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2022. 4. 1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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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E. M. 바운즈의 <기도의 능력>을 간략히 소개하고, 우리 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유익한 적용점을 제시하는 데 있습니다. 이 글에서 인용문은 생명의말씀사에서 출판한 번역본입니다. 


E. M. 바운즈는 설교에 있어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강조한다. 설교의 준비를 철저히 하고 준비된 설교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설교자는 늘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요소가 있으니 설교 준비의 처음부터 설교를 마친 이후 하나님의 말씀이 회중들의 삶을 이끌어 가시도록 설교자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일이다. "설교자는 자신의 말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전에, 먼저 기도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움직이시게 해야 한다." E. M. 바운즈는 계속해서 설교자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활짝 열려야 설교자가 말씀을 들고 사람들에게 나아가는 길도 열리게 된다고 강조했다. "하나님께 강력한 결과를 가져오는 설교자는 사람을 설득하기 전에 하나님께 간구하는 데에 승리하는 사람이다. 골방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데에 강한 설교자는 강단에서 사람을 대하는 데에도 강하다." 

설교자의 기도는 구체적인 기도 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도의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간절히 그리고 집중적으로 기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기도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지 않는 것은 기도를 그만큼 중요한 사역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반증이 된다. E.M. 바운즈는 '거의 기도하지 않는 것'과 '전혀 기도하지 않는 것'이 모두 문제이지만, 이 가운데 더욱 악한 것은 '거의 기도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기도를 하기는 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들여 기도하지 않으면 그 안에는 위선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기도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와 실제 기도 시간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기도를 소홀히 여기는 것은 기도에 별 시간을 들이지 않는 것으로 증명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에게 기도는 필수적 요소다. 나아가 E.M. 바운즈는 설교자에게는 설교의 사명과 함께 기도의 사명이 주어 졌다고 선언한다. "기도를 자신의 주된 일로 생각하고,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기도에 시간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천국의 열쇠를 맡기신다." E.M. 바운즈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설교자는 설교할 사명과 똑같이 또한 기도할 사명을 부여받았다." 우리 시대의 설교가 점점 그 능력을 잃어가는 근본 원인은 설교 자료나 설교 방법론의 부족이 아니라 기도의 빈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설교자들의 기도가 빈곤한 현상은 곧 그들의 기도 시간이 현격히 줄어든 현상에서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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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서평2022. 4. 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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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E. M. 바운즈의 <기도의 능력>을 간략히 소개하고, 우리 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유익한 적용점을 제시하는 데 있습니다. 이 글에서 인용문은 생명의말씀사에서 출판한 번역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약 5:16) 

B.M. 바운즈는 데이비디 브레이너드라는 위대한 선교사의 기도를 소개하며 이번 장을 시작한다. "때대로 우리는 브레이너드가 아메리카 숲속에서, 죽어가는 이방인들을 위해서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쏟아내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들이 구원받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그를 기쁘게 하지 못했다. 모든 개인의 뿌리에는 기도 - 은밀하고 뜨겁고 믿음이 실린 기도 - 가 있다."(윌리엄 캐리의 형제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구원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드렸던 한 선교사의 기도는 하나님을 위한 사역에 중보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 피해야 하는 두 가지 극단적 경향이 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사람들과의 접촉을 단절하는 것이다. 사막의 수도사나 고대의 은둔자들이 그들이다.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갈망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정작 그들의 깊은 영성은 다른 사람의 삶에 유익을 끼치지 못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교제는 그로 인한 무한한 유익을 사람들에게 나눌 때에 비로소 유용하게 된다."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 피해야 하는 또 하나의 극단적 경향은 철저히 사람들만 의식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만의 일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사람들과의 접촉을 단절하는 경향도 피하고, 사람들만 의식하는 경향도 피할 수 있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 무엇인가? 그것은 중보 기도다. E.M. 바운즈는 중보기도의 위대함을 이렇게 역설한다. "하나님을 위해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고하는 일은 훨씬 더 위대하다.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고하는 방법을 잘 배우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데 성공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야고보는 의인의 간구가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말씀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기도는 문맥상 중보기도처럼 보인다. 서로의 죄를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하라는 권면이 그 앞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보기도를 드리는 의인들을 향해 우리는 믿음으로 선언할 수 있다. "의인의 중보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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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서평2022. 3. 3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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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E. M. 바운즈의 <기도의 능력>을 간략히 소개하고, 우리 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유익한 적용점을 제시하는 데 있습니다. 이 글에서 인용문은 생명의말씀사에서 출판한 번역본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사야 6장 1-3절) 

