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인문학2020. 6. 1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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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교회 권사님 한 분이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제 동생이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어요. 저희 형제들은 어머니의 믿음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지금까지 잘하고 있는데, 유독 그 동생만이 신앙생활을 안 하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더니 간이 다 못쓰게 되었네요.” 권사님에게 그 남동생의 나이를 물어보았더니 이제 50대 후반이란다. 이미 병원에서는 임종을 준비하라며 진통제만을 처방해주는 형편이었다.

권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거니 더 이상은 미련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 동생이 아직까지 예수님을 안 믿거든요. 언제 한번 제 동생을 만나 주실 수 있으실까요?” 진통제를 처방받기 위해 교회에서 멀지 않은 병원으로 이따금 오니, 그 시간에 잠시 만나줄 수 있느냐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그 동생이 입원한 것도 아니고, 잠시 병원에 오신 분을 스치듯 만나서는 대화를 이어가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동생 집이 어디인지 물었다. “목사님, 제 동생 집이 멀어요. 의정부거든요.” “아니 권사님, 의정부가 뭐가 멉니까? 시간 정해서 저와 한 번 가시죠?” 

중간중간 권사님을 통해 소식을 들었다. 통증의 강도가 강해지고, 통증의 빈도도 높아졌다. 누나들이 예수님에 대해,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그렇게 아프다고 하면서 거절한단다. 처음 소식을 듣고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더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권사님과 날짜를 정했다. 그러면서 기도했다. 이번에 방문하면 딱 한번 그분을 만날 텐데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그런데 방문 약속을 이틀 남겨둔 늦은 저녁 시간에 권사님에게 전화가 오는 것이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을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연락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의 게으름으로 그 한 번의 기회조차 놓치는 것은 아닐까? 바로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겠노라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정말이지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하루만 더 살려주세요. 제가 내일 만나볼 수 있게 해 주세요." 

다음날 아침, 병상 세례를 대비해 이동식 세례반을 챙겨 의정부로 출발했다. 그런데 동부간선도로가 왜 이렇게 막히는 건가? 가는 길이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통증의 강도는 너무도 컸고 크게 괴로워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침상 곁에 앉아 통증이 누그러지기를 기도하며 기다릴 뿐. 어느 정도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행히 통증이 잠시 누그러졌고 그분의 손을 잡은 채 간단한 인사를 시작으로 천국에 대해, 예수님에 대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복음을 전했다. 

임종이 가까우신 분들은 대부분 대화가 순조롭지 못하다. 복음을 제시하고 결신을 할 때면 그분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는 별도의 방법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날 나는 손을 붙잡는 것으로 믿음을 표시하도록 유도했다. “선생님, 참으로 예수님을 선생님의 마음으로 믿기를 원하신다면, 예수님을 믿어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신다면 통증으로 고통스러우시겠지만 제 손 위에 선생님의 손을 올려놓아 주세요.” 그의 손이 나의 손 위에 올라왔다. “선생님, 입술로 저의 기도를 따라하지 못하시더라도 마음으로부터 저의 기도를 따라 하시면 하나님께서 선생님의 기도를 다 들으십니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저의 기도를 따라 하신다는 의미로 제 손 위에 선생님의 손을 계속 올려놓고 계세요. 그러면 선생님께서 저의 기도를 따라 마음으로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천천히 영접 기도를 시작했고 영접기도가 마칠 때까지 그분의 손은 내 손 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칠 때 마지막 힘을 다해서 자신의 입술로 ‘아멘’하는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믿음을 표현하였고 그분은 믿음의 고백 위에 병상에서 세례를 받았다.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푼 뒤 교회로 돌아오는 길은 차가 훨씬 더 많았다. 문제의 동부간선에서는 차가 꼼짝도 안 했다. 그런데 길이 막히고 차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이번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일이 지나지 않아 그분의 부고 소식이 날아왔다. 돌이켜보니 나는 고인을 평생에 딱 한번 만났고, 이 세상에서는 다시 만날 기회가 없다.

 

그 짧은 만남이 나에게 긴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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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