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선교2020. 7. 2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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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폭발 훈련은 크게 두 가지로 진행된다. 하나는 교실 수업이고, 또 하나는 현장 실습이다. 그런데 교실 수업과 현장 실습 사이에는 방법론적 차이가 존재한다. 여기에서 언급한 방법론적 차이란 ‘수료’와 ‘반복’의 차이다. 목회 프로그램은 방법론적 차이에 따라 ‘수료’하는 프로그램과 ‘반복’하는 프로그램으로 구분할 수 있다. ‘수료’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제자훈련이다. 제자훈련은 소정의 과정을 마치면 수료증이 발급되고, 수료증을 받은 사람은 스텝으로 섬기지 않는다면 더는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반복’하는 프로그램은 아무리 오래 참여하여도 수료증이 발급되지 않으며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은 지속해서 참여하게 된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구역 예배나 큐티 나눔을 꼽을 수 있다. 2000년의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의 주요한 활동은 대부분 반복하는 프로그램이었다(예배, 기도, 묵상, 절기 행사 등). 이와 같은 종교활동은 반복하는 프로그램으로 ‘수료’라는 개념이 없기에 성도들은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신앙의 진보를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최근 북미 기독교와 이에 영향을 받은 한국 기독교에서는 수료하는 프로그램이 유행하고 있다. 

수료하는 프로그램은 ‘단계별’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국제제자훈련원의 제자훈련에서 ‘제자훈련’은 하위 단계이고, ‘사역훈련’은 상위 단계다. 온누리교회의 일대일제자양육 역시 ‘동반자반’이 하위 단계이고, ‘양육자반’이 상위 단계다. 많은 교회가 양육 프로그램을 수료 중심으로 진행하면서 지교회의 양육시스템을 4단계, 혹은 5단계로 구성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수료’하는 프로그램은 단계별 구성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단계별로 구성된 ‘수료 프로그램’에 대해 두 가지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 먼저, 신학적인 비판으로 신앙의 성숙 과정은 양육시스템이 전제하는 것처럼 단선적이지 않다. 성경이 묘사하는 신앙의 여정은 단선적인 발달 단계가 아니라, 순례자의 길이다. 곧, 본향이라는 목표점은 있지만, 그 과정은 무수히 다양하다. 단계별 수료 프로그램에 대한 또 하나의 비판은 교회 현장에서 흔하게 드러나는 문제점으로 수료한 단계에 따라 개인의 신앙 단계를 평가하는 잘못이다. 새가족성경공부에 참여하는 성도의 신앙은 초급단계(beginner)이고, 제자훈련/사역훈련 및 전도훈련을 수료한 성도는 신앙이 고급단계(advanced)에 이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다. 제아무리 많은 양육 프로그램을 수료하더라도 모든 성도는 ‘의인이면서 죄인’인데 자칫 수료한 프로그램의 숫자가 성도 개인의 계급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도폭발은 ‘수료’하는 프로그램인가, ‘반복’하는 프로그램인가? 


전도 폭발은 수료인가 반복인가? 

전도폭발은 언듯 보기에 1단계부터 5단계까지 구성된 ‘수료’하는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1단계를 수료하면 전도자 수료증이, 2단계 이상을 수료하면 훈련자 자격증이 발급된다(CLASSIC EE 기준). 그러나 전도폭발은 교실 수업과 현장 실습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기억해보라. 교실 수업은 단계별 강의가 중심이 되기에 ‘수료’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현장 실습은 다르다. 1단계부터 5단계까지 – 혹은 5단계를 수료한 사람들까지도 – 현장 실습을 주도하는 훈련자와 뒤따라가는 훈련생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모두가 동일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곧, 방문 전도와 노방전도를 통해 매 학기 팀 전도를 9회 이상, 개인 전도를 2회 이상 실시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도폭발의 현장 실습은 훈련 단계와 상관없이 반복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전도폭발의 기본 원리에 따르면, “현장실습이 훈련의 핵심이다.” [각주:1] 만일 지역교회에서 전도폭발 훈련이 실제적으로 현장 실습에 그 핵심을 둔 프로그램이라면 4단계, 혹은 5단계를 수료하더라도 지속적으로 현장 실습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와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반대로 지역교회의 전도폭발 훈련에서 4단계, 혹은 5단계를 수료한 사람이 훈련자나 교사로 참여하지 않는 한 전도폭발에 참여하지 않는 분위기라면, 그것은 전도폭발이 ‘수료’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는 증거요, 곧 현장실습보다는 교실 수업이 중심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전도폭발을 수료하는 프로그램에서 반복하는 프로그램으로 변환시키려면 교실 수업이 아니라 현장 실습이 훈련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국제전도폭발 한국본부에서는 교재를 개정하여 JUST EE 버전을 내어놓은 이유 가운데 하나로, 목회 현장에서 전도폭발 훈련을 지속하다 보면 훈련생 모집에 점차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각주:2] 물론, 전도폭발 훈련의 과정이 어렵고 힘들다는 인식은 지역교회가 훈련생 모집을 모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고 전도폭발 훈련의 강도를 낮추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일까? 결코 아니다. 전도폭발이 수료하는 프로그램이 된다면 지역교회는 날마다 새로운 훈련생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특별히, 두 사람의 훈련생에게 한 사람의 훈련자를 배치하는 전도폭발의 구조에서는, 전도폭발 훈련을 받은 성도들을 지속적으로 훈련자로 세우기 위해 지난 학기보다 두배로 많은 훈련생을 모집해야 한다. [footntoe] 전도폭발은 훈련받은 전도자의 숫자가 제곱의 방식으로 확대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Cf. D. James Kennedy, Evangelism Explosion, 8. 이것은 부흥의 시대에는 크나큰 장점일 수 있지만, 정체기의 시대에는 두배의 훈련생을 모집해야 한다는 크나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footntoe] 한국 교회가 성장기를 지나 정체기 혹은 쇠퇴기에 접어든 지금 매 학기 두 배의 훈련생을 모집해야 한다는 부담은 전도폭발 훈련 자체를 마비시키는 원인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법은 오히려 간단히 찾을 수 있다. 전도폭발 훈련을 수료하는 프로그램이 아닌 지속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것이다. 교실 수업의 단계를 기준으로 훈련자/훈련생을 구성하는 기준을 느슨하게 하고, 그 대신 훈련 단계와 상관없이 현장 실습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와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그러면 교회 현실에 맞춰 적절한 숫자의 훈련생을 모집할 수 있고 그들을 집중적으로 훈련하기 위한 현장 실습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교재의 개편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지역교회에서 전도폭발을 시행하는 목회자들의 역할이다. 전도폭발을 현장실습 중심의 훈련으로 실행하지 못한다면 제 아무리 훌륭한 교재가 출판되더라고 그 훈련은 시간이 갈수록 힘이 들지만 성과는 적은 훈련이 되고 말 것이다. 


현장실습을 강화하는 방법 

전도폭발은 국제본부와 한국본부가 발행하는 교재를 사용하여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진행하지만, 시행하는 교회마다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습니다. 국제전도폭발 한국본부에서는 그들이 가르치는 매뉴얼을 따르라고 강조하지만, 모든 목회프로그램(text)은 지역교회의 상황(context)에 따라 변형되는 것이 당연하고 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므로 지역교회의 전도폭발이 어떠한 특색을 띠고 있는지, 수료하는 프로그램이 되어가는지(교실수업 중심) 혹은 반복하는 프로그램이 되어가는지(현장실습 중심)는 그 교회의 전도폭발이 국제전도폭발 한국본부가 제시하는 매뉴얼과의 차이점을 관찰하면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다. 

필자가 섬기는 지역교회(서울 광진구 소재)에 전도폭발을 도입하고 실행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필자가 시행한 전도폭발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1) 매 학기 전도여행과 (2) 훈련자 그룹이다. 

먼저 전도여행은 현장 실습의 기회를 확장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8주차 훈련과 9주차 훈련 사이에 국내 농어촌교회를 중심으로 전도여행을 떠났다. 8주차 이후를 선택한 것은 1단계 훈련생도 스스로 복음을 제시할 수 있는 훈련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전도팀의 활동과 같이, 전도폭발팀도 전도여행 중 경로잔치를 열기도 하고, 그 지역 교회의 수요예배에 참여하여 특송을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전도여행의 대부분 시간은 ‘현장실습’에 할애하였다. 하루의 일정을 크게 오전 전도와 오후 전도로 나눈다. 그 사이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경로잔치를 하는 것이요, 수요일 오후 전도를 마치고 그 교회에서 예배에 동참하는 것이다. 하루의 전도를 마치면 공개보고회를 갖는데 여기에 그 지역 교회 목사님과 성도님을 초대하여 전도 결과를 함께 나눈다. 그러니 전도여행은 전도폭발팀이 온전히 현장실습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전도폭발팀의 전도여행은 별도의 준비가 많이 필요하지 않다. 학기 중에 전도훈련을 열심히 받는 것이 전도여행의 가장 중요한 준비가 되기 때문이다. 전도여행을 새롭게 기획하는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전도여행은 수료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반복하는 프로그램이기에 매 학기 같은 일정이라도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다르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다양하다. 참석자들은 반복적으로 참여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통계를 내어보니, 매 학기 총복음제시 가운데 약 30%가 전도여행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전도여행은 전도대상자 확보에 큰 도움이 된다.