E. M. 바운즈는 기독교의 '정통'(orthodox)에 대해 이야기하며 제3장을 시작한다. "우리는 정통을 사랑한다. 그것은 좋다. 정통이 최고다. 정통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분명하고 정연한 가르침이요, 진리로 거짓과 싸워 이김으로 차지한 상패요, 정직을 무너뜨리는 물결과 불합리한 미신과 불신을 막기 위해 믿음이 쌓은 둑이다." 정통은 기독교의 진리를 지키고 수호하는 든든한 울타리가 된다. 이단의 가르침이 만연하고 세속화의 거센 물결이 교회를 위협하는 오늘날 기독교 정통은 변하지 않는 진리를 지키며 수호하는 초석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정통은 커다란 위험성도 안고 있다. E.M. 바운즈는 이렇게 썼다. "수정같이 단단하고 투명하며, 모든 것을 점검하고 타협 없이 싸우는 정통이라 할지라도 문자에 불과할 수 있다." 정통은 신앙생활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해주지만, 그것만으로는 신앙생활의 깊은 차원을 체험할 수 없다. 

정통이 문자에 머무르면 그 안에 생명이 없는 것처럼, 기도 생활 역시 형식적인 기도에 머무르면 그 안에는 생명이 없다. E.M.바운즈는 죽은 기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죽은 기도일수록 길다. 짧은 기도, 살아있는 기도, 진심이 담김 기도, 성령으로 하는 기도 - 직설적이고 구체적이며 뜨겁고 단순하며 기름부음이 있는 기도 - 가 요구된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였다. 이러한 체험은 지금까지 그가 알고 배웠던  정통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높은 차원의 경험이었다. 성도들이 추구해야 하는 기도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기도요, 문자를 넘어 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다. 바로 그때 E. M. 바운즈가 노래하는 참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인간의 가장 고상한 행위요, 가장 숭고한 노력이요, 가장 신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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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서평2022. 3. 2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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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E. M. 바운즈의 <기도의 능력>을 간략히 소개하고, 우리 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유익한 적용점을 제시하는 데 있습니다. 이 글에서 인용문은 생명의말씀사에서 출판한 번역본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고후 3:5-6)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양한 역할과 사명이 주어져 있다. 교회에서 교회학교, 구역장, 찬양대원, 중보기도팀 등으로 봉사하기도 한다. 가정에서는 부모 혹은 자녀의 자리에서 감당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 학생은 학교에서 직장인은 직장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새 언약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사명을 감당하는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무슨 일이든지 우리 스스로 하는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역사를 의지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고백의 참된 의미다.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사역은 헛되다. 문제는 성령의 역사를 가장할 뿐 참된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경우가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바울은 그것을 "율법 조문"이라고 표현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 복음을 그저 문자로 기록해둔 조문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 논리정연하고, 아름다운 미사여구로 가득하여도, 심지어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더라도 그 안에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으면 복음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는다. E. M. 바운즈는 이러한 사실을 실감 나는 예화로 설명한다. "진주를 밭에 뿌린 것과 같이 생명이 없다." 진주는 아름답고 값진 것이지만 그 안에 생명이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만들어낸 가공품은 아름답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수 있지만 거기에서는 생명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면 율법 조문이 아닌 영으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을 간절히 사모하는 기도가 그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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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서평2022. 3. 1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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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E. M. 바운즈의 <기도의 능력>을 간략히 소개하고, 우리 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유익한 적용점을 제시하는 데 있습니다. 이 글에서 인용문은 생명의말씀사에서 출판한 번역본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역대하 16장 9a절 )

