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2019. 7. 1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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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특별히 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의 중심에 병자를 고쳐시는 치유와 귀신을 내어 쫓는 축귀가 놓여 있음을 알게 됩니다. 과학시대라 불리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는 이야기가 별로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혹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님의 치유 사건이 나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여겨지시는 분이 계시다면 저는 이렇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정말 괜찮으십니까? 여러분은 몸의 건강을 정말로 장담하실 수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다치지 않았고 상처도 없으십니까? 여러분의 영혼은 지금도 죄악으로 말미암아 병들어 있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의 치유가 없이도 정말로 괜찮으십니까? 

우리가 교회를 출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삶의 기준을 잡고 삶의 방향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 가운데 그 누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만으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 이 세상을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여전히 나의 몸이 질병으로 괴로워하며, 나의 마음은 크고 깊은 상처로 아파하고, 나의 영혼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신흠하고 있으면서 과연 누가 예수님의 치유하시는 은혜가 없이 변화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하는 능력, 우리를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간절히, 너무도 간절히 필요합니다. 


병자를 향한 발걸음

하루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맞아 가버나움이라는 동네의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회당에서 나와 장소를 이동하십니다. 오늘 본문 3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시몬의 집에 들어가셨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시몬의 집으로 이동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38절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시몬의 집으로 가신 이유는 그곳에 병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한 열병으로 스스로 움직일 수 없고, 그래서 자신의 발로 예수님께 나올 수 없는 그 병자를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가셨던 것입니다. 

39절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 다음 단어가 참 중요합니다.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어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자, 예수님은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시몬이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굳이 시몬의 집에 가시지 않더라도 회당에서 시몬 베드로에게 ‘너의 장모가 나았느니라’ 말씀하시면 그녀는 분명 치유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선택하신 방식은 직접 심한 열병으로 누워있는 시몬의 장모를 찾아가신 것이요, 예수님의 목소리, 예수님의 숨소리까지도 들릴 만큼 가까이 접근하셔서 열병을 고쳐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발견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치유가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찾아가시는 예수님, 가까이 다가가시는 예수님입니다.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치유가 필요한 사람, 회복이 필요한 사람, 질병과 상처로 고통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찾아 오라’ 말씀하시지 않고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 가십니다. 그리고 그를 고쳐주십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 이렇게 질문하고 싶으신 분이 계실 겁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직접 찾아가시고, 예수님께서 직접 병자를 고쳐주신다면, 예수님의 치유를 받기 위해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 곧 우리가 해야 할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면 여러분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신 후 시몬의 집으로 이동하실 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의 집에는 들어오실 수 없다고 거부하거나, 우리 집에는 심한 열병으로 아파하는 환자가 있으니 다음에 오시면 좋겠다고 예수님을 막아섰다면 예수님은 시몬의 장모를 만날 수도 없었겠지요.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치유하기를 원하신다면 예수님을 여러분의 집으로 모셔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환자가 누워있는 침상으로 모셔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여러분의 영혼에 보이고 싶지 않은 상처를 예수님께 보여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상처 나고 아파하는 바로 그 자리에 예수님을 모실 때 우리에게 주시는 치유의 은혜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셨습니다. 그 결과를 오늘 본문 39절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여기에서 ‘수종들었다’는 표현은 봉사의 일을 한다는 단어입니다. 여러분도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만한 헬라어 단이, ‘디아코네오’입니다. 이후 초대교회의 일꾼으로 일곱 분의 집사님이 세워지는데, 집사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가 ‘deacon’이지요. 모두가 유사한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치유하여 주시자, 그녀는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고 교회의 일꾼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순서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시몬이 장모를 찾아가는 것이 먼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녀를 치유하여 주시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렇게 치유를 받은 이후에 그녀가 예수님을 섬기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순서를 바꾸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 여러 가지로 봉사하다 보면 예수님의 치유를 경험하게 될까요? 아닙니다. 순서가 틀렸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여 주시는 은혜를 경험한 사람만이 교회에 덕을 세우는 참된 일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향한 정성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시몬의 집에서 그의 장모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해가 질 무렵이 되었을 때 가버나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께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날 해가 저물 때에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온 이유가 있습니다. 그날은 안식일이었거든요. 저녁에 해가 지면 유대인의 시간으로 안식일이 끝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던 가버나움 사람들은 안식일이 끝나는 저녁시간을 기다렸다가 주변에 있는 모든 병자를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 장면을 묘사하는 40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우리가 함께 읽은 40절 말씀에서 주목하고 싶은 표현이 두 개가 있습니다. 첫째는 “온갖 병자”입니다. 누가는 오늘 본문에서 사람들이 ‘온갖 병자’를 데려왔다고 서술하지요. 그러므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환자를 데려왔는지는 정확히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들의 질병이 다양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단순한 육신의 질병이었습니다. 그것도 참으로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마음에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살아오는 과정이 너무도 괴롭고 아파 마음 깊은 곳에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아픔과 슬픔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그들의 영혼이 병들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멀정해 보였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죄악이 가득하였고, 어두움의 세력에 온통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환자들, 오늘 본문의 표현대로 온갖 병자들이 그날 저녁 모두 다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을 모두, 어떠한 질병이든 상관 없이 모두 고쳐 주십니다. 

