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장 8-13절 “영원에 잇대어 살게 하소서”
오늘은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가운데 한 소절을 언급하며 설교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찬송가 9장의 4절에는 이런 가사가 등장합니다.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시옵고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게 하소서”이 짧은 하나의 문장, 이 짧은 하나의 기도문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찬송가 9장이 어떻게 기도합니까?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시옵고”여기에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고난도 있고 슬픔도 가득하다는 것을 전제하지요? 우리는 땅을 디디며 죄악 가득한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우리의 삶에는 고난도 많고 슬픔도 가득하기 마련입니다. 그때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가사의 정수는 바로 그 뒤에 이어지는 구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시옵고” 그 다음이 무엇입니까?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게 하소서.” 고난도 많고 슬픔도 많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 모든 과정을 이기게 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정수는 무엇입니까? 신앙의 더욱 중요한 본질은 이 세상을 살아가며 고난도 경험하고 슬픔도 경험하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도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여기에 ‘잇대어’라는 표현이 참 독특하지요. ‘잇대다’는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맞닿아 있다,’ ‘기대어 있다’는 의미잖아요. 그러므로 영원에 잇대어 살아간다는 의미는 우리가 지금 저 영원한 천국에 완전히 들어가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우리의 몸은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한계에 철저히 묶여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인생은 어디까지나 유한한 인생이요, 고난과 슬픔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지금도 우리는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고 있거든요. 맞닿아 살아갑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자리는 고난도 많고 슬픔도 많은 이 유한한 세상이지만, 유한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저 영원한 천국을 경험하고 저 영원한 천국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것, 바로 그것이 영원한 천국에 잇대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고난도 많고 슬픔도 많은 이 세상을 살아가셨지요?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고난도 이기고 슬픔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 모두가 유한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저 영원한 천국을 경험하고 나아가 이 세상에서 펼쳐지는 여러분의 하루하루의 삶이 늘 천국의 기쁨과 평강으로 가득한 천국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나갈 것
우리는 오늘까지 세주째 고린도전서 13장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은사와 능력과 재능이 아무리 크고 화려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선언했지요. 그것이 고린도전서 13장 1절부터 3절까지 말씀으로, 두주 전 우리가 함께 묵상했던 내용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진실한 사랑의 특징이 무엇인지 노래합니다. 그것이 고린도전서 13장 4절부터 7절의 내용인데 우리는 지난 주에 그 본문을 함께 묵상해 보았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사랑의 가치를 노래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 13장 8절부터 13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는 모든 내용은 하나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는데 그것은 ‘영원’이라는 관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지금 우리의 눈앞에 있는 것들을 평가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 내용이 본문 8절부터 등장합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여기까지는 사랑에 대한 노래입니다. 그 다음을 주목하십시오.)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8절)
여기에 등장하는 예언의 은사, 방언의 은사, 지식의 은사는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서로 자랑하며 뽐내던 은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예언도 결국은 폐하고, 방언도 시간이 지나면 그치고, 지식도 마침내 폐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는 말씀이지요. 어디 예언이나 방언과 같은 은사뿐이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래서 때로는 사람들에게 자랑도하고 싶고 다른 누군가가 자랑하면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드는 바로 그것을 영원의 관점으로 한번 바라보면 우리는 어떠한 평가를 내리게 될까요? 지금 우리의 눈에 그토록 크고 중요하게 여기는 그것을 영원의 관점으로 바라보아도 여전히 중요할까요? 아니면 영원의 관점으로 바라보니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모두 사라져버릴 덧없는 것들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성도 여러분,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이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면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영원이라는 동일한 관점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리네요. 본문 9절입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9절)
영원의 관점이 아닌,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가운데 지식이 많은 사람도 있고 지식이 부족한 사람도 있습니다. 영원의 관점이 아닌, 지금의 관점에서 평가하면 신앙이 성숙한 사람도 있고 아직 신앙이 미숙한 사람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을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니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많이 배운 사람이나 적게 배운 사람이나, 성령의 은사를 충만하게 받은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아무런 구별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지금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부분적인 지식만 가지고 예언하고 부분적인 정보만 가지고 불완전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결론입니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0절)
사도 바울은 진실한 사랑의 특징을 말하면서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고 말했지요? 그럼요.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 재능, 은사, 재물, 권세 그 모든 것이 잠시 있다 사라질 덧없는 것인데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겠어요. 바울은 진실한 사랑의 특징을 말하면서 사랑은 교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네, 물론이죠.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모두가 불완전한 것뿐인데 어떻게 교만할 수 있겠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영원이라는 관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며 나 자신을 바라볼 때, 우리는 시기하지 않습니다. 자랑하지 않습니다. 교만하지 않습니다. 영원을 바라보며 영원에 잇대어 살기에 우리는 완전한 것이 올 때까지 오래 참으며 결국 진실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
사도 바울은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자랑거리를 바라보며 평가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자랑거리가 그렇게 자랑할 것이 못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지요. 사도 바울은 영원이라는 관점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며 평가해보았습니다. 우리에게는 교만할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여러분, 사도 바울이 영원이라는 동일한 관점으로 계속 살펴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폐하여지는 것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아름다워지고 더욱 완전해지는 것도 있었습니다. 본문 1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이아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1절)
