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20. 6. 1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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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 왕이 남 유다를 다스리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북쪽에서 내려온 앗수르 제국의 군대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 더 남쪽으로 내려와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완전히 포위하였지요. 당시 앗수르 제국의 군대를 지휘하고 있었던 랍사게 장군은 18만 5천 명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포위만 하고 있어도 예루살렘 성은 그들의 손에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랍사게 장군이 그와 같은 전략을 세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높은 산 위에 세워진 도시로 천연 요새입니다. 아무리 거대한 대군을 이끌고 공격을 하더라도 쉽게 무너트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예루살렘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약점이란 식수를 얻을 수 있는 강이나 하천이 예루살렘에는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사람들은 식수를 비롯한 생활용수를 얻기 위해 예루살렘 성을 나와서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기혼 샘까지 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니 앗수르의 장군 랍사게는 예루살렘 성벽을 18만 5천 명의 군인들로 물 샐 틈 없이 포위만 하고 있으면 예루살렘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식수를 얻을 수 없을 것이고 남 유다는 곧 앗수르 제국에 항복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랍사게 장군의 전략은 실패합니다. 물론, 예루살렘에는 식수를 공급할 수 있는 강이나 하천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예루살렘 성벽 바깥 곧 기혼샘으로부터 지하를 통해 예루살렘 성전까지 물길이 들어올 수 있도록 터널을 만들었고, 그 끝에는 조그마한 연못을 만들어서 물이 고이게 하였습니다. 그 연못의 이름이 바로 실로암입니다. 사람들은 그 터널을 히스기야 왕이 만들었기에 ‘히스기야 터널’이라고 불렀고 유사시에 히스기야 터널이 시작되는 기혼 샘의 그 입구를 적군이 발견하지 못하도록 잘 막아놓기만 하면 예루살렘 성벽을 제 아무리 18만 5천 명의 대군이 층층이 에워싼다 하더라도 예루살렘 안에는 한줄기 생수가 흘러 들어와 실로암에 모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수많은 적군의 위협 속에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들을 지켜주었던 것은 성벽의 튼튼함이나 강력한 군대라기보다는 기혼샘으로부터 히스기야 터널로 통과하여 실로암 연못에 모이는 한 줄기의 생명수였습니다. 

여러분은 긴박한 위기의 순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지켜주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위기의 순간 우리에게 생명의 끈이 되어주는 것은 거대한 성벽이 아닙니다. 크고 화려한 집을 장만하고, 남부럽지 않은 사회적 지위를 얻고,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성공을 이룬다 하더라도, 그것이 긴박한 위기의 순간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긴박한 위기의 순간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을 지켜주는 것은 우리의 가정에 흐르는 조그마한 물줄기, 하나님의 은혜의 샘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리 개인의 심령에 머물러 고이게 되는 ‘실로암 연못.’ 바로 그 은혜의 물줄기가 참된 위기의 순간 우리를 끝까지 지켜 주는 생명의 끈이 되는 것입니다. 


스며 나오더라

히스기야 시대의 예루살렘은 기혼샘으로부터 히스기야 터널을 통해 실로암으로 이어지는 은혜의 물줄기가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은혜의 물줄기를 잊어버리고 맙니다. 결국 바벨론 제국에 의해 예루살렘 성은 초토화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황폐함. 그것의 눈에 보이는 현상은 성벽이 무너지고, 성전이 무너지고, 건물이 무너진 것이었지만 실상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마음에 은혜의 물줄기가 사라진 것이요 그들의 마음과 심령이 메말라 타는 듯한 갈증 속에서 그들의 영혼은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새로운 비전과 새로운 약속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지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성전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환상입니다. 그런데 그 위대한 강줄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함께 2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오늘 본문 1절과 2절의 말씀은 에스겔이 환상 속에서 보았던 성전의 구조를 이해하고 있어야 그 뜻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어려운 구절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목표가 에스겔서에 나오는 성전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기에 최대한 간단히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2절 중간을 보시면 “동쪽을 향한 바깥문”이 있습니다. 이 문을 기준으로 한쪽에는 성전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에스겔이 서 있습니다. 1절 말씀이 성전에서부터 물이 흘러내려온다는 말씀입니다. 그 흘러내려오는 물은 자연스럽게 이 문에 다다르겠죠. 문제는 이 문이 열려있지 않고 닫혀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문을 기준으로 성전이 있는 쪽에는 물이 흘러내리고 있는데, 이 문의 반대쪽인 에스겔이 있는 곳에는 물이 넘어오지를 못하는 거예요. 

