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장 1-12절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두 가지 은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곧 방언과 예언이다. 방언과 예언은 인간의 입술에서 나오는 언어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이라면 방언은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지만 예언은 듣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다. 방언과 예언에 대한 바울의 입장은 본문 1절에 명백하게 드러난다.
(1) 사랑을 추구하며
(2)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3)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고전 14:1)
위의 구절에 숫자를 붙여둔 이유는 바울의 주장이 하나의 논리적 흐름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이 사랑에 대해 길게 노래하였던 이유는 사랑이 성령의 은사를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바울은 가장 먼저 사랑을 언급한다(1번). 또한 방언과 예언이라는 은사를 다루고 있기에, 신령한 것(성령의 은사)을 사모해야 한다고 권면한다(2번). 그러면 1번과 2번의 주장으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이 무엇인가? 신령한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되 사랑을 추구한다면, 성도들은 방언과 예언 가운데 무엇을 더 원하게 될까? 그 대답이 3번,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이다. 방언과 예언은 모두 성령의 은사이지만, 사랑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상대방이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는 예언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보충 설명이 본문 4절이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방언과 예언의 결정적인 차이는 듣는 사람이 그 의미를 깨듣는지 여부다. 바울은 이러한 차이를 몇 가지 예를 통해 설명한다.
사도의 사역 (6절) : 복음을 전하는 사도는 회중이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을 전해야 한다.
피리나 거문고 (7절) : 이러한 악기는 음계를 통해 뜻을 전달한다. 악기가 정확한 음을 내야 듣는 사람에게 정확한 음악이 전달된다.
나팔 (8절) : 7절에 등장하는 악기가 평화로운 장면을 대표한다면, 8절에 등장하는 나팔은 전쟁의 장면을 묘사한다. 성도들 역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나팔 소리처럼 하나님의 뜻이 정확히 성도들에게 전달되어야 교회는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
외국어 (10-11절) : 인간의 모든 언어는 다 뜻을 담고 있다. 문제는 서로 다른 언어(외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그 뜻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방언이 그와 같은 경우다.
이 모든 비유는 교회 안에서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것이 성도의 언어생활에 사랑이라는 덕목을 실천하는 기본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