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2019. 5. 22.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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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160년 전, 유럽의 도심에 위치한 병원 산부인과에서는 산모들이 분만을 한 뒤에 산욕열로 사망하는 비율이 매우 높았다고 합니다. 산욕열이란 출산 이후 약 6주간의 회복기간 동안 상처가 감염되어 고열이 발생하는 질병입니다. 역설적으로, 당시 시골에서 산파의 도움을 출산한 여성들에게는 산욕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4%에서 5%정도였는데 병원에서 아이를 낳은 산모들이 산욕열로 사망에 이르는 비율은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30%까지 이르렀다고 하니 큰 무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당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씨름했던 의사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종합병원의 산부인과 조교수였던 제멜바이스라는 의사였습니다. 제멜바이스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사실을 관찰했습니다. 첫째는 제멜바이스 자신이 잠시 병원을 떠나 있는 동안 산욕열로 사망한 산모의 비율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사실을 관찰했는데, 빈종합병원과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던 의과대학이 방학을 하는 기간에는 또 다시 산욕열로 사망하는 산모의 비율이 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제멜바이스는 이 두 가지 사실을 관찰하고 문제의 중심에 자신과 같은 의사가 있고, 또 의학을 공부하는 의대생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빈종합병원의 산부인과병동이 있는 건물에는 의대생들의 해부실습병동이 함께 있었습니다. 냉동시설이 부족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시신이 들어오면 의대생들은 시신이 부패하기 전에 재빨리 해부실습을 하고, 그 손으로 산모들을 진찰했던 것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세균을 비롯한 미생물의 존재에 대해 의학적인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해부학 실습과 산욕열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것이죠. 

드디어 제멜바이스는 해부학 실습 후에는 손을 씻어야 한다고, 환자들을 돌보기 전에 의사들이 손을 소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로써 빈종합병원의 산부인과에서는 산모가 산욕열로 사망하는 비율이 2%이하로 떨어질 수 있었습니다. 아직 제멜바이스 역시 세균의 존재에 대해 몰랐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 산모의 건강 상태나, 산모를 수용하는 병동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인 자신과 자신을 도와 환자를 돌보는 의대생들이 문제의 원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제멜바이스는 결국 산욕열이라는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문제를 아주 단순하게 해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를 한마디로 한다면, 그것은 생각의 변화입니다. 사도행전 1장부터 시작하여 10장까지 하나님은 베드로를 비롯한 초대교회의 수많은 성도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복음을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전파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온 유대와 사마리아의 경계를 넘어 더 넓은 지역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있었으니 곧 초대교회의 최고 지도자였던 베드로를 비롯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어떠한 생각을 바꾸어 주셨을까요? 



첫째,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바꾸다

첫째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주십니다. 이야기는 베드로가 욥바라는 지역에 머물렀을 때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그 환상이란 보자기처럼 생긴 큰 그릇이 하늘에서부터 베드로의 눈 앞으로 내려오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보자기처럼 생긴 그 큰 그릇에는 여러 가지 식재료로 쓸 수 있는 것들이 담겨있었습니다. 문제는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먹어서는 안되는 것들만 그 그릇에 담겨 있었다는 점입니다. 구약성경 레위기의 표현을 그대로 옮긴다면, 부정한 것들, 그래서 그것을 먹으면 먹는 사람도 부정하게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베드로 역시 유대인으로서 지금까지 이와 같은 것은 단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와 같은 것들을 환상 중에 보여주시고, 베드로에게 명령하십니다. “베드로야, 잡아서 먹으라” 베드로는 이 음성이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유대인답게 대답합니다. ‘주님,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생각을 바꿔주시는 결정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본문 9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베드로가 환상을 보는 가운데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 곧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은 바로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 ‘정결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이 우리가 믿는 복음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여전히 죄 가운데 살며 부정한 모습에서 조금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그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새로운 삶, 곧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잖아요. 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에 미움이라는 감정이 일어나는 사람이 한 두 명씩 있으시죠? 그러면 여러분 모두에게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생각만해도 미워지고 화가 나는 그 사람을 우리 하나님도 미워하실까요? 그 사람은 너무도 악하고, 너무도 죄가 많고, 너무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으니 하나님도 그 사람을 싫어하실까요? 사도 바울은 복음의 정수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모습을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언제 시작되었습니까? 우리가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기위해 노력할 때가 아니라 여전히 죄 가운데 빠져 온갖 나쁜 짓을 다 하고 있을 그때, 그러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러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보여주고도 남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우리 인간의 마음과 같이 편협한 분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믿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넓히십시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어 그 죄인을 불러 하나님의 백성을 삼아 주시는 분이요, 하나님의 그 넓고 풍성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바로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생각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도 보고,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음성도 들은 바로 그 시점이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음성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말씀하셨던 바로 그 그때, 베드로가 머물고 있는 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사람, 곧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이방 사람이었던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었지요.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도 보고,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음성도 들었지만 여전히 이방인 고넬료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또 다시 베드로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우리가 읽은 12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와 그와 함께 있던 6명의 형제들, 곧 초대교회 성도들이 함께 고넬료의 집에 들어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만이 아니라 당시 초대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성도들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도 부정하고,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도 부정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아무리 부활의 증인으로 부름을 받은 사도 베드로였지만 사도행전 11장까지 진행되어오는 지금까지도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만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베드로와 여섯 명의 성도들을 강권하여 등을 떠밀어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로써 베드로와 초대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주십니다. 이전에는 유대인만을 위한 사도, 유대인만을 위한 복음전도자였다면, 이제는 모든 이방인을 포함한 온 세상을 위한 사도요, 온 세상을 위한 전도자로 자기 자신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바꾸어 주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갈 4:6-7)

