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

[부활절] 마가복음 16장 1-8절 “무덤에서 뛰쳐나가”

Rev. Hanjin Lee 2020. 3. 28. 07:20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셔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다시 살아나신 부활을 기념하는 2025년의 부활주일이지요.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여러분 모두의 마음에 예수님의 다시 살아나신 부활로 말미암은 영생과 기쁨과 소망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Move One. 부활 체험 이전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하였던 여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 1절이지요.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였지요.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돈을 받고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팔아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예수님의 곁을 지켰던 사람들이었고, 그만큼 예수님을 사랑했던 여인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미 부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만 자리 잡고 있을 뿐, 예수님의 부활은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지 못했던 여인들의 몇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헛된 노력’입니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1절)

이 여인들이 무엇을 하였습니까?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해 향품을 사다 두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시간은 언제나 저녁부터 시작됩니다. 그리하여 안식일에 해가 지면 안식일이 끝나게 됩니다. 아마도 이 여인들은 안식일, 곧 토요일에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다가 해가 지자마가 이동을 해서 향품을 사두었겠지요. 바로 다음날 새벽, 곧 주일 새벽에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미리미리 부지런하게 준비한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들의 행동 – 곧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향품을 사두었던 그들의 행동 – 이 필요했습니까? 아닙니다. 조금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부활하여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에게 시신에 바르는 향품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지 못한 여인들은 필요 없는 노력, 곧 헛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지 못했던 여인들은 먼저 헛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들은 ‘헛된 노력’에 이어, ‘헛된 장소’를 찾아갑니다.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2절) 

여러분, 일찍 일어나면 무엇합니까? 새벽부터 부지런이 움직이면 무엇합니까? 그들의 방향이 잘못되었는데요. 죽은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에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헛된 장소를 향해 빨리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그리하여 새벽부터 부지런이 움직였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니 그들은 결국 헛된 장소를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을 경험하지 못한 여인들의 특징으로 ‘헛된 노력’과 ‘헛된 장소’를 말씀드렸지요. 마지막으로 그들은 ‘헛된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3절)

무덤을 향해 걸어가면서 그들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습니까? 무덤의 그 무거운 돌을 어떻게 옮길 수 있을지를 걱정하네요. 그런데 여러분, 이 여인들의 걱정은 문자 그대로 헛된 걱정이었지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이 헛된 걱정에 사로잡혀 헛된 장소를 찾아가는 헛된 노력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말씀 드린 것처럼, 이 여인들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을 끝까지 지켰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애정과 그들의 사랑은 그 어떠한 제자들보다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지요. 그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든 체험하든 상관없이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느냐 그렇지 않느냐,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했느냐 그렇지 않느냐,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며 살아가시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오늘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이 헛된 것만 쫓아가는 헛된 행동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많은 열매를 맺는 풍성한 신앙생활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Move Two. 부활의 메시지와 체험 

예수님을 사랑했던 여인들은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지요. 그 결과 그들은 헛된 신앙생활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부활의 말씀을 선포하여 주시는 은혜입니다. 여인들이 무덤에 들어가 보니 그곳에는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앉아있었습니다. 곧 천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가 여인들에게 부활의 말씀을 전하여 줍니다. 6절의 뒷부분을 보십시오. 그 천사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가 살아나셨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고. 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은 더 이상 죽은 이들이 안치되어 있는 무덤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그리하여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고 부활의 메시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전한 말씀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제 부활의 메시지를 전해 들은 여인들에게 사명을 주시는데요. 오늘 본문 7절을 보십시오. “가서” 이제는 “[에수님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하라! (7절) 이제는 더 이상 헛된 장소를 찾아가는 헛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이지요. 이제는 가서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천사가 부활의 복음을 전하라고 지정하여 준 대상이 누구입니까? 7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들과 베드로입니다. 가장 먼저 제자들에게 찾아가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라고 가르쳐 주시면서 특별히 베드로의 이름을 언급하는 장면을 눈에 띕니다. 오늘 본문 7절에서 천사는 왜 제자들에게 알리라고 말씀하면서 특별히 베드로의 이름을 언급했을까요? 베드로가 제자들 가운데 대표성을 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의 이름은 대표성을 띄는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지요.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그 과정에서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을 모른다고 예수님의 이름을 저주하면서 세 번이나 부인했던 사람이잖아요. 그 사건이 기껏해야 이삼일 전의 사건이었거든요. 그런데 천사는 분명하게 베드로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라고, 그리하여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던 베드로도 다시 일어나 부활의 증인이 되는 사명자로 세워줘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중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는 그 순간까지 예수님 곁을 지켰던 여인과 같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며 섬겼던 분들도 계시지요. 반면 우리 중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던 바로 그 장면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인하였던 베드로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거부하였던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곁을 끝까지 지켰던 분들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던 분들이나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바로 지금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복음을 전하여 주시고, 우리 모두를 부활의 증인을 부르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의 심령마다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부활의 메시지가 들리기를 바랍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그리하여 우리 마음의 모든 절망과 슬픔과 괴로움이 다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은 기쁨과 소망과 충만한 생명으로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Move Three. 삶의 변화 (Great Start)

천사가 전해준 부활의 소식과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받은 여인들의 반응이 오늘 본문의 마지막 8절에 등장합니다.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8절) 

여자들의 반응은 천사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행동합니까? 8절 중간이지요. “무덤에서 도망하고” 그런데 여러분, 이 부분을 새번역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그들은 뛰쳐나와서” 네, 그렇습니다. 그 여인들은 무덤에서 뛰쳐나왔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지 못하였을 때, 부활의 메시지를 듣기 이전에 그들은 헛된 장소인 무덤을 향해 갔지요. 그 과정에서 헛된 노력도 기울였고 헛된 걱정도 했습니다. 그렇게 헛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 부활의 소식이 전해지고, 부활의 증인이 되는 사명의 말씀이 들리니 그들은 헛된 장소 헛된 노력 헛된 걱정으로부터 뛰쳐나와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향해 달려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목천의 모든 성도 여러분, 
2025년 부활주일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의 삶에도 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의 소식이 우리의 심령을 울림으로 말미암아, 
헛된 장소 헛된 노력 헛된 걱정으로 가득했던 우리의 헛된 삶에서 뛰쳐나와, 
이제는 부활의 주님으로 말미암아 영생과 소망과 기쁨으로 가득한 신앙생활이 펼쳐지시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우리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해 
힘차게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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