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설교2018. 12. 2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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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28장의 주인공은 아하스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우상을 섬겼던 악한 왕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아하스 왕의 시대에 국가는 큰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에돔이라는 나라와 블레셋이라는 나라가 침략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변 국가가 군대를 일으켜 침략하고 공격하니 나라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이때 어떻게 할 것인가? 아하스는 어떻게 나라의 어려움을 이겨내려 했는지 역대하 28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때에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도와 주기를 구하였으니

 

주변의 크고 작은 나라에게 괴로움을 당하던 아하스의 눈에는 저 멀리 동편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는 앗수르라는 나라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사신을 보내어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의 눈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마련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보다 더 힘이 센 사람에게 줄을 대려고 하는 것이죠. 누군가 나의 괴로움을 도와줄 수 있는 힘 있는 사람, 우리는 그 한 사람을 찾아 나섭니다.

 

아하스는 앗수르의 왕이 보였어요. 그런데 앗수르 군대와 유대 나라와 와서 어떻게 행동을 하는지 보십시오. 20절입니다.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이 그에게 이르렀으나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를 공격하였더라

 

아하스는 자신을 도와달라고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을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디글랏빌레셀은 남 유다를 괴롭히는 에돔과 블레셋만을 혼내준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들보다 더 힘이 강력한 앗수르 군대가 남 유다를 괴롭히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하스는 앗수르 왕의 마음을 돌이켜보려고, 그래서 앗수르가 자신의 편이 되어 대적을 무찔러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에게 최선을 다합니다.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가져다가

앗수르 왕에게 주었으나

그에게 유익이 없었더라 (21절)

 

그 옛날 유다의 왕 아하스와 앗수르의 왕 디글랏빌레셀의 이야기를 읽는데, 오늘날 바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듣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으세요? 조그마한 어려움을 당해서 주변에 도움을 받기 위해 힘 있는 사람을 찾아가보았더니, 그 사람이 오히려 나를 괴롭히는 거에요. 마음을 돌이켜보려고 나는 최선을 다하는데 소용이 없어요. 이것이 사람들의 관계입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내 마음 알아주는 사람 없고요,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내 마음 같은 사람 없어요. 그러니 누가 누구를 의지하고, 누가 누구를 원망합니까?

 

시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 (시 146:3)

 

그러면 누구를 의지해야 할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때로는 내 삶을 내버려두시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께서 때로는 나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처럼 보이고, 때로는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귀를 막으시는 것처럼 보일 때라도 다시 한번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해답이 되어 주십니다.

 

남 유다를 다스리던 아하스 왕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마음이 곤고해졌습니다. 그때의 장면을 오늘 본문 22절이 묘사합니다.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아하스 왕이 마음이 곤고해지자 하나님께 더욱 범죄하였습니다. 마음이 곤고해지면 많은 신앙인들이 더욱 하나님을 구하고 찾을까요?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아하스 왕이 마음이 곤고해질 때 하나님께 더욱 악을 행했던 모습이 구체적으로 2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이르되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더라

 

아하스 시대, 아람이라는 나라가 남 유다를 공격하여 작은 승리를 거둔 역사가 있거든요. 이 장면을 생각하면서 아하스에게 부러운 마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늘 작은 나라들에게 치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 그래서 힘있는 강대국 앗수르를 불러왔더니 오히려 그들로부터 괴로움을 당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아하스의 마음에는 비록 작은 승리라도 거두는 아람 나라가 부러웠던 것이죠. 그래서 232절을 다시 보시면, 아하스는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는 생각으로 아람의 수도 다메섹에 있는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아람 나라가 작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 그들이 섬기는 다메섹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기 때문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죠.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때로는 이방 우상을 섬기는 아람 나라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알려져있는 남 유다에게 작은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거에요. 그런데 아하스는 전쟁에서 승리한 아람 나라를 너무도 부러워한 나머지, 그들의 성공비결과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따라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 장면을 무엇이라고 평가하십니까? 23절을 다시 보십시오.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이르되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다음을 주목하십시오.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더라

 

그러므로 여러분, 비록 고난을 당하고 여기 저기에서 치이더라도 결코 믿지 않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귀인을 의지하지도 말고, 도울 힘이 없는 인생들도 의지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힘이시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의지할 분이시며,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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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