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2020. 6. 1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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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러분에게 성경 퀴즈를 하나 내면서 설교를 시작하려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기독교를 가리켜 ‘기적의 종교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기적 혹은 하나님의 이적을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이적과 기적이 무더기로 – 한 두 번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 무더기로 떼로 나타나는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이적이 무더기로 나타났던 시대가 크게 두 번 있었는데 그 두 번의 시대는 과연 언제일까요? 

첫 번째는 모세의 시대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때, 하나님은 기적을 한 두 번 행하신 것이 아니라, 무더기로 기적을 행하셨지요. 바로 모세의 때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기적이 무더기로 나타났습니다. 자, 그럼 모세의 시대 이후에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무더기로 나타났던 시대는 또 언제였을까요? 바로, 엘리야-엘리사의 시대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하나님은 갈멜산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불도 내려주시고, 온갖 신기한 기적과 이적을 무더기로 베풀어주셨습니다. 

자, 그럼 이제 정말 중요한 질문을 드리지요. 구약성경에서 모세의 시대, 그리고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기적을 무더기로 다발로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기적을 무더기로 떼로 경험했던 모세 시대의 사람들과 엘리야-엘리사 시대의 사람들은 구약 성경의 그 어떠한 시대보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믿음이 더욱 견고하고 든든했나요? 하나님의 기적을 그토록 많이 보았으니, 모세 시대의 사람들과 엘리야-엘리사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과 신앙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나요? 대답은 “아니요”입니다. 

모세의 시대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 곧 열 가지 기적으로 베풀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정도면 애굽 사람들이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이스라엘 백성을 아무 말 없이 보내줄 만하잖아요. 그런데 성경을 보면, 열 가지 재앙으로 나라가 다 망해버린 애굽의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 다시 잡아가겠다고 그들을 따라오잖아요. 그러다가 모두가 홍해에서 수장되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위대한 기적과 표적으로 자신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냈으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신앙이 생길 만하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 그 땅을 점령해라 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잖아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결국에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방황하는 신세가 되었잖아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기적을 많이 경험한다고 해서 믿음이 성숙하는 것은 아닙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도 생각해볼까요?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어요. 갈멜산에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데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주십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온전히 회개하고 바알 신, 아세라 신, 그 외의 모든 우상들을 다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다 나아올 만 하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는데,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것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더 이상 어떠한 기적을 보여줘야 하나님을 믿겠어요? 그런데 엘리야-엘리사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위대한 기적을 보고도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고 달려들잖아요. 