둘째로 훈련자 그룹이다. 전도폭발을 시작한지 1년이 되어가는 시점, 수료자들이 지속적으로 전도폭발에 참여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이때 도입한 제도가 훈련자 그룹으로, 2단계 이상을 수료한 훈련자들만으로 현장실습을 위한 팀을 만들었다. 전도폭발의 매뉴얼에는 현장실습을 위한 팀은 훈련자 1명과 훈련생 2명인데, 이를 완전히 뒤엎은 조직이다. 이들은 이미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보다 공격적으로 전도 현장을 찾아 나섰다. 병원, 공원, 노인정, 동네 상점 등. 이미 전도 훈련을 충분히 받은 베테랑들인 이들은 전도폭발의 모든 훈련에 함께 참여하며 공개보고회에서 자신들의 전도활동을 보고한다. 이들의 보고가 이제 훈련을 받는 1단계 훈련생들에게 큰 도전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다. 이렇게 하여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기본 훈련을 마치신 분들이 전도폭발 현장실습에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하였다. 

결론적으로, 전도여행과 훈련자 그룹이라는 독특한 구조로 현장 실습에 대단한 강조점을 두었다. 반복하여 강조하거니와, 수료단계와 상관없이 현장 실습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와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그러면 교회 현실(훈련자와 강사)에 맞춰 적절한 숫자의 훈련생을 모집할 수 있고 그들의 훈련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전도폭발 신교재(JUST EE)에 대한 지역교회 목회자의 평가

전도폭발 신교재(JUST EE)의 특징 전도폭발 한국본부는 새로운 교재를 출판하여 2017년 하반기부터 판매하고 있다. 이번에 도입한 교재는 전도폭발 클래식 버전(CLASSIC EE)을 전도폭발 저스트 버전(JU

hanjin0207.tistory.com

 

  1. “현장실습이 훈련의 핵심이다”는 원리에 대해서는 D. James Kennedy, Evangelism Explosion, 7-8를 참고하라. [본문으로]
  2. JUST EE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의 “전도폭발 신교재(JUST EE)에 대한 지역교회 목회자의 평가”를 참고하라. 아래에 링크가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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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전도&선교2020. 7. 2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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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섬기는 교회에서 약 2년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쳐 전도폭발 훈련을 시작하였다. 준비 과정이란 필자가 먼저 전도폭발을 학습하고 성도들 가운데 훈련자를 세우는 것으로 약 2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후 교회에서 전도폭발을 시작하였는데 이를 통해 헌신된 전도자가 배출되며, 많은 전도의 열매가 맺히는 장면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필자는 지역교회 목회자로서, 그리고 실천신학을 연구하는 신학자로서 전도폭발이라는 하나의 프로그램을 목회 현장에 실행하는 과정에서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글은 이러한 경험과 의견을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썼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전도폭발의 구체적인 내용을 충실하게 설명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지역교회에서 전도폭발을 수행하려면 목회자가 먼저 국제전도폭발 한국본부에서 시행하는 임상훈련에 참여해야 하는데, 임상훈련을 통해 전도폭발의 자세한 내용은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전도폭발에 대한 설명이 부분적으로 등장하겠지만 필자의 글만으로는 전도폭발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학습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다만, 전도폭발의 내용을 알고 그것을 목회 현장에서 시행하려는 목회자들, 나아가 전도폭발에 대한 실천신학적 관점을 갖추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글이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전도 유형 (1) - 교회 등록 중심

한국 교회에 넓게 퍼진 전도의 형태를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전도의 목적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교회 등록 중심’의 전도다. 이는 사람들을 교회로 이끄는 것을 전도의 일차적인 목적으로 여기는 유형이다. 그러므로 전도의 성공 여부는 전도대상자의 교회 등록이 결정한다. 전도의 일차적인 목적을 교회 등록으로 여기는 관점에 대한 신학적 평가는 잠시 뒤로하고 한국 교회 안에 전도대상자가 교회에 등록하여 예배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끄는 것을 전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굉장히 넓게 펴져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많은 교회에서 시행하는 전도 시상의 기준을 보라. 그 기준은 하나같이 등록시킨 사람의 숫자다. 교회 등록이라는 목적을 위해 교회는 전도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사역을 시행한다. 전도대를 편성하여 2~3명씩 지역 전도를 하고, 커피나 차를 제공하며 교회를 홍보한다. 동일한 목적을 위한 대규모의 사역으로는 총동원전도주일이나 전도부흥집회 등을 꼽을 수 있다. 유명 강사, 쾌적한 환경, 친절한 안내, 푸짐한 선물 등을 준비하여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초대하기 위해 교회의 역량을 집중한다는 점에서 이 모든 활동을 ‘교회 등록 중심’의 전도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교회 등록 중심’의 전도 유형에서 뛰어난 전도자는 많은 사람들과 쉽게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사람이다. 이른바 전도왕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그러므로 ‘교회 등록 중심’의 전도 유형에서는 전도 훈련 역시 교인들로 하여금 보다 적극적으로 불신자를 찾아가도록 격려한다. 좋은 인상, 상량한 언어, 친절한 호의 등으로 불신자를 만나 그들을 교회로 안내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준비시키는 것이 전도 훈련의 핵심이 된다. 관계 전도든, 노방 전도든 상관없이 불신자의 교회 등록이라는 동일한 목적 하에 이루어지기에 이러한 전도 훈련의 목적은 성도들을 전도왕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명하다는 전도왕을 초대하여 이들의 간증을 통해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하고, 모든 성도들이 전도대상자나 새신자를 교회의 VIP로 여기며 그들이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고 등록하여 정착할 수 있도록 교회 전체의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총력을 쏟는다. 

‘교회 등록 중심’의 전도 유형에는 몇 가지 강점이 있다. 이 유형은 전도대상자를 교회로 안내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에 전도 대상자의 교회 정착이 비교적 빠르다. 물론, 오늘날 전도가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다음에 살펴볼 ‘복음 제시 중심’의 전도 유형에 비하여 전도 대상자의 교회 정착이 상대적으로 빠르다는 의미다. 교회 전체가 전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seeker-sensitive church) 전도대상자가 교회를 방문하였을 때 새가족 사역자들이 그들을 친절하게 맞이할 것이고 성도들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신앙생활을 안내할 것이다. 그만큼 전도 대상자는 짧은 시간에 교회의 일원이 되어 신앙생활에 적응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후 살펴볼 ‘복음 제시 중심’의 전도 유형과 비교하면 강점이면서 동시에 약점이다. ‘교회 등록 중심’의 전도 유형은 대체적으로 불신자가 교회에 등록하여 예배에 참여하면 설교를 듣거나 신앙생활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어느 순간 복음을 깨닫고 거듭남을 경험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교회 등록 중심’의 전도 유형에서는 전도대상자를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전도의 일차적인 목적이기에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복음을 제시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돕는 일에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 있다. 이러한 약점이 존재하기에 다음에 살펴볼 두 번째 유형, ‘복음 제시 중심’의 전도가 여전히 주목을 받고 있다. 


전도 유형 (2) - 복음 제시 중심

‘교회 등록 중심’의 전도 유형이 전도대상자를 교회로 인도하는 데 그 초점이 있다면, ‘복음 제시 중심’의 전도 유형은 전도대상자를 교회로 인도하는 것은 잠시 보류하더라도 그들에게 기독교의 복음을 제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인도하는 데 우선 순위를 둔다. 이 유형에 속한 대표적인 전도방법론은 대학생선교회(Campus Crusade for Christ)의 <사영리>나 네비게이토의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이른바, 다리 예화)이다. <사영리>나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이 지역교회가 아닌 청년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선교단체에서 시작된 전도 방법이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은 교회의 등록보다는 대학생이나 청년들을 만나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안내하는 역할에 우선순위를 둔다. 곧, 전도의 일차 목적은 등록이 아니라 결신이다. 이는 ‘교회 등록 중심’의 전도 유형이 등록만 강조할 뿐 회심이나 결신에는 관심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며, ‘복음 제시 중심’의 전도 유형이 결신만 강조할 뿐 교회 정착 및 양육에는 무관심하다는 의미도 아니다. 다만, 순서가 다를 뿐인데 ‘교회 등록 중심’의 전도가 교회 정착 이후 회심으로 이어진다면, ‘복음 제시 중심’의 전도는 결신 이후 교회 정착의 순서를 따른다. 

