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2020. 6. 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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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서신을 보면, 사도 바울이 신앙을 세 가지 요소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세 가지 요소란 바로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전서를 보면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의 요소 가운데, 그 첫 번째인 믿음 뒤에 ‘역사’라는 표현을 넣어서 ‘믿음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곧, 우리의 믿음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지만 그 믿음은 우리의 마음에서 마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인생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참으로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신 줄 확실히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의 그 믿음 위에 성령의 기름을 부으셔서 여러분의 삶과 여러분의 가정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이미 시작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는 ‘믿음의 역사’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본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오늘의 본문을 함께 묵상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믿음의 역사’가 풍성하게 나타나는 은혜가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역사는 듣는 귀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자신의 사랑하는 종이 큰 병에 들자 예수님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하지요. 오늘 본문 2절과 3절의 말씀을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어느 백부장에게 충성스럽고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신실한 종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백부장은 그 종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종에게 큰 병이 찾아왔고 죽음의 그림자가 그 종에게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 시점에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종이 큰 병이 들어 죽음의 위기를 겪고 있는 이 백부장에게 예수님에 대한 소식이 들리게 되는 것이죠. 
3절의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기 위해 백부장은 자신이 잘 아는 유대인의 장로들 몇 사람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언듯 생각하면, 자신의 사랑하는 종이 병이 들었는데, 때마침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러 사람을 보낸 것은 별로 대단하거나 중요한 일이 아닌 것처럼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믿음의 역사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귀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본문과 매우 유사한 사건이 구약성경 열왕기하에 등장합니다. 바로 나아만 장군의 사건이지요. 나아만 장군의 사건과 백부장의 믿음을 소개하는 오늘의 본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묵상할 때, 나아만 장군의 사건을 염두에 두는 것도 유익하지요.  우리는 흔히 나아만 장군이 좋은 부하를 두어서, 콧대 높은 나아만 장군이 고향 땅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부하 장수가 여기까지 왔으니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어 보시라고 간청하여 그의 몸에서 나병이 치유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아만 장군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 열왕기하 5장을 유심히 읽어보면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나아만 장군에게 이스라엘의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면 나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준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어린 소녀가 전해준 소식입니다. 그것도 포로로 잡혀온 어린 소녀는 그의 여주인에게 그 소식을 전했어요. 그러니 나아만이 그 이야기를 직접 들은 것이 아니고 아내를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아만 장군의 위대함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는 자신의 집에 종으로 잡혀온 어린 소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그 소녀의 말 한마디만 믿고 엘리사 선지자의 도움을 받기 위해 왕에게 자신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여, 큰 재물을 들고 이스라엘 땅에 갔다는 점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자신의 집에 종으로 붙잡혀온 어린 소녀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듣는 귀가 열려 있었던 사람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자신의 마음에 분노가 차오르는 순간에도 부하 장수의 목소리를 듣고 요단강에 자신의 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나아만 장군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백부장에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그 시작점은 그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저 듣고 무시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들려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기로 결심을 했던 거지요. 

그런 점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분명히 선언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믿음의 시작점이 어디라고요?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듣는다는 것은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귀를 기울여서 듣는 것이고, 마음으로 듣는 것이고,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면 이제 그 예수님께 나아가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으로 여러분의 삶에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시기를 바라세요?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활짝 열리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믿음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 점에서 어느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부터 설교 말씀이 나의 마음을 울리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성실히 하고, 오랫동안 해오셨더라도 어느 순간 신앙의 침체기가 찾아오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신앙생활의 침체기가 찾아오는 그 첫 번째 신호가 무엇인지 아세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매주 예배에 참석하지요. 시간마다 설교 말씀을 듣지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의 성경을 읽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울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아요. 바로 그때부터 우리의 신앙생활은 침체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침체기에서 빠져나오는 첫 번째 단계도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의 침체기는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렇게 시작된 영적인 침체기가 극복되기 위해서는 그 첫 번째 단계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들려와야 합니다. 아무리 길고 어두운 영적인 침체기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기 시작하면 비로소 ‘믿음의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온 힘과 온 마음을 다하여 귀를 기울이십시오. 바로 그때 믿음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믿음은 겸손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고, 예수님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습니다. 백부장의 부탁을 받은 유대인의 장로들은 예수님을 찾아가 백부장을 대신하여 간청합니다. 아마도, 유대인의 장로들은 로마 제국의 위세를 등에 업고 식민지를 통치하러 온 백부장이  유대인들에게 호감을 보이고, 유대인의 신앙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성전을 건축해주기도 했던 것에 대해 대단히 고마워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와 그 백부장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지요. 오늘 본문 4절과 5절을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특별히 4절 말씀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들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어떻습니까? “합당하니이다” 유대인들이 볼 때 이 백부장은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고 있는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실 만하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이 백부장을 그 정도의 대가를 받을 가치가 있다는 의미죠. 

그런데 바로 그 다음절에 등장하는 백부장의 이야기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백부장이 말합니다.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그다음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유대인의 장로들은 백부장에 대해서 그가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한 사람인 예수님이 그를 찾아가서 종의 병을 고쳐주시는 것이 마땅하다고 이야기했어요. 백부장에게는 그만한 자격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백부장 자신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저는 자격이 없어요. 저는 예수님을 저희 집으로 모실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유대인의 장로들은 안타깝게도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아직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들의 눈에는 로마 군대의 백인대를 이끄는 백부장이 위대해 보였고, 그러한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사실이 대단해 보였어요.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그저 병을 고치는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 정도로만 보였던 거죠. 그래서 마치 빚을 갚듯이 예수님이 그 백부장의 청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긴 백부장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로마의 백부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한 사람의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감히 자신의 집으로 영접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메튜 헨리라는 분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백부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백부장은] 군대의 장교로서 마을을 통치하는 자이므로 스스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으나, 그는 자신의 높은 지위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서 그리스도께 나아가 간구하였던 것이다. 주목하라,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그리스도 앞에서는 구걸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들으십시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그리스도 앞에서는 구걸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다.” 

