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2025. 3. 2. 14:51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관광지 중의 하나는 단연코 금문교(Golden Gate Bridge)입니다. 샌프란시스코를 찾는 세계의 많은 여행객들이 금문교를 방문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금문교는 남쪽의 샌프란시스코 시내와 북쪽의 마린카운티를 연결하는 다리인데, 대부분의 관광버스는 남쪽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 마린카운티로 다리를 건너는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그 옆에 넓은 주자장과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는 장소에 정차합니다. 그런데 그곳은 금문교를 관람하기에 그다지 좋은 장소가 아닙니다. 주차장이 넓고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편의시설도 있지만 눈으로 금문교를 관람하기에도, 사진을 찍기에도 그다지 좋은 전망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금문교를 조금 더 멋있게 내려다보며 좋은 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다른 장소를 찾아야 합니다. 남쪽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 마린카운티로 올라가는 도로가 아니라, 그 반대의 방향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북쪽 마린카운티에서 남쪽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달리다보면, 오른쪽에 조그마한 길이 있습니다. 그 길로 빠져나와 언덕을 쭉 올라가면, 주차장이 매우 협소한 장소가 나옵니다. 거기에는 편의시설도 없고 화장실도 없습니다. 주차장도 매우 좁아서, 시간을 잘못 맞추면 주차할 때까지 30분 이상을 차 안에서 대기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언덕을 단 한번이라도 올라가본 사람은 다시는 금문교를 관람하기 위해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는 길에 설치되어 있는 넓은 주차장으로 가지 않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그 높은 언덕에 올라야 태평양의 바다와 샌프란시스코 시내, 그리고 그 사이에 위치한 금문교의 아름다움이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보는 방식이나 평소에 보았던 방식을 벗어나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가면, 지금까지 보았던 것이 완전히 새롭게 보이는 경우가 있지요.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경험했던 것이 꼭 그와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변형 (28-29절)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렇게 세 명의 제자들만을 데리고 산 위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이전에 산 아래에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얼마나 많이 예수님을 지켜보았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날 산 위에서 보았던 예수님의 모습은 지금까지 제자들이 알고 있던 모습과 전혀 달랐습니다.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29절) 

이 구절에서 “용모”는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지칭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는 이 동일한 장면을 묘사하면서 ‘예수님의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났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와 같이” 빛났다고 했으니, 이것은 비유입니다. 바로 그날 제자들이 보았던 예수님의 얼굴이 얼마나 빛나고 아름다웠는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어, 그저 “해와같이”라는 비유로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29절을 계속보시면, 예수님의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다고 기록하네요. 마가복음에는 이 장면을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인간의 언어로 다 묘사할 수 없었던 그 아름다운 예수님의 모습을 비유로 설명하는 장면이지요. 그러므로 제자들이 그날에 보았던 예수님 모습은 인간의 언어로 다 묘사할 수 없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영광스로운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장면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제자들의 눈에는 지금까지 그들과 함께 계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이 특별한 날에 산 위에서 ‘변형’되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변형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처음부터 영광의 주님이시기 때문이지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곧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온 땅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며, 마지막 날에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실 심판주이십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영광의 주님이십니다. 이 땅에 오실 때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기에 사람들의 눈에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모습이 잠시 감추어져 있었을 뿐이지요. 그러므로 오늘 본문이 묘사하는 변화산의 사건은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그 위대한 영광이 잠시 잠깐 제자들의 눈에 드러난 사건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이십니까? 인간의 몸을 입고 사람들을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는 친밀하신 분이시지요.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시몬 베드로의 가정 집에도 들어가셔서 그 가정의 아픔을 치유하여 주시는 것처럼, 지금도 우리의 삶은 물론이요 우리의 각 가정을 찾아오셔서 우리의 아픔을 치유하여 주시고 회복하여 주시는 분이시지요. 우리가 굶주리거나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이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없어 빈손으로 나아갈 때,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풍성과 충만으로 채워주시는 은혜의 주님이시지요. 그런데 성도 여러분, 그렇게 친근하고 친밀하게 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께서 태초부터 영원토록 하나님의 영광으로 온전히 가득한 성자 하나님이시라는 사실도 잊지 마십시오.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지금도 우리와 늘 동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꿇어 경배해야 하는 영광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별세 (30-31절) 

