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설교2020. 5. 1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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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국제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터키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Nazim Hikmet)는 감옥에 있으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고 합니다. 시의 제목은 ‘진정한 여행’입니다. 그는 이렇게 읊었습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 
최고의 나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을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오늘 본문 창세기 47장에 등장하는 야곱의 나이는 130세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삶을 묵상하면 할수록, 나짐 히크메트가 감옥에서 노래한 이 시만큼 130세 된 야곱의 모습을 정확히 묘사하는 것도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오던 분들은 야곱의 삶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갖고 계실 것입니다. 야곱의 팥죽 사건이라든지,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장자권을 빼앗은 사건이라든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위해 칠 년을 수일처럼 여기면서 열심히 일하는 장면 등. 우리는 야곱에 대해 비교적 많은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이 갖고 계신 야곱에 대한 모든 정보를 총 동원해서 추론해 보십시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야곱이라는 인물이 한 평생 추구했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야곱이 한 평생 추구했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다양한 대답이 물론 가능하겠지만, 저는 그 대답을 창세기 30장 30절에서 찾았습니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일하면서, 자신이 일한 대가에 대해 라반과 의논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열심히 일했고, 그 일의 대가로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얻었고요, 또 큰 재물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을 라반과 협상하면서 야곱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창세기 30장 30절 하반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야곱의 관심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집을 세우는 것입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열심히 일해요. 열심히 일하면 라헬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계약 조건에 따라 재물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아내를 얻고 재물을 얻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일했던 그 모든 노력은 하나의 목적으로 귀결되는데, 그것은 바로 야곱 자신의 집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가정을 세우기 위해, 배우자를 찾고 자녀를 낳으며 재물을 모으려는 노력의 연속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배우자 

야곱은 그의 젊은 시절, 자신의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세 가지를 확보하면 자신의 가정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죠. 그 첫째는 배우자입니다. 

야곱의 러브스토리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지요. 야곱이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라헬”입니다. “라헬”. 여러분, 야곱이 라헬을 처음 만났던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집에서 급하게 도망쳐 나와야 했습니다.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겠다고 나서는데, 이거 그냥 한번 해보는 말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정말 미친 듯이 달려서 외삼촌 라반이 있는 밧단아람까지 가지요. 자,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제는 아버지 집으로 달아갈 수도 없느다는 위기감이 그를 찾아옵니다. 바로 그때 운명의 여자를 만났으니, 그 장소는 우물가입니다. 

자, 야곱이 먼저 그 우물가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우물가에 있던 목자들과 대화를 하지요. 그 대화의 내용이 창세기 29장 7절과 8절에 등장합니다. 7절에서 야곱에 목자들에게 말합니다. “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양들에게 물을 먹이고 다시 풀을 뜯기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자 목자들이 야곱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8절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답이 나왔습니다. 목자들이 우물에 도착했지만 양들에게 물을 먹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물 위에 큰 돌로 된 뚜껑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목자들이 모여서 함께 그 돌 뚜껑을 옮겨야 양들에게 물을 먹일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잘 보세요. 그 다음 절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야곱이 라헬을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그러자 야곱이 놀라운 행동을 합니다.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야곱이 라헬을 처음 봤습니다. 그런데 라헬이 양 떼를 데리고 왔어요. 그러자 우물을 막고 있던 큰 돌 뚜껑, 여러 사람의 목자들이 모여서 함께 옮겨야 하는 그 돌 뚜껑을 야곱이 혼자서 옮겨 버립니다. 그리고 라헬이 데려온 양 떼에게 물을 먹이기 시작하는 거죠. 여러분, 야곱은요, 라헬을 보자마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큰 돌 뚜껑도 옮겨 버립니다.  

야곱이 그렇게 첫눈에 반한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칠년 더하기 철년, 도합 십사 년을 죽도록 고생하며 일을 했는데,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창 29:27)는 성경의 선언은 유명하잖아요. 

야곱은 한 사람 라헬을 얻기 위해 14년을 최선을 다해 일했고, 마침네 그녀를 자신의 아내를 얻었습니다. 야곱은 분명한 확신이 있었을 거예요. 내가 저 라헬이라는 여인을 얻는다면, 나의 이 불타는 사랑이 저 여인을 내 아내로 취할 수만 있다면, 나는 행복한 가정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죠. 야곱이 라헬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려 했던 그 모든 노력은 자신의 가정을 세우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시잖아요. 야곱이 취했던 네 명의 아내들 중에서 가장 먼저 하늘나라로 간 사람이 누구죠? 레아인가요? 실바인가요? 빌하인가요? 아닙니다. 야곱이 그토록 사랑했던 라헬이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나요. 그것도 나이가 많이 들어 지병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야곱의 막내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야곱의 인생이 참으로 얄궂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것은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세우는 데 얼마나 중요한 요소입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남편으로 인해서, 아내로 인해서 이토록 큰 아픔을 주시는 거지요? 왜 그토록 금술 좋던 부부가 한순간에 배우자를 잃어야 하느냐고요. 


자녀들 

야곱은 그의 젋은 시절, 세 가지를 확보하면 자신의 가정이 세워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하였는데, 그 첫째는 배우자였지요. 특별히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라헬이었습니다. 둘째는 자녀들입니다. 야곱은 자녀를 낳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레아와 라헬이 서로 아들 낳기 경쟁을 하였지만, 야곱이 싫으면 그만이잖아요. 그런데 야곱은 아내들의 요구에 다 응했죠. 아니, 그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12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낳았던 겁니다. 

