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그룹과 말씀묵상2020. 4. 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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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신학자 데이비드 페린(David B. Perrin)은 “인간성에 대한 깊은 관심과 초월적 가치에 대한 신념이 함께 만나 인생의 궁극적 성취를 향해 나아가는 바로 그 지점에 기독교 영성이 위치한다”고 주장한다. [각주:1]  그의 주장을 따르면, 세 가지 차원이 함께 공존해야 그것을 기독교영성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데, 그 세 가지 차원이란 (1) 인간성, (2)초월적 가치, 그리고 (3) 인생의 궁극적 성취다. 그런 점에서, 최근 등장하는 다양한 영성훈련 프로그램이 건전한 기독교 영성을 추구하는지 여부는 위의 세 가지 요소로 판가름해 볼 수 있다. 만일 이 가운데 단 하나라도 배제된다면, 그것은 어딘가 부족한 기독교 영성훈련이라 평가할 수 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성경묵상은 언제나 기독교 영성훈련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성경 묵상이 영성 훈련을 위한 매우 핵심적이고도 효과적인 활동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기독교인은 거의 없다. 그러나 성경 묵상이 탁월한 영성 훈련의 방법일지라도 성경을 대하는 방법이나 태도는 개인이나 공동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성경 묵상이 과연 건전한 기독교 영성을 추구하는 추천할 만한 영성훈련활동인지는 재차 점검해보아야 한다. 이때 데이비드 페린이 제시한 기독교 영성의 세 가지 측면은 성경 묵상의 방법이나 태도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첫째, 말씀 묵상이 건전한 기독교 영성훈련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성’에 대한 깊은 관심이 포함되어야 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온갖 종류의 감정이나 희노애락 등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 묵상을 통해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죄성의 문제를 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영성훈련으로서의 말씀 묵상은 그리스도인 개인이나 기독교 공동체에 자리잡고 있는 인간적 한계와 죄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둘째, 말씀 묵상이 건전한 기독교 영성훈련이 되기 위해서는 ‘초월성’을 경험해야 한다. 성경을 통해 인간 사회의 다양한 현실 – 인간의 한계와 죄성 – 을 정직하게 인식하는 데서 나아가 하나님께서 부여하시는 초월적 가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관상기도나 거룩한 독서(Letio Divina) 등과 같은 대표적인 영성훈련이 구체적인 삶의 적용보다는 의식성찰[각주:2]을 비롯하여 관상이라는 초월성에 더욱 강조점을 두는 이유 역시 기독교 영성이 초월적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셋째, 말씀 묵상이 건전한 기독교 영성훈련이 되기 위해서는 ‘궁극적 성취’를 지향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인의 완덕(Christian perfection)을,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음(imitation of Christ)을, 그리고 어떤 이들은 제자도(discipline)를 영성훈련의 궁극적 목표로 삼을 수 있다. 이처럼 기독교 영성이 추구하는 지향점은 개인이나 공동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무엇이 되었든 분명한 지향점이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빌립보서 2장 5-11절은 바울 시대의 교회가 즐겨 부르던 찬송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분이신 지를 노래하는 내용이다. 이 구절은 바울의 언어라기보다는 당시 널리 퍼져있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을 바울이 직접 인용한 것이다. 한 마디로, 이 구절은 바울 시대의 교회가 공유했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본문(texts) 가운데 하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본문을 소개한 후 빌립보서 2장 12절 이하부터 이 본문을 근거로 빌립보교인들에게 권면의 이야기를 계속하는데, 바울의 권면에는 데이비드 페린이 이야기하는 기독교 영성의 세 가지 측면이 모두 등장한다. (1) 빌립보 교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원망과 시비’는 여전하지만(14절), (2) 빌립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13절). (3) 그러므로 빌립보교회는 그들의 구원을 이루기까지 나아갈 것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12, 15-16절). 바울은 자신이 선택한 그리스도에 대한 본문을 근거로 인간성, 초월성, 궁극적 성취라는 기독교 영성의 세 가지 측면을 두루 갖춘 권면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신구약성경 66권이라는 확정된 본문이 주어졌다. 이 본문을 묵상하며 인간성, 초월성, 궁극적 성취라는 기독교 영성의 세 가지 측면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소홀히 하지 않을 때 말씀 묵상은 참으로 유익한 영성 훈련의 방편이 된다. 


  1. David B. Reppin, Studying Christian Spirituality (New York: Routledge, 2007), 22. [본문으로]
  2. “의식성찰은 하루 중 15분에서 20분 정도 조용한 시간을 내어서 내면(의식)의 흐름에 관심을 두면서 하루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내적 흐름을 관찰하여 하루 동안에 하나님이 어떻게 나의 삶 속에 임재하시고 역사하셨는가를 살피고,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하루 동안 나의 존재와 삶은 어떠하였는지를 살피는 것이 바로 의식성찰이다.” 총회목회정보정책연구소 편, <영성목회>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12), 9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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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