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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09 감사가 넘치는 장례 예배
  2. 2015.12.07 이제는 짧은 글을 쓰자
기독교 인문학2015. 12. 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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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의 세월을 사셨던 고인의 살아생전 나는 고인을 한번 만나 뵈었다.

짧은 만남이었고, 짧은 대화였지만 고인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잊을 없는 만남이었다. 

 

고인은 기독교 신앙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녀들이 아무리 권면을 해도 완고한 마음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어느덧 95세가 되었고, 조그마한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의사는 자녀들에게 어머니와 이별할 시간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오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있겠지만, 

아들과 며느리의 마음에는 말로 다할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아직 죽음 이후를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마음만 애태우고 있는데, 

병실을 돌아다니며 전도지를 나눠주는 사람이 있었다. 

며느리는 조급한 마음에 전도자를 붙잡고 시어머니의 사정을 이야기했고, 

전도자는 교회의 전도대를 지도하는 나에게 모든 소식을 알려왔다. 

 

병실에 들어가 그분을 마주대하였을 , 

95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만큼

정확한 눈빛으로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분명한 언어로 인사를 건네셨다. 

"목사님, 주셔서 감사합니다." 

치아가 모두 빠져 발음이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분이 구사하는 언어와 단어만큼은 놀랍도록 명확하였다. 

그분의 의식이 또렷하다는 것을 확인한 ,

나는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을 차분히 설명하였다. 

그리고 너무나도 중요한 질문: 

"어머니는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분은 ""라고 분명히 대답하셨고, 우리는 함께 영접기도를 드렸다. 

 

번의 만남이 있은 열흘째 되는 , 

며느리로부터 걸려온 한통의 전화가 고인의 부고 소식을 알려주었다. 

위로예배를 인도하고 유족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고인의 큰아들이 나의 손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께서 저희 어머니를 만나신 이후, 어머니께서 그렇게 기뻐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몇번이고 저에게 '목사님께서 오셨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인을 마지막까지 간호하였던 며느리는

내가 고인을 만났던 순간에 고인의 의식이 가장 또렷하고 분명했노라고 증언하면서, 

그날 이후 고인께서 "예수님, 사랑합니다"라고 수없이 고백하였다고 전해주었다. 

 

장례예배에 함께 참여하였던 어느 권사님은 

이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장례식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었노라고 기쁨을 표현해주었다. 

95세까지 장수하였고,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이 또렷할 만큼 건강하셨으며,

삶을 마감하기 직전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았으니

참으로 감사한 장례예배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다가

마지막 순간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는 것보다,

비록 장수와 건강의 복은 없을지라도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누릴 있는 가장 기쁨인 것을 

전도자들은 전도의 현장에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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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기독교 인문학2015. 12. 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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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교회성장학자인 엘머 타운즈(Elmer L. Towns) 교수는 교회성장방법론이 시대를 따라 어떻게 변천하였는지를 설명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950년대 북미지역에서 가장 효과적이었던 교회성장 방법론은 ‘축호전도’였으며, 1990년대에는 ‘구도자중심의 예배’가, 그리고 지금의 2010년대에는 ‘소그룹’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론으로 채택되고 있다. 타운즈 교수는 북미지역의 교회성장 방법이 어떻게 변화되어왔는지를 설명한 후, 향후 100만 명의 성도가 모이는 교회(One Million Church)가 가능하게 될 것인데, 그 방법론은 바로 “인터넷”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 What the Internet Is Doing to Our Brains)이라는 책에서 인터넷이 사람들의 사고 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체계화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에 수많은 웹사이트를 스쳐가며 단편적인 지식을 얻는 데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터넷의 부정적인 측면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으나, 미국 클레어몬트 신학교의 필립 크레이톤(Philip Clayton) 교수는 동일한 현상을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측면으로 평가한다.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크리스천들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순차적(혹은 논리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부분적인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부분적인 이야기, 그러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듣기 원하는데 기존의 기독교 신학은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고도의 훈련을 받은 몇몇 신학자들의 손에 전적으로 위임되어 있기에 평신도 및 넌크리스천을 위한 신학이 부재하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필립 크레이톤 교수의 논리를 따른다면,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의 신앙을 전문적으로 훈련 받은 몇몇 학자들의 전유물로 만들어 버린 기독교 신학의 잘못을 먼저 지적해야 하겠다. 


인터넷 시대(혹은 포스트모던 시대)는 짧은 글을 요구한다. 모든 반론에 대비하는 ‘두꺼운 서술’(thick description)이 아니라, 근거와 자료를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을지라도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얇은 서술’이 필요하다. 한 편의 논문이 아니라, A4 한두 페이지 정도로 블로깅에 적합한 글이다. twitter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정도보다는 긴 글이기에 분명한 주제와 소재가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그렇다고 방대한 자료를 담기에는 너무도 짧은 글이기에 ‘간결성’이 중요하다. 내용이 없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미사여구를 늘어놓을 수도 없는 ‘짧은 글쓰기’, 이것이 인터넷 시대에 기독교의 진리를 전하려는 목회자가 갖추어야 할 하나의 덕목이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의 발달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필립 크레이톤 교수는 최근 미국 기독교의 쇠퇴 원인을 기술 혁명에서 찾기도 한다. 인터넷은 기독교 외에도 수많은 종교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기독교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은 주일 예배에 출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터넷을 검색한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교회는 기술 혁명이 가져다 놓은 대변혁의 현실 속에서, 보조를 맞추기 위해 모바일 앱을 개발하거나 화려한 영상을 제작하는 등의 노력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과연 21세기의 한국 교회는 인터넷이 처음 소개되었던 1990년대 막대한 예산을 들여 홈페이지만 만들어 놓으면 인터넷 선교가 가능할 것이라던 오류를 재현할 것인가?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밖에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바로 소통을 위한 미디어의 발전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미 미디어의 한계는 없다. 기술력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더욱 중요하게 대두될 수 밖에 없는 과제가 ‘내용’(content)의 문제이다. 내가 전하려는 내용을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서술하는 ‘짧은 글쓰기’, 근거와 자료를 길게 늘어놓지 않더라도 진심을 전하는 ‘짧은 글쓰기’, 먼저 나의 마음을 울렸으며,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짧은 글쓰기’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짧은 글이란 단순한 분량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식 없이 담아내는 글쓰기인 것이다. 


그렇기에 미디어가 발전할수록, 그리스도를 향한 충성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내 안에 빈곤하다는 사실로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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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