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그룹과 말씀묵상2020. 6. 1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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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2년 버클리기독대학에서 행한 "제자 훈련" 특강 원교입니다. 

 

소그룹은 제자 훈련을 위한 필수적인 환경이다. 주일 예배와 같은 대형 모임에서는 정보의 전달은 가능할지 몰라도, 성도 개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자신에게 적용하였는지, 어떻게 실천하였는지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그룹이 배제된 대형 모임에서는 ‘방관자’로서의 크리스천들이 양산될 소지가 높다. 고(故) 옥한흠 목사 역시 소그룹 환경은 제자 훈련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소그룹의 장점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지적한 바 있다.[각주:1]   

1. 일반화의 요소. 
소그룹 환경에서는 참석자들이 자연스럽게 마음 속에 있는 고민과 갈등을 내어 놓을 수가 있다. 그러다 보면, 내가 가지고 있던 문제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 인격 상호간의 학습(Interpersonal Learning)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보다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고, 나아가 자신의 성숙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3. 모방 
소그룹 안에서는 리더(혹은 목회자)의 삶을 보다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가 있기에, 리더의 좋은 모범을 모방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4. 그룹 애착심(Cohesiveness) 
대형 모임에 비하여 소그룹 환경에서 그룹원들 사이의 애착심이 강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5. 카타르시스(Catharsis) 
소그룹 안에서는 자신의 생각뿐만 아니라,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까지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때로는 이러한 자기 고백만으로도 감정의 치유가 일어난다. 

옥한흠 목사가 위에서 지적한 소그룹의 다섯 가지 장점은 ‘인격적 상호작용’이라는 중심 단어로 귀결된다. 평신도에게 기독교 진리를 전달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제자훈련에서는 ‘인격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소그룹 환경은 필수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소그룹 안에서 일어나는 ‘인격적 상호작용’은 언제나 순기능만을 할까? 소그룹 환경 안에서 너무도 가까운 사이가 되었기에 오히려 문제점을 야기하는 경우는 없을까?


가까워지는 만큼 위험하다 

1991년부터 제자훈련을 시행하고 있는 새춘천교회의 사례는 소그룹 환경이 지니는 위험성을 보여준다. 신재원 목사가 새춘천교회에 부임하였던 1986년 당시, 새춘천교회는 30~40명 정도가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었으며 6개월 동안 목회자가 없는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신 목사는 제자 훈련에 앞서 3개월 단기 과정으로 신앙 교육을 시작했다. 이런 과정이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고 판단한 신 목사는 1991년부터 본격적인 제자 훈련을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제자 훈련 1기가 21명으로 시작했지만 3년 뒤 제자 훈련 과정을 수료한 사람은 5명뿐이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제자훈련을 중도에 하차하게 되었을까? 신재원 목사 자신이 제시하는 몇 가지 원인 가운데 두 가지만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각주:2]  

첫째, 제자 훈련을 위한 소그룹 안에서 갈등과 불화가 발생한 경우다. 소그룹 형태로 제자 훈련이 2년 정도 지속되면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것들이 모두 드러나게 마련이다. 소그룹에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소그룹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공감할 수 없는 허물도 소그룹 안에서 모두 드러나게 된다. 그런데 소그룹 안에서 나눴던 이야기들이 다른 성도들의 귀에 전해지기도 했다. 때로 제자 훈련 소그룹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 물질 문제라든지,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문제 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제자 훈련은 물론이고 교회를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둘째, 제자 훈련을 인도하는 목회자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다. 제자 훈련을 중심으로 목회를 하면 아무래도 목회자는 제자 훈련을 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제자 훈련은 1주일에 한 번의 만남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주 중에도 계속해서 과제를 점검하고 용기를 불어넣어주기 위해 목회자가 연락을 취하게 된다. 그런데 제자 훈련을 받다가 도중하차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겐 아무래도 목회자가 직접 연락하는 경우가 확연히 줄어들게 된다. 동시에 교회의 일에서도 제자 훈련을 수료한 사람들이 주도권을 쥐게 된다. 이런 이유들이 겹쳐 제자 훈련을 도중하차한 사람들 중에는 교회까지 떠나는 일이 있었다. 

