 적용

 

설교를 시작하며 저를 따뜻하게 돌보아주셨던 한 목사님을 소개하여 드렸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그 목사님으로부터 참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분에게 들은 조언도 많고, 목사님께서 주신 책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제 마음에 또렷이 기억되는 하나의 조언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목사님의 가정으로 저를 불러 주셔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장신대를 다니는 신학생이었던 목사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에요.

 

한진군. 성경을 많이 읽어. 무엇보다도 성경을 많이 읽고, 특별히 신약성경을 많이 일도록 해.”

 

성경을 많이 읽으라고요? 제가 그래도 신학생인데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나 신학교에 입학할 만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설마 제가 성경을 안 읽고 기도를 안 하겠어요? 사실. 그 자리에서 내색은 안 했지만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나라는 그런 마음에 제 안에 있었어요. 그러나 시간이 많이 흘러 몇 해전 목사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 후 제 마음에 가장 깊이, 가장 오래 울리는 목사님의 조언이 있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한진군. 성경을 많이 읽어. 특별히 신약성경을 많이 읽도록 해.” 그러고 보니 그분의 목양, 그분의 섬김, 그분의 사랑. 그 출처가 어디였는지 이제는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을 많이 읽으십시오. 기도에 항상 힘쓰십시오. 여러분의 귀를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의 손을 거룩하게 하여 여러분이 행하시는 일을 성별하십시오. 여러분의 발을 거룩하게 하여 여러분이 걷는 인생길을 거룩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1] 고든 웬함, <레위기>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4), 161 재인용

반응형
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