바로 그때 에스겔이 놀라운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합니다. 2절 뒷부분입니다. “본즉” 에스겔이 그 닫힌 문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발견합니까? “물이 그 오른쪽 – 그 닫혀 있는 문의 오른쪽을 말합니다. – 그 오른쪽에서” 어떻게 나옵니까? “스며 나오더라” 이 장면이 상상이 되시나요? 문이 열려 있다면 물줄기가 시원하게 나왔을 거에요. 그러나 문이 닫혀 있으니 물줄기가 막혔어요. 그러나 그 문에 물이 스며들어서 그 문을 뚫고 생수가 조금씩 스며 나오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스며 나오더라’는 표현의 히브리어는 물이 아주 조금씩 떨어지는 장면을 묘사하는 의성어입니다. 우리말의 의성어 가운데 그 의미가 가장 비슷한 단어를 찾는다면, ‘졸졸 흐른다’ 혹은 ‘똑똑 떨어진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수도꼭지를 끝까지 열어놓은 것처럼 콸콸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문이 막혀 있기에 스며서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똑똑 떨어지는 물이고, 기껏해야 졸졸 흐르는 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는 똑똑 떨어져도, 졸졸 흘러도 – 거대 한 물줄기가 아니라 – 그저 스며서 나오는 정도의 물줄기라도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그것은 은혜의 강물이 되어 나의 발목을 적시고, 나의 무릎까지 차오르며, 나아가 나의 허리를 넘어 머리 위까지 차고 넘치는 은혜의 강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 시작은 무엇입니까? 은혜의 물줄기가 스며서 나오는 것, 은혜의 생수가 똑똑 떨어지는 것, 많이 나와야 졸졸 흐르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스며나오는 은혜가 결국은 거대한 강줄기를 이루고 그 강물은 이제 만물을 새롭게 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다(9절)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위대한 환상도 보여주시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각종 은사를 부어주시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생수의 강물이 머리 위까지 차오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기도할 때마다 큰 은혜가 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생명의 물줄기는 거대한 강물이 아니라 기혼 샘으로부터 실로암 못까지 이어지는 조그마한 히스기야 터널이요,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가 아니라 그저 똑똑 떨어지고, 많아야 졸졸 흐르지만 메마른 우리의 심령을 조금씩 적실 수 있는 스며 나오는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참으로 많은 기도의 제목이 있지요. 가정의 문제, 자녀의 문제, 질병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직장과 교회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 우리가 닥면한 문제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회복되고 새로워지기 위하여 가장 먼저 시작되어야 할 지점이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의 강줄기가 나의 삶 속에서 깊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서고 있는 내 마음의 문에 하나님의 은혜의 생수가 스며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당장 성전 문을 활짝 열고 물줄기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스며들기만 하더라도, 그리하여 나의 마음이 조금씩 촉촉해지기만 하더라도 어느새 나의 발목이 잠기고, 무릎이 잠기고, 허리가 잠기고 나아가 나의 머리 위까치 차고 넘치는 은혜의 강줄기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리라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명의 물줄기를 허락하시는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예컨대,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사건, 이사야 선지자가 목마른 자들에게 값없이 와서 물을 마시고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초대하는 장면, 그리고 앞에서 소개해 드린 기혼 샘으로부터 실로암까지 생명의 물줄기가 이어진 장면 등입니다. 이와 같은 일들을 잊을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신약시대로 넘어오면 매년 장막절을 보내며 실로암 연못에 모여 특별한 행사를 진행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실로암에서 행사를 진행하고 있던 어느 장막절, 예수님께서 행사를 거의 마치고 있는 유대인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 7:37-38)

비록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왔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기혼 샘으로부터 생수가 흘러 실로암 연못에 물이 고였지만 예루살렘은 이후 바벨론 군대에 의해 멸망당하고 맙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목마른 사람은 값없이, 돈 없이 물과 포도주를 사라고 초대하였지만 하나님의 이 약속은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생수의 강을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심령에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생수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물줄기를 가로막고 있는 동쪽을 향한 바깥문처럼 여전히 우리 마음의 문도 굳게 닫혀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고 거대한 물줄기가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그저 졸졸 흐르는 은혜, 똑똑 떨어지는 은혜,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로부터 흘러나와 우리의 심령에 흐르는 작은 실로암 연못이면 충분합니다. 그저 나의 심령을 조금씩 적시는 스며 나오는 은혜의 한줄기만이라도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우리를 은혜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요, 우리의 삶을 사로잡는 은혜의 강물로 말미암아 우리 주변의 모든 죽어가는 것들이 새롭게 되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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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