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강해2018. 11. 26. 07:30

시편 131편은 세 구절로 구성된 매우 짧은 시편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는 참으로 깊고, 우리가 신앙의 여정에서 지속해서 추구해야 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명설교가 찰스 스펄전(Spurgeon) 목사님은 시편 131편을 가리켜 읽기에는 매우 짧으나 배우기에는 매우 오래 걸리는 시라고 평가했습니다.[1]

 

시편 131편의 교훈은 하나의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그 비유란 젖을 뗀 아이입니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2)

 

젖을 떼 아이라는 표현에는 두 가지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젖을 떼었다는 것입니다. 더는 엄마의 젖으로 생존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자신의 입으로 음식을 먹고 보다 딱딱한 재료를 씹어서 넘길 수 있습니다. 그만큼 성장한 것이지요. 젖에 대한 비유는 히브리서에도 등장합니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5:13-14)

 

그러므로 시편 131편에 등장하는 젖을 뗀 아이는 더는 젖먹이가 아닙니다. 그는 단단한 음식을 먹을 만큼 장성하였고, 히브리서의 표현대로 의의 말씀을 경험한 사람들이요 지각을 사용하여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젖먹이가 아닙니다. 젖을 뗀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단단한 것도 씻어 넘길 수 있는 영적 성숙을 경험한 사람들이요, 지각을 사용하여 선과 악을 분별하는 사람들입니다.

 

시편 131편에 등장하는 비유 젖 뗀 아이는 첫째로 젖을 떼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의미가 여전히 남아 있는데, 아직도 어린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편 131편은 젖 뗀 아이에 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2)

 

젖을 떼었습니다. 그래서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이제는 장성했다고 자랑함직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아이와 같아서, 젖을 뗀 아이가 여전히 어머니의 품을 좋아하고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품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만 참된 평안과 쉼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것,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는 것, 그리하여 영적으로 젖을 떼고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우리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이미 젖을 뗀 사람들이고 단단한 음식도 씹어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지각을 사용하여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하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젖을 뗀 아이가 여전히 어머니의 품을 파고드는 것처럼, 신앙생활이 익숙해지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조금 쌓였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하나님의 품에 파고들어 가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지속적인 과제입니다. 그러니 스펄전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시편 131편은 읽기에는 짧지만, 그 교훈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아니 우리의 전 일생이 소요되어야 하지요.

 

그리하여 시편 1313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찬송가 543장의 후렴구는 이렇습니다. “세월 지나 갈수록 의지할 것뿐일세 무슨 일을 당해도 예수 의지합니다.” 신앙의 경륜이 길어지고 늘어날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젖을 뗀 사람들이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품을 파고드는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넓으신 품을 사모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이 것이 그리스도인이 걸어가는 길입니다.

 

 

 



[1] Michael Wilcock, The Message of Psalms 73-150 (Leicester: IVP, 2001),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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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