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인문학2020. 11. 2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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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의 위기와 돌파구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은 최고의 위기를 맞이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분노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다. 금송아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자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참다못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선언하신다.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1절)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시내산, 하나님의 임재가 온 백성에게 충만하게 드러났던 언약의 장소를 떠나라는 명령이다. 그런데 그 이후의 말씀은 더욱 절망적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3절) 더 이상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동행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으신다.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야 하는 순간, 하나님의 임재가 더 이상 그들과 함께 하지 않겠다는 선언, 이스라엘은 문자 그대로 최고의 위기를 맞이하였다. 

모세에게 가나안 입성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약속의 땅에 백성을 이끌고 들어가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는다면 그곳은 더 이상 약속의 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앙 공동체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임재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회 현장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지 않는 일은 너무도 비극적이지만 자주 현실로 나타난다. 건물도 있고,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거룩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악이 울리고 종교적인 장식품이 배치되어 있고, 예전은 빈틈없이 진행되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진 곳은 가장 비극적인 목회 현장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모세를 따라 기도해야 한다.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목회 현장으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15절)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내가 친히 가리라"(14절) 


성막(Tabernacle)과 회막(Meeting Tent)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은 후(출 19-24장),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셨다(출 25장 이후). 성막은 회중의 가장 중앙에 위치하며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장소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성막에서 봉사하며 제사를 집례하도록 되어 있다. 출애굽의 후반부는 주로 성막을 만드는 내용으로 모세의 관심사 역시 성막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출애굽기 33장에 등장하는 회막은 성막과 구별된다. 회막은 성막에 있는 종교적 상징물도 전혀 없으며, 제물이나 제사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문자 그대로 '만남을 위한 장막'(Tent for Meeting) 일뿐이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였던 장소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제사를 집례하고 섬기는 성막이 아니라 진영을 멀리 떠나 하나님과 깊이 만나는 회막이었다. 회막의 위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닫지 않는 곳이니(7절) 모세는 더욱 깊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었고,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11절). 그리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는 백성의 큰 죄로 인하여 신앙 공동체에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질 위험 속에서도, 모세는 회막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모세의 간절한 중보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친히 가리라"(14절)는 응답을 받을 수 있었다. 

목회의 공적 공간은 성막에 해당한다. 그러나 성막과 구별되는 개인 경건의 장소인 회막이 반드시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성막에서의 사역이지만 성막에서의 사역을 결정하는 하나님의 임재는 회막에서의 만남에 달려있다. 회막 목회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기에 시내산에서 내려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결국 시내산에서 내려와야 한다. 예수님과 세명의 제자들도 변화산에서 결국 내려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구원의 체험, 사명의 체험 곧 시내산에서의 언약이 귀한 것이지만 언제까지나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시내산에서 내려온 후에도 모세가 회막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였던 것처럼, 목회자는 성막이 아닌 자신만의 회막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해야 한다는 점이다. 


회막 목회를 꿈꾸며..... 

회막은 모세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모세 자신이 회막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뿐 아니라, 그의 모범을 따라 하나님을 앙모하는 백성들도 회막을 찾았다(7절). 이 점에서 회막은 목회자 개인의 영성훈련을 넘어, 하나의 목회적 특성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회막 목회는 목회자 자신이 회막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나아가 성도들도 각자의 회막에서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안내한다. 

회막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약속 장소다. 그러나 '만남을 위한 장막'(Tent for Meeting)이라는 이름의 뜻을 성도들을 만나는 장소로도 해석하고 싶은 것은 나뿐일까? 목회자로서 성막이라는 공적 영역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성도들을 만나 그들의 영적 필요를 채우는 일도 매우 중요하고 보람이 있다. 아울러 나 자신만의 회막, 곧 만남을 위한 나만의 장막에서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설수 있다면, 또한 성도들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다면 어떻겠는가? 이처럼 회막 목회는 목회자가 누릴 수 있는 값진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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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