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학2020. 7. 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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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토트의 설교학은 그의 저서 Between Two Worlds: the Challenge of Preaching Today(London: Eerdmans Publishing, 1982)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는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설교자들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공유하기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설교에 있어 '진심'과 '열정'은 주관적 측면이 강하여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중은 설교자의 진심과 열정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린다. 계량할 수는 없지만 설교에 있어 진심과 열정은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존 스토트는 이 두 가지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진심(Sincerity) 

진심의 반대는 위선이다. 회중, 특별히 젊은 세대는 위선이라고 생각되는 설교에는 귀를 막는다. 그들이 설교자에게 요구하는 핵심은 진심이다. 존 스토트는 진심의 의미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강단에서 선포하는 것을 믿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강단에서 선포한 대로 행하는 것이다.(Stott 1982, 203) 설교자가 믿음이 없으면서도 강단에서 기독교 진리를 선포할 수 있을까? 얼마든지 가능하다. 진실된 설교를 위해 설교자는 먼저 회심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존 스토트가 강조하듯 회중이 요구하는 설교자의 진심은 과거의 회심을 넘어 지금도 성령께서 그의 삶에 역사하시는 체험이다.(Stott 11982, 204)  그러므로 설교자는 진리의 전달자이면서 동시에 회중이 본받을 수 있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 

진심은 회중을 이끄는 설교의 힘이다. 존 스토트는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한다. 18세기 영국의 무신론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한 친구가 어디를 급하게 가느냐고 물었다. 흄은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의 설교를 들으러 가는 중이라고 답했다. 그 친구가 의아해하며 "자네는 휫필드가 설교하는 내용을 믿지 않잖아?"라고 질문하자, 데이비드 흄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믿지 않지. 그러나 그는 분명히 믿고 있네."(Stott 1982, 210) 

1954년 빌리 그래이엄이 처음으로 신문의 일면을 장식했다. 약 1만 2천 명의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3개월 동안 매일 밤 모여들었다. 존 스토트는 당시 그 모임에 참여하면서 그곳에 운집한 회중과 매주 텅 비어있는 자신의 교회를 비교했다고 한다. "왜 사람들은 빌리 그래이엄의 설교를 듣기 위해 이렇게 몰려들지?" 이러한 의문에 존 스토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대답은 바로 이것이다. "저 젊은 미국인 전도자에게는 반박의 여지가 전혀 없는 진심이 느껴진다." (Stott 1982, 210) 

진심(sincerity)은 진정성(authenticity)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위선은 언제나 사람들을 몰아내지만, 진심과 진정성은 언제나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Stott 1982, 210) 

설교자의 진심, 혹은 설교의 진정성은 어떻게 표현될까? "진정성을 드러내는 최고의 증거는 믿는 바를 위하여 고난을 기꺼이 감내하려는 자세다" (Stott 1982, 210) 여기에서 말하는 고난은 육체적, 혹은 외적인 아픔일 수도 있지만 설교자에게는 내면의 고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시대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의 설교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끄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진리를 위한 내면의 고통이 설교를 통해 표현될 때 회중은 그 안에서 진정성을 느낀다. 


열정(Earnestness)  

존 스토트는 열정이 진심을 넘어선 또 다른 단계라고 설명한다. 진심이 자신이 말하는 바를 믿고, 자신이 선포한 바를 행하는 것이라면, 열정은 진심 위에 깊은 감정의 요소가 더해진다.(Stott 1982, 213)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셨고, 사도 바울은 많은 이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고 눈물로 탄식하였다. 존 스토트는 "20세기 설교자들이 다시 탄식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Stott 1982, 215) 설교자의 마음은 언제나 열정이어야 하며, 설교자가 열정으로 설교할 때 회중은 비로소 반응한다. 그래서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다. "선포할 내용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열정적으로 선포하라. 그러면 회중은 당신의 발 앞에 모일 것이다."(Stott 1982, 218) 

영국의 유명 배우 머크리디(Macready)가 있다. 한 번은 설교자가 머크리디에게 질문했다. "나는 진리를 설교하면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 어려운데, 당신은 허구로 어떻게 그 많은 군중을 끌어모을  수 있습니까?" 머크리디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주 단순합니다. 우리 사이의 차이점을 말씀드리죠. 저는 허구를 진실인 것처럼 표현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진리를 허구인 것처럼 선포하더군요." (Stott 1982, 222) 

열정적인 설교가 지성적인 설교와 대척점에 있다는 생각은 오해다. 오늘의 설교자가 추구해야 할 설교는 지성적이면서 동시에 열정적인 설교다. 이성(mind)과 감성(heart)이 설교 안에서 어우러져야 한다. 존 스토트는 사도 바울의 설교가 열정과 이성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고 평가한다. 바울 서신은 중요한 기독교 교리를 논리적으로 서술하는데 그 깊이를 알아내기 위해 지금도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다. 동시에 바울의 편지는 열정을 다하여 눈물로 호소한다. "사도 바울이 성취하였듯 이성과 감정의 조화, 설명과 격려의 조화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필요한 요소다." (Stott 1982, 221) 

진심과 열정에 대해 논의한 존 스토트는 이 장의 마지막에 이런 글을 덧붙인다. "진심과 열정은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에 작식을 달 듯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붙일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진심과 열정은 분명 성령의 열매다." (Stott 1982, 231) 그렇다. 설교에 진심과 열정을 불어넣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성령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진심과 열정의 설교를 위해 오직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요, 그 신뢰의 표현은 기도다. 

기도하는 설교자가 진심과 열정으로 설교할 수 있다.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1 _ 설교의 영광: 역사적 개요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2 _ 현대 교회의 설교 위기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3 _ 설교의 신학적 근거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4 - 교량으로서의 설교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5 - 설교자의 연구(공부)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6 _ 설교 준비 과정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7 - 진심 그리고 열정

존 스토트의 설교학 강의 08 - 용기 그리고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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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