E. M. 바운즈는 교회에 대한 현실 진단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우리는 효과적인 복음 전도와 교회 성장 그리고 교인수 증대를 위해 새로운 방법, 새로운 계획, 새로운 조직을 궁리하는 데 끊임없이 신경을 쓰고 있다." 바운즈가 이 문장을 기록한 지 1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교회의 주된 관심은 변하지 않고 있다. 방법, 계획, 조직에 여전히 온 신경을 기울이다 보니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방법을 놓치고 있는 어리석음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사람이다. 교회와 성도들이 방법과 계획과 조직을 추구하는 동안 하나님은 복음 사역에 쓰임 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혹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바로 그 사람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더 좋은 방법과 계획과 조직을 추구하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아무런 결실도 맺을 수 없다. 

E. M. 바운즈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설교자가 어떠한 사람인지 여러 가지 비유와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그 하나의 비유는 '하나님의 기름이 통과하는 금관(金管)'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흘러보내야 하는 설교자는 금관으로서 스스로를 깨끗하고 흠이 없도록 관리해야 한다. 바운즈는 바울서신에 등장하는 "나의 복음"이라는 표현에 집중한다. 복음은 바울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복음"이라고 말한 것은 사도 바울이 복음의 일꾼이 되어 그의 전 인격이 복음을 전하는 통로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설교자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복음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생명을 주는 능력에 있어서 설교가 사람을 능가할 수 없다. 죽은 사람은 죽은 설교를 한다. 그리고 죽은 설교는 영혼을 죽인다. 모든 것이 다 설교자의 영적 특성에 달려 있다." 

이제 너무도 중요한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복음의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E. M. 바운즈의 대답은 명확하다. 기도해야 한다. 기도만이 우리의 영혼을 변화시키고, 기도만이 우리를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바로 그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모든 준비보다 앞서야 하는 것, 모든 준비보다 최후까지 집중해야 할 것은 기도다. "기도는 사람을 만든다. 기도는 설교자를 만든다. 기도는 목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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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서평2021. 4. 1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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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은 자신의 심리학을 적정 심리학으로 부른다. 적정 기술이란 첨단 기술을 추구하기보다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기술이다. 심리학에서도 ‘적정’ 심리학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이른바 ‘정신과 의사’라는 자격증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지 못하는 현실을 반성한다. 정혜신은 정신의학이라는 첨단 기술의 가장 큰 맹점은 사람을 환자로 규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최첨단의 정신의학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적정 심리학, 이것이 이 책의 주제다. 


마음의 아픔과 치유 

사람의 마음이 아픈 원인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자기 소멸이다. 모든 인간은 '나'로 살고 싶고, ‘나’로서 인정받고 싶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돈을 벌고 성공하기 위해 '나'로 살지 못하고 '너'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것이 비극인데, 곧 자기소멸이다. ‘나’의 핵심은 겉모습이나 나를 묘사하는 다양한 수식어가 아니다. ‘나’의 핵심은 지금 나의 감정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나의 감정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때 자기 소멸에 빠지지 않고 나로서 존재하게 된다. 

마음의 아픔이 '나'의 상실이라고 주장하는 정혜신은 나를 잃어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심리적 CPR'이라고 강조한다. 심장마비를 일으킨 사람에게 인공호흡을 해주듯, 자아 상실로 아파하는 이들에게 자아를 인정하고 그 자아에 무한히 관심을 가져주는 역할이다. 심리적 CPR의 구체적인 방법은 질문과 경청이다. 너무도 흔하게 들리는 질문과 경청이라는 방법이지만, 이 책의 대답이 식상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질문과 경청의 목적이 '나'라는 인격의 핵심에 있기 때문이다. 


공감 VS 감정 노동 

사람의 마음에 힘을 주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방법,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자기 자신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최고의 방법이 '공감'이라고 정혜신은 확신한다. 그가 말하는 공감은 피곤한 감정노동과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바와 같이 공감은 상대방의 이야기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 노동일뿐 진정한 공감이 아니다. 진정한 공감, 곧 도움이 되는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주변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그 사람 자신의 이야기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주변부의 이야기만 무성할 때는 공감이 아닌 감정노동이 된다. 또한 상대의 감정은 언제나 옳고 공감이 필요로 하지만, 감정이 아닌 생각과 행동은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감정이 아닌 생각과 행동을 받아들이는 것을 공감이라고 오해하면, 그것 역시 바른 공감에서 멀어져 감정노동이 된다. 

