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설교2020. 8. 1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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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군인이 적었다는 글귀를 소개하며 오늘 설교를 시작하려 합니다. 

나는 큰 일을 성취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겸손히 순종할 수 있는 약함을 주셨습니다. 
나는 위대한 일을 행할 수 있는 건강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치 있는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질병을 주셨습니다. 
나는 부자가 되어 행복해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난하여 지혜롭게 하셨습니다. 
나는 능력을 받아 사람들에게 칭송받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드셨습니다. 

나는 기도한 것을 아무것도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은 내가 말하지 않았던 모든 기도의 제목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오늘의 주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나름의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이들은 선하고 아름다운 계획을 세우며 실천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잘못된 계획 때로는 죄악 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합니다. 요셉에게 폭력을 가하고, 급기야 애굽으로 내려가는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은 20을 받고 그를 팔아버린 요셉의 형들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입니까? 인간의 잘못된 행동, 나아가 인간의 죄악 된 행동까지도, 그리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인간의 악한 행위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 선하신 뜻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이 소개하는 요셉의 고백이 바로 그것이지요. 본문 5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네, 이것이 사실입니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팩트입니다. 형들이 동생 요셉을 미워하였고, 그리하여 아버지가 보지 않는 곳에서 폭력을 행사하였고 급기야 애굽에 종으로 팔아버렸습니다. 이들의 죄악 된 행동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도, 정의도, 사랑도 결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악한 행동은 생명을 헤아려는 죄악이었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 된 행동을 요셉이 애굽으로 내려가 그 땅의 총리가 되는 하나의 계기로 삼아, 7년의 대흉년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게 하셨습니다. 형들의 행동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바꾸어 더욱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선하신 뜻을 이루셨습니다. 이 놀라운 섭리를 깨달은 요셉은 계속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그 다음을 주목하여 보십시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계속해서 요셉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8a절) 

바로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에 대하여 가장 심도 있게 서술하는 로마서에서, 그것도 복음의 확신을 선포하는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마십시오(시 37:1). 그들의 모든 계획과 그들의 모든 행위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분이 행한 잘못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절망하거나 낙심하지도 마십시오. 여러분의 인생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심지어 여러분의 선한 계획과 간절한 기도가 지금 당장 응답받지 못할지라도 너무 괴로워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며 간구하는 우리의 선한 뜻도 하나님의 더 크신 뜻과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에게 선을 행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십시오. 마침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섭리와 눈물

언제부턴가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요셉의 나이가 열일곱이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무엇인가 의미있는 꿈이었고,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큰 일을 행하시리라는 꿈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때부터 요셉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선하신 뜻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 싹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향해 품고 계시는 선한 뜻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형들에게 매를 맞고 웅덩이에 갇혔습니다. 급기야 애굽에 내려가는 상인들에게 팔려 종이 되어 끌려갑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는 있지만, 요셉은 애굽으로 끌려가는 그 길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기 위한 첫 단계라는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그러니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어 울부짖으며 끌려갔던 것이죠(cf 창 42:21).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은 여전히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있지만, 그곳에서 만난 술 관원장의 추천으로 애굽의 바로 왕 앞에 서게 되리라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으니 억울함의 눈물을 뿌리며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겠습니까?(cf 창 40:14-15) 그리고 마침내 모든 형제들을 다시 만나 하나님의 섭리를 고백하는 오늘 본문의 현장에서도 요셉은 또다시 엄청난 양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1a절)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2절)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14절) 

