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설교2020. 5. 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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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리즈 설교의 제목을 ‘기도하는 사람들’이라고 붙이며, 구약 성경의 인물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그러나 실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크리스천들이 기도하는 사람들이죠. 처음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여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시작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회개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예수님을 믿어 크리스천이 된 이후, 크리스천으로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기도가 필요한가요?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드립니다. 슬프고 마음 아픈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우리의 상한 마음을 올려드리는 통곡의 기도를 드립니다.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만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여쭙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삶을 마감할 때, 지나온 삶을 인도해 주심에 대해 감사하며, 나의 영혼을 하나님의 손에 위탁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크리스천이 삶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크리스천의 삶은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우리가 기도할 수밖에 없는 참으로 다양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성경의 인물들이 어떻게 기도하였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 내용을 살피기에 앞서,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으며 어떠한 상황, 곧 어떠한 형편과 어떠한 처지에서 기도하였는지를 먼저 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상황 속에서 성경의 인물들은 무엇을 어떻게 기도하였는지에 집중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현재 처해 있는, 그리고 앞으로 처하게 될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단서들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반드시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성경의 인물을 너무도 쉽게 우상으로, 혹은 영웅으로 만들어버릴 위험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아브라함의 기도, 굉장하지요. 위대하지요. 그러나 그에게도 실수가 있었고, 그에게도 죄악이 있었습니다. 성경 인물들의 기도를 살펴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기도가 모범적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가나안 정복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여호수아의 믿음과 기도는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기도가 언제나 모범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방식에 순종하여 여리고 성 전투에서 완벽하게 승리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아간이라는 사람이 탈취물의 일부를 자신의 집에 숨겨두는 죄악을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에서 탈취한 그 어떠한 물건도 개인이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아간이라는 사람이 그 말씀을 어겼고 그 결과 가나안 땅에서 치러진 두 번째 전투인 아이성 전투에서 이스라엘 군대가 크게 패배합니다.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하자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바로 그 시점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매우 적절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내용입니다. 여러분,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기도했는지 아십니까? 여호수아 8장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수 8:7) 지금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스스로 반성하지 못한 채, 하나님은 왜 요단 강 서편 땅으로 우리를 이끌어서 여기서 멸망시키고 계시냐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언제나 모범적인 기도만 하시나요? 믿음의 정도(定道)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모범적인 기도만 하십니까? 그렇지 않죠.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 속에는 모범적인 기도가 있는가 하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채 하나님을 원망하는 부적절한 기도도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인물이 어떻게 기도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들의 기도를 바라보면서 지금 내가 처해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배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상황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아브라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브라함의 대표적인 기도의 내용이 등장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죄악으로 가득했던 소돔 성,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던 소돔 성을 위한 중보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을 묵상하기에 앞서 오늘 본문의 바로 앞에 어떠한 내용이 나오고 있는지를 보십시오. 오늘 본문 앞에 등장하는 창세기 17장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99세 되던 해에, 아들에 대한 약속을 받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 매우 구체화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자신이 살고 있던 하란이라는 지역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옮겨갔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창 12:7)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이라고 약속하시죠?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그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지금 자녀가 있어요 없지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2절입니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라함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자신은 자녀가 없으니 다메섹 엘리에셀이 자신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생각을 교정해 주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창 15:4) 하나님의 약속이 구체화됩니다. ‘너의 자손’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너의 몸에서 태어날 자’가 상속자가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자, 보십시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몸에서 태어날 자’가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몸’에서 자녀가 태어날 것이라고만 말씀하셨어요. 아직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에서 자녀가 태어날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게 아닙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생각하기를 사라 자신은 이미 늙었으니, 아브라함에게 하갈이라는 여종을 붙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브라함의 몸’에서 자녀가 태어나도록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잖아요.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창 17:18) 아브라함의 마음에 자신의 아들은 이스마엘 밖에는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창세기 17장 19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죠? ‘너의 아내 사라가, 너 아브라함에게서’ 아들을 낳으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자녀에 대한 약속이 점점 구체화되는 흐름이 보이십니까? 처음에는 ‘너의 자손’, 그 다음에는 ‘너의 몸에서 날 자’, 그리고 마지막에는 ‘너의 아내 사라가 너에게 낳을 아들’이라고 계속해서 구체화돼요. 그리고 이제 일 년만 지나면 하나님의 약속과 같이 아브라함에게는 그의 아내 사라가 낳은 아들이 생깁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이 구체화되는 그 마지막 단계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신 이유를 설명합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18장 17절부터 19절까지 우리 한 목소리로 봉독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에게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차츰차츰 구체화시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려는 것,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자신의 약속을 집요하게 실현해 가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한 가지 귀중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아직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아직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배가 불러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이 구체화됩니다. 