자, 그러면 야곱이 기대했던 것처럼, 아들을 12명이나 낳고, 딸도 1명 낳았으니 이제 그 자녀들로 말미암아 야곱의 가정이 세워지고 있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게 뜻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두 가지 사건만 말씀드리죠. 첫번째 사건은 야곱의 딸 디나가 성폭력을 당한 것이죠. 자녀들이 많아질수록 가정이 세워질 것만 같았는데, 식구가 많을수록 사건들도 많아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습니다.” 딸이 성폭력을 당한 이 장면에서 야곱의 가슴도 무너지고, 야곱의 가정도 무너지고 있었죠. 두 번째 사건은 요셉의 죽음입니다. 물론 요셉이 죽지 않았죠. 우리는 알아요. 그런데 야곱은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간 뒤 20여 년이 흐르는 세월 동안 요셉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아니요.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그것도 들짐승에 물려서 찢겨서 먹혔다고 생각했습니다. 

창세기 37장 33절에서 35절이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야곱이 아들의 죽음을 접하며 통곡을 합니다. 통곡하는 중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스올은 당시 사람들이 죽으면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마디로, ‘내가 더 이상 못살겠다’는 거죠. 그럼요. 살아갈 힘이 나겠습니까? 자신이 평생을 다해 사랑했던 라헬도 죽었어요. 그리고 라헬이 자신에게 낳아준 아들 요셉도 비참하게 죽었어요. 이제 어떻게 합니까? 살아갈 힘이 없죠. 

우리는 가정을 세우기 위해 자녀들에게 기대를 겁니다. 자녀들을 통해서 가정이 세워지리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우리가 도무지 손쓸 수 없는 불의의 사고가 자녀들에게 일어나는 경우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재물 

야곱은 그의 젋은 시절, 세 가지를 확보하면 자신의 가정이 세워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하였는데, 그 첫째는 배우자였지요. 그리고, 둘째는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재물입니다. 외삼촌 집에서 라헬을 얻기 위해 14년을 일한 이후에 또다시 6년을 일합니다. 왜요? 재물을 얻기 위함이지요. 아내들도 생겼어요, 자녀들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없어요? 돈이 없거든요. 가정을 세우려면 돈이 있어야 되잖아요.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한 뒤에 자신의 20년 세월의 이렇게 회상합니다. 창세기 31장 38절부터 40절입니다.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낮에는 더위를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일을 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결과 야곱은 결국 큰 돈을 만지게 되었습니다. 재산이 늘어났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인 창세기 47장의 장면에서 야곱은 부자일까요? 가난뱅이일까요? 돈이 하나도 없어요. 없어도 너~~~~무 없어요. 애굽과 그 주변의 지역에 7년의 풍년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7년의 흉년이 찾아오는데, 지금 창세기 47장은 흉년이 2년 지속되었을 시점입니다. 여러분, 흉년이 2년 지속되니, 그렇게 돈이 많고 가축이 풍부했던 야곱도 가족들에게 먹일 하루 세끼 양식이 없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들들을 애굽, 이집트로 보내서 양식을 사 오게 했잖아요. 

여러분, 올해도 얼마나 고생 많으셨습니까? 가족들에게 하루 세끼 밥을 먹인다는 것은 얼마나 큰 노동의 강도가 뒷밪침 되어야 하는 건가요? 그런데 재물이라는 것이 2년 흉년이면 다 날아가요. 여러분은 무엇으로 여러분의 가정을 세우시겠습니까? 



평안의 17년 

야곱은 젊은 시절 세 가지를 얻으면 자신의 가정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배우자이고, 둘째는 자녀들이며, 셋째는 재물이었죠. 그런데 자신이 아둥바둥, 아등바등 배우자를 얻고, 자녀를 얻고, 재물을 얻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것들이 자신에게서 멀어진다는 사시을 배웁니다. 그의 나이 130세, 130세에 드디어 그 깨달음을 얻게 되죠. 그리고 드디어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강력한 의지를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세상을 떠나기까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의 17년이 시작되는 거죠. 

이제 야곱은 압니다. 자신이 아둥바둥해도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지금 야곱의 아들 요셉은 이집트의 국무총리입니다. 젊은 시절의 야곱 같았으면 고위 관료들하고 거래했겠지요. 그런데 지금의 야곱은 그의 아들들과 함께 그저 가축 돌보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이야기잖아요.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으로 여러분의 가정을 세우시렵니까?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우고, 재물을 모으려고 아둥바둥 살아봤지만, 그것으로는 우리의 가정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130세가 되어서야 깨달으시렵니까? 아니면, 이 모든 집착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서 여러분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하면 기다리지는 않으시겠습니까? 

시편 127편에 등장하는 솔로몬의 고백을 기억해 보십시오. 솔로몬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 127:1) 

그런데 여러분, 이 시편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가정을 잘 세울 수 있는가입니다. 시편의 처음이 그렇게 시작하잖아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가정을 세우려는 모든 노력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3절은 보다 구체적으로 자식농사를 언급하고 있어요.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자식 농사는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가정을 세우기 위해 재산을 증식하는 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아요. 이 모든 것이 나의 노력이나 능력에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이지요. 

설교를 시작하면서 소개해드린 시, <진정한 여행>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어디로 가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는 그때, 우리의 가정을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보았지만, 명절을 맞이하면서도 마음이 마냥 행복하고 즐겁지만은 않은 이때, 비로소 여러분의 진정한 여행을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무능력을 깨닫는 바로 그때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언약을 붙잡기 시작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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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