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20. 6. 15.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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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주제는 음식을 먹는 것, 곧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식사에 대한 것입니다. 미국 드류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레너드 스윗 교수는 인간의 먹는 행위를 세 개의 영어 단어로 구분하였습니다. 첫째는 가장 낮은 단계, 가장 열등한 단계의 먹는 행위로 레너드 스윗 교수는 그것을 Feeding이라고 명명했습니다. Feeding이라는 단어는 주로 짐승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가리키지요. 그래서 굳이 한글로 번역하면 ‘사육’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음식을 먹는 모습 속에서도 이와 같은 Feeding의 단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 먹는 것, 단지 배고픔을 잊어버리기 위해 먹는 것, 흔히 하는 말로 단지 살기 위해 먹는 것. 비워진 나의 위장을 채우기 위해 음식을 몸에 집어넣는 행위. 그것이 Feeding입니다. 

레너드 스윗이 이야기하는 먹는 행위의 두 번째 단계는 Eating입니다. 인간이 음식을 섭취할 때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영어 단어이지요. 레너드 스윗이 Eat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표현하고자 했던 내용은 음식의 맛을 추구하거나, 더 좋은 영양소를 섭취하기 위해 음식을 먹는 단계를 말합니다. 이른바 맛집을 찾아다니는 단계, 한 끼의 식사를 위해서 조금 더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입니다. Feeding이 주로 동물들의 먹는 행위를 나타낸다면, Eating은 주로 인간들이 취하는 먹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레너드 스윗은 Feeding의 단계를 넘어서, 그리고 Eating의 단계를 넘어선 보다 높은 차원의 먹는 행위도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Dinning입니다. 일반적으로 Dining은 우리말로 ‘정찬’ 혹은 ‘만찬’으로 번역하지요. 매우 잘 차려진 식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레너드 스윗은 Dining을 그 음식의 메뉴보다는 식사하는 사람의 정신적 차원, 무엇보다 영적인 차원으로 이해합니다. 한 끼의 식사를 앞에 두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풍성한 감사의 시간, 한 끼의 식사를 앞에 두고 여러 사람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행복의 시간, 그것이 바로 레너드 스윗이 말하는 Dining이라는 높은 차원의 식사입니다. 

여러분의 식사는 어떠하십니까? 오늘 하루 식사를 하시면서, 혹은 지난 한 주간 음식을 드시면서 여러분의 식사는 혹여 시간에 쫓겨 음식을 나의 내장에 채워넣기에 바쁜 Feeding의 단계에 머물러 계시지는 않으셨습니까? 혹은 조금이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고, 조금이라도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마음에 음식 자체에만 관심을 쏟으며 그 무엇인가를 먹는 Eating의 단계에 머물러 계시지는 않으셨습니까? 

여러분, 좋은 음식을 먹기에 우리의 식사가 Dining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에 Dining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한끼의 식사를 앞에 두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면 그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먹는 행위를 Feeding의 단계를 넘어, Eating의 단계를 넘어 Dining의 단계에 다다르게 하는 것이요, 그 자리가 천국의 식탁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식탁을 위한 제언 – 풍성한 마음

오늘 본문 레위기 3장의 주제인 화목제는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음식을 먹는 행위를 Feeding이나 Eating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Dining의 단계로 승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전략입니다. 

레위기 3장에 등장하는 화목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레위기 1장이 소개하는 번제와 비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화목제는 레위기 1장의 번제와 유사점도 있고, 차이점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공통점을 말씀드리죠. 번제와 화목제는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린다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또한 가축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로서 번제와 화목제는 가축을 가져와 잡고 각을 뜨고 불사르는 순서 및 절차도 서로 매우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제와 화목제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는데, 번제가 고기의 전부를 모두 태워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에 반하여 화목제는 고기의 일부를 태워 하나님께 바칠 뿐 대부분의 고기를 제물을 바친 봉헌자와 일반 백성들이 나누어 먹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번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모든 순서가 마치는데 반하여, 화목제는 모든 제사의 과정이 끝나면 사람들이 모여서 제물의 고기를 나누어 먹는 식사의 순서가 이어졌던 것입니다. 음식을 먹는 일, 특별히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던 고기를 함께 나누는 일이 거룩한 예배의 한 순서가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고기를 먹는 일, 대부분의 짐승에게는 Feeding의 차원에서 진행되었고, 그 옛날 고대인들에게는 Eating의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음식을 먹는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차원 – 곧 Dining의 차원 – 으로 승화시켰던 것이 오늘 본문의 주제인 화목제의 규례인 것입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화목제의 규례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제물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1절) 

화목제의 제물로 소를 드리려면, 수컷을 드릴 수도 있고 암컷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레위기 1장에 등장하는 번제와의 또 다른 차이점입니다. 번제는 숫컷만 드리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함께 나누어 먹는 화목제는 수컷만 아니라 암컷도 함께 드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화목제 제사를 드린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음식을 나누는 화목제 식사가 풍성한 식탁이기를 기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의 수컷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암컷도 가져올 수 있도록 하셨던 거죠. 

