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살아 움직이는 현장을 묘사해줍니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는 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도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등장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세례 안에 담겨있는 복음을 전합니다(4절).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거듭남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예전에는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갔지만 이제는 예수님께서 친히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내 삶을 이끌어가시니 주님과 함께 걷는 걸음이 행복하고 기쁨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세례에 담겨있는 복음의 핵심, 곧 거듭남의 은혜입니다.

 

성만찬에도 복음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장).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다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셔서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우리 모두에게 영생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성만찬에 담겨있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살아 움직이는 역사를 체험하기 원한다면 그 무엇보다도 세례와 성만찬에 닮긴 복음의 진리를 끝까지 믿으십시오. 그 믿음 위에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사도행전이 묘사하는 복음의 역사가 여러분의 체험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고, 드디어 그들의 마음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십니다(6절). 여기에 등장하는 그 열두명의 제자만이 아닙니다. 3차 전도여행기간, 사도 바울은 두란노서원이라는 곳에서 소수의 제자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두란노서원에서 사도 바울,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12명의 제자들, 그리고 두란노서원에 함께 모인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자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임재하셨던 성령 하나님께서 두란노서원에도 동일하게 임재합니다. 이로써 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었던 것입니다(10절).

 

여러분의 삶 속에 복음이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기를 원하십니까? 그 무엇보다 복음의 진리를 확신하십시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을 사모하십시오. 우리는 성령께서 언제, 어디에 임하실 지 알 수 없으나 성령께서 임재하기만 하시면 우리의 삶은 분명 달라질 것이요 이 땅은 다시금 복음의 역사로 출렁이게 될 것입니다.

 

 

Posted by Rev. Hanjin 웃음과눈물

 

 

빌립보에는 귀신들린 여종이 있었습니다. 그 여종은 점을 치며 주인에게 수입을 안겨주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여종에게서 귀신을 내쫓아주었습니다. 비로소 이 여인은 자신을 사로잡고 있던 귀신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주인들은 수입의 근원이 사라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고소하였고, 빌립보 도시의 관리들은 바울과 실라의 옷을 벗기고 심하게 매질을 하고는 깊은 지하 감옥에 가두어버립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그 곳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찬양을 쉬지 않았습니다(35절).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진을 일으키셔서 옥터 전체가 움직이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을 묶어 두었던 모든 기구들이 풀어집니다. 그런데 감옥의 모든 문이 열리고 모든 묶였던 것이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있던 어느 누구도 감옥에서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을 보며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엽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였고, 간수와 그의 가족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복음의 현장은 바로 깊은 지하 감옥이었던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우리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첫번째 선택지는 내가 스스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선택지는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실 장소를 결정하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회퍼는 첫번째 선택지의 경우 그곳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나와 닮은 하나님, 내가 좋아하는 하나님, 곧 참된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만들어낸 우상이라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생각과 경험을 뛰어넘는 위대하신 참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신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두번째 선택지를 고르셔야 합니다. 곧, 내가 하나님을 만날 장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나타나실 장소를 선택하실 수 있도록 모든 결정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경로를 수정하였습니다. 결국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시간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장소에 있었고 복음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장소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고통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바로 그곳에 도착하여 복음의 역사를 경험하자 바울과 실라, 그리고 간수와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34절).

 

Posted by Rev. Hanjin 웃음과눈물

 

 

오늘 본문의 주제는 생각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비롯한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전파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온 유대와 사마리아의 경계를 넘어 더 넓은 지역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있었으니 곧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른바 고넬료의 환상을 베드로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9) 이 말씀이 소개하는 깨끗하게 하시는 하나님’ ‘정결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환상도 보여주시고 보고, 음성도 들려주셨지만 베드로는 여전히 이방인 고넬료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재차 강권하여 등을 떠밀듯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게 하십니다(12). 이로써 베드로와 초대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주십니다. , 이전에는 유대인만을 위한 사도였다면, 이제는 이방인을 포함한 온 세상을 위한 사도로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주셨던 것입니다.

 

셋째로, 이웃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주십니다. 고넬료를 비롯한 모든 집안 식구들은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을 전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자 그들에게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이 장면을 지켜보며 베드로를 비롯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웃에 대한 생각, 특별히 이방인에 대한 생각이 바뀝니다(18).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우리 곁에 있는 이웃이라는 생각. 이방인들도 예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형제와 자매라는 생각. 이방인들도 그 마음에 성령께서 임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이요 복음의 일꾼이 될 수 있다는 생각. , 내 곁에 있는 이웃에 대한 초대교회의 생각이 180도 바뀌는 장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으로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십시오. 우리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자라나야 하며, 이웃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하나님을 닮아가야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세계관도 성경의 관점으로 조금씩 변화되어야 합니다.

Posted by Rev. Hanjin 웃음과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