예수님께 나아갈 때, 얼마나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해왔는지 내세울 수 없어요. 예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교회에서 받은 직분이 무엇인지를 자랑할 수 없어요. 예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에 얼마나 많은 헌금을 냈는지 자랑할 수 없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예수님께 나아갈 때, 우리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우리가 지금 사회적인 지위가 어떠한지, 우리 집이 얼마나 위대한 가문인지를 내세울 수 없어요.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갈 때 다만 ‘구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고, 주님 앞에 내어 놓을 것이라고는 죄악 된 나의 심령과 죄악 된 나의 언어와 죄악 된 나의 행위밖에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구할 때 비로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 앞에 나아가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내어 놓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간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믿음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신뢰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자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대신 인류의 주권자이신 예수님께 구걸하듯 겸손한 자세로 간구하지요. 오늘 본문 7절과 8절에 백부장이 예수님께 간구하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을 직접 방문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아울러 이방인에 불과한 자신이 예수님을 찾아뵙는 것도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 이렇게 간구합니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말씀으로만 하십시오. 그러면 하인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믿음을 하나의 비유를 통해 설명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네, 그에게는 자신을 다스리고 있는 상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통솔하는 부하 군사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말합니다. 상관이 명령 한 마디로 부하 군사를 움직이고 통솔한다는 거예요. 8절을 계속해서 보십시오.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그 뒤에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면 모든 질병이 떠나갈 것을 제가 믿습니다. 

백부장이 어떻게 예수님에 대해 이와 같은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라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백부장이 배웠을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많은 성서학자들이 대도체 이 백부장은 어떻게 이런 위대한 믿음을 마음에 갖게 되었는지 명확한 답을 내어 놓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백부장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체계적으로 성경공부를 하고, 체계적으로 기독교 신앙에 대해 공부를 한 적은 없지만 그의 마음속에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확신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믿음은 믿음의 역사로 나타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과연, 많은 성경공부가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일까요? 과연, 성경 지식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까요? 삼위일체가 무엇인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무엇인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도 상관없어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백부장과 같이 예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분명한 믿음만 있다면 오늘 우리의 삶 속에도 믿음의 역사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두 가지 기적 

백부장은 자신의 귀에 들리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단지 귀로 들은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 앞에 자신의 모든 사회적인 지위와 조건들은 한낱 배설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구걸하는 듯한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은혜만을 간구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마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의 믿음에 역사가 따릅니다. 
오늘 본문 9절과 10절을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우리가 함께 읽은 9절과 10절을 찬찬히 관찰해보면 이 짧은 두 구절에는 두 가지 기적이 등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두 가지 기적 가운데 한 가지 기적은 쉽게 찾아보실 수 있으시지요. 바로 10절에 등장합니다.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 그대로 예수님의 능력에는 시간이나 공간의 한계가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는 놀라운 기적을 분명하게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9절과 10절을 보다 자세히 보시면 또 하나의 놀라운 기적이 등장합니다. 바로 9절에 등장하지요.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어떻게 되셨습니까? “그를 놀랍게 여겨” 예수님께서 깜짝 놀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다.’ 
여러분, 백부장은 유대인이 아니에요.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그는 믿음의 명문 가문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율법을 배우며 자란 것도 아니에요. 그는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어요. 
그런데 그의 마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그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겼고,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이었으면 예수님조차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사건이었던 거죠.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자 존 칼뱅은 오늘 본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종을 고치기 이전에 그는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치료를 받은 사람이다. 여기서 기적이 있다면 유대인들로 하여금 로마 독재의 멍에를 받아들이게끔 하려고 무력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온 이 군인이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자기 자신을 굴종하고 그분의 순종에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긴다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백부장은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이에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도 당연히 몰랐던 사람이지요. 그런데 그의 귓가에 예수님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자 그의 마음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생겼어요. 그리고 그의 마음에 기적이 일어나자 그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서 병든 자가 치유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죠. 

여러분,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 믿음의 역사가 풍성하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과거에 비해, 교회가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성경과 신학에 대한 자료도 풍성하며 수준 높은 성경공부와 양육 프로그램이 무수히 많은 우리 시대에 과연 무엇이 부족하여 이 시대에 믿음의 역사가 잘 보이지 않는 것입니까? 정답은 아무 단순한 곳에 있어요. 우리의 마음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기에 우리가 출입하는 삶의 현장에도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으로 여러분의 삶과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에 믿음의 역사가 풍성하게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속에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의 말씀으로 받을 수 있는 믿음의 귀가 열리기를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속에 참으로 나의 사회적인 지위나 공로나 자격을 다 내려놓고 그저 구걸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겸손한 심령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속에 오직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의 기적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믿음의 기적을 허락하실 때, 여러분의 삶 속에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 가운데 참된 믿음의 역사 풍성하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의 마음에 기적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이 모두 사라지게 하시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의 모든 것을 내어 놓고 구걸하듯 하나님의 은총만을 간구하는 겸손한 심령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구원자되심을 분명히 믿고 그 주님만 의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곳에 머리 숙인 주님의 모든 자녀들 가운데 믿음의 놀라운 역사가 가득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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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