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2021. 2. 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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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이면서 동시에 ‘러너’다. 이 두 가지 타이틀은 그가 자신의 묘비명에 새기고 싶은 정체성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젊은 시절 카페를 운영했다. 그러다 문득 소설이 쓰고 싶었다. 그의 첫 번째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두 번째 소설 <1973년의 핀볼>을 모두 카페를 운영하며 짬을 내어 썼다. 그때까지는 전업 작가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는 러너도 아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업 작가가 되게 위해 카페 경영을 접으며 달리기를 시작했고, 작가로서 그의 인생에는 언제나 달리기가 함께 있었다. ‘작가’이면서 ‘러너’로 살아온 것이다. 

 

글쓰기와 달리기. 이 둘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인생을 통해 글쓰기와 달리기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서술한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p. 128) 

 

달리기는 인생의 메타포이기도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는 글쓰기의 메타포였다. 달리기, 그것도 장거리 달리기는 인생의 메타포로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그러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보다 특징적인 것은 달리기를 글쓰기의 메타포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나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며 배워왔다”라고 말한다.(제4장) 어떻게 달리기가 글쓰기의 메타포로 작용할 수 있을까? 

 

소설을 쓰는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 기본적인 원칙을 말한다면, 창작자에게 있어 그 동기는 자신 안에 조용히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외부에서 어떤 형태나 기준을 찾아야 할 일은 아니다. (p. 26) 

 

선두 주자가 될 필요는 없다.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쓰고 싶은 대로 쓰고 그것으로 보통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나로서는 부족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p. 67) 

 

“러너가 되시지 않겠습니까?”라는 부탁으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던 것은 아닌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소설가가 되어주세요”라는 부탁을 받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p. 228)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을 쓰는 일도, 달리기를 하는 것도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좋아서 글을 쓰고, 내가 좋아서 달리는 것이요 자신의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렇다고 글쓰기와 달리기를 낭만적인 것으로 서술하지도 않는다. 글쓰기와 달리기의 고단함,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뛴 이후 찾아온 마라톤에 대한 권태기 등을 진솔하게 서술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이른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보다 ‘러너스 블루’(runner’s blue)라는 표현을 더 많이 마주치게 된다. 그래도 달리기를 향한 그의 애정은 책 전체를 통해 충분히 전달되었다. 진솔하기에 더욱 진심이 느껴진다. 

 

강물을 생각하려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p. 45) 

 

나는 매주 설교하는 목사로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글쓰기의 메타포로 사용하는 대목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나는 소설을 쓰지 않지만, 매주 설교 원고를 쓰고 다듬고 회중을 향해 선포한다. 어느 목사가 다른 사람의 권유나 요청으로 설교자가 되었겠는가? 내적으로 소명을 확신하고 설교자가 되었고, 설교문을 쓰고 다듬으며 그것을 선포하는 과정은 외부의 시선보다 신앙 양심에 이끌리는 작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글쓰기와 달리기의 고단함을 이야기하듯, 매주 설교를 준비하여 선포한다는 것 역시 여간 고된 노동이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는 결론을 향해 설교문은 나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때 설교는 비로소 결승선을 통과한다. 그렇게 매주 설교문을 완성한다. 고단하지만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p.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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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