함께 읽은 40절 말씀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40절을 다시 보십시오. “해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그 다음입니다. “예수께서 일일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가 바로 ‘일일이’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일이’ 그 상처 위에 손을 얹어 고쳐 주셨습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은 병자를 치유하실 때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손을 얹기도 하시지만, 침을 바르기도 하시고, 말씀만 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굳이 손을 얹어야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면 모든 질병을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만큼은 예수님을 찾아온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손을 얹어서 치유하여 주셨어요. 그때 예수님께서 손만 얹으셨을까요? 틀림없이 대화도 하셨을 것 같아요. 어디가 아프냐고, 얼마나 고생했는냐고, 이렇게 찾아왔으니 참 잘하였다고, 너의 믿음대로 될 것이라고, 이제는 건강해졌으니 새로운 삶을 살라고....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일일이 손을 대시며 대화하시고 그들의 질병과 함께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영혼까지도 치유하시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이 어떠한 질병으로 아파하든 상관없이 예수님은 넉넉히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질병이 육신의 질병이든, 마음의 상처든, 영혼의 아픔이든 상관없이 예수님은 모두 치유하여 주십니다. 여러분 개인의 질병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아파하고 있으신가요? 여러분의 자녀들이 질병으로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친척, 여러분의 친구,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가 큰 질병에 걸려 아파하고 죽음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그날 밤 온갖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온 가버나움 사람들처럼 여러분도 예수님께 나오십시오. 여러분이 여러분의 아픔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한다면 예수님은 그 누구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아픈 상처에 손을 대어 주시고, 사랑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여러분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온갖 병자를 고치실 때 귀신이 쫓겨나갔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귀신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쫓겨갑니다. 41절입니다.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귀신이 한 말이긴 한데, 너무도 정확한 말입니다. 이처럼 확실한 진리를 귀신이 말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어색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도 의외입니다. 41절을 계속 보십시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아직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귀신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 곧 세상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은 귀신들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리는 것을 금지하십니다. 그렇다고 예수님 본인이 사람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세상의 구원자 그리스도라고 선포하지도 않으십니다. 그 대신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고 세상의 질병과 아픔을 치유하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누구인지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법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듣고’ 믿으신다면 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원자, 곧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듣고’ 믿으신다면 참으로 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시는 은혜를 체험하여서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단지 지식으로 알고, 이성적으로 동의하는 것을 넘어서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고치시고, 여러분의 가정을 고치시고, 여러분의 모든 면을 새롭게 회복하시는 체험을 통해 예수님을 알아가셔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바르게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파송

예수님께서 자신을 찾아온 온갖 종류의 병자를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모든 환자를 한 곳에 모아놓고 단 한 번의 기도로 모든 질병을 고치셨다면 예수님의 능력이 더욱 대단하게 보였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예수님은 일일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주셨고, 그들과 일대일로 대화하셨고, 각 사람에게 손을 얹어 고쳐주셨습니다. 안식일이 끝나는 해가 저무는 때부터 시작하여 모든 병자들을 일일이 고쳐주셨기에 많은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날이 밝았습니다. 그래서 42절은 “날이 밝으매”라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날이 밝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본문 43절입니다.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말씀합니다. 곧, 여러 동네에서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가 인상적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이라는 동네에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안식일을 맞이하여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곳에서도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시몬의 집에 들어가서 심한 열병으로 고생하는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날 저녁 그 동네의 온갖 병자들이 다 몰려왔을 때, 그 누구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일일이 모든 사람에게 손을 대어 고쳐주셨습니다. 그렇게 가버나움 동네에 질병이 떠나고 귀신이 쫓겨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바로 그 장면은 가버나움 동네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현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고, 예수님의 치유가 임하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질병과 아픔을 치유하여 주시면 바로 그곳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이라고 선언하시고 또 다시 다른 동네로 가십니다. 예수님은 여러 마을을 계속 다니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어떻게 전하셨을까요? 말씀으로만 전하셨을까요? 아니면, 귀신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파했을까요? 아닙니다.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것처럼, 가버나움에서 시몬의 장모를 직접 찾아가셨던 것처럼, 그날 저녁 자신을 향해 몰려오는 온갖 병자를 단 한 사람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일일이 손을 얹어 고치셨던 것처럼, 갈릴리와 유대의 여러 마을을 다니시며 그저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가시고 일일이 손을 얹으시며 그들을 치유하여 주셨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바로 그 마을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운데 여전히 육신의 질병, 마음의 상처, 영혼의 아픔을 겪으며 고통의 눈물을 흘리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우리에게 치유의 선물을 주시는 예수님을 여러분의 마음에 모셔 들이십시오.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모셔 들였던 시몬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여러분의 상처가 있는 바로 그 자리로 모셔 들이십시오. 그 옛날 안식일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다가 날이 저물자 예수님을 찾아나섰던 온갖 종류의 병자들처럼 여러분의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 가십시오. 예수님은 결코 여러분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친히 그 손으로 여러분의 환처를 치유하여 주십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예수님께서 주시는 치유의 은혜, 치유의 선물을 받아 여러분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회복되신 분들이 계십니까? 그 옛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극심한 열병으로부터 치유되어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겼던 시몬의 장모를 본받아 이제는 예수님을 섬기며 교회를 위해 봉사하십시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여러 동네를 다니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셨던 예수님을 본받아 여러분도 주변에 몸과 마음과 영혼의 질병으로 여전히 아파하는 이들을 찾아가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십시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은혜가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나아가 여러분의 이웃에게도 전파되어 여러분이 계신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누가복음 6장 6-10절 “예수님의 선물” – 안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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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장 10-17절 “예수님의 선물” – 풍성 –

어느덧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했던 시간도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셨는지 열 두 명의 제자들을 여러 마을로 보내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치유하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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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