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큰 고난과 역경을 당하는 장면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방 민족 애굽에 살면서, 그들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은 극에 달하였고 급기야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괴로운 모습을 불쌍히 여겨주셨던 것이지요. 우리는 이 대목에게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곧 인간의 아픔과 고통을 바라보시며 우리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혹 여러분의 사정과 여러분의 형편을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는 것처럼 느끼시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모두 헤아리고 계시며 지금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겨 주셨습니다. 다만, 모세라는 한 사람이 준비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셨던 것이지요. 드디어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출애굽이라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설명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을 전해들은 모세의 첫번째 반응은 거부입니다. 모세는 출애굽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들었을 때 두 가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계획이 너무도 거대한 것이어서 인간의 능력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계획과 목표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모세 자신이 그와 같이 큰 일을 행하기에는 부족한 인물이라는 점이었겠지요.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주저하게 됩니다. 출애굽기 3장은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1)

 

모세는 출애굽이라는 거대한 사명 앞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설득하기 시작하시죠. 그런데 여러분, 모세를 설득하면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첫번째 대답은 너의 지팡이로 큰 이적과 기적을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첫번째 대답은 모세에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대단한 리더십을 주시겠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첫번째 대답은 모세에게 아론이라는 좋은 대변인을 붙여주겠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적이나 표적을 행하는 능력도, 말을 잘하게 되는 지혜와 지식의 은사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탁월한 리더십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처음 주셨던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출애굽이라는 위대한 사명 앞에 주저하는 모세를 향해 하나님께서 주신 첫번째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3:12)

 

출애굽은 모세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사명입니다. 아니 출애굽은 그 어떤 인간의 능력으로도 불가능한 사명입니다. 나일강의 물을 피로 바꾸는 능력이나 지팡이를 뱀으로 바꾸는 능력을 모세에게 주신들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몇 가지 재능만 가지고는 출애굽의 위대한 사명은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에게 탁월한 능력이나 대단한 언변과 같은 기능은 부족하더라도 하나님 자신이 모세를 부르시고, 하나님 자신이 모세를 보내시며,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와 함께 계신다면 모세는 출애굽의 사명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을 바라보시면 정직하게 대답해 보십시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했던 것이 나에게 능력이나 재능이 부족하기 때문이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나요? 반대로 질문을 바꾸어 볼까요? 그래도 지금까지 이만큼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이 여러분이 소유한 재능이나 능력 때문이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셔서 지금까지도 여러분의 인생길을 지도해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한번만 더 질문을 드려볼까요? 여러분의 가정이 그래도 지금까지 서로 화목하며 이정도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비결이 정말로 여러분이 소요한 능력이나 재능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여러분의 가정을 불쌍히 여기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시마다 때마다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보다 또 다시 새로운 기술, 새로운 재능, 새로운 능력, 새로운 은사를 계속해서 추구하는 것일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한 평생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비결도, 우리가 한 평생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비결도 특별한 재능이나 탁월한 은사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하나의 사실로 말미암아 가능하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의 주제는 은사입니다. 일반인들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 용어이지만, 교회에서는 어렵지 않게 듣게 되는 단어이지요. 우리는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은사라고 합니다. 특별히 은사는 재능이나 능력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누군가에게 은사가 있다, 은사를 받았다고 말하면 그 의미는 바로 그 사람에게 그와 같은 능력이나 그와 같은 재능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아홉 가지의 다양한 은사가 등장하는데 모두 능력이나 재능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식의 은사, 병을 고치는 은사, 능력을 행하는 은사,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 그리고 방언을 말하고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 등입니다.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은사의 종류만 들어도 은사가 특별한 능력이나 재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특별한 능력이나 재능, 곧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가 우리에게 맡겨진 역할, 곧 하나님의 사명을 성공으로 이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양한 은사와 사명을 주시지만, 우리가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받은 은사 때문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사도 바울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사역이 다양하다고 말씀합니다. 모세에게는 출애굽의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여호수아에게는 가나안 정복의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사무엘에게는 민족의 영적 갱신을 이루는 사명이 주어졌고, 다윗에게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정의와 공의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역이 주어졌습니다.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다르고 감당해야 하는 사역이 다릅니다.

 

우리 모두는 자양교회라는 한 교회를 섬기고 있지만, 어떤 이들은 목회자가 되어 말씀을 전하고 성도를 돌보는 사역을 합니다. 그러나 더 많은 성도님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교회의 구석구석에서 봉사하고, 또 가정과 직장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여러 가지 사역을 감당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각자가 담당해야 하는 사역이 다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사역은 여러 가지나사역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이 핵심입니다.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 이루시는 분은 동일한데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기적을 행하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는 모세와 같이 홍해를 가르거나 바위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할 수 있는 은사를 소유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 왕에게 지혜와 지식의 은사를 한없이 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솔로몬이 소유한 탁월한 지혜와 지식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에게 능력을 행하는 은사를 풍성히 부어주셨지만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엘리야와 같은 능력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비록 우리에게 모세와 같이 기적을 행하는 은사는 없고, 솔로몬과 같은 지혜와 지식은 은사는 없고, 엘리야와 같이 능력을 행하는 은사는 없을 지라도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에게 은사가 조금 부족하여도, 우리에게 재능이 조금 부족하여도 우리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향하여 오늘도 전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양성의 인정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은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 이루시는 하나님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성도들 각각에게 주어진 조그마한 은사들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고린도전서를 계속 읽어보면 고린도교회에서 문제가 되었던 은사는 주로 방언과 예언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방언과 예언이라는 몇 가지 은사에 집중하여 서로 비교하며 다투고 분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바로잡기 위해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기록하면서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 이루시는 하나님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성령께서 임하셔서 방언을 말하게 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성령께서 임하셔서 예언을 하게 하시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성령께서 임하셔서 능력을 행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 모든 일은 한 분이신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필요한 은사를 주신다고요. 은사의 내용, 은사의 종류에 관심을 쏟기 시작하면 서로 비교하면서 시기와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모든 사람 가운데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각 사람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은사를 이해할 수 있어요. 비로서 포용하고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고요.