제자들이 산 위에 올라가니,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에 광채가 나는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때 또 하나의 놀라운 사건이 겹쳐서 일어납니다. 곧, 구약 시대의 인물이었던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 곁에 함께 등장합니다. 모세는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엘리야는 구약의 선지자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모세와 엘리야의 출현은 지금 펼쳐지고 있는 예수님의 사역이 구약의 흐름, 곧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에서 약속하신 바 그 모든 말씀을 성취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대목은 그 다음입니다.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31절) 

예수님 곁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함께 대화를 하는데 그 대화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하네요. 이것은 누가복음 전체의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자,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을 향해 가게 될 것인데 그곳에서 많은 고난을 받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의 별세에 대해 이야기하지요. 그리고 오늘 본문이 묘사하는 변화산의 사건 후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신 뒤 다시 한번 자신의 수난과 고난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하신 그대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지체없이 나아가시는 것이 계속되는 누가복음의 흐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이 기록되어 있는 누가복음 9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그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는 그 출발점에 예수님께서 성자 하나님으로서 그 자신이 태초부터 가지고 계셨던 그 영광의 모습이 제자들에게 드러나는 변화산의 사건이 위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이러한 흐름은 교회의 절기인 교회력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산상변모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이 묘사하는 사건, 곧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 ‘산상’이지요 – 용모가 변화된 사건 – ‘변모’입니다 –, 그리하여 산상변모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이 바로 오늘입니다. 그리고 오는 수요일부터 주일을 제외한 40일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사순절을 보내게 되지요. 이러한 교회력의 흐름은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변모되신 사건 후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가시는 누가복음을 비롯한 공관복음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사순절을 지나며 우리 성도들은 마땅히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을 보내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영광의 주님이시요, 영광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목상하며 우리도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겉모습이 그렇게 영광스럽지도,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 예수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아름다움이 밝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바로 지금 인생의 사순절을 보내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면서 나도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지만, 나의 삶에 부활의 영광은 도대체 언제 찾아오는 것인지 기약이 없어 가슴 답답한 인생의 사순절을 보내고 계신분은 안 계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있는 부활의 영광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이미 보여주신 변화산의 영광을 기억하십시오. 곧 여러분의 삶에 잠시나마 보여주셨던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기억해보십시오. 그리하여 지금도 여러분의 인생에 주님의 영광을 비추시며 주님의 아름다움을 펼치고 계시는 우리 주님을 끝까지 믿으십시오. 비록 지금 나의 삶이 인생의 사순절을 통과하고 있을지라도 영광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여러분의 삶을 붙잡고 계시니, 다시금 힘을 내어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인내하십시오. 그 고난의 끝에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영광에도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Move Three. 그의 말을 들으라 (32-36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영광의 주님으로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던 것같습니다. 32절에 이렇게 말씀하지요.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네, 그들은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33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 곁을 금방 떠나고 말았네요. 그 시간이 너무도 짧아 베드로는 아쉬웠던 것같습니다. 그리하여 영광스러운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에 그곳에 초막 셋을 지어서 주님을 모시고, 모세를 모시고, 엘리야를 모시자고 제안하잖아요. 그러나 베드로의 이와 같은 제안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33절 뒷부분입니다.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한 마디로 언급할 가치도 없는 제안이었다는 평가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영광의 장면이 짧게 끝나 아쉬워하는 제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35절)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곧 성자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목격하였으니 – 그 장면을 직접 보았으니 – 이제부터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가라는 명령입니다. 