그러므로 ‘복음 제시 중심’의 전도 유형에서는 아직 교회에 정착하지 않은 대상자를 만나 그들에게 복음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처음 만난 전도자가 전하는 기독교의 진리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복음 제시 중심’의 전도 유형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복음의 핵심을 전달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고, <사영리>나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 등은 이러한 상황에 맞춰진 최적화된 전도 방법론이다. 결과적으로 ‘복음 제시 중심’의 전도 유형에서는 성도들을 전도자로 훈련시키는 목표가 짧은 시간에 복음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술의 습득이 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성경구절을 암기하고, 적절한 예화를 익히며 조리 있게 기독교의 복음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나아가, 전도 대상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예상 질문 – 전도 훈련에서는 이것을 반대 질문이라고 부른다 – 에 대한 대답도 미리 학습한다. 

‘복음 제시 중심’의 전도 유형은 ‘교회 등록 중심’의 전도 유형과 비교할 때 장단점이 존재한다. ‘복음 제시 유형’의 가장 큰 장점은 전도대상자 개개인에게 기독교의 복음을 충실하게 전한다는 점이다. ‘교회 등록 중심’의 전도를 받아 신앙생활을 시작한 성도들 가운데 기독교의 복음을 체계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지속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교회의 많은 활동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는 전제에서 진행되기에 성도 개개인의 눈높이에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독교의 복음을 설명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 제시 중심’의 전도 유형은 전도 훈련의 과정에서, 그리고 전도의 현장에서 성도 개개인에게 기독교 복음을 충실하게 전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영리>나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 등의 책자가 기독교 복음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켰다는 비판이 가능하지만 복음을 체계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단순화가 불가피하다는 점, 그리고 <사영리>나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을 사용할 때 책자에 소개된 내용 외에도 다양한 성경구절과 복음 설명을 함께 깃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복음 제시 중심’의 전도 유형은 분명 개개인에게 복음을 충실하게 전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결신에 우선순위를 두는 ‘복음 제시 중심’의 전도 유형은 복음 제시와 결신 이후에 교회 등록을 유도하기에 복음을 전해 들은 전도 대상자들이 이후 교회에서 지속적으로 양육받을 기회가 현저히 낮아진다. 바로 이것이 ‘교회 등록 중심’의 전도 유형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면서 동시에 ‘복음 제시 중심’의 전도 유형 안에 내재되어 있는 분명한 단점이다. 


전도 폭발의 진행 흐름

전도 유형을 그 목적에 따라 ‘교회 등록 중심’과 ‘복음 제시 중심’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 교회에서 전도훈련을 주도하는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은 이 두 가지 유형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곧, ‘복음 제시 중심’ 유형의 장점인 복음 제시와 ‘교회 등록 중심’ 유형의 장점인 양육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는 목회적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필자는 전도폭발이 그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전도폭발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오른쪽의 그림을 살펴보자. 이 그림은 전도폭발이 제시하는 전도의 흐름을 설명한다. 

그림의 가장 위에 교회 이미지가 등장한다. 이는 전도폭발이 제시하는 전도 유형의 시작점이 지역교회라는 의미다. 역사적으로 전도폭발은 제임스 케네디(James Kennedy) 목사가 미국 플로리다 주에 위치한 코럴 릿지 장로교회(Coral Ridge Presbyterian Church)를 목회하면서 교회의 전도 프로그램으로 시작하였다. 여기에 전도폭발이 ‘복음 제시 중심’의 전도 유형을 대표하는 <사영리>나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과 다른 차이점이 등장한다. <사영리> 등이 선교단체를 역사적 배경으로 한다면 전도폭발은 장로교회를 그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파송을 받은 전도자가 전도폭발의 흐름을 따라가려면 먼저 ‘서론’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림은 서론의 목적을 명기하는데, 곧 ‘친교’다. 두 개의 손이 마주잡고 있는 모습은 전도자가 전도대상자와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으로, <전도폭발>에서는 이를 ‘친구 만들기’라고 표현한다. [각주:1]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실행하기 위한 방법으로 ‘일반생활 – 교회배경 – 우리교회 – 간증 – 진단질문’의 과정을 밟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국제전도폭발한국본부에서 발행하는 <함께 사귀어요> 책자를 보면 ‘서론’에 해당하는 위의 각 단계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곧 전도대상자 한 명과 손을 맞잡는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약 6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 정도의 시간과 정성을 들여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주는 단계가 전도폭발이 말하는 ‘서론’인 것이다. 

‘서론’의 단계를 통해 친구가 되었다면, 이제 두번째 단계인 복음 설명으로 넘어간다. 그림은 복음설명의 목적을 ‘이해’라고 명시하는데, 손목에 구멍이 뚫린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못 박히신 손을 묘사한다. 전도폭발은 ‘은혜 – 인간 – 하나님 – 그리스도 – 믿음’의 순서로 복음을 설명한다. 이 과정을 통해 전도대상자가 기독교의 복음을 지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두 번째 단계의 목적이다. 그러므로 복음 설명을 모두 들었지만 여전히 이해가 부족하거나 반대질문이 있을 경우, 전도자는 대상자에게 적절한 대답을 해주어야 한다. 국제전도폭발한국본부에서 제공하는 <복음제시전문>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면 약 20분(JUST EE 버전)에서 45분(CLASSIC EE 버전)이 소용되지만 실제 전도의 현장에서는 대상자에 따라 더 오랜 시간, 혹은 여러 차례의 만남이 필요한 이유다. 

전도폭발의 두번째 단계인 복음설명을 통해 전도대상자가 기독교의 복음을 이해하면, 비로소 세 번째 과정인 결신으로 나아간다. 그림에서 전도 대상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잡은 모습은 결신의 목표가 확신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제 아무리 잘 훈련받은 전도자라도 ‘확인질문 – 결신질문 – 결신설명 – 결신기도 – 구원의 확신’의 순서로 이어지는 결신의 과정을 통해 단번에 모든 전도 대상자를 ‘구원의 확신’으로 안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전도폭발 <JUST EE 1단계 교재>는 “[전도 대상자가] 틀린 대답을 하였을 때에 시간을 들여서 여러 번 반복해야 그 결신자의 마음속에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할 수 있다”(p. 68)고 가르친다. 

전도폭발의 진행 흐름에 따르면 전도자는 ‘서론’을 통해 전도 대상자와 친구가 된다. 그리고 복음을 설명하여 이해시키고, 나아가 그 사람이 결신하여 구원의 확신을 얻도록 안내한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 단계로 ‘양육’을 진행하는데,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양육의 목표는 전도대상자를 교회로 안내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교회 등록 중심’의 전도 유형과 전도폭발의 흐름이 명백하게 다른 지점이다.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한 대부분의 전도가 ‘교회 등록 중심’의 유형을 따라 ‘등록’ 이후 ‘결신’이라는 흐름을 따른다면, 전도폭발은 ‘결신’ 이후 ‘교회 등록’의 순서를 따르기 때문이다. 


결신과 양육,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하여

지역교회에서 전도폭발 훈련을 시행할 때, 대체적으로 전도폭발의 “복음 설명” 부분에 집중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위에서 살펴본 전도폭발의 진행 단계에서 전도대상자와 친구가 되는 “서론”,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양육”은 전도대상자와 교회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변형이 필수적인 영역이기에 개별 전도자의 역량에 맡겨 두기 때문이다. 그 대신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훈련’은 복음을 설명하는 두번째 단계와 결신을 유도하는 세 번째 단계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곧, 전도폭발이 추구하는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 두 번째 단계와 세 번째 단계인 복음 설명과 결신에 훈련이 집중되면서 전도폭발 역시 또 하나의 ‘복음 제시 중심’의 전도 유형이 되고 만다. 적지 않은 성도들에게 전도폭발은 조금 더 확대된, 혹은 조금 더 심층적인 <사영리>라는 인식이 존재하는 현상이 바로 그 증거다. 그러나 <사영리>나 <하나님의 선물 영생>과 같은 ‘복음 제시 중심’의 전도 유형과 비교하여 전도폭발에 내재되어 있는 가장 중요한 장점은 복음 설명이 더욱 풍성하다는 것이 아니라, 복음 설명 앞에 전도 대상자와 친구가 되는 “서론”이 존재한다는 점이요 나아가 복음 설명과 결신 이후 “양육”을 통해 교회 등록을 유도하고 지속적인 믿음의 성장을 돕는다는 점이다. 곧, 전도폭발은 ‘복음 제시 중심’ 유형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회 등록 중심’ 유형의 장점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폭발을 조금 더 심화된 <사영리> 정도로 여기며, 또 하나의 ‘복음 제시 중심’의 유형으로만 활용한다면 그것은 전도폭발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아쉬운 프로그램 운영이 된다. 

