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2017. 12. 1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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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장소의 제약을 받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시간의 제약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거나, 현재 시간을 무시하고 바로 5년 뒤 혹은 10년 뒤로 앞서 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2016년을 보내고 2017년을 맞이하며, 열두 달과 365일로 구성되어 있는 2017년을 하루하루 살아가게 됩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약은 우리의 한계를 명확히 해줍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난 장소가 있고 태어난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살았던 모든 사람에게는 이 세상을 떠난 바로 그 시간과 그 장소 역시 주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고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이토록 자명한 진리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마치 자기 자신은 영원히 살아가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 90:12)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계산하는 사람, 그래서 나 자신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분명한 한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한계를 깊이 깨달은 사람만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때 사도 요한은 이 글을 받아 읽게 될 독자들의 형편을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도 요한이 염두에 두었던 사람들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성도들입니다. 그들 역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이 다스리고 있었던 소아시아라는 지역적 한계 안에 있었으며, 기독교를 박해하였던 네로와 도미티안이 로마의 황제로 앉아 있는 시간적 한계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속국인 소아시아라는 공간적 제약, 기독교를 박해하는 네로와 도니티안 시대라는 시간적 제약을 도무지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요한계시록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소개합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패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 1:8)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철저하게 인정하는 것. 나에게도 삶의 끝이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는 것. 그것은 절망의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자 장 칼뱅은 자신의 모든 일이 창조주의 손 안에 있음을 깨닫고 겸손한 마음으로 두려움과 경외함에 복종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섭리를 바르게 깨달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1]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향해 달려갈 때, 하나님은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한한 소망을 선물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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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ohn Calvin, Institutes, 1. 1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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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절기설교2017. 12. 1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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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한해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연말연시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오늘을 근거로 내일을 예측하여 그 결과를 발표하죠. 그 중에서는 희망차고 기대가 되는 예측이 있는 가하면,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고 때로는 두려움이 생기게 하는 미래에 대한 예측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우리 그리스도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어김없이 다가오는 내일에 대해 어떠한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참된 신앙인이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첫째로, 참된 신앙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한계를 발견합니다.

 

참된 신앙인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 사람들보다 삶의 기준이 조금 높지요. 사람들의 생각이나 우리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이 아니라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기에 더욱 엄격한 경건과 선행이 우리들에게 요구됩니다. 그러므로 또 다시 지난 일년을 돌이켜보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과 성경의 기준에 도달하기에는 참으로 멀었다고 스스로를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인으로 올해에는 기도생활을 열심히 해보겠다고, 혹은 성경을 많이 읽어보겠다고, 혹은 열심히 전도하고 봉사하겠다고 다짐하며 한해를 시작하였지만 연말이 되면 우리의 모습은 여전히 부족한 것뿐입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한 남성으로, 가장으로 가정을 위해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겠다고 노력해보았지만 여전히 식구들에게 미안하고 더 잘 해주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들지요.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연약한 죄인일 뿐인데, 성경의 기준은 온전한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우리에게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신앙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미래의 소망을 경험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기준과 나의 모습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차이를 인식합니다. 아니, 시간이 흐를수록 성경의 기준과 나의 모습 사이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통감합니다. 바로 그때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기준과 나의 현실 사이를 채워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으로 우리 하나님을 찾게 되지요.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 사실을 너무도 멋진 한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면 이 말씀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을 “보좌에 앉으신 이”로 묘사합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선언하십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이 말씀하셨다면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할 것 같은데, 오늘 본문은 여기에 한 말씀을 덧붙이지요.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지난 일년, 리의 모습을 진실하게 돌아본다면 그 어디에서도 소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을 지금도 붙잡고 계신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그리고 하늘 보좌에 앉으신 그분께서 신실하고 참되다고까지 덧붙이시면서 선언하셨다는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통해 내일에 대한 소망을 품을 수 있지 않겠습니다.

내가 [하나님께서 친히]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날마다 새롭게 빚으시고, 마지막 날에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시간이 흐를수록 소망이 넘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에게는 시간이 흐르고 또 한해가 지나간다는 사실은 절망과 포기의 이유가 아니라 내일에 대한 기대와 소망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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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
절기설교2016. 12. 2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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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6)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위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인류의 구세주가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9 6절은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인류의 구원은 한 아기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거룩한 탄생이라는 의미로 성탄이라 부르죠. 그런데 구세주의 탄생을 예언하는 이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입니다. 한 아기가 바로 우리에게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인류의 구원자는 저 천상에서, 혹은 신비한 어떤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곧 인간 세상 안에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 예언의 성취를 기록하고 있는 복음서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a)

 

하나님이신 바로 그분께서 육신이 되셨습니다. ,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중요한 구절은 바로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입니다. 예수님께서 연약한 한 아기로 태어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연약하기 짝이 없는 우리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 오셨다는 의미입니다. 이사야 9 6절의 예언처럼 인류의 구원자가 한 아기로 우리에게태어난 바로 그 사건, 그것이 거룩한 성탄의 의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의 피상적인 의미 곧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축하는 날이라는 사실 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의 행사와 들뜬 분위기에는 동참하면서도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에게는 별로 관심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다는 말씀, 곧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우리 개인의 삶 깊숙이 찾아오신 사건이라는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십니까? 성탄절을 맞이하여 온 인류의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 개인의 마음 속에 영접하지 않는다면 2016년의 성탄절 역시 매년 찾아오는 그저 12월의 한날에 불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9 6절은 계속해서 이렇게 예언합니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을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1531년 성탄절 설교에서 이사야 9 6절을 본문으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해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그는 또한 우리에게주어졌습니다’. ‘준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바로 그는 우리에게, 우리 손에 주어진 선물이라는 말입니다.”[1]

 

여러분, 크리스마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신 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받았지요. 생명을 선물로 받았고, 필요한 물질과 건강과 가정과 친구와 교회와 그 밖에 수많은 것들을 우리는 선물로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한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가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탄생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부활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승천은 우리에게 최후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재림은 우리에게 참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위대한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광이 되는 것입니다.

 

올해의 성탄절을 기다리며 2000년 전 예루살렘의 마구간으로 오셨던 그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을 열여 영접하십시오. 바로 그때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마음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가장 크고 가장 위대한 선물이 되십니다.

 


[1] 마틴 루터,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1531 12 25일 성탄절 오후 예배 설교), 권진호 역, <그말씀>, 200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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