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20. 10. 1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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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예레미야 46장부터 시작된 이방민족에 대한 예언의 일부입니다. 46장 1절은 "이방 나라들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시작합니다. 이에 애굽, 블레셋, 모압, 암몬 그리고 에돔에 이르기까지 유대 민족의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주고받았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본문 예레미야 49장은 유대 민족과의 접촉이 비교적 적은 다메섹, 게달, 하솔 그리고 엘람에 대한 예언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예레미야 46장부터 이어지는 이방 민족에 대한 예언과 큰 흐름이 동일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해 유대 민족과 그 주변 나라들을 모두 심판하고 멸망하신다는 예언입니다.

 

 

역사의 큰 물줄기 

 

태초부터 그리고 영원토록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꾸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가 바로 그와 같은 때였습니다. 과거에 애굽이라는 거대한 제국도 있었습니다. 과거에 앗수르라는 거대한 침략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역사의 큰 물줄기를 새롭게 조성하시면서 바벨론이라는 신흥 강대국을 통해 가나안 땅을 포함한 모든 오리엔트 지역을 점령하게 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느냐고요? 무엇을 위해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셨느냐고요? 무엇이 다른 나라가 아닌 바벨론을 선택하게 하셨느냐고요? 인간이 이와 같은 질문을 제 아무리 하나님께 던진다 할지라도 인간은 그 답변을 하나님께 받아낼 수 없습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꾸기로 정하시면, 인간의 생각이나 의도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정하신대로 역사는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 전 오리엔트 지역을 점령하도록 정하셨습니다. 그러니 본문에 등장하는 다메섹, 게달, 하솔, 엘람도 그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본문에는 여러 민족이 왜 멸망해야 하는지, 그들의 구체적인 죄악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종교적으로 우상을 숭배했다거나, 사회적으로 불의를 행했다거나, 개인적으로 음란의 죄를 저질렀다는 등의 이유가 본문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물론, 본문에 등장하는 민족이 죄가 없었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였고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많은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죄의 유무보다 그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더욱 중요한 것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역사의 흐름을 그렇게 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 

 

2020년는 문자 그대로 모든 사람이, 그리고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이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코로나 바이러스를 허락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왜 전 세계가 바이러스의 위협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드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이 사태를 허락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와 같은 질문을 하나님께 던지지만 하나님으로부터 그 대답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역사의 큰 물줄기를 이렇게 바꾸어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고,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역사의 큰 물줄기를 역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새로운 소망의 근원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 오리엔트 전체를 점령하도록 정해놓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유대 민족은 물론이요, 그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점령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은 이러한 운명을 여러 가지 표현으로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문 23절에는 재앙의 소식을 듣고 그 마음이 평안이 사라지고 낙심이 찾아오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다메섹에 대한 말씀이라

하맛과 아르밧이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흉한 소문을 듣고 낙담함이니라

바닷가에서 비틀거리며 평안이 없도다 

 

바벨론 군대가 몰려오자 마음만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나라마다 자신들의 강점으로 여기던 것들이 위기의 순간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맙니다. 본문 35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엘람의 힘의 으뜸가는 활을 꺾을 것이요 

 

엘람은 예로부터 활을 잘 쏘았던 민족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엘람의 힘의 으뜸가는 활"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꾸어 위기의 시대가 찾아오자 그들의 활은 엘람이라는 나라를 그 위기로부터 구해내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실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대로 바벨론 군대가 몰려오는데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활을 잘 쏘니 궁수부대를 이용해서 바벨론 군대를 막아보겠노라 달려들어도 소용없습니다. 우리는 창이나 활은 잘 쏘지 못하니 과거에 위세를 떨치던 애굽의 도움을 받아 바벨론 군대를 막아보려 해도 하나님의 섭리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물줄기를 그렇게 바꾸어 놓으셨으니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 민족이든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민족이든 상관없이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그저 역사의 흐름에 순응하기만 해야 할까요? 성경이 가르치는 섭리에 대한 교훈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기력한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는 것일까요? 물론 섭리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계획이나 노력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은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소망을 포기하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소망을 품게 합니다. 본문의 마지막 구절인 39절이 우리에게 그와 같은 힌트를 알려줍니다. 

 

그러나 말일에 이르러 내가 엘람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지금 당장은 엘람이든, 다메섹이든, 게달이든, 하솔이든 모두 포로가 되어야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섬긴다는 유대민족도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엘람을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 민족도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2020년 하나님께서 정하신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는 우리에게 소망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셨으니, 그 모든 아픔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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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