그리고 레위기 3장 전체를 읽어보면 화목제의 제물은 소, 양, 염소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1장에 등장하는 번제로 드릴 수 있는 새가 화목제 제물의 목록에는 없어요. 아마도 새는 함께 나누어 먹기에 고기의 양이 적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통닭을 한 마리 튀기면 4인 가족이 한끼를 먹기에는 조금 부족하잖아요. 음식이 부족해지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Feeding의 차원으로 음식을 대하게 되거든요. 누가 더 많이 먹느냐? 통닭을 한 마리만 튀기면 닭다리 두 개를 과연 누가 뜯느냐에 관심을 가지게 되지요. 그래서 화목제를 드리기 위해서는 조그마한 새로는 안돼요, 소나 염소 적어도 양 정도는 잡아야 화목제를 드릴 수 있는 것이죠. 

그러고 보니, 하나님도 풍성한 식탁을 좋아하시는 듯합니다. 심지어 성경은 하나님을 어떻게 묘사하지요?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 우리의 식탁도 하나님의 풍성함, 하나님의 충만함이 깃들여 있는 식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기서 말하는 풍성함은 단지 음식의 양이나 음식의 가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식을 대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풍성해야 하지 않을까요? 식탁을 대하면서 내가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고, 내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부위를 먹겠다는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화목제의 제물로 황소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무시한 채 그저 새 한 마리 가지고 와서 화목제로 드리려고 하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모습입니다. 


천국의 식탁을 위한 제언 – 하나님을 향한 감사

하나님은 화목제 제물로 소나 양이나 염소를 가져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수컷만 가져오지 말고 암컷도 가져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풍성한 식탁을 준비하라는 뜻이죠. 그리고 2절부터는 그 풍성한 고기덩어리를 어떻게 배분하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2절) 

한글 성경에는 2절에서 안수하고 잡는 행위의 주체가 명백하게 표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문맥을 통해 그 주어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있지요. 누가 예물의 머리에, 곧 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누가 소를 잡는 것일까요? 제사장일까요? 예물을 드리는 봉헌자일까요? 정답은 봉헌자입니다. 전반적인 문맥을 보면 그렇게 되어 있어요. 소를 화목제로 드리기 위해 가져온 봉헌자가 소의 머리에 안수합니다. 그리고 봉헌자가 소를 잡게 되어 있습니다. 봉헌자가 소를 잡고 나면, 그때부터 제사장의 역할이 등장합니다. 2절 하반절에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제물을 드리는 봉헌자가 소를 잡고, 소의 몸에서 피를 뽑아서 제사장에게 가져다줍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그 피를 제단에 뿌리는 것입니다. 
소의 피를 하나님께 바친 뒤, 또 무엇을 하나님께 드리는 지 보지요. 

그는 또 그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낼 것이요 (3-4절) 

화목제를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소의 피를 뽑습니다. 그리고 소의 몸 가운데 기름 부위를 떼어냅니다. 특별히 콩팥과 내장에 붙어있는 기름을 중심으로 떼어내지요.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기름은 액체 형태의 기름이 아니라 짐승의 몸 안에 있는 고체 형태의 기름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도 동일한 질문을 던져볼까요? 제물에서 기름 부분을 떼어내는 사람은 누구죠? 제사장이 떼어내나요? 아니면 제물을 드리는 봉헌자가 떼어내나요? 이번에도 봉헌자가 떼어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봉헌자가 기름진 부분을 떼어냅니다. 그리고 나서 제사장의 역할이 등장합니다.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제단 위에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의 번제물 위에서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5절)

어떤 분들은 화목제를 드리기 위해 피와 기름을 먼저 떼어내는 장면을 설명하면서, 우리 인간의 몸에 좋지 않은 부분은 불태워서 인간의 건강을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배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성경에 근거한 해석은 아닙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기름진 부분이 가장 귀한 것을 여겼거든요. 구약 성경을 읽다 보면 ‘기름진 것’이라는 표현은 ‘가장 좋은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거든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율법을 어기고 자신의 욕심에 따라 행동했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무엘상의 기록을 보면 홉니와 비느하스는 화목제를 드리기 위해 가져온 봉헌자들에게 고기의 기름을 태우기 전에 기름이 그대로 붙어 있는 생고기를 빼앗았다고 되어 있습니다(삼상 2:16). 그만큼 구약시대에는 기름이 제거된 살코기가 귀한 음식이 아니라, 기름진 것 – 곧 가축의 고기 가운데 기름이 붙어 있는 고기가 귀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기가 제물의 기름 부위를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한 것은 가축의 가장 귀한 부분, 곧 기름진 부위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명령입니다. 