목회자들은 성도들과의 만남에서 공감이 아닌 감정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의 두서없는 말을 '친절히' 들으며 자신은 심리적 에너지를 소진한다. 심지어 그의 마음을 공감하지는 못한 채 그의 생각과 행동을 모두 수용해야 한다는 강박에 스트레스만 쌓인다. 

“누군가의 속마음이나 정서적 결핍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일은 이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도 쉽지 않다. 감정 노동처럼 그저 견디는 경우가 많다.”(228쪽) 

목회자라는 직업군이 정확히 이러한 경우다. 


공감의 구체적인 방법 

공감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마음이 먼저 건강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나의 마음은 지금 어떤가?'를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나의 감정은 언제나 옳다는 스스로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가족이나 주변의 친구로부터 공감을 받을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 특별히 목회자라면, 감정 노동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건강한 마음으로 성도들을 공감할 수 있다. 

정혜신이 주장하는 공감 혹은 심리적 CPR에 동의한다면, 이제 그가 제시하는 핵심 도구를 활용해보자. 

핵심 질문 -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의 아픈 상처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그 사람의 상처를 기억나게 하여 더 아프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은 상처를 내어놓았을 때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지 않는 거절이다. 상처 난 자신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태도는 오히려 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한다. 그러므로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라. 그리고 그의 감정에 공감하라. 

공감의 언어 - "당신이 옳다." (당신이 그런 마음이 생겼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https://m.blog.naver.com/practicaltheologian/223222250639

 

도서 리뷰 (Book Review) 목록

제가 작성한 도서 리뷰가 <목회 아카이브>와 네이버 블로그에 산제되어 있습니다. 주로 단행본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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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서평2021. 4. 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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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다. 그러나 많은 부부들이 충분한 친밀감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 몸은 가장 가까이 붙어있지만 마음은 서로 멀어진 현실, 이것이 불행한 결혼생활의 핵심 이유다. 친밀감의 두 가지 기초는 안정감(security)과 중요감(significance)이다.

 

친밀감의 두 가지 기초

l   안정감 – 내가 진정 사랑받고 있으며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

l   중요감 – 내가 다른 사람에게 계속 중요하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느낌 (p. 28)

 

안정감과 중요감은 모든 인간이 갈구하는 것이지만, 특히 여성(아내)는 안정감을, 남성(남편)은 중요감을 더욱 바란다. 그러면 남편과 아내 중에서 누가 먼저 안정감과 중요감을 배우자에게 제공해야 하는가? 여기에 신앙적 차원의 대답이 우리에게 요구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안정감과 중요감을 누리는 사람이 배우자에게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서야 한다.

 

 

영적 연합, 정신적 연합 그리고 육체적 연합

 

래리 크랩은 영적 연합과 정신적 연합을 구분하여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영적 연합이란 부부 각자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안정감과 중요감을 느끼는 것을 말하고, 정신적 연합은 부부가 서로 친밀함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72) ‘영적 연합’과 ‘정신적 연합’이라는 표현은 우리 시대 부부들에게 생생한 표현법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부부의 친밀한 연합을 위해 부부 각자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형성하고 그 위에 부부 사이의 ‘수평적’ 관계를 맺어야 함은 중요한 통찰이다.

 

부부는 영적 연합과 정신적 연합이라는 기초 위에 육체적 연합을 통해 보다 깊은 친밀감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많은 부부가 육체적 연합을 영적이고 정신적인 연합과 떼어놓고 생각한다. 이를 교정하기 위해 래리 크랩은 부부의 육체적 연합을 방해하는 3가지 요소에 대한 연구를 인용한다(p. 145).

