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번역 자료2018. 11. 2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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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y G. Oden, God’s Welcome: Hospitality for a Gospel-Hungry World (Cleveland: The Pilgrim Press, 2008), 24-27를 저자의 허락을 받고 번역하여 게재함. 

 

세명의 남자를 발견하였을 때 아브라함은 존경심을 가지고, 그들의 종이 되려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자신의 장막에 잠시 머물러 쉬었다 가라고 간청하였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가진 최고의 것, “고운 가루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그들에게 제공했다(6-7). 아브라함은 이들을 누구로 생각했던 것일까? 왜 이토록 충성스러운 환대를 했던 것일까? 창세기는 아브라함이 그들을 주님이라고 불렀다는 것 외에는 정확한 내용을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다. 물론 독자인 우리는 1절에서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는 말씀을 읽었기에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알았을까? 아브라함은 그들이 그저 지나가는 행인 이상의 어떤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 감지했을까? 이후 히브리서는 이 사건을 이렇게 설명한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13:2)

아브라함은 이 사람들을 단지 낯선 사람들 이상이라고 알아보았다. 아브라함은 그 세 사람을 보고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릴 수도 있었다: 이들은 시장으로 가는 상인들이거나, 구제를 바라는 유랑인이거나, 혹은 쉬운 대상을 찾아다니는 사기꾼이라고.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와 같이 생각하는 대신 그들을 명예로운 손님으로 받아준다.

인식(recognition)이란 바라보는 것(seeing) 이상의 무엇이다. 인식은 드러나는 현상보다 더 깊이, 더 멀리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은 회상이며, 기억이며,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들의 이미 드러난 모습을 통해 그들 안에 있는 거룩한 존재를 바라볼 수 있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가치를 참으로 평가해주시거나 우리를 낯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보아주실 때, 하나님은 우리의 외형적인 모습을 넘어 우리를 바라보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참모습을 알아봐 주시는 것이다. 우리 역시 낯선 사람을 예수님으로 바라볼 때, 우리 역시 그의 외적인 모습을 넘어 바라보게 된다. 복음 환대는 이와 같은 인식으로 특징 지워진다.

예수님은 때때로 외적인 모습을 넘어 바라보셨던 분으로 묘사된다. 예수님이 우물가의 여인과 대화하실 때 예수님은 그녀의 겉모습 이상으로 바라보셨다. 이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하실 때, 예수님은 제자들이 외적인 모습을 넘어 참된 모습을 인식하기를 원하셨다( 16:16, 8:29, 9:20).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이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위대하게 생각해주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최선을 다할 때, 우리의 잠재력을 보아주셨던 선생님이 그러하고, 우리가 더 많은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어주었던 직장 상사가 그러하며, 우리의 꿈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우리가 바라던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고 비전을 심어주었던 멘토들이 그러하다.

우리의 가장 깊은 곳, 가장 진실된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를 원하는 인식은 언제나 표면적인 외형 아래에 감추어져 있다. 조급한 마음으로 마트의 계산대에서 줄을 서고 있는 엄마가 자녀와 다투고 있을 때, 계산원은 그녀가 사랑 많으며 헌신적인 엄마라고 이야기해 준다면 그 엄마는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면접을 보는데 면접관이 그를 능력 많고 고용할만 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면 그는 그만큼 평가를 받은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참 모습이 드러나지 않고 낙인 찍히거나 그와 같이 치부당할 때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그토록 강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가장 진정한 인식이며 가장 깊이 있는 환영이다. 우리가 사람을 어떠한 기준 젊은 흑인, 문신한 십대, 사커맘(soccer mom), 나이든 백인 등 으로 구분한다면, 우리에게 볼 수 있는 눈만 있다면 각 사람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간직하고 있다는 분명한 진리를 놓치게 된다.

이와 같은 인식이 우리로 환영 받는다고 느끼게 한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 제자도로서 타자성’(otherliness)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섬기는 하나의 방식을 뜻한다. 물론, 환대와 관련하여 이와 같이 깊이 바라보는 것은 오랜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다른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바라보는 것은 금방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때로 그들을 점점 알아가며 그들의 의복이나 고용 형태, 언어, 행동 양식, 필요 등을 넘어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다른 사람의 간증이나, 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바라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기에 앞서 함께 봉사하거나 함께 기도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수정해야 할 때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그리스도를 인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간을 환영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행위다. 그러한 인식은 하나님이 이미 현존하시며 각 사람은 사회적 구분으로 한계 지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선포한다. 인식이란 드러난 현상을 넘어 참된 실재를 바라보는데 이것이 환영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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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