전도폭발이 ‘복음 제시 중심’의 장점인 결신과 더불어 ‘교회 등록 중심’의 장점인 양육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는 전도훈련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에 대한 몇 가지 요점을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1.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전도폭발을 시행하라. 상술한 바와 같이 전도폭발은 코럴릿지장로교회에서 시작되었다. 지역교회의 기반이 없이는 전도폭발이 가진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다. 곧, 지역교회에 든든히 뿌리를 내려야 ‘복음 제시 중심’의 전도 유형을 넘어 ‘교회 등록 중심’ 전도 유형의 장점까지 발휘할 수 있다. 

2. 충분한 서론에 강조점을 두라. 전도훈련을 진행하다보면 진행하는 목회자나 참여하는 성도들의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조금이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을 만나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조급한 마음으로 “서론”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아직 친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음 설명으로 넘어간다면 그러한 전도의 결과가 결신이 되었든 보류 및 거절로 끝났든 상관없이 더 이상의 양육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서론”의 목적은 복음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친구가 되는 것임을 기억하라. 충실한 “서론”의 결과로 진실한 친구가 된다면 두 번째 단계인 “복음 설명”도 보다 자연스러워질 것이요, 이후 결신과 양육의 과정도 훨씬 수월해진다. 전도폭발 훈련을 처음 대할 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전도대상자에게 30분이나 되는 복음제시 전문을 전할 수 있는지 의아해한다. 필자의 대답은 분명하다. ‘그 비결은 서론에 있다.’ 서로 친구가 되었다면 나의 친구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이야기를 30분이 아니라, 한두 시간 동안 듣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3. 한 사람에게 집중하라. 많은 전도자들이 서론, 곧 친구가 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이유는 분명한데 목적을 가지고 전도대상자를 만나기 때문이다. ‘교회 등록 중심’의 유형이라면 대상자를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 ‘복음 제시 중심’의 유형이라면 대상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상대한다. 당신이라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반갑겠는가? 그러나 충실한 서론을 통해 진심으로 친구가 된다면, 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고 교회로 인도할 수도 있다. 등록시킨 사람의 숫자, 복음을 전하여 얻은 결신률 등 성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그저 한 사람을 진실하게 사랑하여 친구가 되어 줄 때 결신과 양육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전도가 비로소 가능하다. [각주:2]  



  1. D. James Kennedy, Evangelism Explosion: Equipping Churches for Friendship, Evangelism, Discipleship, and Healthy Growth, 4th ed. (Wheaton: Tyndale House Publishers, 1996), ch. 4. [본문으로]
  2.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 이것이면 충분하다. 바로 이 지점이 전도폭발의 폭발력을 발휘하는 핵심이다. 그러나 결신과 양육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전도폭발을 주도하는 목회자라면 반드시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 전도폭발은 양육을 두 가지로 나눈다. 곧, 즉석양육과 후속양육이다. 즉석양육이란 전도대상자가 기독교의 복음을 듣고 결신하였을 때 그 즉석에서 이루어지는 양육이다. 그러나 결신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양육이 필요한데 이를 후속양육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전도폭발 프로그램에서는 후속양육을 위한 양질의 내용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것이 국제전도폭발의 과제라기보다는 전도폭발을 시행하는 지역교회 목회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속적인 후속양육은 전도대상자가 지역교회에 등록하여 그 안에서 받게 되는 양육 시스템과 연관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가족교육, 알파, 일대일, 제자훈련 등 전도폭발의 후속양육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과정은 많다. 그러나 정답은 없다. 지역 교회의 특성을 따라, 전도폭발의 후속양육을 디자인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역교회 목회자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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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전도&선교2017. 10. 2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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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폭발 신교재(JUST EE)의 특징

 

전도폭발 한국본부는 새로운 교재를 출판하여 2017년 하반기부터 판매하고 있다. 이번에 도입한 교재는 전도폭발 클래식 버전(CLASSIC EE)을 전도폭발 저스트 버전(JUST EE)으로 개정한 것으로 전도폭발 한국본부는 시대적, 교회적 요청에 대한 응답이라고 설명한다. 전도폭발 한국본부는 기존의 교재를 개정한 이유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는데, 그 핵심은 전도폭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함이다. , 전도폭발 훈련은 (1) 훈련 과정이 힘들지만 (2) 노력한 것에 비해 성과가 적은 프로그램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교회 안에 확산되어 있다는 현실 인식이다.[1]

 

먼저 훈련 과정이 힘들다는 인식의 중심에는 암기가 놓여있다. 전도폭발은 복음제시 개요를 암기하게 되어 있고, 성경구절 및 예화 역시 암기하도록 요구한다. 전도폭발은 매주 일정 분량을 암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현장에서 실습해야 하기에 암기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다. 암기 외에도 매주 숙제 및 학기말 시험은 전도폭발이 강도높은 훈련이라는 악명을 얻게 만드는 주된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힘든 훈련을 받았지만, 실제 전도 현장에서는 활용도가 낮다는 비판도 있다. 복음제시 전문은 약 45분 분량인데 전도 현장 특히 노방전도 에서는 너무 길어서 전도대상자가 집중하여 듣지 않는 경향이 있다. 훈련을 받을 때 45분 분량으로 암기를 하였기에 전도의 현장에서 20, 혹은 10분 이내로 복음의 핵심만을 제시해야 할 때 융통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전도폭발 한국본부는 전도폭발에 대한 위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하여 새로운 교재 JUST EE를 출판하게 되었다. 전도폭발 한국본부는 공식적으로 7가지 항목이 개정되었다고 밝히지만,[2]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복음제시의 단순화. 기존의 45분 분량의 복음제시를 20분 분량으로 줄였다. 복음제시의 개요는 그대로이지만, 성경구절 및 예화가 생략되거나 교체되었다. 복음제시를 단순하게 개정한 것은 두 가지 대상에게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는데, 먼저는 훈련을 받는 사람(훈련생)이며 또한 복음제시를 듣는 사람(전도 대상자)이다. 다시 말해, 훈련 과정에서의 부담을 줄어주고 전도 현장에서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변경한 것이다.

 

복음제시를 개정하였기에, 그에 따르는 훈련 교재 역시 개정할 수 밖에 없었다.[3]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13주 과정에서 12주 과정으로 짧아진 것이지만, 이는 기존 CLASSIC EE 5~7주 과정(3) 5~6주 과정(2)으로 재편성한 것으로 내용상의 큰 변화는 아니다. JUST EE 교재에서 내용상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1단계 교재가 20분으로 조정된 <복음제시 1단계>를 기반으로 구성되었다는 것과 2단계 교재는 CLASSIC EE의 복음 제시와 거의 비슷한 분량의 <복음제시 2단계>를 추가로 학습한다는 점이다. CLASSIC EE 1단계에서 45분 분량의 복음제시를 학습하고 2단계에서는 훈련자 교육을 받는데 비하여, JUST EE 1단계에서 20분 분량의 복음제시를 학습하고 2단계에서 45분 분량의 복음제시를 학습하는 구성이다.[4]

 

 

복음제시의 점증적 확대

 

새롭게 개정된 전도폭발 교재를 지역교회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답하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질문이 하나 있다. 기존의 CLASSIC EE 교재로는 JUST EE 교재가 추구하는 방향, (1) 훈련의 부담을 줄이면서 (2) 보다 실용적인 훈련을 추구하기에 부족하였는가? 필자는 지역교회에서 전도폭발 훈련을 진행하는 사람으로 JUST EE의 출판을 환영하면서도 CLASSIC EE 교재만으로도 얼마든지 JUST EE가 추구하는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도폭발은 암기와 과제가 많고 현장 실습에 대한 부담이 가중하다는 부정적인 견해가 있다. 나아가 45분 분량의 복음제시를 학습하였기에 전도 현장에 따라 20, 혹은 10분 이하로 복음을 제시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므로 45분 분량의 복음제시를 20분 분량으로 단순화 시키면 훈련생들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전도 현장에서 보다 자유롭게 복음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 JUST EE의 핵심이다. 그러나 CLASSIC EE에서도 복음제시를 학습할 때 은혜 인간 하나님 그리스도 믿음의 순서로 암기하도록 가르치지 않는다. 그 대신 복음제시 개요를 먼저 학습하고, 그 위에 성경구절과 예화 등을 추가할 수 있도록 학습합니다. 제임스 케네디 목사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훈련생들이 복음을 학습할 때, 복음제시 전문을 암기하기보다는 복음의 개요(outline)을 학습한 뒤 그 위에 내용을 점증적으로 채워가도록 안내한다. 먼저, 개요의 골격[5]이 어긋나지 않도록 충분히 학습한다. 그리고 삼 분짜리 복음제시를 제공한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오 분, 그리고 팔 분짜리 복음제시로 확대시켜준다. 계속해서 복음제시를 확대하여 구체적인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일 분 이든, 한 시간이든 복음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한다. 짧은 복음제시와 함께 긴 복음제시를 제공하여, 훈련생들이 주어진 자료들을 가지고 기본적인 개요 위에 자신들의 복음제시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한다.[6]

 