여러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기적을 많이 체험했다고 믿음의 성숙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적을 많이 체험하고, 이적과 기사를 많이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이적과 표적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권능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이적이든, 표적이든, 기적이든 제 아무리 많은 이적과 기적을 경험한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들이 나의 믿음과 신앙에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이적과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살아가더라도, 나의 매일매일의 삶을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볼 수 있는 영의 눈이 열려있다면 그 사람의 믿음과 그 사람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는 거대한 바위 위에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요구와 예수님의 거절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과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짧은 대화를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하루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이야기하죠. 오늘 본문 11절의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무엇을 요구합니까? 표적을 구합니다. 이적을 구합니다. 기적을 행하라고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이러한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리십니다. 오늘 본문 12절과 13절의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요구를 예수님은 분명하게 거절하시고 아예 다시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과 행동은 바리새인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이적이나 기적을 베풀 필요가 있습니까? 기적이나 이적을 베풀어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왜요?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지 않기로 마음에 결심을 했어요. 예수님을 힐난하면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적과 표적을 구했어요. 그러니 예수님께서 아무리 큰 이적과 기적을 그들의 눈에 보여주어도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시작하면서 여러분에게 한 가지 퀴즈를 내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과 기적이 한 두 번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무더기로 나타났던 시대가 두 번 있었는데, 그때가 언제였는가 라는 퀴즈였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그 답을 아시죠? 모세의 시대와 엘리야-엘리사의 시대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런 퀴즈도 가능합니다. 신약 시대에 – 구약 시대가 아니라 신약 시대로 넘어와서 –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 곧 기적이 무더기로 다발로 나타났던 시대는 언제였을까요? 바로 예수님의 시대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들 – 병든 사람들을 고치시고, 귀신 들린 사람들을 고치시고, 몇 개 되지 않는 빵과 물고기로 수천 명의 사람들을 먹이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 얼마나 많은 기적과 표적을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 목격하였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 시대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인류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라고 믿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읽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 가운데 주목해야 할 단어, 곧 이 말씀의 키워드는 바로 “이 세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이 세대”라는 구절이 두 번 등장하죠? 여러분, 지금 예수님께 표적 보여주세요, 기적을 보여주세요 라고 요청한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 바리새인들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이 세대가 어떻게 표적을 구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여기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대, 곧 그 세대 사람들에게는 그 어떠한 시대에도 주어지지 않았던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병자를 고쳐주셨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수 천명의 사람들을 먹이셨다는 정도가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정도가 아니라니까요.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바로 그 시대의 사람들은 인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기적, 곧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시는 성육신의 기적을 눈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무슨 기적이 더 필요합니까? 더 이상 무슨 기적을 보여주어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기적을 허락하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육신을 너무도 괴롭히던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깨끗하게 고쳐주시기도 합니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물질의 문제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풍성함으로 응답해주십니다. 그 어디에도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던 우리 가정의 문제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우리 가정에도 평안과 행복이 넘쳐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데 여러분, 그것보다 더 크고 더 위대한 기적이 있어요.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하여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한번 우리의 마음에 모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시골 교회에서 있었던 사건을 소개하고 오늘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어느 시골에 여러 자녀를 둔 젊은 아기 엄마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분이 결혼을 하여 자녀를 여럿 나은 두었는데, 그만 남편이 아직 어린 자녀들을 남겨둔 채 먼저 세상을 떠난 거예요. 시골에서 남편 없이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것만 해도 참 수고로운 일이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여자분 자신의 몸에 중풍이 찾아왔습니다. 남편이 살아 있었을 때,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재산은 모두 소진하고 본인은 한쪽 몸을 전혀 사용하지 못한 채, 집안에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자녀들은 키워야 하는데 몸은 말을 듣지 않고 괴로움만 깊어지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아주머니께서 그분에게 귀가 솔깃해질 이야기를 하나 해 주었습니다. 동네 아주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교회 가면 병 낫는데.” 그 말을 들은 젊은 애기 엄마가 어떻게 했을까요? 그다음 날부터 움직이지 않는 한쪽 다리를 끌고 매일 아침 언덕을 넘어서 시골교회의 새벽기도에 출석하였습니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몸을 이끌고 새벽기도에 하루도 빠지지 않는 열심이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교회에서 서리집사의 직분을 받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여집사님이 교회에 출석하는 이유는 단 하나, 뭘까요?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과를 먼저 말씀 드리지요. 그 여집사님은 풍을 앓으신 이후 날아계신 날 동안에는 몸의 한쪽을 단 한 번도 움직이지 못하셨습니다. 교회에 아무리 출석하고 새벽기도시간에 아무리 기도하였을 지라도 병이 낫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교회를 출석한 지 약 7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그 여집사님께서 큰 자신의 딸에게 이런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교회를 출석한 지 7년 만에 자신의 속 마음을 큰딸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제 내가 병 낫는 것보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여러분, 중풍병이 나아야 기적이지요. 마비되었던 몸이 다시 힘을 얻어서 열심히 일하며 자녀들을 양육할 수 있어야 기적이잖아요. 그러나 이 여집사님은 그런 기적을 체험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다면 여러분, 이 여집사님은 하나님의 기적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건가요? 아닙니다. 그 여집사님은 비록 자신의 몸이 치유되는 기적은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분과 늘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만났어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어요. 이것이 그 여집사님이 경험한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이 아닐까요?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경험한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이 경험한 초자연적인 기적이 여러분의 믿음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이 경험한 기적과 이적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여러분에게 초자연적인 기적을 선사하신 하나님께 여러분의 시선을 고정시키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혹, 우리 가운데 별다른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신 분들이 계신가요? 여러분, 괜찮습니다. 초자연적인 기적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혹 초자연적인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셨다면 더욱더 우리의 일상을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또 다시, 한 해가 저물어가고 성탄절을 맞이하였습니다. 매년 찾아오는 성탄절을 다시 한번 맞이하면서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구해야 하는 기적이 있다면, 그것은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만나는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무엇인가 새로운 기적과 표적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매년 찾아오는 성탄절은 무의미한 시간의 반복처럼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열어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성탄절을 통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음에 모십니다. 매년 찾아오는 성탄절이지만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하여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거예요. 매년 반복되는 성탄절이지만 지금도 내 마음속에 찾아와 나와 함께 거하시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에게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말구유가 아닌, 나의 마음에 모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생애 최고의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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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