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

[부활절] 요한복음 20장 19-29절 “다시 찾아오시는 예수님”

Rev. Hanjin Lee 2025. 4. 29. 09:23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며 부활절 예배를 드렸지요. 그러나 기독교의 부활절은 하루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순절이 40일 동안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절기라면, 부활의 절기는 부활절을 시작으로 성령강림주일까지 모두 50일을 지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부활절 두 번째 주일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 다시 한번 옆에 계신 분들에게 이렇게 선포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아멘. 계속해서 부활의 절기를 보내는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은 기쁨과 감격과 행복이 가득 넘치기를 바랍니다. 


닫힌 문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바로 그날, 곧 부활절 저녁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이 어떻게 시작합니까?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라고 되어 있네요. 우리가 지난 주에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바로 그날 새벽에는 예수님을 사랑했던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다시 살아나셨기에 더 이상 무덤에 안치되어 있지 않으셨지요. 그리고 여인들은 천사들로부터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부활절 새벽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리고 하루의 시간이 거의 흘러서 그날 저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그날 하루 동안 제자들에게는 어떠한 일이 있었을까요? 몇 가지만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제자들은 여인들로부터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했던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요 20:1-2). 여인들에게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이 직접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들도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지요(요 20:3-10). 그런데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제자들은 더욱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요. 마침내 막달라 마리아가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소식입니다(요 20:8). 이처럼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그날, 하루가 지나는 동안 예수님의 열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여러 차례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그날 하루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수차례 들었던 제자들의 마음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으로 말미암아 모든 슬픔과 두려움과 걱정을 다 물리치고 부활의 소망과 기쁨으로 가득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오늘 본문이 시작하는 19절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19a절)

여기에 그들의 마음 상태를 묘사하는 단어가 등장하네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바로 ‘두려움’이네요. 그들은 여전히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였습니다. 며칠 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유대인들이 여전히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을 찾아 그들에게 해를 끼치려 하고 있으니, 제자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문을 꼭 닫고 숨어 있었던 것이지요. 어찌 그들이 방문만 꼭 닫고 있었겠습니까? 그들의 마음 문도 꼭 닫고 두려움 속에서 벌벌 떨고 있었겠지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의 소식을 딱 한 번만 듣고도 내 마음의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모든 염려와 불평이 다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하여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을 단 한 번만 듣고도 부활의 확신, 천국의 소망,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가지고 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이미 수차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의 소식을 전해 들은 열한 제자들의 마음에도 두려움과 불안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으니, 그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절을 이미 맞이하였지만 여전히 마음에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한 스스로를 바라보며 너무 자책하지는 마십시오. 그렇게 마음이 연약하여 늘 흔들리고 있기에, 우리 모두가 오늘도 부활의 주님을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에 이 예배의 자리를 참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방문

예수님의 제자들은 분명 수차례에 걸쳐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마음이 두려움에 가득하였고, 문을 걸어 잠그고 나아가 그 마음의 문도 꼭 닫아 두었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 장면에서도 제자들에게는 칭찬받아 마땅한 행동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바로 그 주일 저녁에 열명의 제자들이 한 장소에 모여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여서 열심히 기도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후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행하였던 것처럼, 간절히 기도하였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소망이나 기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흩어지지 않고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실 수 있었고 예수님은 그들을 통해 초대교회의 기초를 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찾아가십니다. 본문 19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19a절)

제자들은 두려워 문을 걸어잠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문을 닫고 있어도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그들을 넉넉히 찾아가십니다.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19b절)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하나 꼽는다면 그것은 “오사”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직접 찾아가십니다. 그들이 굳게 닫아둔 문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제자들의 굳게 닫힌 마음 안으로 예수님께서 쑥 들어가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들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걱정과 염려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그들의 굳게 닫힌 마음에 쑥 들어가셔서 그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선포하여 주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리고 예수님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제자들에게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시는데요. 본문 20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절)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 주셨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늘 함께 계셨던 예수님을 제자들이 모를 리 없지요.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직접 만나주신 것만으로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장면만으로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친절하게 못 박혔던 손도 보여주시고, 창이 찔렸던 옆구리도 보여 주시네요. 그렇게 제자들의 마음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이 찾아올 수 있도록 제자들의 마음에 확신과 위로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제자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하였습니까? 20절의 뒷부분이지요.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성도 여러분,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활의 말씀을 한번 들었다고 우리 마음의 모든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 아닙니다. 부활절도 보내고 부활의 말씀을 들었지만 여전히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것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염려와 걱정이 가득하더라도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 자리에 지금 앉아 계시니 정말 잘 하신 것입니다. 두려움에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던 제자들을 찾아가신 예수님께서, 바로 지금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주실 것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나아가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할 수 있는 믿음도 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지금 여러분의 닫힌 마음을 찾아가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 걱정이 변하여 소망이 되고, 두려움이 변하여 기쁨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두번째 방문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바로 그날 저녁,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모여 있던 그 자리를 찾아와 주셨지요. 그로부터 한 주가 지났습니다. 부활주일을 지나고 그다음 주일을 맞이하게 된 것이지요.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로 바꾸면 부활절 두 번째 주일이 되겠네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날도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모여 있던 열한 명의 제자들 중에는 지난 주일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던 제자가 있었지요? 누구입니까? 바로 도마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도마는 부활절부터 한 주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본문 26절은 이렇게 묘사하네요.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26a절) 