화목제를 드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지금도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먹고 마시고 입고 쓸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죠. 감사의 마음으로 화목제의 희생을 드리면서 그 제물의 가장 좋은 것 – 곧 피와 함께 기름진 부위를 –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바로 화목제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매일 음식을 먹어야 생존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오늘 내일의 양식을 미리 먹을 수도 없고 어제 먹지 못한 음식을 오늘 마저 먹을 수도 없습니다. 그저 매일매일 필요한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이것을 신앙의 관점을 바라본다면 우리 인간은 매일매일 때마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생존할 수 있는 존재라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도 하루 세끼의 양식을 먹으며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신앙적으로 표현한다면 오늘 필요한 양식, 오늘 사용할 물질, 오늘 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은혜, 곧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에 반드시 필요한 오늘의 은혜를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에게 베풀어 주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한끼의 식사를 대하며 오늘도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그저 소박한 한 끼의 식사를 대하시더라도 화목제 제물의 가장 귀한 피와 기름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심정으로,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올려드리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한 끼 식사를 Feeding이나 Eating에 머물지 않고 Dining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요, 바로 그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식탁을 천국의 식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입니다. 


천국의 식탁을 위한 제언 – 이웃을 향한 나눔

화목제의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소의 몸에서 피를 축출하고 그 뒤에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겼던 기름진 부위를 떼어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께 드리지요. 이제 피와 기름을 제거한 고기를 어떻게 처리할까요? 레위기 7장에 그 이후의 처리 문제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중간 단계는 조금 뛰어 넘고, 레위기 7장 15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레 7:15) 

하나님께 감사의 제목이 있어 소 한 마리를 끌어왔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감사의 화목제를 드렸어요. 가장 귀한 부분인 피와 기름은 하나님께 불태워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 한 마리를 잡았기에 고기가 많이 남아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 많은 고기를 하루 안에 다 먹어라. 절대로, 냉동실에 얼려 두면 안 된다.’ 

여러분 중에 한끼한 끼 식사로 소 한 마리를 모두 드실 수 있는 분 계십니까? 그러므로 이 명령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무엇일까요?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다 불러서 마을의 잔치를 열어야 합니다. 누군가 하나님께 감사의 제목이 있어 화목제를 드리면 그 날은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먹고 마시는 천국의 식탁이 펼쳐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정작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린 봉헌자가 가져갈 수 있는 고기의 양이라는 것은 그 마을에 가난하게 살아가다가 그날의 화목제 식탁에 함께 참여한 사람과 동일합니다. 곧, 한 끼의 식사로 자신의 배에 채울 수 있는 만큼의 고기만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 베풀고 나누어야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의 음식을 먹는 식사 행위가 그저 Feeding이나 Eating이 되지 않고 Dining의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의 식사에 다른 사람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화목제 제사가 천국의 식탁이 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제사가 결국 마을의 모든 사람들을 불러 함께 음식을 나누는 천국의 식탁을 베풀기 때문입니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의 제물은 그 날에 모두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한 사람이라도 더 초대하여 함께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흐뭇해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이지요.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 부부가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신혼 살림으로 냉장고가 정말 작은 것이 하나 있었대요. 그런데 사모님은 음식을 준비하고 요리하는 것을 참 즐거워하셨던 분이었어요. 그런데 요리를 하려면 음식 재료가 다양해야 되잖아요. 이것저것 요리 재료를 준비하다 보니 냉장고가 부족한 거예요. 또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면 어떻게 한 끼 식사에 다 먹지 못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런데 요리한 음식을 냉장고에 보관을 하기에도 공간이 무척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사모님께서 냉장고가 작아서 음식을 다 보관할 수가 없다고 불평을 했겠죠. 그때 목사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답니다. 

“그러면 음식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세요.” 

여러분, 어쩌면 우리가 이웃을 돌아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집 냉장고가 너무도 크기 때문은 아닐까요? 하나님은 냉동실에 화목제 제물을 얼려 놓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매일의 양식을 풍성히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에 내일을 위한 나만의 냉동실에 화목제 고기의 일부를 계속해서 얼려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집 냉장고를 가득가득 채우는 일에만 관심을 둔다면 우리의 식탁에 이웃을 초대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식탁은 지금 어떠한 모습입니까? 여러분의 식탁에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까? 나아가 여러분의 식탁에는 우리가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이웃들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천국의 풍성한 식탁을 날마다 누리고자 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여러분의 식탁의 분위기를 Feeding이나 Eating의 모습에서 Dining의 모습으로 바꾸십시오. 지금부터라도 한 끼의 식사를 대할 때 우리에게 날마다 필요한 오늘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품으십시오. 지금부터라도 여러분의 식탁에 누군가를 초대하십시오. 지금부터라도 여러분의 식탁에 다른 사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십시오. 바로 그때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식탁은 풍요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천국의 식탁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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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