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후서 강해2020. 6. 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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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 하나님을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위로의 하나님” 오늘 본문 앞에 있는 고린도후서 1장 3절을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그리고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고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은 풍성한 위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바라기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는 우리 모두에게 넘치는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을 위로의 하나님으로 소개한 사도 바울은 자신이 당한 고통과 환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8절과 9절을 한번 더 읽도록 하겠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8-9a절) 

바울은 자신이 아시아에서 당한 고난과 환난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힘에 겨운 고난입니다.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고난은 누구나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힘으로는 참아내고 견뎌내기 어려운 ‘힘에 겨운 고난’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신앙이 없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믿음의 영웅이었던 사도 바울,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았던 사도 바울까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도무지 자신의 힘과 인내력으로는 이겨낼 수 없는 힘에 겨운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8절 마지막을 모시면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당한 고난이 얼마나 컸는지 살 소망까지 사라진 상태, 하루빨리 이 세상을 떠나고 하나님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는 거지요. 그래서 9절을 보시면 바울은 계속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믿음이 좋은 사람들, 신앙의 사람들,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믿음의 영웅들은 어떠한 시련이 찾아와도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그 시련을 넉넉히 이길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제 아무리 믿음의 사람이요, 신앙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극심한 고난을 만나 힘에 겨운 환난을 당하면 절망하면서 마침내는 생명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도 든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민수기 11장 11절부터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11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적에서 은혜를 입게 하니 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15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모세가 마음에 얼마나 큰 고통이 있었는지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죽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한 사람만 더 예를 들어보죠. 열왕기상 19장 4절을 보시면 엘리야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여러분, 신앙의 사람이라고, 믿음의 사람이라고 고난과 환난을 당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사람이라고, 믿음의 사람이라고 내게 크고 작은 환난이나 고난이 찾아올 때 그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영웅들도 자신에게 힘에 겨운 환난이나 고난이 찾아올 때 낙담하고 생명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품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믿음의 사람과 불신앙의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차이점은 우리에게 환난이나 고난이 찾아왔을 때 믿음의 사람들은 놀라운 교훈 한 가지를 깨닫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9절에 등장합니다. 9절의 말씀을 한번 더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사형 선교가 내려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바로 그 환난과 고난 속에서 바울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지요?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9절을 자세히 보시면,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데,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세요?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그 하나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고 더 이상 삶에 대한 소망을 다 잃어버린 우리를 건지시고 살리시는 바로 그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 바로 그 믿음만이 힘에 겨운 고난과 생명을 포기하고만 싶은 절망스러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혹시 그 옛날 사도 바울이 겪었던 아픔과 고난을 당하고 계신 분이 계신가요? 만일 그렇다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소망을 불어 넣어주시는 위로의 하나님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그 믿음으로 여러분이 지금 당하고 있는 그 아픔과 괴로움을 넉넉히 이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인 11절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자신의 극심한 고난과 환난을 이야기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고난당하고 환난 당하는 사도 바울을 위해 함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교회와 우리의 신앙 공동체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고난을 당하고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합심해서 기도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합심해서 고난과 환난 가운데 계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 마지막 결론이 11절의 마지막에 등장하지요.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곧 하나님을 향한 감사입니다. 
지금은 고난을 당하고 지금은 환난을 당하지만,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고 환난 가운데 있는 지체들을 위해 합심으로 기도할 때 그 마지막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제목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고난과 환란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해 합심으로 기도할 때, 우리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고, 나아가 우리의 기도의 제목들이 – 환난과 고통 가운데 있으며 눈물로 기도할 수밖에 없는 기도의 제목들이 – 하나같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제목으로 바뀌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 가운데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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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