어떻게요?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친밀한 대화를 통해서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 곧 하나님과의 기도를 통해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에 아직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삭이 눈에 보이지 않을 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반드시 눈에 보이는 선물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붙잡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아직 눈에 보이는 이삭은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인생을 아름답게 빚어가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마치 아브라함의 기도와 같아서, 때로는 하나님께서 ‘너의 자녀’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다메섹 엘리에셀’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너의 몸에서’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하갈에게서’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이처럼 우리의 기도가 불완전하고요, 우리는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말씀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분별하지 못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도가 때로는 결점 많은 기도라 할지라도, 그러한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우리의 삶을 아름다운 크리스천의 모습으로 이끌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과 같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끊임없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나의 기도가 올바른 기도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모든 염려는 던져 버리십시오. 기도의 오발탄을 쏘아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불완전할 수도 있어요. 아브라함도 그랬고, 여호수아도 그랬습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민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기도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면 오랜 시간을 놓고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참된 크리스천의 삶으로 이끌고 계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기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삶은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삶이지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어요. 어디 아브라함뿐인가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까지도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도하는 가운데 이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요? 아브라함이 살던 바로 그 시대에 소돔이라는 지역은 여호와의 도를 행하는 사람이 없어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없다고요. 이것이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이 놓인 삶의 자리입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18장 20절과 21절을 한 목소리로 봉독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여러분,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때로는 연약하고 부적절한 기도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하시죠.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가시는 거에요. 그런데 주변을 보세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보세요. 기도하는 가운데 나의 인생을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더욱 친밀하게 느끼면 느낄수록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은 기도하는 가운데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가운데 또 한 가지 사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소돔 성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죠. 바로 그때 아브라함이 어떻게 기도합니까? 그 도시를 위한 중보기도를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18장 22절부터 25절까지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22절을 다시 보시면,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그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앞에서 아브라함의 가정을 방문하였던 천사입니다. 이 천사들은 아브라함의 가정을 방문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전해주었어요. 내년이 되면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를 통해 아들을 낳게 되리라는 축복의 약속을 전해준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들로부터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다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아브라함의 집을 떠나갑니다. 아브라함과 관련된 일은 이제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2절은 계속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어떻게 합니까?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여러분은 아브라함과 같은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대화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하나님은 여러분을 축복의 사람으로, 말씀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자신만이, 혹은 나와 우리 가정만을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가정으로 이끌어가시는 은혜를 경험했다고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닙니까? 아브라함과 같이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약속으로 마음이 벅차오른다고 그것으로 기도를 멈추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죠. 오늘 본문 창세기 18장 2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32절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안타깝게도 소돔 성에는 의인 10명이 없었습니다. 결국 소돔 성은 유황과 불로 멸망하지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죠. 여러분, 그러면 소돔 성을 위해 중보 기도하였던 아브라함의 이 기도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건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소돔 성을 위한 아브라함이 기도가 어떠한 실제적인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대답은 창세기 19장에 등장합니다. 창세기 19장 29절을 한 목소리로 봉독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아브라함은 소돔 성 전체를 구하기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10명의 의인조차 없었던 소돔 성은 결국 멸망하고 맙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기도는 헛된 기도였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소돔 성에 유황과 불을 비처럼 쏟아 부으시는 바로 그때 아브라함을 기억하셔서, 특별히 아브라함의 그 간절한 기도를 기억하셔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구해주십니다. 

여러분,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아니, 구체적으로 여러분의 가족이나 친척들 가운데 아직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계십니까? 아브라함 곁에 있었지만 아브라함이 섬기는 그 하나님, 아브라함의 가정을 축복의 가문으로 만들어가시는 그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던 롯과 같이, 여러분 자신을 비롯하여 기도하는 사람들 곁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안 계십니까?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없이,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이 세상 사람들을 다 구원할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의 그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한 사람 한 사람, 한 생명 한 생명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는 놀라운 역사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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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