(1) 개인의 문제 (2) 관계의 문제 (3) 기술의 문제

 

이 가운데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기술’의 문제다. 관심을 가지고 기술을 배우면 된다. 그러면 부부의 육체적 연합을 방해하는 ‘개인’의 문제와 ‘관계’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래리 크랩은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도구가 본인이 강조해온 영적 연합이라고, 관계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정신적 연합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책 전체가 하나의 논리로 통일성을 이루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결혼 건축가>의 장점이다. 물론, 부부 생활의 현실에서는 이 책이 소개하는 이론과 차이가 나는 지점이 발견될 수 있지만, 적어도 독자들은 부부관계를 친밀하게 세워갈 수 있는 체계적인 성경적 로드맵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결혼의 3가지 기초 

 

래리 크랩은 성경적인 결혼을 위한 3가지 기초를 말한다.

1.    은혜.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이 찾아와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바를 믿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라

2.    헌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배우자를 섬기기로 선택하라. 이것은 단순한 순종이 아니라 신앙으로 말미암은 섬김에 대한 열망이다.

3.    수용. 배우자의 유쾌하지 않은 점까지 받아들이라. 감정의 작용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용서’의 원리에 따라 배우자의 행동을 이해하고 수용하라.

 

이렇게 정리를 하면, 래리 크랩이 말하는 은혜, 헌신, 수용은 성도들이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에 대한 기독교적 가르침이다. 부부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에 성도들이 가장 먼저 사랑과 섬김을 실천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결혼 생활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것은

신앙의 여정과 궤를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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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서평2021. 2. 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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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이면서 동시에 ‘러너’다. 이 두 가지 타이틀은 그가 자신의 묘비명에 새기고 싶은 정체성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젊은 시절 카페를 운영했다. 그러다 문득 소설이 쓰고 싶었다. 그의 첫 번째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두 번째 소설 <1973년의 핀볼>을 모두 카페를 운영하며 짬을 내어 썼다. 그때까지는 전업 작가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는 러너도 아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업 작가가 되게 위해 카페 경영을 접으며 달리기를 시작했고, 작가로서 그의 인생에는 언제나 달리기가 함께 있었다. ‘작가’이면서 ‘러너’로 살아온 것이다. 

 

글쓰기와 달리기. 이 둘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인생을 통해 글쓰기와 달리기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서술한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p. 128) 

 

달리기는 인생의 메타포이기도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는 글쓰기의 메타포였다. 달리기, 그것도 장거리 달리기는 인생의 메타포로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그러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보다 특징적인 것은 달리기를 글쓰기의 메타포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나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며 배워왔다”라고 말한다.(제4장) 어떻게 달리기가 글쓰기의 메타포로 작용할 수 있을까? 

 

소설을 쓰는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 기본적인 원칙을 말한다면, 창작자에게 있어 그 동기는 자신 안에 조용히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외부에서 어떤 형태나 기준을 찾아야 할 일은 아니다. (p. 26) 

 

선두 주자가 될 필요는 없다.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쓰고 싶은 대로 쓰고 그것으로 보통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나로서는 부족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p. 67) 

 

“러너가 되시지 않겠습니까?”라는 부탁으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던 것은 아닌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소설가가 되어주세요”라는 부탁을 받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p. 228)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을 쓰는 일도, 달리기를 하는 것도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좋아서 글을 쓰고, 내가 좋아서 달리는 것이요 자신의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렇다고 글쓰기와 달리기를 낭만적인 것으로 서술하지도 않는다. 글쓰기와 달리기의 고단함,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뛴 이후 찾아온 마라톤에 대한 권태기 등을 진솔하게 서술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이른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보다 ‘러너스 블루’(runner’s blue)라는 표현을 더 많이 마주치게 된다. 그래도 달리기를 향한 그의 애정은 책 전체를 통해 충분히 전달되었다. 진솔하기에 더욱 진심이 느껴진다. 