본문 11절의 이 말씀은 앞에서 언급한 내용, 곧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을 한다는 말씀의 반복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면 앞의 내용과는 강조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앞에서 바울은 영원의 관점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이 불완전한 모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11절로 넘어와서는 새로운 강조점을 첨가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1절의 뒷부분입니다.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물론 지금 우리의 모습은 불완전한 미완성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의 모습이 결코 마지막 결론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마치 어린 아이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장성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우리도 때가 되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는 우리의 영적인 모습도 완전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 동일한 강조점이 본문 12절에도 등장합니다. 우리 한 목소리로 본문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2절)
사도 바울 시대의 거울은 구리나 청동과 같은 금속으로 만들었기에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우리 시대의 사물로 바꾸어 표현하면, 먼지가 잔뜩 낀 창문으로 밖을 보듯 희미하다는 것이 되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의 영적인 지식이 꼭 그렇습니다. 그러나 본문 12절이 무엇을 말씀합니까?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것이 우리가 도달하게 될 궁극적인 모습입니다. 본문 12절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부분적으로 압니다. 네, 이것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 맞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강조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우리의 영적인 지식이 얼마나 완전해집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아시는 것처럼 완전한 상태가 마침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시간이 흐르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 이 세상의 모든 자랑은 다 사라집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아름다워지고 더욱 완전해지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이지요. 아니 목사님, 시간이 지나고 나이만 먹으니 기억력도 예전같지 않고 건강도 예전같지 않아서 교회 봉사도 예전만 못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완전해진다고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이렇게 질문하고 싶은 분들도 계시지요? 그러나 저의 대답은 확고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분명하게 말씀하기 때문이지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아름다워지고, 더욱 완전해지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선포하였던 것처럼, 우리의 겉사람은 날아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코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보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은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 다 사라지겠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금도 빚어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제 지난 세주간 살펴보았던 고린도전서 13장의 마지막 결론을 살펴볼 때가 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고린도전서 13장,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구절이지요. 오늘 본문의 13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13절)
이 구절에서 많은 분들이 주목하는 대목은 본문 13절의 뒷부분인듯합니다.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사랑이 제일이니, 믿음과 소망은 사랑보다 못한 덕목이라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그런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자, 본문 13절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우리가 집중해야 할 대목은 13절의 뒷부분이 아니라 13절의 앞부분입니다. 13절이 가장 먼저 무엇을 선포합니까?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어떻다고요? “항상 있을 것인데”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잠시 있다 사라질 것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완전해지는 것을 비교하며 이야기했지요. 이 세상의 것들, 이 세상의 자랑은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집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기는 커녕 날로 새로워지며 마지막날에는 온전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13절이 분명히 알려주시잖아요.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이요. 우리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실 일들에 대한 기대와 소망 그리고 내 곁에서 함께 있는 식구들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 이 세가지야 말로 마지막까지 항상 있게 될 것입니다. 물론, 지금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나의 믿음이 연약하지요. 지금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천국에 대한 나의 소망은 너무도 자주 흔들리지요. 지금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내 곁의 이웃을 향한 나의 사랑은 미약하기 짝이 없지요. 그러나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소망과 우리의 사랑은 계속해서 자라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해집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마음에 품고 있는 그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영원토록 아름답게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재물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 불편합니다. 그러나 재물을 잃어버리는 것 괜찮습니다. 어차피 재물은 이 세상을 살 때 잠시 필요한 것뿐이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 사라져 버리고 말잖아요.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결코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으니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지요. 그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 천국까지 이르게 하잖아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계획했던 일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 일이 실패로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최선을 다해 준비했으니 성공했다면 더 좋겠지요. 그러나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성공도 실패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 사라져 버리고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거든요.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기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나를 위해 새 일을 행하시리라는 소망이지요. 그 소망만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실패에도 다시 일어나 새로운 내일을 향해 힘차게 달려갈 수 있잖아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원치 않게 건강이 상하는 경우도 있지요. 몸이 아프고 질병이 찾아온다는 것, 너무도 힘들고 괴롭지요. 그러나 지금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건강이 조금 상한 것 괜찮아요. 건강이라는 것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만 잠시 필요한 것이잖아요.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일까요? 다른 어떤 덕목보다 뛰어난 최고의 덕목인 사랑만큼은 반드시 여러분의 마음에 끝까지 간직하셔야 합니다. 바로 그 사랑이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삶과 영혼을 가장 아름답게 빛내는 최고의 덕목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X2)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이 말씀이 여러분 모두의 삶 가운데 온전히 실현되어,
여러분의 삶과 가정에 믿음의 역사와 소망의 인내와 사랑의 수고가 언제나 충만하여져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아름답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여러분의 삶과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