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와 다윗의 공통점'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0.05.10 기도하는 사람들(2) – 모세 / 시편 90편
인물 설교2020. 5. 1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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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 두 명을 꼽으라면 여러분은 누구를 지명하시겠습니까?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분들은 아마도 모세와 다윗을 꼽게 될 것입니다. 모세,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민족의 지도자 모세와 다윗에게는 매우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공통점이란 그들의 일생을 두고 반드시 이루고자 했던 간절한 소원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결코 이룩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그의 일생을 통해 가장 성취하고 싶은 목표는 무엇이었을까요? 가나안 정복이지요. 그러나 모세는 느보산에 올라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직접 들어가고자 했던 그의 간절한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어떤가요? 다윗에게 있어서, 그의 일생을 통해 가장 성취하고 싶은 목표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그 소원을 나단 선지자에게 전했습니다. 예루살렘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을 건축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이 소원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대답하십니다. 다윗 시대에는 성전을 건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최고의 지도자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모세와 다윗은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성취하고 싶었던 소원을 이룩하지 못했습니다. 모세의 소원은 얼마나 성경적입니까? 가나안 정복이라는 모세의 꿈과 비전은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합한 소원과 비전이냐고요. 다윗도 마찬가지죠. 그의 소원은 거대한 제국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죠. 예루살렘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소원을 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와 다윗의 계획은 실패하고 맙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과연 모세와 다윗의 인생을 실패한 인생입니까? 


모세의 인간 이해 - 덧없는 인생 

오늘 본문 시편 90편에는 제목이 하나 붙어있습니다. 그 제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기에 앞서, 성경이 모세에 대하여 평가하는 장면 하나를 먼저 소개하고 싶습니다. 신명기 34장에 나와 있는 모세에 대한 평가입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신 34:10-12) 

모세 이후에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던 사람이고, 하나님의 모든 권능과 위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토록 위대했던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는 한 사람의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에 대한 철저한 자기인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90편 3절부터 6절까지 한 목소리로 봉독 하겠습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모세는 먼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1절과 2절입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이토록 찬양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그 영원하심에 비하여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이야기하고자 함이었습니다. 

3절을 다시 보십시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120세까지 살았습니다. 120세면 장수한 거죠. 심지어 창세기에 나오는 족보를 보면 900세가 넘도록 살았던 분들도 계세요.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120년을 산 모세나, 900년 이상을 살았던 분들이나 모두 오랜 세월 장수하신 분들이죠. 그러나 4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어떻게 기도합니까?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인간의 연수가 길다고 해 봐야 하나님의 과점에서는 ‘밤의 한 순간’입니다. 

5절도 보십시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아침에 풀이 돋아요. 화려합니다. 아름답습니다. 찬란합니다. 그러나 6절을 보세요.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어떻게 됩니까?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자신의 삶을 통해 철저하게 깨달았던 하나의 교훈이었던 거죠. 

모세는 이집트의 왕궁에서 자랐던 사람입니다. 모세는 그의 나이 40세까지 이집트의 왕궁에서 왕족으로 살았습니다. 모세가 누렸을 풍요로움, 모세가 누렸을 화려함을 우리가 어떻게 다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모세는 나이 40세까지 자신이 소유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실제로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모세는 나이 40세까지 자신의 말 한마디에 모든 종과 신하들이 복종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모세는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얻을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으로 가득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게 풍요롭고 화려한 생활을 하면서 나이 40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자기 민족 유대인이 이집트 사람에게 학대 받는 모습을 보았어요. 그래서 그 이집트 사람을 쳐 죽이죠. 그런데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모세는 졸지에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화려한 궁궐의 왕족’에서 졸지에 ‘미디안 광야의 목동’이 되는 것이죠. 이러한 경험을 했던 모세가 시편 90편에서 어떻게 기도합니까?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궁궐에 있을 때는 대단했지요, 잘 나갔지요. 그러나 한 번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인생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더라는 사실입니다. 