제임스 케네디 목사가 제시한 점증적 확대방식을 지역교회에서 받아들인다면 전도폭발 복음제시 전문이 45분 분량이든 20분 분량이든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훈련생들은 전도폭발 복음제시 개요를 먼저 학습하고 그 위에 성경구절과 예화를 추가하여 3분짜리 복음제시, 5분짜리 복음제시, 10분짜리 복음제시를 자유롭게 전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기 때문이다. 만일 지역교회에서 전도폭발 훈련을 시행하면서 훈련자들이 45분 복음제시를 암기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면서도 현장에서는 3분 혹은 5분 혹은 10분 동안 복음을 제시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점증적 확대의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45분 분량의 복음제시를 통째로 암기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복음제시 개요를 먼저 암기하고 그 위에 살을 덧붙이는 점증적 확대의 방식을 선택한다면 CLASSIC EE과 새롭게 개정된 JUST EE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단 하나다. CLASSIC EE에서는 45분 분량의 복음제시를 1단계에서 모두 학습하고 2단계에서는 1단계를 복습하며 다지는 과정이라면, JUST EE에서는 1단계에서는 20분 분량까지만 학습을 하고 2단계에서 45분 분량의 복음제시를 학습한는 점이다. 전도폭발 한국본부가 제시하는 것처럼 20분 복음제시를 최종 목표를 생각한다면 JUST EE가 훈련의 부담을 줄여준 것일 수 있지만, JUST EE <복음제시 2단계>를 최종 목표로 생각한다면, 제임스 케네디 목사가 제시한 점증적 확대의 방식을 충실하게 따르는 전도폭발 훈련의 현장에서는 CLASSIC EE로부터 JUST EE의 변화는 훈련 진도의 속도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전도 폭발은 수료인가 반복인가?

 

전도폭발 한국본부에서 새로운 교재 JUST EE를 출판한 것 역시 전도폭발 훈련에 내재되어 있는 원리, 곧 점증적 확대방식을 우리 시대에 새롭게 발현하기 위한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CLASSIC EE역시 점증적 확대의 방식이 훈련의 원리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지역교회가 45분 복음제시를 통째로 암기하도록 훈련하였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새로운 교재 JUST EE1단계와 2단계 구성을 통해 점증적 확대의 방식을 지역교회가 실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점증적 확대의 원리 외에 지역교회에서 새롭게 추구해야 하는 전도폭발 훈련의 원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필자는 단 하나의 원리가 전도폭발 훈련 전체를 견인한다고 생각한다. , “현장실습이 훈련의 핵심이다는 원리다.[7]

 

전도폭발 훈련은 크게 두 가지로 진행된다. 하나는 교실 수업이고, 또 하나는 현장 실습이다. 그런데 교실 수업과 현장 실습 사이에는 방법론적 차이가 존재한다. 여기에서 언급한 방법론적 차이란 수료반복의 차이다. 목회 프로그램은 방법론적 차이에 따라 크게 수료하는 프로그램과 반복하는 프로그램으로 구분할 수 있다. ‘수료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제자훈련이다. 제자훈련은 소정의 과정을 마치면 수료증이 발급되고, 수료증을 받은 사람은 스텝으로 섬기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반복하는 프로그램은 아무리 오랜 시간 참여하여도 수료증이 발급되지 않으며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은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구역 예배나 큐티 나눔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전도폭발은 수료하는 프로그램인가, ‘반복하는 프로그램인가? 언듯 보기에 전도폭발은 1단계부터 5단계까지 구성된 수료하는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1단계를 수료하면 전도자 수료증이, 2단계 이상을 수료하면 훈련자 자격증이 발급된다(CLASSIC EE 기준). 그러나 전도폭발은 교실 수업과 현장 실습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기억해보라. 교실 수업은 단계별 강의가 중심이 되기에 수료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현장 실습은 다르다. 1단계부터 5단계까지 혹은 5단계를 수료한 사람들까지도 현장 실습을 주도하는 훈련자와 뒤따라가는 훈련생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모두가 동일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 방문 전도와 노방전도를 통해 매 학기 팀 전도를 9회 이상, 개인 전도를 2회 이상 실시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도폭발의 현장 실습은 훈련 단계와 상관없이 반복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전도폭발의 기본 원리에 따르면, “현장실습이 훈련의 핵심이다.” 만일 지역교회의 전도폭발 훈련에서 4단계, 혹은 5단계를 수료한 사람이 훈련자나 교사로 참여하지 않는 한 전도폭발에 참여하지 않는 분위기라면, 그것은 전도폭발이 수료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는 증거요, 곧 현장실습보다는 교실 수업이 중심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지역교회에서 전도폭발 훈련이 실제적으로 현장 실습에 그 핵심을 둔 프로그램이 되기 위해서는 4단계, 혹은 5단계를 수료하더라도 지속적으로 현장 실습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전도폭발의 개정된 교재를 이야기하면서 전도폭발의 기본원리인 현장실습이 훈련의 핵심이다를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전도폭발 한국본부에서는 교재를 개정하여 JUST EE 버전을 내어놓은 이유 가운데 하나로, 목회 현장에서 전도폭발 훈련을 지속하다 보면 훈련생 모집에 점차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전도폭발 훈련의 과정이 어렵고 힘들다는 인식은 지역교회가 훈련생 모집을 모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결코 아니다. 앞서 말했듯 전도폭발이 수료하는 프로그램이 된다면 지역교회는 날마다 새로운 훈련생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특별히, 두 사람의 훈련생에게 한 사람의 훈련자를 배치하는 구조이기에, 전도폭발 훈련을 받은 성도들을 지속적으로 훈련자로 세우기 위해서는 지난 학기보다 두배로 많은 훈련생을 모집해야 한다.[8] 한국 교회가 성장기를 지나 정체기 혹은 쇠퇴기에 접어든 지금 매 학기 두 배의 훈련생을 모집해야 한다는 부담은 전도폭발 훈련 자체를 마비시키는 원인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법은 오히려 간단히 찾을 수 있다. 전도폭발 훈련을 수료하는 프로그램이 아닌 지속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것이다. 교실 수업의 단계를 기준으로 훈련자/훈련생을 구성하는 기준을 느슨하게 하고, 그 대신 단계와 상관없이 현장 실습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와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그러면 교회 현실에 맞춰 적절한 숫자의 훈련생을 모집할 수 있고 그들을 집중적으로 훈련하기 위한 현장 실습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교재의 개편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지역교회에서 전도폭발을 시행하는 목회자들의 역할이다. 전도폭발을 현장실습 중심의 훈련으로 실행하지 못한다면 제 아무리 훌륭한 교재가 출판되더라고 그 훈련은 시간이 갈 수록 힘이 들지만 성과는 적은 훈련이 되고 말 것이다.

 

 

 

 



[1] 전도폭발 한국본부는 공식 문서에서수정 보안의 이유 다음의 다섯 가지로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1) 전도폭발 45분의 복음제시 암기에 대한 심리적인 부담과, 전도 대상자들 역시 복음제시 저체를 한번에 듣기에는 너무 버겁다는 견해 (2) 전도폭발사역은 암기와 더불어 숙제점검, 현장실습, 종합시험, 구두복음제시 시험 등등 다양한 점검으로 너무 버겁다는 견해 (3) 전도폭발사역은 시대적 흐름에 비해 훈련 기간이 길다는 견해 (4) 교재가 너무 크고 디자인이 낙후되고 휴대하기가 불편하다는 견해 (5) 13 훈련을 마친 훈련생들이 1단계 훈련사역의 분량이 너무 많아 충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가 어려워 훈련자 되기를 기피하고 있다는 견해.” 국제전도폭발 한국본부, <지역교회에 보낸 공문>, 2017 6.

[2] 전도폭발 한국본부가 제시하는 공식적인 개정 항목은 다음과 같다. “(1)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2) 교재가 예쁘게 단장되었습니다. (3) 교과 과정이 조금 쉬워졌습니다. (4) 교실 수업과 전도 현장의 연계성을 강화하였습니다. (5) 복음제시가 단순화 되었습니다. (6) 훈련자 제도가 없어졌습니다. (7) I단계를 수료하면 훈련자 자격증을, II단계 이상은 수료증을 드립니다.” 국제전도폭발 한국본부, <JUST EE 설명회 자료>

[3] 2017 하반기에는 JUST EE 위한 1 단계와 2 단계 교재를 출판하였고, 3단계 이상은 2018 출판 예정이다. 그러나 복음제시를 학습하는 단계가 1단계와 2단계이므로, 3단계 이상 교재의 개정은 전도폭발을 시행하는 지역교회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다지 핵심적인 변화는 아니다.

[4] 전도폭발 한국본부는 2단계 복음제시를 선택사항으로 제공하기에 1단계 훈련을 마친 사람이 훈련자가 있다는 점에서준훈련자 제도가 없어졌습니다라는 변화를 이야기한다.