 

강물을 생각하려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p. 45) 

 

나는 매주 설교하는 목사로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글쓰기의 메타포로 사용하는 대목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나는 소설을 쓰지 않지만, 매주 설교 원고를 쓰고 다듬고 회중을 향해 선포한다. 어느 목사가 다른 사람의 권유나 요청으로 설교자가 되었겠는가? 내적으로 소명을 확신하고 설교자가 되었고, 설교문을 쓰고 다듬으며 그것을 선포하는 과정은 외부의 시선보다 신앙 양심에 이끌리는 작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글쓰기와 달리기의 고단함을 이야기하듯, 매주 설교를 준비하여 선포한다는 것 역시 여간 고된 노동이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는 결론을 향해 설교문은 나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때 설교는 비로소 결승선을 통과한다. 그렇게 매주 설교문을 완성한다. 고단하지만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p.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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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맞을 것인가 피할 것인가 (우중런)

비 예보만 있어도 마음이 먼저 불편해진다. 축축한 공기, 다리를 휘감은 바지, 젖은 양말 등. 우리의 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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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서평2021. 1. 2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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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설교집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설교집이 아니다. 우리가 한국교회 강단에서 흔히 듣는 설교와 그 형식과 내용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편집부는 서론에서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한다. 

“이 설교집은 종교적 언어에 알레르기가 있었던 사람이 쓴 책입니다.” 

글의 형식과 내용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관성을 지닌다. 형식이 다르다는 것은 새로운 내용을 담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저자나 화자가 적극적으로 다른 형식의 언어를 선택했다면, 그는 무엇인가 새로운 내용을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유진 피터슨이 종교적 언어를 애써 회피하려 했다면 그것은 단지 형식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고 새롭게 담아내려는 내용이 있었을 터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유진 피터슨이 새롭게 표현하고 싶었던 내용 가운데 하나가 ‘오해’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해’라는 주제는 이 책의 후반부에 등장한다. (제26~29일) 

“요한은 예수께서 행하시고 말한 것을 듣는 자나 보는 자가 심각하게 오해한 몇 가지 사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바로 그 오해를 어떻게 사용하셨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요한은 믿음을 발전시키고 싶었습니다.” (제26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걸어가시는 그 걸음을 바라보며 인간들이 범했던 오해를 유진 피터슨은 3가지로 지적한다. 첫째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마리아의 오해다. 그녀는 예수님의 죽음이 항구적인 죽음이라고 오해했다. 둘째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오해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움켜잡고 있는 그것을 버려야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몰라 예수님을 오해했다. 셋째는 예수님께 종려 나뭇가지를 흔들며 찬양했던 무리들의 오해다. 그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오해했다. 그리고 유진 피터슨은 인간의 오해를 예수님이 그대로 수용하여 더욱 깊은 믿음의 성숙으로 이끄셨다고 요한복음의 의미를 분석한다. 

“예수님은 그 헌신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것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서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 복음은 그 모든 헌신을 흡수하고 받아들여 부활이라는 이해로 우리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제 27일) 

“예수님은 그 오해를 받아들이셨습니다. 자신에게 하려는 일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 그 오해를, 당신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순종과 생명을 얻는 이해로 바꾸셨습니다.” (제 28일) 

“이번에도 예수님은 그들의 오해에 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환호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행진을 따랐습니다. …. 그리고 그들의 필요와 욕망과 소원을 궁극적으로 채워 줄 부활을 통해서 그들에게 그 열광과 기대를 다시 돌려주셨습니다.” (제29일) 

유진 피터슨의 성경해석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해석에 대한 논의에 앞서, 설교 언어의 변화가 새로운 주제를 포용하는 방식에 먼저 주의를 기울여보자. 많은 강단에서 행해지는 웅변조의 설교, 곧 선포와 책망의 설교 언어는 ‘오해’라는 주제를 너그럽게 포용하기 어렵다. 선포와 책망의 어조에서 ‘오해’란 속히 교정되어야 할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진 피터슨은 종교적 언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새로운 언어를 추구하였기에, 오해라는 개념을 너그럽게 용납하며 그것의 유익을 설교할 수 있었다. 

