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신학적 교회론2020. 6. 17. 09:56
반응형
이 글은 2012년 버클리기독대학에서 행한 "제자훈련"에 대한 특강 원고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하여 그들로 구원받은 크리스천이 되게 하는 것과, 이미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일이다. 그리고 영적 성숙은 마지막 날까지 지속되는 끝이 없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회 현장에는 성도들의 지속적인 영적 성숙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며, 지속적인 영적 성장이 보이지 않는다고 탄식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사례 1 _ 윌로크릭교회 

2007년, 미국 윌로크릭교회는 성도들의 영적 성장에 대한 자체 보고서인 Reveal을 출판하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이들 중 25% 이상이 자신의 신앙이 정체 상태에 있으며 영적 성장에 있어 교회의 역할에 만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처음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은 신앙생활의 초기에는 영적 성장을 경험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영적 침체기를 겪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윌로크릭교회의 Reveal은 당시 한국 교회 안에서도 논쟁의 중심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온누리교회를 비롯한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윌로크릭교회의 ‘구도자 중심 예배’를 이른바 ‘열린 예배’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였다는 점 외에도, 한국 교회 역시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광범위한 인식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윌로크릭교회 성도들의 지속적인 영적 성숙을 가로막고 있었는가? 

미국 클레어몬트 신학교 학장인 필립 크레이톤(Philip Clayton) 박사는 윌로크릭이 내세웠던 ‘구도자’라는 개념을 비판한다. “몇 해전, 사람들은 교회를 출석하는 사람들의 하위 집단을 ‘구도자’(seekers)라는 용어로 정의 내리기 시작하였다. …(중략)… 그러나 이 용어에는 불합리한 점이 있는데, 곧 ‘구도자’(seekers)가 ‘소유자’(possessors)의 반대말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도자’라는 용어는 그들이 진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열등한 사람인데 반하여, 교회 안에 있는 그 외의 사람들은 이미 진리를 소유한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도자’라는 개념은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이중구조를 교회 안에 형성하게 된다.”  필립 크레이톤의 비판에 따르면, 윌로크릭교회는 ‘구도자 중심의 예배’(Seeker-centered Worship)을 통해 새로운 신자를 확보하는 일에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영적 성숙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성도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도 여전히 진리를 향해 달려가는 ‘구도자’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만 것이다.  



사례 2 _ 사랑의교회 

‘제자 훈련’을 가장 중요한 목회 철학으로 여기는 사랑의교회는 어떠할까? 고(故) 옥한흠 목사는 제자훈련이 지속적인 영적 성숙의 과정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강조하였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내내 미완성으로 남게 되는 문제이다. …(중략)… 그러므로 우리가 계속해서 교회 안에서 강조해야 할 점은 제자로 부름 받은 사람은 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계속 성장하고 성숙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자도는 성장하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현실의 목회 현장이 제자훈련에 대한 옥한흠 목사의 분명한 철학과 괴리된 부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옥한흠 목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사랑의교회에서도 ‘나는 제자가 아직 아니예요. 훈련을 받지 못했거든요.’라고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시각인가를 잘 알면서 목회자들 역시 비슷한 잠재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어떤 사람은 제자로 대접하고 어떤 사람은 무리의 한 사람처럼 대접한다. 자연히 한쪽에서는 무슨 특권층이나 되는 것처럼 우쭐거리게 되고 다른 쪽에서는 기를 펴지 못하고 살게 된다.”  윌로크릭교회가 ‘구도자’라는 개념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성도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구도자’와 구별되는 ‘소유자’로 여기도록 하는 오류를 범했다면, 사랑의교회는 제자훈련의 과정(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수료한 사람들만 소그룹(다락방) 리더로 세우면서 제자훈련의 과정을 이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만들게 되었다. 나아가, 이미 제자훈련을 마친 사람에게는 더 이상 나아가야 할 목표나 비전을 제시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마치 장로 교회에서 장로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가 되어 장로 장립을 받은 사람은 더 이상의 훈련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하고 만 것이다. 



선교하는 교회(Missional Church)를 만들라 

교회는 지속적으로 성도들의 영적 훈련을 자극해야 한다. 새신자는 물론이요, 이미 다양한 성경공부를 이수한 사람들, 이미 교회 안에 중요한 사역자로 봉사하는 사람들, 이미 장로 혹은 권사라는 교회의 중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다시금 훈련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선교하는 교회’(Missional Church)가 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장로라는 직분, 혹은 소그룹 인도자(ex. 구역장)가 평신도들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가 되는 순간, 그 자리에 다다른 성도들은 더 이상 나아갈 목표를 상실한다. 그러나, 교회가 중직자를 선교사로 파송할 수 있다면, 평신도 지도자들을 다수 포함시킨 교회 개척팀을 구성할 수 있다면, 평신도 전문인들이 자신들의 영역에 하나님 나라를 펼치기 위한 기독교 운동을 주도할 수 있다면, 교회는 비로소 그들에게 새로운 목표를 던져줄 수 있다. 교회 안에서 소그룹 인도자가 되는 것이나, 당회원과 같은 중직자가 되는 것이나, 혹은 신학을 공부하여 안수받은 목회자가 되는 것이 크리스천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아니지 않은가? 

 

 

제자 훈련을 위한 소그룹 환경

이 글은 2012년 버클리기독대학에서 행한 "제자 훈련" 특강 원교입니다. 소그룹은 제자 훈련을 위한 필수적인 환경이다. 주일 예배와 같은 대형 모임에서는 정보의 전달은 가능할지 몰라도, 성도

hanjin0207.tistory.com

 

반응형
Posted by Rev. Hanjin Lee