 

그래서 개별적인 은사보다는, 모든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의 결론을 이렇게 내립니다. 우리 함께 1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11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사도 바울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그의 뜻대로누구의 뜻일까요? 당연히,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것”, 그것이 바로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사람마다 다양한 은사가 주어진 현상을 받아들일 수 있고 포용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의 특성과 다른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된다고요.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은사가 주어지고 직분과 사역이 주어지는 것이 그 뒤에는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은사를 주로 다루고 있지만 은사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4절을 보시면, “은사는 여러 가지나라고 말씀하면서 은사를 이야기하죠. 그러나 5절을 보시면 직분은 여러 가지나라고 하면서 직분을 언급합니다. 뿐만 아니라 6절을 보시면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라고 하며서 사역이 등장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같은 교회에서 예배하며 같은 교회를 섬기지만 우리는 서로 은사가 다릅니다. 우리는 서로 직분이 다릅니다. 우리는 서로 사역이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 모든 성도들 안에서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참으로 믿는다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의 종류, 직분의 종류, 사역의 종류가 뭐 그리 중요합니까? 저 사람에게는 가르치는 은사가 있어서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하지만 나는 뒤에서 섬기는 일에 은사가 있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요. 우리 안에서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참으로 믿는다면, 많은 사람에게 리더십을 발휘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이 모임을 주도하고 나는 그 모임에 열심히 동참해서 따라가주는 것이 문제될 것이 무엇입니까?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삶에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여러분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의 은사를 비교하고, 무엇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의 직분을 비교하고, 왜 나와 다른 사람의 사역을 자꾸 비교합니까?

 

필립 얀시의 책을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가 등장합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천사 두 명을 부르셔서 심부름을 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첫번째 천사에게는 세상에 내려가서 큰 도시 하나를 다스리는 명령을 주십니다. 그리고 두번째 천사에게는 세상에 내려가서 조그마한 마을의 골목길을 청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필립 얀시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과연 이 두 천사 가운데 누가 더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감당했을까? 여러분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과연 이 두 천사 가운데 누가 더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였을까요? 필립 얀시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두 천사 모두 똑같이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의 종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자신들이 쓰임받을 수 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교회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여러분에게 주어진 은사를 가지고 여러분에게 주어진 직분에 따라 여러분에게 주어진 사역을 감당하실 때 여러분의 마음에는 기쁨이 가득하십니까? 혹여 다른 사람과 은사를 비교하고, 직분을 비교하고, 사명의 종류를 비교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두신 기쁨을 모두 날려버리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모든 일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와 직분과 사역의 내용과 상관 없이 지금도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

 

모세는 결국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힘입어 바로를 향해 전진하였습니다. 당시 전 세계를 다스리고 있었던 애굽의 황제 바로에게 그저 미디안의 목동이었던 모세가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모세와 바로의 싸움은 바로의 항복으로, 모세의 완벽한 승리로 결론나지요. 그것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모세에게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도 아니고, 모세에게 탁월한 지도력이 있었기 때문도 아니며, 모세에게 언변이 좋은 대변인 아론이 있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모세에게는 오직 한 분,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계셨습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출애굽이라는 세계 역사에 전무후무한 위대한 사명을 성공적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모세도 이제 40년의 사역, 120년의 생애를 마감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여호수아도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셨던 은사,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셨던 권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셨던 사명을 이제는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이어받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자신의 생애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모세의 마음에 결코 빼앗길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의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그의 능력도 예전 같지 않고, 그의 사명도 이제는 모두 끝나버린 그 순간에도 모세의 마음에 깊이 자리잡아 결코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는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며 남겨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지막 사력을 다하여 말씀을 전하며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진주, 그의 마음 속에 있는 보화를 끄집어 냅니다. 그리고 선언하지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4-5)

 

사랑하는 여러분, 모세는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내리는 기적을 행해보았지만 그것이 바로 한 사람의 마음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세는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행해보았지만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참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모세는 하늘에서 맛나와 매추라기를 내리는 기적을 행하였고,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나오게 하는 능력을 행해보았지만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모세가 40년의 사역, 120년의 생애를 통해 깨달은 것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며, 그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생을 다하였을 때 모세는 남겨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뛰어난 재능이나, 탁월한 은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 그들에게 가득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능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보다 매일의 삶에 풍성히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한데 어우러질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하고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Posted by Rev. Hanjin 웃음과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