[5] 제임스 케네디는 복음제시에 있어서 개요를 골격’(skeleton)으로, 성경 구절을 근육’(muscle)으로, 예화를 ’(flesh) 비유한다. D. James Kennedy, Evangelism Explosion: Equipping Churches for Friendship, Evangelism, Discipleship, and Healthy Growth, 4th ed. (Wheaton: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1996), 15.

[6] D. James Kennedy, Evangelism Explosion, 15-16.

[7] Cf. D. James Kennedy, Evangelism Explosion, 7-8.

[8] 전도폭발은 훈련받은 전도자의 숫자가 제곱의 방식으로 확대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Cf. D. James Kennedy, Evangelism Explosion, 8. 이것은 부흥의 시대에는 크나큰 장점일 수 있지만, 정체기의 시대에는 두배의 훈련생을 모집해야 한다는 크나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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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전도&선교2017. 8. 3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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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선교팀을 위한 훈련자료입니다. 

단기선교의 (1)정체성, (2)목적, (3)협력, (4)소망의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1) 정체성 http://hanjin0207.tistory.com/476

(2) 목적 http://hanjin0207.tistory.com/477

(3) 협력 http://hanjin0207.tistory.com/478


신앙인들은 하나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삶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일이기에 신앙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그러나 누구도 무한하신 하나님을 완벽하게 이해할 없으며, 우리의 언어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극히 일부분만을 서술할 밖에 없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신앙인들이 쏟아놓는 많은 언어들 속에 참된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욥기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2:3) 욥기는 욥과 친구들이 나누었던 하나님에 대한 무수한 언어들의 나열입니다.[1] 그런데 그토록 차고 넘쳤던 그들의 언어는 하나님이라는 실체가 없는 인간들의 말잔치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깨닫지 못한 내뱉는 언어였고, 하나님에 대한 나름의 논리를 짜맞추었지만 그것은 헤아릴 없는 하나님의 신비를 결코 담아낼 없었습니다.

드디어 욥은 더욱 깊은 단계의 영적인 체험에 다다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42:5)[2] 그렇다면 어떠한 과정이 있었기에 욥은 풍문으로만 들었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경험한 하나님을 이야기할 있었을까요? 욥기 전체를 통해 가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있습니다. 고난이라는 현실과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욥의 고난은 물론 현실적인 아픔이었지만,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욥의 고난이란 지금까지의 신앙관으로는 도저히 해석되지 않는 현실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고 섬기면 형통의 대로가 열릴 것이라는 기존의 신앙관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없는 현실이 욥의 앞에 펼쳐졌습니다. 나아가, 고난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은 욥의 눈을 열어 하늘과 땅과 우주 만물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38-41). 고난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게 것입니다.

욥은 드디어 수박 겉핥기 식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체험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42:6)[3]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표현은 티끌과 , 구약성경에서 욥기를 제외하고 한번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이 소돔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자기 자신을 티끌과 같은 존재로 묘사하지요( 18:27). ‘티끌과 라는 표현이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숨겨진 의미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티끌과 같은 연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동참하도록 초대받은 사명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욥의 고백에서도 이와 동일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죠. 고난이라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체험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티끌과 같은 보잘것 없는 존재임을 깊이 인식하게 되지만,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 역사를 위한 동역자로 불러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선교지은 단기선교팀에게 고난의 현장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고난이란 단지 낯선 문화와 기후, 평소에 당연하게 여기며 누리던 권리들의 포기 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신앙관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없는 현실, 지금 땅에 하나님의 역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부르짖음입니다(cf. 왕하 2:14). 그러나 고난의 현장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 우리는 비로서 풍문으로만 들었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실존을 휘감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며 티끌과 같은 우리를 복음의 일꾼으로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 우리의 눈을 열어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 이것이 단기선교를 떠나는 우리의 참된 소망입니다.  



[1] 42장으로 구성된 욥기 가운데 1장과 2장은 욥의 고난을 서술하지만, 3장이후부터 욥과 친구들 사이에 오갔던 하나님에 대한 대화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욥기는 스토리보다는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대화) 주된 내용이다.

[2] 욥이 자신의 귀에 들리는 풍문으로만 하나님을 알았을 , 그는 하나님을 참으로 만나지 못하여 답답한 심정을 이렇게 토로하기도 하였다.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없구나”( 23:8-9)

[3]거두어들이고라는 말은 풀어졌다, 녹았다는 의미다. 특별히 욥의 마음에 있던 갈등과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이다. ‘회개라는 단어는 1차적 의미의 회개가 아니다. 실제로 욥은 자신의 구체적인 행동이나 말에 대해 회개한다는 내용이 전혀 없다. 오히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회개 하나님에 대해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깨달음, 도저히 무엇과 비교할 수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체험, 영적으로 크게 성숙하는 거대한 발걸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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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전도&선교2017. 7. 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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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선교팀을 위한 훈련자료입니다. 

단기선교의 (1)정체성, (2)목적, (3)협력, (4)소망의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1) 정체성 http://hanjin0207.tistory.com/476

(2) 목적 http://hanjin0207.tistory.com/477

(4) 소망 http://hanjin0207.tistory.com/479


지난 시간에는 단기선교팀의 정체성과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분명한 목적를 위해 달려가기 위해서는 참여하는 개인들이 아름다운 팀웍을 이루어야 합니다. 단기선교는 한 개인이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팀 단위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단기 선교를 위한 협력을 생각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성경 본문이 고린도전서 12장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한 몸을 이루는 많은 지체라는 비유로 설명합니다(고전 12:12-27). 하나의 교회는 다양한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교회를 한 몸과 많은 지체로 비유하고 나면 여러 가지 적용점이 드러납니다. 먼저, 하나의 몸을 이루는 다양한 지체는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손과 발이 다르고, 눈과 코가 다른 것처럼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은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나와 같은 생각, 나와 같은 행동, 나와 같은 감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지체는 다양한 기능을 의미합니다. 손과 발이 다르다는 것은 동시에 손의 기능과 발의 기능이 각각 존재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을 교회의 구성원으로 부르셔서 그들로 하여금 다양한 역할을 감당하게 하십니다(18-19). 결국,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은 한 몸을 구성하는 다양한 지체이기에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는(26) 운명공동체가 됩니다.

바울은 한 몸을 이루는 많은 지체라는 비유로 교회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바울의 놀라운 혜안에 등장합니다.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23) 한 몸을 이루는 운명공동체이기에 덜 귀해 보이는 지체에게 귀한 것을 입혀주고, 아름답지 못한 지체를 아름다운 것으로 덮어준다는 것까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선언에서 가장 혁명적인 대목은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더 요긴하다는 주장입니다. 바울의 주장에 따르면,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생동감 넘치게 하는 것은 힘있고 능력 많은 지체가 아니라 우리 가운데 가장 약한 지체입니다.

한 팀을 이루어 선교지로 출발하는 단기선교팀 역시 한 몸을 이루는 다양한 지체의 비유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동일한 정체성과 목적을 공유하지만 우리 각자는 성장 배경, 가치관, 일하는 방식, 성격, 은사 등이 모두 다릅니다. 그리고 우리의 서로 다름은 우리가 공유하는 정체성과 목표를 위한 다양한 역할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에 따라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특별히, 신앙공동체 안에서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다는 원리를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바로 그때, 우리를 하나의 선교팀으로 묶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단기 선교를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교회를 묘사하기 위해 사도 바울이 제시한 한 몸과 많은 지체의 비유는 생각할수록 깊은 통찰력이 넘쳐납니다. 사도 바울의 비유와 같이, 하나의 지역 교회가 한 몸을 이루는 지체와 같다면 그 교회는 가장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몸과 많은 지체의 비유로 사도 바울이 묘사하는 교회는 이상적인 천상의 교회가 아니라 문제 많은 이 땅의 고린도교회였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27)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 갈등, 음행, 혼란, 부활에 대한 불신앙 등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만 아직 그것이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문제 많은 고린도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도들은 그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선언합니다.

단기선교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의 모임이 하나님께서 각 지체를 불러 세우신 한 몸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흠도 많고 실수도 하지만 우리 개인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처럼, 여전히 갈등하고 불의하며 지혜롭지 못하지만 이 땅의 교회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금도 구원의 역사를 펼치시는 것처럼, 여전히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무엇 하나 준비된 것이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선교팀의 각 지체로 불러 주셨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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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전도&선교2017. 7. 1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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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선교팀을 위한 훈련자료입니다. 

