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번역 자료2018. 11. 1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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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y G. Oden, God’s Welcome: Hospitality for a Gospel-Hungry World (Cleveland: The Pilgrim Press, 2008), 19-22를 저자의 허락을 받고 번역하여 게재함. 

 

환대라는 개념이 최근에는 감성주의로 치우치면서 편안함, 따뜻함, 뽀송뽀송함과 같은 느낌과 연관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환대의 실재에 대해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데 성경이나 초대교회의 전통에서는 분명히 인식되었던 사실, 곧 환대는 우리의 삶에 지장을 주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견디어야 했던 첫번째 위험은 어쩌면 우리 시대에 가장 뼈아픈 것일 수도 있는 거절이다. 만일 그 나그네들이 거절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브라함이 그들을 초대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이 마므레 상수리나무 아래에 머무르게 되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잠시 머물며 아브라함의 환대를 받도록 초대 실제로는 애걸 하였다는 것뿐이다.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모든 식구들에게 예상되는 두번째 위험은 구체적으로 신체에 가해질 수 있는 위험이다. 세 명의 장정이라면 얼마든지 노쇠한 아브라함과 사라를 힘으로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영하는 일에는 또한 강도와 질병의 위험도 도사린다. 그들은 낯선 여행자를 영접할 때의 결과를 알 수 없었다. 이처럼 위험이 실재했다면 아브라함은 왜 환대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했는가? 무엇이 이와 같은 행동을 이끌었는지 성경은 서술하지 않지만, 마므레 상수리나무에서의 사건을 묘사하는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호와께서 나타나시니라”( 18:1) 하나님의 현존으로부터 환대에 뒤따르는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생겨난다.

외부인을 영접하는 행위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공동체를 위험에 노출시킨다. 최선의 경우, 이방인은 새로운 생각과 행동 양식을 그것이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다 전달하며 우리의 삶에 지장을 준다. 최악의 경우, 이방인은 질병, 불명애, 폭력 등을 발생시키는 위험요소가 된다. 아브라함의 사건이 입증하듯 이방인을 영접하는 것은 위험하며 주인이든 손님이든 동일하게 모든 사람에게 변화를 일으킨다. 그 무엇도 이전과 동일할 수 없으며 우리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

이방인은 새로운 생각의 방식을 전달하기에 우리는 현상태에 머무를 수 없으며 우리 주변을 예전의 모습으로 간직할 수도 없다. 이 모든 것은 개인과 공동체에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유발한다. 환대는 하나님께서 주인과 손님 모두에게 여전히 일하고 계시다는 깊은 확신을 요구한다. 궁극적으로, 환영을 실천하는 분은 하나님이다. 위험은 두렵지만 그것이 환영을 동반한다면 우리는 복음 환대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오히려 어떠한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환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시대에 존재하는 환대의 위험은 실제적이며 빠른 속도로 교회 안의 열정을 전복시킬 수 있을 정도이다. 방과후 과정으로 어린이들을 교회에 초대하는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법적 책임에 대한 보험 가입, 건물의 마모와 훼손까지 보장하는 확대된 양육 서비스, 그리고 매주 교회 건물에 아이들이 거주하며 발생하는 혼란스러움 등을 먼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회중을 경제적으로, 때로는 선교적으로 위험에 처하게 한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교회 주변의 이웃들에게 주일 아침 예배에 함께 참여하도록 초대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유인물을 통해 이웃들에게 설문을 조사하고 교회 마당에서 거대한 개시 행사를 진행한다. 교회 주변의 3~4 가정이 관심을 보였지만, 정작 약 20명에 가까운 아이들(4세부터 20세까지)이 부모와 함께 하지 않은 채 주일 예배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우리의 마음은 순수했지만 환대에 따르는 위험은 심각했다.

많은 공동체가 환대에 따르는 위험 요소 때문에 의문을 제기한다. 실효성이 없으면 어떻게 하는가? 실패의 위험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환영을 실천할 때,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과연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아브라함의 유일한 목표는 낯선 사람들에게 환대를 제공하는 것뿐이었다. 아브라함도 사라도 나그네들이 아브라함의 가족이 되거나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따르거나 그들이 받은 지극한 환대를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성공으로 여기지 않았다. 사실, 아브라함이 그들을 초대한 이유는 마음을 상쾌하게 한 후에 지나가는 것이었다( 18:5). 우리는 환대를 다른 사람의 반응이나 우리가 기대했던 결과를 기준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창세기 18장은 환대, 위험,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과에 상관 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순종하기 위하여 위험을 감수한다. 위험이란 환대의 영적 표시다.

복음 환대의 특징인 위험을 부주의한 자포자기와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위험 감수는 감성적이거나 충동적인 것이 아니라 밝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환대에 따르는 위험은 선물과 동시에 요구사항도 함께 전달한다. 환대에 따르는 위험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환영을 의지해야 함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관대하게 하고, 결과가 어떠하든 그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게 한다.

 

Q. 새가족 사역자로서 위험 소극적으로는 나의 일상에 방해를 받은 것부터 적극적으로는 나의 삶에 위험이 발생한 것까지 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그 경험을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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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Dr. Hanjin Lee 이한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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