모세의 인간 이해 - 죄악 된 인생 

시편 90편에서 모세는 우리 삶이 한 순간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삶은 마치 풀과 같아서, 아침에는 꽃이 피고 자라지만 저녁이 되면 시들어 마른다고 말하죠. 이렇게 우리의 삶은 짧고 덧없는데, 그러한 우리의 삶을 더욱더 힘들게 만드는 것이 있지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악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90편 8절부터 11절까지 함께 봉독 하겠습니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8절을 다시 보십시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 앞에 숨길 수가 없어요. 그 결과가 바로 9절입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갑니다. 결론적으로 모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10절입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의 삶이 왜 이렇게 덧없어요? 우리의 삶이 왜 이렇게 아무런 의미도 없이 빨리 지나가버립니까? 하나님의 앞에 우리의 죄악이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 위에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나이가 80세가 되자 하나님은 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도무지 해석할 수 없는 출애굽이라는 대역사를 경험하였습니다. 모세만이 아니라, 그 당시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집트를 빠져나와 홍해 바다를 건너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모세는 이제 곧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것으로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까지 40년의 긴 세월이 필요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모세는 급기야 그 땅을 밟기 전에 생명이 다합니다. 
여러분, 도대체 그 무엇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까지 40년의 세월을 허송해야 했습니까? 그들의 죄악이에요.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며 하나님을 향해 불평을 쏟아놓았던 그들의 죄악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은 그의 나이 80세로부터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120세의 나이까지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합니다. 바로 그 40년 동안, 모세는 여호수아와 갈렙 단 두 명을 제외하고 출애굽의 역사를 경험했던 모든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고라 자손과 같이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악을 저지르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모든 장면을 40년의 세월 동안 지켜본 모세는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죄를 범할 때, 그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직접 지켜본 거죠.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죄악이 얼마나 큰지 몰라요. 자신의 죄악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인식하지 못해요. 그래서 모세는 11절과 같이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모세의 기도 -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소서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 입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면 나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면 지금 내가 처해 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지요.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보았던 모세,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직접 행해보았던 모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 모세는 그의 기도 가운데 자신이 하나님의 목전에서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얼마나 죄악 된 인간인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오늘 본문 시편 90편에서 제일 먼저 이렇게 간구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여러분, 우리 모두는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여 모든 일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잖아요. 내가 오늘 아침, 간절히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하였지만 직장에서 예상치 못했던 암초가 얼마든지 있지요.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새로운 영역에 투자하였지만 투자금을 모두 날려버릴 수도 있다고요. 자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는데 그 자녀가 대학 입시에 낙방하는 경우도 있어요. 

모세는 가나안 정복이라는 거룩한 비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성취하지 못해요. 다윗은 예루살렘 성전 건축이라는 위대한 계획을 세웠지만 그것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모세나 다윗이 기도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나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와 다윗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 모세는 자신의 계획이 좌절되고 멈추어지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한 가지 귀한 진리를 깨닫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밤의 한 순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현재 여러분의 삶에 잘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세요?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였지만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보이지 않는 그러한 과제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원망을 늘어놓기에 앞서 기도하는 사람들인 여러분들은 이렇게 기도하시면 어떨까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우리의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 우리의 살아갈 날들을 계산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어버리는 풀과 같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기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모세의 기도 내용 - 우리를 만족하게 하소서 

모세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니, 자신의 죄악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면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계속해서 인간의 죄악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한 목소리로 봉독 하겠습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모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모세는 이집트의 왕궁에서 모든 것을 소유해보았던 사람입니다. 모세는 당시 세계를 다스리는 이집트의 최고급 교육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힘이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세가 기도하는 가운데 놀라운 진리 한가지를 깨닫습니다. 

 

우리를 만족하게 하고,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는 것은 재물이 아닙니다. 
사회적 지위도 아닙니다.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만족하게 하고, 우리의 일생을 기쁘고 즐겁게 만드는 것은 
매일 아침마다 새롭게 찾아오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저는 설교 초두에 여러분들에게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모세와 다윗은 그들의 일생에서 반드시 성취하고 싶었던 최대의 목표를 이루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모세는 그토록 소망하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고, 다윗은 그토록 원하던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과연 모세와 다윗의 인생을 실패한 인생입니까? 만일 우리가 모세에게 이 질문을 물어본다면 모세는 무엇이라고 대답할까요? 자신의 인생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하지 않을까요? 왜 그렇습니까? 자신의 인생이 즐겁고 기쁜 삶이 되는 것, 모세 자신의 삶을 만족할 수 있는 근거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매일 아침 경험하는 것이었다고 모세는 말하지 않을까요? 

여러분,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제 아무리 기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의 모든 소원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는 아무런 효과도 의미도 없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이기에, 기도하는 가운데 나의 존재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요. 나에게는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나아가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들이기에 내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무엇인가를 이루고 이루지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매일 아침, 매일 아침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마음에 담고 있는 소원이 있는데 그 소원이 쉽게 성취되지가 않습니까? 여러분이 어떠한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으세요. 여러분은 모세와 같이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모세와 같이 기도하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귀한 진리를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계획이 실패하고, 여러분의 목표한 바가 멀게만 보이는 바로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매일 아침 여러분의 삶 안에 함께 계시다는 사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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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Dr. Hanjin Lee 이한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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