단기선교의 (1)정체성, (2)목적, (3)협력, (4)소망의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1) 정체성 http://hanjin0207.tistory.com/476

(3) 협력 http://hanjin0207.tistory.com/478

(4) 소망 http://hanjin0207.tistory.com/479


요한계시록은 교회의 실제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합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교회의 모습은 고난과 환란이지요. 당시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최고 리더였던 사도 요한은 지금 밧모라는 이름의 섬에 유배를 당하고 있습니다. ‘환란,’‘궁핍,’‘고난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현실을 묘사하는 대표적인 단어였고, 무엇보다 일곱 봉인의 재앙이 계속되면서 교회는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6:17)라고 울부짖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시 교회는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되었습니다(고전 4:13). 그러나 이것은 결코 요한계시록이 제시하는 교회의 전체 모습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7장은 교회의 참모습을 두 가지 장면으로 묘사합니다. 첫번째 장면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십사만사천 명입니다(1-8).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았다는 의미는 환난과 고난의 날이 교회를 뒤덮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여 주신다는 뜻이죠(cf. 3).[1]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 권력 앞에서 한 없이 약해보이지만, 교회의 참모습을 바라본다면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두번째 장면은 열방으로부터 일어난 큰 무리입니다(9-12).[2] 큰 소리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영광의 찬양을 부르는 이들은 승리의 공동체, 곧 승리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3] 고난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승리의 찬양을 부르는 교회. 이것이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는 교회의 참모습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열방으로부터 일어난 승리의 공동체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최후 심판의 때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미 여섯 번의 봉인 재앙이 있었지만(6) 이것이 결코 끝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일곱 나팔의 재앙이 이어져야 하고(8-11) 용과 짐승의 횡포도 남아 있습니다(12-13). 다시 말해, 교회는 지속되는 일련의 고난이라는 터널 한 가운데 위치해 있을 뿐 아직 그 터널을 통과한 것이 아닙니다.[4]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7장에 등장하는 큰 무리들은 최후의 완전한 승리를 거머쥔 성도들이 아니라, 고난의 터널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힘입어 오늘 하루도 근근이 살아가는 성도들, 그러면서도 구원과 승리가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고 승리의 노래를 믿음으로 선포하는 공동체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최후의 승리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교회가 믿음으로 승리의 노래를 부를 때 하늘의 모든 천사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위대한 찬양을 올려드린다는 사실입니다(11-12).

사도행전 이후 오늘까지 이어지는 선교의 여정은 아직 종착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 누구도 어느 선교사님이나, 어느 선교 단체나, 어느 선교팀도 선교의 최후 승리에 이르렀다고 선언할 수 없습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지 않으셨기에 우리의 선교는 때로 실패하고, 한걸음 뒤로 물러나야 할 때도 있으며,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짧은 시간 선교지에 잠시 머무는 단기선교를 통해 위대한 최후의 승리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그 목표는 언제나 실패로 결론 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선교란 하나님의 이름이 거부당하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처럼 취급받는 선교의 현장에서 순간순간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에 거하는 것, 나아가 현실이 어떠하든 믿음으로 아름다운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는 모든 천사들이 우리의 노래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을 영원토록 우리 하나님께 돌리는 위대한 찬송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참여하는 선교의 목표는 우리의 힘으로 결코 얻어낼 수 없는 최후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최후의 승리를 약속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1]인침 원래적 의미는 세례다(cf. 고후 1:22; 1:13). 요한계시록 7장은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확인 받은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지키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2] 이들은 옷을 입었으며 그들의 손에는 종려가지가 들려 있다(9). ‘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종려가지 승리의 상징이다.

[3] 십사만사천 명과 무리가 각각 다른 대상을 지시한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유대인 그리스도인 & 이방인 그리스도인 ). 그러나 교회에 대한 가지 시각이라는 견해가 조금 우세하다. 예를 들어, 첫번째 장면이싸우는 교회’(ecclesia militans) 보여준다면, 두번째 장면이승리하는 교회’(ecclesia triumphans)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4] 최후의 심판은 요한계시록 16 이후에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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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전도&선교2017. 7. 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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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선교팀을 위한 훈련자료입니다. 

단기선교의 (1)정체성, (2)목적, (3)협력, (4)소망의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2) 목적 http://hanjin0207.tistory.com/477

(3) 협력 http://hanjin0207.tistory.com/478

(4) 소망 http://hanjin0207.tistory.com/479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항상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신다고 선언합니다(14).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른 서술입니다. 바로 앞 절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전해줄 디도를 만나지 못해 복음의 문이 열린 드로아를 떠나야했던 장면을 언급했습니다(13). 바울은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였으며, 항상 개선가[1]를 부르며 선교지를 방문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을 반대했던 사람들 중에는 성공주의 원칙을 가지고 바울의 권위를 공격하기도 했지요. “하나님께서 바울을 세우셨다면 어디를 가든 성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자처하지만 선교지에서 저렇게 고난을 받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반대자들의 공격을 인식하고 있었던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변호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비유를 사용합니다(14). 바울은 향기의 비유를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합니다.[2]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는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되지만, 복음을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는 것이죠(15-16). 그러므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바울이 전한 복음 자체를 폄하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의 선교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는지 여부가 아니라 바울이 전한 복음에 대한 반응에 따라 도저히 건널 수 없는 큰 차이가 발생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감당하는 전도와 선교의 사명이 너무도 크고 무겁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이렇게 탄식합니다.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16b)[3] 바울의 적대자들은 바울과 자신들 가운데 누가 더 하나님의 사명에 합당한가?”를 질문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의 무게를 가늠해보지 못한 이들의 가벼운 질문이었습니다. 사명의 무게를 양쪽 어깨로 메어본 사람은 사도 바울과 같이 누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 자신만의 답을 내어 놓습니다(17). 바울을 반대하였던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강점을 내세우기 위해 복음에 자신들의 특징을 첨가하였습니다.[4]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강점이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교만 때문이었습니. 그러나 사명의 무게를 가늠해 바울은 자신에게 선교를 감당할 자격도 강점도 없기에 하나님으로부터’(from God), ‘하나님 앞에서’(before God), 그리고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말할 뿐입니다.[5]

올해 여름에도, 한국교회의 많은 단기선교팀이 나름대로의 목적과 비전을 선포하며 선교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팀의 구성 및 준비상황을 평가하며 누가 더 준비되었는가?’ 혹은 어느 팀이 더 많은 강점을 가졌는가?’를 질문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의 깊이와 무게를 가늠하지 못한 가벼운 질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과연 누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가?” “과연 어느 팀이 선교의 사명을 조금이라도 감당하기에 합당할 수 있는가?” “과연 나와 우리 팀은 어떻게 그와 같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가?”

아무리 질문을 해도 우리의 대답은 부정적입니다. 우리는 감당할 수 없고, 우리는 자격이 안되며, 우리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의 모습을 자각하는 그때, 예수님은 비로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19:26)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언어와 우리의 행동을 최대한 자제하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행동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모든 활동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가 되어 항상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며, 어디에서든 우리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게 하시는’(14)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14절의 승리하다’(쓰리암뷰오)는 로마 군대의 개선 행진을 묘사하는 단어다.

[2] 바울이 사용한 향기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의미는 승리이다. 로마 군대가 개선식을 거행할 때 로마 시는 향을 태우며 그들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헬레니즘계 유대교에서는 지혜를 향기로 묘사하곤 했다(cf. 시락 24:20-21). 그러나 바울이 명백하게 언급하는 의미는 구원받는 사람과 망하는 사람 사이의 심판적 의미다.

[3] 불트만(Rudolf Bultmann)은 이 질문의 의미를 어떻게 내가 그러한 사자가 될 수 있겠느냐?”로 해석한다.

[4]혼잡하게하다’(카페류오)는 포도주에 물을 타는 것과 같이 희석시킨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5] 원문에서 동사는 말하다뿐이며, 세 개의 전치사 구(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말하다는 동사 앞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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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전도&선교2017. 1. 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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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빌레몬서를 바울의 새가족 사역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빌레몬서는 짧은 한 장의 편지이지만, 그 안에는 오늘날의 새가족 사역이 지향해야 하는 중요한 원리들이 담겨있다. 그러나 동시에 빌레몬서에는 체계화된 어떤 조직이나 프로그램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바울이 빌레몬의 가정에 있는 교회에 새가족을 환대하는 어떤 조직이나 프로그램을 의도했다는 증거도 보이지 않는다.[1] 그저 오네시모 한 사람을 환대하여 그에게 복음을 전했던 사도 바울의 열정이 있었고, 오네시모를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라는 빌레몬을 향한 간곡한 부탁이 담겨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빌레몬서가 소개하는 새가족 사역의 주체는 교회의 조직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라는 새가족 사역자다.