여러분 본문 26절이 묘사하는 제자들의 공동체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대부분의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이미 만났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부활의 주님을 다 만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본문 26절이 묘사하는 제자들의 공동체, 곧 부활절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하는 제자들의 공동체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확신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 안에는 아직 부활의 주님을 믿고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 오늘도 우리가 함께 참여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교회의 순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하는 분들이지요. 교회 안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는 성도들로만 채워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모든 성도들이 믿음과 확신 속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순수한 신앙 공동체를 추구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이 묘사하는 제자들의 공동체는 그렇게 순수성만 강조하는 공동체가 아니었어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도 있었지만 아직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한 제자들도 그 자리에 함께 모여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부활절 두 번째 주일, 예수님은 아직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했던 도마를 위해 다시 한번 제자들이 모여 있는 그 장소를 찾아가십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6절)

이번에도 주목해야 할 단어는 무엇일까요? “오사”라는 단어지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모임에 다시 찾아가십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다시 찾아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지난주에도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찾아가셨을 때 도마라는 제자가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은 도마 개인의 책임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예수님은 지난주와 똑같이 제자들이 모여 있는 그곳에 다시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은 조금도 귀찮다 여기지 않으시고, 한 주 전과 동일한 행동과 동일한 말씀을 똑같이 하시네요. 그리고 이번에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던 도마에게 믿음과 확신을 주시기 위해 행동하십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7절) 

여러분, 이 장면에서 도마라는 개인 인물이 특별히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한 주 전, 예수님께서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기 전까지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문을 걸어 잠겄잖아요. 그러므로 다른 제자들과 도마의 차이는 믿음이 강한 사람이냐 믿음이 약한 사람이냐의 차이라기보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한 주 전에 만났느냐 한 주 후에 만났느냐는 시간의 차이뿐입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가 정말 집중해야 할 대목은 예수님께서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도마를 위해, 한 주 뒤에 제자들의 모임에 한번 더 찾아와서 예수님의 손과 예수님의 옆구리를 또다시 보여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도마를 찾아가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자, 이번에는 도마가 정말 놀라운 신앙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8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 안에 이와같은 믿음의 고백이 날마다 새롭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분들이 바로 이곳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께서 나의 주님이시고 예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믿음의 역사가 매주 우리 교회 안에 가득히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조금 빠를 수는 있고 조금 늦을 수는 있지만,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부활의 기쁨과 부활의 소망이 가득해지기를 바랍니다. 


부활절이 지난 그 다음 주일, 예수님은 아직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했던 도마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 제자들의 모임에 직접 찾아가십니다. 예수님의 이 두 번째 방문은 당연히 도마 개인에게 큰 유익이 되었겠지요. 그러나 성도 여러분,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이 두 번째 방문은 도마에게만 유익했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른 열 명의 제자들에게도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되었을까요? 물론, 열 명의 제자들은 한주 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 한번 부활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여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고 부활의 확신과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모임에 다시 찾아오시고 도마에게도 예수님의 못 박히신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주실 때, 그 장면을 곁에서 지켜보던 열 명의 제자들은 다신 한번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부활의 기쁨과 부활의 소망으로 그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었겠지요. 

사랑하는 목천의 모든 성도 여러분, 부활의 절기를 보내는 이 기간 동안 우리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역사가 매주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매주 우리 교회를 찾아오셔서 아직 부활의 복음을 체험하지 못하신 분들도 예수님을 만나고, 이 자리에 함께 모여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도 날마다 부활의 주님을 지속적으로 만나는 은혜의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우리의 마음은 연약하여 세상의 걱정과 두려움에 쉽게 잠식당하지만, 
매주 다시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부활의 생명, 부활의 기쁨, 부활의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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