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2020. 6. 1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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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남 유다 

오늘 본문은 남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가 유다의 왕으로 등극하는 장면을 간단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과 13절에 그 내용이 등장합니다. 

“너는 반역하는 족속에서 묻기를 너희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겠느냐 하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왕과 고관을 사로잡아 바벨론 자기에게로 끌어 가고 그 왕족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언약을 세우고 그에게 맹세하게 하고 또 그 땅의 능한 자들을 옮겨 갔나니” 

12절 뒷부분을 보시면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왕과 고관을 사로잡아 바벨론 자기에게로 끌어 가고”라고 말씀합니다.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왕이 예루살렘에서 남 유다를 다스리고 있던 여호야긴 왕을 포로로 사로잡아 갔다는 내용이지요. 바벨론 제국은 여호야긴 왕을 포로로 잡아가면서 남 유대를 다스릴 새로운 왕을 세웠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시면, “그 왕족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왕족 중에서 한 사람을 세웠다고 말씀하는데, 실제로 바벨론 제국이 사로잡아갔던 여호야긴 왕의 삼촌이 됩니다. 여호야긴 왕의 숙부인 남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택했다는 말씀이죠. 13절 말씀을 계속해서 보시면 “언약을 세우고 그에게 맹세하게” 하였습니다. 시드기야 왕에게 어떠한 맹세를 하게 했는지는 우리가 충분히 추측할 수 있잖아요? 거대한 제국 바벨론이 조그마한 유대 나라의 왕을 바꾸었으니 당연히 남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바벨론 제국은 잘 섬기겠다는 맹세를 하도록 했겠지요.  그래서 오늘 본문 14절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유다) 나라를 낮추어 스스로 서지 못하고” 바벨론을 섬기겠다는 그 약속을 지켜야 능히 생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방인의 포로가 된 것,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 

여러분, 남 유다는 그래도 하나님에 대해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민족이었어요. 물론, 그들 안에 우상숭배도 있고 율법대로 살지 못하는 모습이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언약의 백성이었잖아요. 백번 양보해서 바벨론 제국처럼 공식적으로 마르둑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민족은 아니었다고요. 그런데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나라, 하나님을 오히려 대적하는 바벨론 제국의 포로가 되어 가고 식민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신앙인은 –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 유대 민족들은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너무도 당연하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해달라고, 하나님께서 저 이방인인 바벨론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 같지 않으세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바벨론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대해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해 참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아버지, 기도하는 어머니를 둔 여러분의 자녀들이 직장에서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상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상관을 만나서 너무 큰 핍박을 받는 거예요. 그러면 새벽 기도에 나오셔서 어떻게 기도하시겠어요? ‘하나님, 우리 자녀가 믿음 때문에 너무도 큰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그저 감사하고 만족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겠어요? 아니면, ‘하나님, 우리 자녀를 괴롭히는 그 놈이 지금 당장 회사에서 잘리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그 자리에 우리 자녀가 올라가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시겠어요? 우리는 다 똑같아요. 우리가 예수님 믿는 사람이고, 우리 자녀가 믿음의 자녀라면 이 세상 속에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머리가 되고 형통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기 마련이지요. 

여러분, 모르긴 몰라도, 에스겔 시대 유다 백성들도 동일한 기도를 했을 겁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우리 민족이 지금 하나님을 모르고 오히려 우상을 섬기는 바벨론 제국에 포로가 되었고 식민지가 되고 있어요. 그러니 지금 당장 우리를 구해주시고 저 바벨론 제국으로부터 모든 멍에를 풀어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을 방법으로 남쪽에 있는 또 하나의 큰 나라였던 애굽과 동맹을 맺고 바벨론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은 참으로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본문 16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바벨론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웠거늘 그가 맹세를 저버리고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그 왕이 거주하는 곳 바벨론에서 왕과 함게 있다가 죽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두고 맹세하신데요. 하나님께서 확고하게 말씀하시는 거죠.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는데,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 왕을 섬기겠다는 맹세를 저버리고 바벨론 왕에게 맺은 약속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서 머나먼 바벨론 땅에서 자신의 생애를 마감하게 될 것이라는 심판의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십니다. 오늘 본문 19절입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시드기야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맺은 언약, 곧 바벨론의 속국이 되어서 바벨론을 떠받히고 바벨론을 섬기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이 곧 ‘하나님과의  맹세’를 업신여기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묵상을 하면서, 하나님은 왜 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이방 나라 바벨론을 섬기겠다는 약속을 하나님과 맺은 약속으로 생각을 하실까 질문을 하고 생각을 해 보았어요. 그러자, 그 안에 중요한 교훈이 한 가지 있더라고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분명하게 구분해요.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고 생각해요. 여기까지는 바른 생각이에요.  그런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죠.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세요.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틀린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은 함께하시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생사화복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다만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지요. 

그러므로, 비록 불신자가 세상에서 우리의 상관이 되고 때로는 불신자들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괴로움을 당하게 되더라도, 여러분 그들의 뒤에서 실제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습니다. 나에게 해를 끼치고,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어려움과 고통으로 몰아넣는 불신자가 있으세요? 하나님은 바로 그들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인가 놀라운 계획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숨겨진 계획 

에스겔 시대,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식민지가 되어가는 모습 속에서 유다 민족이 바벨론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하자 하나님은 그들을 꾸짓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참 단순합니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가고 바벨론의 식민지가 되어가는 모든 과정 속에서 묵묵히 유다 민족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조금씩 성취해하고 계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드디어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가는 이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놀라운 계획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오늘 본문 22절과 23절 말씀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 

하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서 다시 심으시겠답니다. 연한 가지를 꺾어서 다시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으시겠데요. 이 비유의 의미는 너무도 명확합니다. 지금 남 유다는 바베론의 포로가 되어가고 식민지가 되어가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일부를 다시금 약속의 땅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시고 그곳에 심어주시겠다는 말씀이지요. 그리고 23절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새롭게 심으실 사람들을 통해 이루실 놀라운 역사를 분명하게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해집니다. 그리고 좋은 열매를 가득가득 맺게 됩니다. 아름다운 백향목이 되어서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게 됩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각종 새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유다를 식민지로 만들어가고 있는 바벨론을 포함한 모든 열방을 의미합니다. 열방의 모든 나라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흘러 보낼 수 있는 축복의 통로로 유다 민족을 사용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유다 민족을 통해 열방에 하나님의 은혜를 흘러넘치게 하시기 위해서는 그들의 심령을 근원부터 바꿀 수 있는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이 꼭 필요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방민족 바벨론을 통해 그 일을 진행하고 계셨던 것이죠. 

우리의 삶 속에서 고통이 찾아오고 아픔이 찾아올때, 특별히 불신자들로 말미암아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그저 그 아픔과 고통 속에서 하루속히 벗어나게 해 다라고 몸부림치며 기도하기보다 그러한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펼치고 계실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묻고 찾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인 우리를 결코 포기하거나 방치해두지 않으십니다. 그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이루기 위해 잠시 잠깐 우리에게 아픔도 허락하시고, 고통의 시련도 허락하시는 것이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하고, 믿고 확신하면서 우리 안에 있는 다양한 기도의 제목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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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v. Hanji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