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강해2020. 5. 2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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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0편은 1절부터 기쁨과 감사가 가득합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절입니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기 2절을 다시 보시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는 표현이 등장하지요. 여기에 등장하는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표현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러분은 언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간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예배 시간이지요. 시편 100편은 그런 점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찬양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4절도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2절이 ‘나아간다’는 동사를 썼다면, 4절은 ‘들어간다’는 동사를 사용하지요. 하나님의 문,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갈 때 어떠한 마음 자세로 들어간다는 것입니까?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문에 들어가고, “찬송함으로”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매 주일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예배당을 찾는 여러분의 마음이 날마다 기쁨으로 가득 차기를 바랍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하여 예배당을 찾는 여러분은 감사함으로 교회의 문을 여시고, 찬송함으로 하나님의 문을 열고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때 시편 100편이 이야기하는 이 기쁨의 찬송이 바로 우리의 찬양이고 우리의 감사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시편 100편을 단지 예배에 참여하는 장면으로 국한시켜서 적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 참으로 많은 곳을 방문하지요. 예배를 마치면 가정으로 돌아가시고, 직장을 방문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서 참 많은 곳을 방문합니다. 그때마다 감사함으로 들어가고, 찬송함으로 나올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풍요로워질까요? 오늘 하루 여러분이 어디를 방문하시든지, 어느 문을 여시든지 감사함으로 들어가고 찬송함으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때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기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문을 열고, 찬송함으로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언제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하는 이유, 우리가 언제나 감사와 찬양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가 바로 3절에 등장합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3절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하나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지요. 기독교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많은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설명과 이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면 성경의 하나님,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3절은 계속해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양입니다. 시편 100편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하면서 남성인지 여성인지, 성인인지 어린아이인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지 낮은 지, 교회에서의 직분은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 자신을 이야기하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양이라는 사실만 언급합니다. 곧,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여러분, 이 한 가지 사실만 분명하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고 기쁨으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앞길이 형통하기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기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언제나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에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시편 100편은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차있지만, 시편 100편이 제시하는 찬양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셨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참으로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양이라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참으로 이 하나의 사실을 분명히 믿는다면, 우리는 시편 100편을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또한 시편 23편도 동일한 마음으로 노래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물론,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어주시더라도 우리는 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요,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는 안위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면서 여러분을 위협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그 대신 여러분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을 향하여 물 위로 첫걸음을 떼었던 베드로였지만, 그가 풍랑과 파도를 바라보는 순간 그의 몸은 물결 안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지팡이와 막대기가 인도하여주셨던 예수님은 직접 그의 손을 내밀어 끌어올려주시잖아요. 시편 100편은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풍랑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시편 100편은 우리가 건너고 있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시편 100편의 마지막 5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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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