우리가 참으로 복음의 진리를 깨닫기만 한다면 먼저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뀝니다. 나아가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이 바뀝니다. 우리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받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처음부터 하나님의 자녀였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죄인이었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사람이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복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원수요,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온 세상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유업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람들이 매일 구하는 것이 조금 더 좋은 음식을 먹고, 조금 더 좋은 집에 살고, 조금 더 좋은 차를 타는 것 정도라면 복음이 알려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너무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이방인 고넬료의 집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지만, 자신은 유대인과 지내는 것이 더 편하고 좋다며 베드로가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면 그는 마지막까지 온 인류를 위한 사도가 되지 못한 채, 그저 유대인들만을 위한 사도로 남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참으로 믿는다면 여러분 자신에 대한 생각을 넓히십시오. 하나님의 자녀 답게 생각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답게 행동하시며, 하나님의 상속자 답게 여러분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주셔서, 결국 열방을 위한 사도로 변화시켜주셨던 것처럼, 복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자신에 대한 생각이 넓어질 때 여러분은 더욱 아름답게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 이웃에 대한 생각을 바꾸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생각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로, 내 곁에 있는 이웃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주십니다. 

드디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고넬료를 비롯한 모든 집안 식구들이 구원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든 준비를 갖추고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베드로가 그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복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복음의 내용을 전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방인 고넬료와 그의 가족이 복음을 받아들이자 그들에게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면을 베드로가 똑똑히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곧, 예수님에 대한 소식인 복음이 베드로 자신과 같은 유대인들에게만 구원의 사건으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복된 소식이 된다는 사실. 나아가,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과 같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신다는 사실을 베드로를 비롯한 7명의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이로써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웃에 대한 생각, 특별히 이방인에 대한 생각이 바뀝니다. 바로 그 장면을 묘사하는 오늘 본문 마지막 18절을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자신과 같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우리 곁에 있는 이웃이라는 생각. 이방인들도 예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형제와 자매라는 생각. 이방인들도 그 마음에 성령께서 임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이요 복음의 일꾼이 될 수 있다는 생각. 곧, 내 곁에 있는 이웃에 대한 초대교회의 생각이 180도 바뀌는 장면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진리 가운데 내 곁에 있는 이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노인이나 어린아이나, 대한민국 사람이나 외국인 노동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차별이 없이 하나입니다. 
어떤 점에서 차별이 없을까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유대인도 죄인이요 이방인도 죄인입니다. 종도 죄인입니다. 자유인도 죄인입니다. 남자도 죄인이고 여자도 죄인입니다. 교회를 오래 출석한 사람도 죄인이고 아직 신앙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도 죄인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 앞에 차이도 없고 차별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복음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차이도 없고 차별도 없습니다. 

혹, 여러분의 마음에 ‘저 사람은 예수님을 절대 믿지 않을 거야,’ ‘다른 사람은 다 교회 나와도 이 사람은 절대로 교회 나올리 없어’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의 생각이 틀렸습니다. 복음으로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십시오. 이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지 못할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이웃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부르시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은 물론이요, 성령께서 그와 함께하신다면 바로 그 사람도 성령의 사람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충성스러운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변화의 공동체

오스트리아 빈종합병원에서 산모의 사망률을 눈에 띄게 줄여 놓은 제멜바이스는 이제 자신이 근무하는 빈종합병원만이 아니라 다른 병원의 의사들에게도 손을 씻으라고, 손을 소독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나 제멜바이스의 이러한 조언은 당시 의료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당시 의료계에서는 아직 세균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환자나 그의 가족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의사, 그것도 인간의 신체에 대해 가장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였던 의과대학 교수들 자신에게 원인이 있다니 제멜바이스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 일이 있은 지 약 30여 년이 지난 후, 드디어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 등장합니다.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 그리고 독일의 로베르트 코프. 이 두 사람에 의해 미생물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밝혀지면서 손을 자주 씻는 것, 그리고 손을 자주 소독하는 것이 각종 전염병과 감염을 예방하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과학적 상식이 전 세계에 확산되었습니다. 결국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산욕열로 사망하는 산모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손을 씻고 소독하는 매우 단순한 행동에 대한 생각이 바뀌자 수많은 환자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으로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십시오. 우리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자라나야 하며, 이웃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하나님을 닮아가야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세계관도 성경의 관점으로 조금씩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에 맞추어 조금씩 변화시켜 나갈 때 우리는, 그리고 우리 교회는 비로소 세상을 축복하며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변화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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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