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지금 약 40년 전의 이야기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시내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음성을 들려주시고,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을 전해 주셨습니다(22절). 온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음성을 들려주시자, 그들은 큰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본문 24절은 그들이 겪은 인상과 충격을 표현해 주고 있지요.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영광과 위엄을 우리에게 보이시매 불 가운데에서 나오는 음성을 우리가 들었고 하나님이 사람과 말씀하시되 그 사람이 생존하는 것을 오늘 우리가 보았나이다
하나님은 친히 음성으로 율법의 핵심이 되는 십계명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듣자, 말씀의 내용을 깊이 묵상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저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것입니다. 본문 25절은 이 사실을 잘 표현해 줍니다.
이제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이 큰 불이 우리를 삼킬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죄악으로 가득한 인간이 하나님의 현존을 여과 없이 마주 대한다면, 우리에게는 죽음의 공포가 찾아오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직접 보고 체험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아직,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매 순간 직접 체험한다면 그 앞에서 태연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성도들이 함께 모이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체험하고,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별로 신비롭지 못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대면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찾아와 한 가지를 부탁합니다. 본문 27절입니다.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에게 대신 전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듣고 행하겠다"는 다짐도 빼놓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그들의 이야기는 믿음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을 사모해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조금 멀리 모시고 그 사이에 모세라는 중재자를 두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이러한 그들의 제안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말씀하시죠. "이 백성이 네게 말하는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말이 다 옳도다."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은 옳은 것이요, 하나님의 뜻과 맞았습니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의 제안이 왜, 어떠한 의미에서 옳은 생각이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였을까요? 물론, 모세라는 중재자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드러다 보면 그들의 마음에 일어난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29절이 본문의 사건을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경외, 곧 성경이 말하는 경외란 하나님을 향한 존경과 두려움의 마음입니다. 최고의 존경을 넘어 두려워하는 마음까지 겸비해야 비로소 경외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사랑 많으신 분이시지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자세는 언제나 "경외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는 비로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cf. 빌 2:12)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본문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영원히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29절).
'그들'과 '그 자손'
본문 29절에서 주목해야 할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과 그 자손"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그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던 사람들,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마음이 일어났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자손"은 출애굽을 비롯하여 홍해를 건너는 일과 시내산에서의 모든 일을 직접 겪었던 이들의 자녀들, 혹은 그 자손들을 말하겠지요. 그렇다면 이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신명기 5장의 말씀을 모세로부터 직접 듣고 있는 사람들은 29절에 등장하는 "그들"일까요? 아니면 "그 자손"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니라 "그 자손"입니다. 지금 모세는 약 40년 전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 40년 동안 29절에 등장하는 "그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니 신명기 5장의 말씀을 직접 듣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라 "그 자손"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마치, 우리 시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바로 그 장면을 상기시키며 '그 자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본문의 32절이 이것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너희"는 29절에 등장하는 '그들'이 아니라 '그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경외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요, 비록 지금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읽으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 세대가 부모님들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기록된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제 아무리 세월이 흐를 지라도 우리에게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는 우리의 체험이나 경험에 좌우되어서는 안 되며, 다만 성경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 세대는 물론이요 다음 세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축복이 유산으로 전해지게 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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