성도 여러분, 변화산의 사건은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딱 한 번만 일어났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계속해서 예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변화산 사건 이후에도 제자들 곁에 늘 함께 하셔서,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말씀을 가르쳐주시잖아요. 그러므로 변화산의 그 위대한 장면을 한번 보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 더 크고 위대한 장면을 보여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 말씀을 따라 우리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인 금문교의 진면목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는 도로 옆에 위치한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안 됩니다. 거기에는 각종 편의시설도 있고, 주차장도 넓지만 금문교를 적당한 높이에서 내려다볼 수가 없어요. 그보다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다가 좁은 길을 타고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곳에는 편의시설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주차공간도 비좁지만, 그 언덕을 오를 때 비로소 금문교의 참된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그 주변에서 유학생활을 하였던 저는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그 언덕을 참 많이 찾아 갔습니다. 타지에서의 유학생활이라는 것이 언제나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의 연속이었지만, 특별히 그날은 저희 부부에게 모든 계획과 기대와 소망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듯한 슬픔의 날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허탈한 마음으로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금문교가 내려다보이는 그 언덕을 올랐지요. 그리고 조그마한 벤치에 나란히 앉아 한동안 아무 말없이 태평양을 바라보고, 금문교를 바라보고, 그 위의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갑자기 저의 눈에 너무도 멋진 무지개가 보이는 거예요. 구름 한 점 없는 캘리포니아의 맑은 하늘에 무지개라니 믿어지지가 않아 선글라스를 벗었다 썼다, 눈을 비볐다 떴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 아름다운 무지개가 분명하게 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오랜 시간의 침묵을 깨고 제가 아내에게 말했죠. “여보, 무지개다” 그렇게 저희 부부는 구름 한 점 없는 캘리포니아의 하늘에 아름답게 떠 있던 무지개를 한동안 바라보다 그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금문교의 하늘에서 너무도 아름다웠던 무지개를 보았지만, 저희의 생활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매일 불안하고 앞날을 알 수 없는 유학 생활은 미국에 머무는 동안 지속되었고, 우리의 계획과 기대와 소망이 허무하게 무너졌던 경험은 그 이후로도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금문교의 하늘에서 바라보았던 그 아름다운 무지개는 지금까지도 우리의 마음에 남아 큰 위로가 되었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외지에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는 사실, 캘리포니아의 그 맑은 하늘에 아름다운 무지개를 펼쳐 놓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펼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의 경험 이후 지금까지 참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저희는 그날에 보았던 무지개를 다시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그날의 무지개를 다시 보여 달라고 기도하지도 않으며,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눈에 아름답게 빛나던 무지개가 더 이상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날마다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로 말미암아 지금도 우리의 인생 가운데 예수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펼치시는 주님을 믿고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진지하게 돌이켜본다면 여러분의 삶에도 주님의 영광과 주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신 변화산의 사건이 있지 않으셨나요? 오늘 본문의 사건처럼 거창하지 않더라도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시는 현장을 바라보았던 경험이 분명히 있지 않으셨나요? 우리의 삶에 고난과 수난의 날들이 가득한 것이 사실이지만 단 한 번이라도, 그것도 매우 짧은 순간이라도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변화산 사건이 있지 않으셨습니까? 성도 여러분 만일 그렇다면, 비록 여러분의 삶에 인생의 사순절이 찾아왔다 할지라도 지금도 여러분의 삶에 주님의 아름다움을 펼치고 계시는 하나님을 확신하셔도 좋습니다. 

우리의 삶에 산상변모주일은 일년에 단 한주로 너무도 짧은 반면, 우리 인생의 사순절은 일년에 40일이나 되어 너무도 길고 모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삶에 있었던 변화산의 사건이 계속 의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목천의 모든 성도 여러분,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을 들려주시며 조금 더 힘을 내라고 격려하며 응원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주님의 격려와 응원에 새 힘을 얻어 마침내 십자가의 길을 모두 통과한 뒤, 그 모든 과정을 되돌아볼 때 여러분의 전 생애는 어느 하루도 빠짐없이 주님의 영광과 주님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깨닫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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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