사복음서 설교
국내도서
저자 :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 / 양혜원역
출판 : 복있는사람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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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2021. 1. 1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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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조나단 포클루다(JP, Jonathan Pokluda)는 청년사역으로 유명하다. 그는 미국의 대형교회 가운데 하나인 워터마크회중교회(Watermark Community Church)의 청년사역기관인 “포치”(Porch)를 이끌었다. 그가 포치에서 사역을 시작하였을 때 매주 참여 인원이 약 150명이었는데, 그가 사역을 내려놓을 때는 약 7,000명이 매주 참여했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청년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원리를 소개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초점을 맞추는 미래세대(Future Church)를 나이로 구분하면 19~35세에 해당한다. 이들은 2000년 이전에 태어났다고 하여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millenial generation)로 불린다. 이 책을 리뷰하는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청년’ 혹은 ‘밀레니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청년 목회의 키워드 - ‘진정성’ 그리고 ‘투명성’

밀레니얼세대는 ‘진정성’(authenticity)에 열광한다. 반대로 내가 아닌 어떠한 모습으로 가장하는 ‘가식’을 혐오한다. 그러므로 청년을 교회로 이끌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는 가식이야말로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혹은 교회에 한 번도 출석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p. 17-18) 저자가 지적하듯 교회는 진정성보다는 가식과 외식이 가득하다. 최소한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그러니 가식이라는 장애물을 거두기 전에는 교회가 어떠한 행사를 진행하고 그것을 홍보하더라도 청년들이 교회로 발걸음 하지 않는 것이다. 

조나단 포클루다(JP)가 진정성을 강조하면서 함께 다루는 개념이 ‘투명성’(transparency)이다. 자신도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교회 안에서만 그런 척하는 위선은 교회의 투명성을 해한다. 저자는 교회의 투명성이 그 무엇보다 교회 지도자의 투명성에 좌우된다고 강조한다. 가식을 거두고 교회 지도자들도 여전히 개인적 죄악과 투쟁하고 있음을 청년들에게 보여줄 용기가 있는가? ‘진정성’과 ‘투명성’은 밀레니얼 세대를 교회로 이끄는 핵심 키워드이지만, 한국 교회의 현실은 이 두 가지가 오히려 그들을 교회에서 떠나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 


청년들에게 성경을 - 그 어려움과 해법 

저자는 밀레니얼세대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어려운 두 가지 이유를 지적한다. 곧, 성경에 대한 ‘무지’(biblical illiteracy)와 ‘회의론’(skepticism)이다. 

먼저, ‘성경에 대한 무지’다. 밀레니얼 세대는 ‘교회에 출석한 적이 없는’(unchurched)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만큼 교회 생활이나 성경의 내용에 익숙하지 않다. 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눈높이를 더욱 낮춰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조나단 포클루다(JP)는 밀 레니엘 세대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기초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는 ‘보충학습’(remedial education)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성경에 대한 회의론’이다. 그들은 성경이 우리의 삶에 유익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회의적이다. 성경에 대한 회의론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성경이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 의미가 있음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성경이 그들의 개인적 순결, 그들의 친구관계, 그들의 직업, 그들의 돈, 그들의 인생 목표 … 곧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보여주라.”(p. 35) 조나단 포클루다(JP)는 이러한 성경의 가치를 변증하는 방법으로 과학자나 사회학자들의 최근 연구가 성경의 가르침을 지지하는 몇 가지 예를 제시한다. 나는 성경의 가치를 변증하는 저자의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과학자나 사회학자들의 주장은 다양하고 그들의 연구 결과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기 마련이므로 그것이 성경을 변증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목회자나 리더가 자신의 삶을 근거로 성경의 가치관을 따라가는 참된 행복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것이 더 좋은 대안일 것이다. 그것은 목회자와 교회의 진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법도 되기 때문이다. 


전도폭발의 청년 목회 적용 

이 책은 밀레니엘세대를 위한 목회 가이드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조나단 포클루다(JP)가 전도폭발의 내용을 깊이 학습하였고 그것을 자신의 청년목회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청년들을 처음 만나면 구원의 확신을 점검하는데(p. 29-30)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른바 전도폭발의 ‘진단 질문’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또한, 목양의 현장에 리더를 동행시키라고 권면하는데(p. 140-141) 이 역시 분명히 언급하지 않지만 전도폭발에서 강조하는 ‘현장실습’이다. 현장실습이란 훈련자가 훈련을 받는 사람과 동행하여 복음을 전하는 방식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한다는 원리다. 

미국에서는 전도폭발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임상훈련을 시행하지 못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나단 포클루다(JP)는 그 내용을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목회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그 원리는 여전히 큰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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