고(故) 하영조 목사는 교회 안에서 단짝을 없애야 함을 강조한 바 있다. “교회 안에 단짝을 만들지 않게 해야 합니다. 소위 지역, 학벌 등을 따져서 끼리끼리 모이지 말게 해야 합니다. 친한 사람들끼리 즉 단짝에서 사고 나고 단짝에서 비판이 나오기 때문에 단짝은 꼭 떨어지라고 말합니다. … 목사는 더 친할 사람도 없고 덜 친한 교인도 없어야 합니다.”[각주:3] 옥한흠 목사가 지적한 ‘그룹 애착심’은 소그룹의 중요한 장점으로서, 성도들의 인격 및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핵심 요소이다.[각주:4] 그러나 ‘그룹 애착심’이 단짝을 만드는 과정으로 오용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개인을 존중하기에 기준이 무너질 수 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로버트 위트나우(Robert Wuthnow) 교수는 소그룹이 미국의 여러 종교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광범위하게 조사하였는데, 결론적으로 그는 소그룹 영성의 한계를 두 가지로 지적하였다. 

첫째로 소그룹 환경이 ‘자기 중심적 종교’(me-first religion)를 조장한다는 것이다.[각주:5] 소그룹에서는 개인적인 경험이나 감정의 나눔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공동체나 그 너머의 사회적인 이슈보다는 개인의 문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현상은 소그룹에서 시행되는 기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도 제목을 내어 놓고, 소그룹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개인적인 기도 제목을 위해 기도해주기 때문이다. 

둘째로 소그룹 환경이 ‘무엇이든 괜찮아 영성’(anything-goes spirituality)를 조장한다는 것이다.[각주:6]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설교에서는 무엇이 옳으며 무엇이 그른가를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인격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소그룹 안에서는 “당신의 의견[감정]이 틀렸소.”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소그룹의 장점이 오히려 신앙의 기준을 모호하게 만드는 위험성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교회 안에 다양한 성격의 소그룹을 만들라 

소그룹 환경은 참여자들 사이에 ‘인격적 상호작용’을 형성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 적은 수의 사람들이 소그룹을 형성하여 최소 3~4달, 혹은 1~2년 정도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면, 서로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는 강력한 결속력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소그룹의 특징은 AA(Alcoholics Anonymous) 등과 같이 사람의 내명을 치유하는 기능을 할 수도 있고, 제자훈련과 같이 인격 혹은 가치관의 변화를 추구하는 목회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그룹이 갖는 친밀성은 인간 본연에 위치한 ‘죄성’이 드러나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위험성을 최소화하면서도, 소그룹의 장점을 최대화하는 방법은 없는가? 

이러한 질문에 한가지 대답은 교회 안에 다양한 성격의 소그룹을 만들라는 것이다. 예컨대, 지역별로 구성된 소그룹(구역, 셀, 목장 등)은 관계 전도 및 목양에 큰 장점이 있다. 그러나 지역별 소그룹 모임이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 형성되는 ‘단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별 소그룹의 재배치만으로는 버겁다. 지역별 소그룹의 속해 있는 동일한 성도가 훈련을 위한 소그룹(제자훈련 소그룹, 성경공부 소그룹 등)에 동시에 속해 있을 때에야 ‘단짝’의 관계가 해소될 수 있다. 교회는 지역별 소그룹이나 훈련을 위한 소그룹만이 아니라 사역을 위한 소그룹 등 다양한 성격의 소그룹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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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옥한흠, 『다시쓰는 평신도를 깨운다』(서울: 국제제자훈련원, 1984), 243-8. [본문으로]
  2.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한진, “포기할 수 없는 제자 훈련,” 『목회와신학』, 2007년 7월호, 150-151를 보라. [본문으로]
  3. 두란노서원 일대일 양육 세미나 “그리스도인의 교제” (1987. 8) 중에서. 이상수, 최심연, 『전문사역자는 평신도 당신입니다』(서울: 교회시스템전략연구소, 2009), 40. [본문으로]
  4. 옥한흠 목사는 “제자반에서 그룹 애착심을 발전시키는 것은 제자훈련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나 다름없다”고 까지 말하였다. 옥한흠, 위의 책, 246. [본문으로]
  5. Robert Wuthnow, ed. “I come away stronger”: how small groups are shaping American religion (Grand Rapids: Eerdmans, 1994) 356-7. [본문으로]
  6. 위의 책, 358-6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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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