돌이켜보면 사도 바울은 불신자였으며, 복음을 적대하는 박해자였다. 바울은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예루살렘으로 잡아가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길이었다. 바로 그때 바울의 발걸음을 예수님께서 직접 막아 서신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26:14) 예수님은 복음을 반대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바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고통과 아픔을 읽으며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으로 묘사하셨고, 예수님의 따듯한 환대와 권면 속에서 바울은 박해자의 길에서 전도자의 길로 돌아설 수 있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복음 전도자가 되었지만, 교회 지도자들은 바울의 회심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 장면을 사도행전은 이렇게 묘사한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9:26) 복음은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교회에 정착할 수 없었던 바울의 모습은 이후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옛 주인 빌레몬을 찾아갈 수 없는 오네시모의 모습과 흡사했다. 바울은 그때 예루살렘 교회의 새가족 환영회나 성경공부에 참여한 것이 아니다. 그 대신 바울의 새가족 사역자가 되기로 자처한 바나바를 통해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 정착할 수 있었고, 나아가 안디옥 교회에서 사도의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다(cf. 9:27; 11:25-26). 바울이 새가족 사역자가 되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기 훨씬 이전에, 바울은 바나바로부터 새가족 사역의 수혜를 받았으며 그것은 교회의 조직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한 개인의 따뜻한 환대와 섬김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새가족 사역의 실체는 교회의 조직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다. 사역자와 새가족 사이에 일대일의 관계가 형성되고 그 안에서 실행되는 전도, 정착, 양육이 새가족 사역의 실체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새가족 사역은 누가 만드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으며 바나바와 같은 새가족 사역자의 도움을 받았던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위에 누군가의 따뜻한 환대를 받아보았던 사람들이 새가족 사역자로 세워질 수 있으며 그들을 통해 새가족 사역은 실체를 갖게 된다.




[1] 빌레몬서에는 로마 시대의 노예제도 전반에 대한 바울의 입장도 드러나지 않는다. 빌레몬서는 오직 오네시모 사람의 경우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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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전도&선교2016. 12. 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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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새가족 사역의 목표는 전도, 정착, 양육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추구했던 전도, 정착, 양육의 중심에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분명한 이름을 가진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한 관계가 자리를 잡고 있다. 바울이 추구하는 전도는 바울과 오네시모의 관계 속에서, 바울이 추구하는 정착은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바울이 추구하는 양육은 바울과 빌레몬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새가족 사역이 전도, 정착, 양육을 목표로 할 때 그 형태는 사역자 한 사람과 새가족 한 사람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일대일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새가족 사역은 실체가 사라진 형식적 활동일 뿐이다.


새가족 사역에 있어서 구체적인 새가족 사역의 목표인 전도, 정착, 양육에 있어서 일대일의 원리를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128절에서 선언적으로 명시하였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전도와 양육의 자세를 묘사하는 이 짧은 구절의 목적어는 언제나 각 사람이다.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한 사람을 양육하여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데 집중하는 것이 바울이 추구했던 사역의 형태였다. 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형편에 집중하기보다 주변의 한 사람, 오네시모에게 집중하여 그를 전도하고 양육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요 그런 의미에서 바울의 새가족 사역을 엿볼 수 있는 서신이다.


신약성경에 포함된 사도바울의 서신은 교회를 수신자로 하는 편지들과 개인이 수신자로 되어 있는 편지들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 서신들(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은 바울이 자신의 사역을 마무리하며 기록한 바울의 후기 서신에 속한다는 점이다. 바울은 자신의 전도와 선교를 마무리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이 발휘되고 있는 여러 지역의 전체 교회를 대상으로 서신을 작성하기보다는 자신의 뒤를 이어 전도와 양육을 감당해야 하는 개인에게 정성을 다해 편지를 기록한다. 시간이 지날 수록 바울에게는 전도와 선교 사역의 열매가 자신이 개척한 교회의 숫자나, 교회의 성장 속도가 아니라 디모데,’ ‘디도,’ ‘빌레몬,’ ‘오네시모와 같은 분명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개인이라는 사실이 더욱 명백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새가족 사역은 교회가 함께 하는 사역이요, 지역 교회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사역이다. 그렇기에 지역 교회마다 새가족 사역을 위한 체계화된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이를 운영하는 전문화된 조직이 필요하다. 그러나 새가족 사역의 초점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될 수 없다. 새가족 사역의 목적이 전도, 정착, 양육이라면 새가족 사역은 언제나 믿음을 시작하고 믿음의 뿌리를 내리며 믿음의 성숙을 경험하는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새가족 사역의 열매는 프로그램도 아니요, 성경공부 수료자의 숫자도 아니라 우리의 전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개인이요, 우리의 섬김으로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영적 성숙을 경험한 분명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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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전도&선교2016. 12.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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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그의 동역자인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그러나 빌레몬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에는 바울이나 빌레몬에 못지않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오네시모다. 그런 점에서 빌레몬서는 바울과 빌레몬의 양자 관계를 넘어 바울, 빌레몬, 그리고 오네시모 사이의 삼자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 바울과 빌레몬의 관계,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 그리고 오네시모와 바울의 관계에서 이 편지를 기록하고 있는 바울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빌레몬서의 내용을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바울과 빌레몬의 관계에서 바울이 기대하는 바는 빌레몬이 영적으로 성숙하는 것이다. 빌레몬은 사랑과 믿음의 사람이었다( 5).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지역 교회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바울은 여전히 빌레몬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선한 일에 더욱 힘쓰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14b, 20). , 바울은 빌레몬이 보여주는 현재의 믿음과 사랑에 만족하지 않고 그가 지속적으로 영적 성숙을 경험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믿음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그가 영적으로 성숙하도록 돕는 일을 양육이라고 부른다면 빌레몬서에 등장하는 바울의 명백한 의도 가운데 하나는 바로 양육이다. 그리고 빌레몬서를 살펴보면 양육의 몇 가지 원리들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양육의 특징이다. 바울은 빌레몬이 이미 믿음과 사랑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그의 믿음과 사랑이 반복하여 표현되어야 한다고 권면한다. 지금도 바울과 많은 성도들은 빌레몬으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7). 그런데 바울은 오네시모의 사건을 계기로 빌레몬이 다시 한 번 선행을 베풀고 이로 말미암아 바울 자신과 성도들이 기쁨을 얻게하라고 권면한다(20). 그런 점에서 영적 성숙 목회적 측면에서의 양육 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지속성’(continuity)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가 신앙생활의 경험이 짧든지 길든지 상관 없이 지속적인 영적 성숙을 추구해야 하며, 교회는 그를 돕기 위해 지속적으로 양육해야 한다.


빌레몬서는 양육의 근거에 대해서도 통찰력을 준다. 바울은 빌레몬의 종이었지만 지금은 멀리 도망쳐온 오네시모를 그의 주인 빌레몬이 사랑으로 용납할 것을 권면하면서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선한 일이라고 묘사한다( 14). 그렇다면 바울은 어떠한 근거로 빌레몬에게 이와 같은 선한 일을 행하라고 권면하는가? 바울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진 빚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빌레몬 역시 바울 자신에게 진 빚이 있음을 언급한다( 19). 바울은 빌레몬이 자신에게 어떠한 빚을 지었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있기에 바울은 오히려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빌레몬의 빚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러 해석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빌레몬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영적인 축복에 대한 빚이라는 주장이다.[1] 빌레몬이 믿음과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나아가 지속적으로 믿음과 사랑의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근거, 곧 모든 영적 성숙(혹은 양육)의 근거는 오직 인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다.


마지막으로, 빌레몬서는 양육의 내용에 대해서도 중요한 암시를 준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빌로몬으로부터 도망쳐온 사실을 잠시 떠나게 된 것이라고 표현하면서 이에 대한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빌레몬]으로 하여금 [오네시모]를 영원히 두게 함이라고 강조한다( 15). 여기에서 떠나게 된 것이라는 번역의 헬라어 원문은 단 하나의 단어(에코리스테)인데 이른바 신적 수동태라는 어법이 사용되었다. 신적 수동태란 신약성경이 하나님의 역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라는 주어를 생략하고 인간을 문장의 주어로 내세우면서 수동태의 동사를 사용한다.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문장에 등장하지 않지만 인간의 활동 뒤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암시하게 되는데 이러한 언어적 기술을 신적 수동태라고 부른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친 것은 오네시모 개인의 악한 행동이었지만, 바울은 신적 수동태라는 방식으로 그 뒤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음을 암시한다. 오네시모는 자의적으로 악한 행동을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그리스도인 형제로 받아들이는 계기로 만드셨다(cf. 45:4-8). 바울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를 전하며 빌레몬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할 것을 권면한다. 그러므로 빌레몬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양육(영적 성숙)의 내용은 사람의 관점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확인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다.


새가족 사역의 목표에 양육을 포함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교회를 처음 방문한 사람 혹은 교회에 등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새가족사역은 그들을 전도하고 그들이 지역 교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집중하고, 믿음의 지속적인 성장은 별도의 프로그램이나 조직을 통해 추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양육의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는 지속성에 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그 시점부터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그 순간까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베풀어주신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는 영적 성숙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 여기에 새신자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새가족 사역이 지역교회의 모든 양육을 주도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섬기는 새가족의 영적 성숙은 새가족사역자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1] "[빌레몬] 바울에게 자신의 영적 생명을 빚졌고, 그것은 오네시모가 입히고 바울이 갚아야 빚보다 훨씬 것이었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빌레몬은 오네시모가 회심했을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체험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피터 T. 오브라이언, <골로새서 빌레몬서>,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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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