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성경공부

전도서 3장 16-22절 "영원한 시간과 오늘의 행복"

Rev. Hanjin Lee 2022. 11. 17. 16:52

기한과 때에 대해 논하였던 전도자(코헬렛)는 이제 심판의 때라는 주제로 넘어온다. 이는 '정의'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는데, 전도자가 관찰한 현실은 정의가 아니라 불의가 가득하다.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16절) 

위의 구절은 솔로몬을 전도서의 저자로 여기는 전통적 관점에 대한 하나의 반론이 될 수 있다. 고대 왕정 국가에서 최종적인 정의는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법적으로 왕의 판단에 맡겨져 있었다.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성경의 이야기는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신의 아들이라 주장했던 두 여인에 대한 판결 사건에서 정점에 이른다(왕상 3장 16-28). 그런데 만일 전도서의 저자가 솔로몬이라면 위의 구절은 솔로몬 자신의 판결에 악이 있다고 선언하는 샘이기 때문이다. 


심판의 때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재판이지만, 언제나 공정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참된 소망은 인간이 판결을 내리는 세상의 재판이 아니라 모든 것을 공의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다.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17절)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은 하나님의 심판이 억울한 사람들의 소망이 된다는 교훈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때에 대해 깊이 헤아려본 전도자는 여기에서도 소망이 아니라 절망의 요소를 발견한다.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18절)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그날, 인간이 짐승과 다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명백히 구분하여 심판하신다. 그런데 어느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재판관이 되시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분의 재판석에서 죄인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인간은 짐승과 동일하게 죽음이라는 판결을 받게 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20-21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대목에서 대답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죄인이지만 복음의 은혜로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었고, 죽음이라는 형벌을 받았지만 복음은 부활의 은혜를 선포한다. 그러나 전도자는 정해진 답을 쉽게 암송하기에 앞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을 정확히 직면하라고 요구한다. 위의 구절에서 "누가 알랴?"라는 수사 의문문이 내세에 대한 부정처럼 들리는 이유다. 


전도서의 행복론 

기한과 때에 대한 전도자의 논평은 이제 그의 행복론으로 결론을 맺는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22절)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에 대해 알 수 있는 사람이 없듯, 죽음 이후의 문제를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시간 안에서 자신의 일에 보람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오늘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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