요셉은 그의 형제들, 특별히 친동생 베냐민을 20여 년 만에 만났습니다. 그러니 그의 눈에는 형제 상봉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아버지가 여전히 살아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그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해 주셨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형제들을 만나는 이 자리는 그 옛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셨던 꿈이 떠오르게 하였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인도하여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종으로 팔려 애굽에 내려온 그날부터 자신이 겼었던 모든 고난과 역경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으니, 그 모든 아픔을 충분히 보상하여주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감격의 눈물을 요셉은 하염없이 흘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한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에 지난 20여 년간 요셉은 그만 울보가 되었고, 형제들을 다시 만나는 이 자리는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니 모든 슬픔을 이겨낼 수 있다고요? 아니요.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만 하나님의 선한 뜻을 찾아가는 그 기나긴 과정은 성도들이 흘린 눈물로 가득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이니 괴로운 일을 당하여도 슬퍼하지 말라고요? 아니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고백하였던 요셉도 그의 인생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를 이토록 힘있게 선포하는 로마서 8장도 눈물과 탄식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로마서 8장 22절입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로마서 8장 23a절입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섭리를 믿습니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모든 피조물이 다 함께 탄식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 속에서 가족을 대면하지도 못한 채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이웃들이 탄식합니다.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오랜 장마와 홍수 속에서 집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은 수많은 이재민들이 지금도 탄식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집값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래로 불안해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탄식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믿지만 나와 우리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이 땅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탄식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피조물의 탄식과 하나님 백성의 울부짖음을 듣고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도 지금도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로마서 8장 26b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피조물의 탄식, 성도들의 탄식, 나아가 그 모습을 바라보시는 성령 하나님의 탄식을 기억한다면 이 땅의 그 누가 자신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에 슬픔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한단 말입니까? 그리하여 영국의 신약학자 톰 라이트는 올해 초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였을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히 믿지만, 아니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히 믿기에 세상의 탄식소리를 들으며 함께 눈물을 흘리며 탄식으로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톰 라이트, <하나님과 팬데믹> 서울: 비아토르, 2020.)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다고 여러분의 눈물을 아끼지는 마십시오. 형제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멋지게 고백하였던 요셉도 그리움의 눈물, 아픔의 눈물, 감격의 눈물, 감사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으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로 기도하시고 이웃을 향하여 진심 어린 눈물을 흘리십시오. 우리가 흘린 눈물이 한 줄기 강물을 이룰 때, 그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섭리와 사명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에 20여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형제들을 다시 만나는 자리에서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으니, 요셉은 자신이 발견한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남겨진 사명을 다하기로 결심합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요셉은 20여 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야 하나님의 뜻을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7년의 대흉년 속에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었고, 이를 위해 애굽에 끌려와 큰 고난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구해야 하는 사람들 중에는 형제들, 곧 자신을 미워하여 폭력을 가하고 급기야 애굽으로 내려가는 상인들에게 자신을 팔아버린 형들과 그들의 가족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야 아브라함부터 시작되었던 하나님의 언약이 세대를 이어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요셉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로 결심합니다. 요셉이 그의 형제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십시오.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11절) 

요셉은 어떻게 자신을 미워하여 폭력을 가하고 급기야 은 20을 받고 자신을 종으로 팔아버린 형들과 그들의 가족을 부양할 책임을 떠안을 수 있었을까요? 요셉이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라고요? 네, 물론 옳은 대답입니다. 그러나 단지 머리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고 형제들과 그 가족을 온 마음을 다하여 부양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요셉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형들에 대한 상처와 아픔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이는 불가능한 사명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요셉은 어떻게 이 사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할 수 있었을까요? 지난 20여 년의 세월 동안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요셉이 흘렸던 그 수없이 많은 눈물이 그 대답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며 형들을 향한 분노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눈물이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닦아주었겠지요.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며 아버지와 동생을 향한 그리움의 눈물도 참 많이 흘렸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눈물이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닦아주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며 억울함의 눈물, 원통함의 눈물, 간절함의 눈물, 마침내 형제들을 만나며 감격의 눈물과 감사의 눈물을 수십년간 펑펑 흘렸습니다. 그렇게 요셉의 눈물은 큰 강줄기를 이루었고 어느덧 그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형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감정을 다 씻을 씻어 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또 다시 발견합니다. 지난 20여 년의 세월, 요셉의 가슴에는 눈물의 강이 마를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의 강이 있었기에 요셉의 가슴에 새겨진 아픔과 상처를 씻어낼 수 있었으니 그의 가슴에 한없이 흐르는 눈물의 강줄기는 요셉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맡기실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십니까? 지금도 하나님께서 여러분 삶의 주인이 되어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찾기까지 우리에게는 한없는 눈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하여 통곡의 눈물, 탄식의 눈물, 감사의 눈물, 감격의 눈물, 그리고 그 무엇보다 기도의 눈물을 하나님 앞에 쏟으십시오. 마침내 여러분의 눈물이 하나의 강줄기를 이루었을 때 그 끝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여러분에게 나타날 것이요, 여러분이 흘린 눈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 각자에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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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