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설교2020. 5. 1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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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사람들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느헤미야이지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느헤미야의 기도를 ‘사명을 위한 기도’라고 이름 붙일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 느헤미야서에는 느헤미야가 어떻게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고, 그 성벽 안에서 율법에 근거한 유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느헤미야는 유다의 총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총독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직함을 나타내는 것이죠. 느헤미야의 사명은 유다 총독이라는 지위를 활용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그 안에 율법에 근거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느헤미야서에 기록되어 있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 느헤미야 1장은 느헤미야의 그러한 사명이 그의 기도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명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기도의 제목이 지금 당장 나의 필요를 위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의 대부분의 기도는 지금 당장 먹을 거 주세요. 지금 당장 입을 거 주세요. 지금 당장 나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라는 사실이지요. 물론 우리의 필요를 위해 기도해야죠. 
예수님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의 처음 세가지 기도 제목은 뭡니까? ‘주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 ‘주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 ‘주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 그 마지막 시간에 참여하는 여러분, 마지막으로 이 한 가지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명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오늘 어떠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나오셨습니까? 물론 각자의 소원을 위해 기도해야지요. 그러나 여러분의 기도에 여러분 자신의 사명을 위한 기도가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근거로 ‘사명을 위한 기도’의 특징 세 가지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세대를 이어 계승되는 사명 

사명을 위한 기도의 특징, 그 첫 번째는 사명과 비전을 위한 기도가 세대를 이어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명도 주시고, 비전도 주셨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한 단어로 ‘언약’이라고 표현하죠.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언약이 누구에게 이어집니까?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 이어져요. 그리고 또다시 이삭의 아들 야곱에게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비전은 이와 같이 세대를 이어 계승된다는 사실입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민족 유다가 바벨론 군대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하였던 사람입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민족이 하루 빨리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눈물로 호소했지요. 그러나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은 외면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예루살렘의 모든 성전과 궁궐과 성벽이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하며 눈물 흘려야 했던 사람이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다 무너져 버린 예루살렘, 황폐화되어버린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예레미야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루살렘을 위한 간절한 기도는 예레미야의 기도로 끝나버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루살렘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예레미야의 기도로 끝나버리지 않아요. 예레미야의 뒤를 이어 누가 기도합니까? 다니엘이 기도하잖아요.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을 하던 70년 동안 다니엘은 매일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손을 들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옛날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하였던 솔로몬 왕의 기도를 기억하며 다니엘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한 평생 쉬지 않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자신의 그 기도로 말미암아 사자굴에 던져질 위험에 처할지라도 다니엘은 포기하지 않고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다니엘의 기도죠. 

그렇다면 여러분,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한 기도는 예레미야가 했고, 다니엘이 한 것으로 끝났을까요? 아니지요. 70년이라는 바벨론에서의 포로 기간이 마쳤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유대인들이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바로 그들의 영적인 회복을 위해 제사장으로서 간절히 기도하였던 사람이 있었으니, 곧 에스라입니다. 그리고 에스라와 거의 동일한 시기에 평신도 지도자로서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던 사람이 오늘 설교의 주인공인 느헤미야입니다. 

예루살렘이 완전히 무너져버리는 그 순간에,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하여 예레미야 선지자가 기도했습니다. 바벨론 포로 70년의 기간에 다니엘이 기도하였습니다. 이제 70년의 포로 시기가 마치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그 시점에,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하여 에스라가 기도했고, 느헤미야가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사명, 비전을 이야기할 때 ‘나의 사명’, ‘우리 시대의 사명’만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어요. 나의 짧은 생애 가운데 내가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야기하는 사명, 성경이 이야기하는 비전은 스케일이 더 큽니다. 하나의 사명을 위해서, 하나의 비전을 위해서 한 세대가 기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제 일 세대가 기도했다면, 동일한 사명과 동일한 비전을 놓고 그 자녀들의 세대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이 세대에도 그 사명과 비전이 완성되지 않았다면, 그 다음 세대에게 계승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비전이요, 성경이 이야기하는 사명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명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사명이란 세대를 이어 계승되는 사명인 것이죠. 

우리 교회의 모든 가정 안에 사명을 위한 기도가 세대를 이어 계속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마음에 그 소원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데, 그 기도가 멈추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져 오랜 세월 쌓인 기도가 응답되는 현장을 우리의 자녀들이 목도하게 하옵소서. 이러한 소원을 품고 간절히 사명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보는 기도 

사명을 위한 기도의 특징, 그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보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느헤미야가 사명을 위한 기도를 시작하게 된 배경을 서술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1장 1-3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느헤미야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수산 궁에 있었습니다. 수산 궁은 당시 페르시아의 황제가 살던 곳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미 페르시아 제국의 고위 관료였고, 수산 궁에서 평안한 삶을 살고 있었어요. 2절을 보시면 느헤미야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에 대해 물었어요. 그때 느헤미야가 들은 대답이 3절에 나와 있습니다.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본인은 평안해요, 수산 궁에 있어요. 그런 예루살렘에 있는 백성들은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 느헤미야는 자신의 사명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명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명은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다른 사람의 형편을 묻는 것부터 시작돼요. 나의 삶은 평안하고, 나는 수산 궁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예루살렘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는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의 사명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명이나 비전은 10대 청소년이나, 20대 청년들에게만 해당되는 단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느헤미야는 이미 중년 신사입니다. 자신의 삶의 기반을 수산 궁에서 확고하게 잡고 있던 분입니다. 그런 느헤미야가 큰 환난과 능욕을 당하는 사람들의 형편에 대해 듣고, 사명을 위한 기도가 시작됩니다. 

우리 자신의 형편이 수산 궁에 있는 느헤미야보다 못할 수도 있어요. 때로는 우리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환난과 능욕을 당하는 사람의 처지일 수도 있지요. 그래서 우리 자신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한 기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주변을 돌아보는 거예요. 지금 나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보고, 그들의 형편에 관심을 가지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바로 이 자리가 우리의 사명을 위한 기도가 시작되는 곳임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에 따르는 실천 

사명을 위한 기도의 특징, 그 세 번째는 기도에 따르는 실천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8절과 9절에 그 내용이 잘 드러나죠.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이제 청하건대” 어떻게 해 달라고요? “기억하옵소서.” 이제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달라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느헤미야의 기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또 한 가지를 간구합니다. 우리 한 목소리로 오늘 본문 11절을 읽겠습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느헤미야가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제 기도 제목의 내용이 등장합니다.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여기서 ‘이 사람들’은 아닥사스다 왕을 비롯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통치하던 고위 관료들입니다. 결국 느헤미야의 기도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출세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11절 마지막을 보시면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 곧 대통령 비서실장 정도의 지위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다가 자신이 출세하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을까요? 그 이유가 느헤미야 2장에 나오죠. 느헤미야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황제 앞에 나아갑니다. 그리고 황제로부터 자신을 예루살렘에 보내는 것은 물론이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에 필요한 모든 자재들을 얻어 내었던 것입니다. 

사명을 위한 기도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보면서 시작됩니다. 다른 사람이 당하는 아픔과 고통을 돌아보며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 안에 사명을 위한 기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명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바로 자신이 기도했던 바로 그 사람을 위해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사명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라는 시리즈 설교를 마치면서, 우리에게 한 가지 결심이 세워지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상황 속에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에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사명을 위한 기도가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순간에도, 어떠한 순간에도 사명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가 이러한 결단을 하면 어떨까요? 하나님,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언제라도 나의 사명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보게 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내가 위하여 기도하는 바로 그 사람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이러한 소원이 우리에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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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